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글쓰기 - 왕벚나무 수피
왕벚나무 수피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려는데 막상 자신이 없다. 봄에 벚꽃이 핀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느티나무 수피를 떠올리니 여전히 헷갈린다.
여하튼 왕벚나무 수피라 여기고, 잠시 본다. 수피에 좁쌀 크기로 도드라져 있는 것도 있고, 그것들이 뭉쳐 가로로 눈썹처럼 그어진 것들도 있다. 피목(皮目)이다. 바깥 수피는 죽은 조직이기에 아무런 생명활동을 못한다. 그래서 피목을 만들어 바깥 공기를 안쪽 줄기로 넣어준다. 바람 통로인 셈이다. 왕벚나무 피목과 느티나무 피목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초짜에게는 어렵다. 왕벚나무 피목은 좀 정갈하고, 느티나무 피목은 좀 더럽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하지만, 그 기준점에 대한 변별력이 내게는 없다.
죽은 조직인 바깥 수피는 비대생장하는 줄기의 힘을 견뎌낼 수 없어 갈라지면서 언젠가 땅으로 모두 떨어진다. 그러면 안쪽 수피가 다시 바깥 수피가 되어 같은 수순을 밟아간다. 어느 선까지 자라면 멈추게 되는데, 이게 나무마다 다르다. 생장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생장이 멈춘 나무의 바깥 수피는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붙어 있을까? 어딘가 풀이가 있겠지만 어렵다.
<궁궐의 우리 나무> 저자 박상진 교수는 셀룰로오스를 철근으로, 리그닌을 콘크리트로 비유했다. 두 성분이 나무를 서 있게 하고, 단단하게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여기까지는 알아듣는데 아주대 약학과 김홍표 교수의 칼럼에 나온 “광범위하게 석탄이 매장되기 위해서는 지질학뿐만 아니라 화학도 가세해야 했다. 나무의 목질소라고 불리는 리그닌(Lignin)이 진화한 것이다. 나무의 목질을 구성하는 세포벽은 포도당 다당류인 셀룰로오스와 방향족 수산화물의 중합체인 리그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탄기에는 이들 고분자 화합물을 분해할 수 있는 생태계가 아직 조성되지 않은 데다가 뿌리가 약한 양치류가 퇴적될 수 있는 지질학적 교란도 흔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광합성 과정에서 합성된 탄수화물이 이산화탄소로 연소되지 않고 고스란히 땅에 묻혔다. 그렇기에 석탄은 한때 지상의 삶을 영위했던 고대 식물의 아바타이며 그 주성분은 탄소이다.”라는 말은 한참을 보아도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왕벚나무 수피를 본다. 가로로 세로로 갈라지는 수피가 곧 떨어질 운명에 놓여 있다. 접착력이 사라지면 영원한 이별을 고할 것이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각질도 알아서 척척 떨어져나가면 좋을 듯싶기는 하지만, 식물과 동물은 삶의 시스템이 다르다. 우리는 각질을 벗겨낼 손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만, 식물은 자발적인 분리로 생명을 이어간다. 누가 진화적으로 우수할까?
마지막으로 왕벚나무 수피를 또 본다. 느티나무 수피가 겹쳐지면서 작은 소망이 생긴다.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서도 왕벚나무 수피와 느티나무 수피를 분간할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그게 왜 중요할까? 잘 알아야 잘 생존한다는 본능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크게 돈도 안 되는 영역에서 실력을 배양하려는 걸까? 난감하지만, 어쩌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