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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한옥마을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찬찬히 이해하면서 읽듯이 들여다보려면 1년으로도 모자란다.
천년왕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경주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역사기행을 하면서도 지면의 제한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야하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인듯 하다.
독자들이 보는 시각을 달리할 수도 있고 더욱 깊은 공부를 위해 현장을 답사하거나 다른 자료집을 찾아보는 것이 유익하리라는 생각을 제언으로 얹어둔다.
경주교촌한옥마을은 월성과 첨성대 주변 사적지에 접해 있다.
재매정과 김유신 생가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요석궁이 위치해 있기도 한 유서깊은 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촌한옥마을은 오늘날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신라 국학이 있던 곳으로 더욱 이름이 높다.
지금은 경주향교가 자리잡아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모시면서 오랜 전통과 예절을 공부하는 터전으로 학문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교촌마을은 교촌, 교리, 교동 등으로 불리는데 향교가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교촌마을은 신라시대 국학이 있었던 곳으로 고려시대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육기능을 담당했던 향학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향교였던 곳으로 경상북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향교로 남아 있다.
경주에서 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까지 총망라해 남아 있는 현장이지만 경주시가 ‘경주교촌한옥마을’로 조성해 여러 가지 체험행사를 진행하면서 조선시대의 향기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앞 건물에는 성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뒷 건물을 교육의 장으로 배치해 공자왈 맹자왈 선비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대청을 울렸을 경주향교가 조선시대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교촌마을로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경주교촌한옥마을
경주교촌마을은 월성과 첨성대 사적지구에 서편으로 연접해 있다.
신라시대 국학, 고려시대 향학, 조선시대 향교로 이어져 내려오는 경주향교와 최씨고택, 최부자아카데미, 전통체험장 등으로 조성된 전통한옥마을이다.
경주교촌한옥마을은 경주시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21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교동 64-5번지 일대의 가옥들을 사들여 한옥을 건립하고 안길을 정비해 순수 조선시대풍의 한옥마을로 조성했다.
경주교촌마을은 신라시대 왕실이었던 월성과 바로 연접해 요석공주와 원효대사가 설총을 낳았던 요석궁이 있었던 지역이다.
지금은 신라시대 국학의 터전이었던 경주향교, 최부자아카데미, 교동법주, 한정식 식당 요석궁을 비롯한 여러 음식점과 체험시설들로 구성돼 있다.
체험시설로는 토기제조, 천연염색, 누비, 다도예절, 유리공방 등을 유치해 한옥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서 단체 체험학습을 진행하거나 가족단위로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종종 눈에 띈다.
경주시가 5월부터 9월까지 교촌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비형랑 등의 전통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연을 기획 운영하고 있어 교촌마을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관광성수기는 물론 추석과 설명절에 문화공연을 집중 운영해 교촌한옥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교촌마을을 들어서는 입구 광장에는 널뛰기와 제기차기, 투호놀이 등의 전통민속놀이기구를 설치하고 말타기와 널뛰기 등의 석조 조형물을 배치해 전통마을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경주시는 또 조선시대 전설적인 만석꾼 최부자 가문의 훈육을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재단법인 경주최부자아카데미를 설립 교육체험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최부자아카데미는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경주 최부자의 훈육정신을 재해석해 현대인들의 기업이념과 접목 보급하고 있다.
경주교촌마을은 신라시대 요석공주의 거처 요석궁이 있었던 곳으로 월성과 연접해 있고, 첨성대에서 내물왕릉, 계림으로 이어지는 사적지의 서편으로 바로 연결돼 경주 관광의 핵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촌아카데미와 최부자의 교훈
‘부자가 천당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또는 ‘3대 이어가는 부자 없다’는 성경구절처럼 전해지는 말은 12대 400년동안 만석꾼을 이어왔던 경주 최부자에는 예외였다.
경주 최부자는 12대 400년동안 만석꾼의 부를 이어오면서 9대 진사를 배출한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가로 책으로도 소개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경주최부자집’은 최치원의 17세손이며 조선시대 경주지방에서 가문을 일으킨 정무공 최진립에서부터 광복 직후 모든 재산을 바쳐 영남대학을 설립한 최준에 이르는 12대를 말한다.
이들 후손이 살고 있는 교동 종가집은 1700년경에 지어졌다.
이집이 ‘경주교동 최씨고택’으로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12대 400년간이나 만석꾼을 유지한 최부자댁의 비밀 아닌 비밀로 알려지고 있는 덕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집안을 다스리는 교훈(六訓 육훈)
1.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마라
2. 만석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1만석은 벼 2만가마니, 쌀 1만석)
3. 흉년기에는 땅을 늘이지 말라
4. 과객을 후하게 접대하라(과객 접대 양곡 1년 쌀 2천가마니 소요/ 놋그릇, 반상 500인분 보유, 과객을 후하게 접대하고 정보교류, 우호적 여론 조성)
5.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빈민규휼 : 영덕, 포항, 감포, 밀양, 경산, 영천까지, 차용증서를 불태워 채무자의 빚 탕감)
6.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근검절약)
-자신을 지키는 교훈(六然 육연)
1.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세속을 초월하는 경지)
2.대인애연(對人?然) :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누구에게나 평등한 마음가짐)
3.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고(잡념을 자제)
4.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임전무퇴를 의미)
5.득의담연(得意淡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경거망동을 삼가란 의미)
6.실의태연(失意泰然) :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교훈을 의미)
-가거십훈 家居十訓(집에서 지켜야 할 10가지 훈계)
1.명인륜(明人倫) : 인륜을 밝힌다.
2.사친효(事親孝) :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한다.
3.애군충(愛君忠) : 임금을 사랑함에 충성을 다한다.
4.의실가(宜室家) : 가정을 잘 다스린다.
5.우형제(友兄弟) : 형제 사이에 우애가 있다.
6.신붕우(信朋友) : 친구사이에 신의가 있다.
7.원여색(遠女色) : 여색을 멀리한다.
8.계취주(戒醉酒) : 술에 취함을 경계한다.
9.과농상(課農桑) : 농업과 잠업에 힘쓴다.
10.강경학(講經學) : 경학을 익힌다.
경주최부자는 12대 400년 동안 부를 지켜오다가 최준에 이르러 마감했다.
그는 부산에서 안희제와 함께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으며 그 결과 회사는 어려워지고 부채를 사장인 자신이 몽땅 떠안았다.
일제는 여러 벼슬을 제시하며 갖은 방법으로 유혹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
해방을 맞이하고 그는 나라가 망한 것이 부족한 교육 때문임을 깨닫고 400년 묵은 그의 재산을 던져 영남대학을 설립했다.
경주최부자의 훌륭한 선행들은 물질문명이 우선시되고 황금만능주의로 이기적인 현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닐까 싶다.
흉년구제는 나라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때 최부자는 곳간을 열고 굶주린 이웃을 구했던 것이다.
경주시는 교촌마을에 최부자아카데미를 설립해 교육기관으로 운영하면서 향교와 함께 교육기능을 강조하는 교육과 관광을 더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육성하고 있다.
경주 최부자아카데미 설립은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사례로 경주시가 이를 널리 보급하려는 착한 노력이라 하겠다.
◆요석궁
요석궁은 신라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던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시집갔다가 혼자되어 기거하던 궁이다.
무열왕이 당시 원효대사의 비범함을 알고 사람을 시켜 그를 궁으로 유인해 요석공주와 설총을 낳게 했다.
규모가 웅장했을 요석궁의 형태는 지금 볼 수 없다.
단지 ‘요석궁’이라는 현대판 간판이 걸린 한정식 식당이 울창한 송림 속에 고풍스런 한옥으로 교촌한옥마을 가운데 위치해 있다.
굴비를 곁들인 밥상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서민들의 주머니로는 요석궁의 밥상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요석궁이라는 간판과 최씨고택, 교동법주가 애워싸고 있는 공간. 교촌마을의 가운데 북쪽에서 남쪽 하천으로 이어지는 광장은 경주시가 주차장으로 조성했다.
만석꾼 최부자의 볏가리가 산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라는 문화해설가들의 설명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에 빠진 원효대사가 젖은 옷으로 후줄근하게 요석공주의 내실을 찾아들어 사랑의 불을 지펴올렸던 곳, 12대 400년간 최부자의 볏가리가 햇빛을 가렸던 곳, 일본인 등의 외국인들이 밤을 불태워 경주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곳. 지금은 현대차와 삼성차, 외제차들이 줄을 지어 엎드려 있는 주차장으로, 시간은 자연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신라국학의 요람 경주향교
경주향교는 신문왕이 신라시대 국학으로 설치했다.
고려시대 향학, 조선시대 향교로 이어졌다.
경주향교 대성전(오른쪽)은 보물로 지정 관리되면서 체험학습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향사가 앞건물로 배치돼 정문은 잠겨 있고 동문(왼쪽)으로 출입하게 하고 있다.
경주향교는 신라 신문왕이 설립한 나라의 교육기관 국학이 위치했던 자리다.
신라시대 국학은 태학감으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대에 다시 국학으로 고쳤다.
대사 이하 신분을 가진 15세에서 30세에 해당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곳으로 규정됐다.
학업연한도 9년으로 제한하고 학업을 마치면 대나마의 관직을 주었다.
고려시대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며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1492년 중수했는데 임진왜란에 대성전이 소실됐다.
1600년 경주부윤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했다.
1614년 명륜당을 중수하고 동서 양무를 중건했다.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향교로 대성전과 명륜당, 동무, 서무, 전사청, 내신문 등이 남아 있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었고, 대성전은 보물 제1727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대성전 향사를 앞쪽에 배치하고 공부하는 명륜당을 뒤쪽에 배치하는 특이한 구조다.
대성전에는 5성과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첫댓글 최부자의 교훈 6가지...
지난해 최부자집 창고에서 나온 문서를 통해 고스란히 현실적으로 진행되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엄청난 최부자의 정신. 다시 한번 감동합니다.ㅣ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꿈과 이상이야 늘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다
단지 그 실천은 어렵고도 험한 길이어서 누구나 쉽게 걸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를 실천한 경주 최부자의 역사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라 칭송하는 것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용기
그 용기 가지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