내 삶의 회전축
2026. 10. 18(주일낮예배) 빌립보서 1:12
왜 사람의 삶에 고통이 있겠는가? 2000년 7월 30일 오빠 차를 타고 귀가하던 이지선 양은 신호대기 중에 만취한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고, 40번 이상의 대수술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수술보다 더 힘든 것이 소독이었다. 화상으로 피부껍질이 벗겨진 이지선 자매는 온 몸을 하얀거즈로 덮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그 거즈를 교체하기 위하여 소독실로 가는데, 살에 붙은 거즈를 떼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아무리 참아도 입에서는 악 하는 소리가 났고, 눈에서는 눈물을 주루룩 흘렀다고 한다. 그렇게 아파하는 이지선 자매를 위하여 간호사들은 최대한 아프지 않게 노력하며 거즈를 뗐는데, 그때 어떤 간호사는 아프지 말라고 천천히 떼고, 또 어떤 간호사는 한순간에 확하고 뗐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에 어떻게 떼는 것이 덜 아프겠는가? 거즈를 천천히 떼면 오랬동안 50으로 아팠고, 빨리 떼면 한 순간에 100으로 아팠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이지선 자매는 40여번의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얼굴 피부가 오그라들어서 당기면 다리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지선 자매는 가해자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사고가 난 날이 일요일 밤입니다. 가족들과 따뜻하게 보내야 할 시간에 혼자 소주를 5병이나 마시고 운전했을 그 사람의 곤고하고 마른 가슴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프고 불편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 사람에 비하면 내가 훨씬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는가?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한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마귀는 40일을 금식한 예수님께 나아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떡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한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마귀가 시험할 때 내가 40일 금식기도 했다는 생각도, 그리고 배가 너무 고프다는 생각도 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인가? 창세기 25장을 보면 에서가 사냥을 갔다고 돌아온다. 그때 동생 야곱이 에서가 좋아하는 붉은 죽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얼마나 좋았던지 지치고 피곤한 에서의 코를 자극하였다. 그래서 동생 야곱에게 그 죽을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는데,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한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은 단순히 형님 하고 이름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장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말한다. 그래서 장자로서의 유산을 상속받고, 또 우리나라에 종갓집이 있는 것처럼 그 집안의 정통성을 가지는 권리도 다 장자의 명분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장자의 명분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것이었는데, 에서는 그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다.
왜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았겠는가? 창세기 25장 32절을 함께 읽기 바란다.
(창 25: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냥을 하고 돌아온 에서는 내가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이다. 그랬던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가? 사람은 배가 고프면 혈당저하가 오고, 혈당저하는 뇌의 연료공급을 제일 먼저 줄인다. 그래서 배가 고픈 사람은 인내심이 줄고 감정조절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것을 굳이 제가 이렇게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교회를 출석하는 남편들은 대부분 아내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딱 한순간 짜증을 낼 때가 배고플 때일 것이다. 이것은 아내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내 분들이 배가 부를 때 장을 보러가면 장바구니에 담기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배가 고플 때 장을 보러가면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산다. 왜냐하면 뇌에 연료공급이 떨어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에서도 배가 고픈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고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마귀의 시험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말씀을 생각한다. 그리고 판단력이 흐려진 그 상황에서도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왜 사람에게 고난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모든 회전하는 물체에는 회전축, 다시 말씀드리면 자이로스코프(Gyroscope)가 있다는 것이다. 팽이가 회전력이 있어서 회전축이 서 있으면 계속 돌아가지만, 회전축이 무너지면 팽이가 멈추어 서는 것처럼 회전하는 물체에는 회전축(자이로스코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도 각각 자기 삶에 자이로스코프를 가지고 있다. 건강, 자녀, 사람들의 관심, 경제적 부요함, 심지어 헌신적 종교활동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자기 삶의 자이로스코프로 여기고 살고 있다. 그래서 건강을 회전축으로 삶이 이루어지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고난이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달리고 나면 깨운다하고 말한다. 이것은 물질을 회전축으로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을 회전축으로 가진 사람이 밤을 새워서 일을 한다. 그래서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면 일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감사이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빨리, 더 열심히를 외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물질을 버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결국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사라질 때 고통, 고난이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회전축이 무너지는 그 순간을 절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고통이고, 절망이다.
왜 사람에게 고통과 고난이 오는가? 선박에도 자이로스코프가 있다. 그래서 배가 항해를 할 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배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고, 또 파도가 쳐도 자이로스코프가 자기 역할을 하면 배는 안전하게 운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이로스코프가 무너지면 배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침몰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회전축은 무엇인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은 성도들이 모아 준 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둘러 싸여 위협을 당하였을 때 로마의 천부장이 와서 바울을 결박하여 끌고 간다. 그 후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어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바울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자신이 전도하여 세워진 교회를 돌아볼 수도 없고, 또 땅 끝까지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바울의 모든 것은 끝이 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바울은 낙심의 말을 하지 않는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이 복음의 진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12절을 읽기 바란다.
(빌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진전이라는 단어는 나무를 찍어가면서 전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로마는 공병대가 길을 닦으면 그 길을 로마의 전차부대와 주력부대가 그 길을 지나 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의 전차부대와 주력부대가 싸워서 패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길을 닦는다는 것은 곧 이 땅이 로마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압송된 바울은 자신이 길을 닦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군대가 복음을 들고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군대가 복음을 들고 들어가서 패배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곧 로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는 소망이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져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바울의 사역은 끝이 났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처참한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이다고 절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절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울의 회전축(자이로프스코프)는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 주고 있는가? 내가 지금 얼마나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회전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회전축이었던 바울은 오직 주의 복음이 증거되어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바울은 소망을 가질 수 있었는가? 한 선교사님이 교회초청을 받아 강단에 섰다. 그리고 선교사님은 저는 오늘 3대지 설교를 하겠습니다. 하면서 첫 번째 대지는 지금 이 순간 20억명 사람이 굶어죽어가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말에 성도들의 누가 모르나 하는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성도들이 설교에 반응이 없을 때 선교사님은 이제 두 번째 대지입니다라고 말하자 성도들은 선교사님의 설교가 굉장히 짧을 수도 있다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 선교사님은 두 번째 대지는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이 사실에 조금도 관심도 없다는 빌어먹을 사실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도들은 불쾌감과 분노를 일으켰다. 그래서 웅성웅성하자 선교사님은 세 번째 대지를 말한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대지입니다. 세 번째 대지는 오늘날 크리스천의 진정한 비극은 20억명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이 말보다 선교사가 빌어먹을 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자기 삶의 회전축을 성공, 인정, 자신의 열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자신의 삶의 회전축이 무너져 갈 때 고통을 느끼고, 또 그 회전축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의 삶에 절망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멈춰서지 않는 영원한 삶의 회전축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회전축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고난은 있지만 절망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중심축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떤 역경과 고통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은 평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