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Vara: A Blessing>을 만든 키엔체 노르부가 티벳 큰스님의 환생자인 ‘린포체’라기에 적잖이 놀랐다. 하긴, 린포체 가운데는 출가하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다하니 ‘감독’이라는 직업을 지닌 게 그리 큰 일이 아닐 수 도 있겠다.
그이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하지만 [켄체가] 불교를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의 영화는 ‘로맨스’(연애) 쪽이다. .... 그는 “로맨스 영화만 만들고 직접 로맨스를 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왜 하지 않겠느냐. 나도 인간인데”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로맨스도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내 로맨스 실패기를 책으로 낼 작정”이라며 웃는다.
이 기사를 읽다보니, 여자에게 끌린 적이 없는지를 달라이 라마에게 대놓고 물었던 CNN 인터뷰가 떠올랐다. 달라이 라마는 “그렇다. 그런데 진짜 그렇다면 너무 귀찮을 것 같기도 하고 해서 곧 생각을 그만둔다”고 웃으며 답하더라.
티벳인들 특유의 재치나 소탈함 때문인가, 유난히 그곳에서 온 스님들에게는 ‘여자’를 향한 끌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툭하고 던지는 일들이 잦다. 그러면 그네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인데 왜 없겠냐’는 답을 심드렁하게 내어 놓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무심히 던질 수도 받을 수도 있다는 건 그네들이 그만큼 사람들과 더불어 스스럼없이 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국의 큰스님들께는 이런 질문 못할 것 같으니, 이 역시 그 양반들의 삶이 어떠하다는 말이기도 하겠구나.
예수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 이제 다반사다. 예수가 아내가 있었느니, 막달라 마리아하고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느니, 뭐 그런 말들이 적잖이 퍼져있는 걸 보면 ‘예수와 여자’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은근한 정도를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 싶다. 예수 역시 티벳에서 온 스님들처럼 사람과 어울려 살기를 좋아하셨으니, 아마 누군가가 '여자'에 관한 질문을 ‘역사적 예수’에게 참말로 던졌다한들 그분 역시 덤덤하셨을게다.
며칠 전에 우연찮게 만난, 아주 긴 이름을 지닌 프랑스 여인네가 문득 떠오른다. 집안이 가톨릭이지만 정작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그이는, ‘이야기’의 차원에 있어서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동정녀로 보는 가톨릭의 편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예수의 어머니가 누군가와 “crazy sex"를 했다는 이야기보다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좀 더 나은 이야기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래서, 신은 믿지 않아도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의 정서를 더 사랑한다고 했다.
두 종교를 ‘이야기’로 쉽게 치환시키며, 두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자신에게’ 더 와 닿는지를 아무 눈치 보는 일 없이 말하는 그이를 보면서, 이유 없이 꽉 물고 살아왔던 어금니들의 긴장이 갑자기 스윽,하고 풀어져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적 예수와 신화 속 예수를 분별하다가 편을 갈라 싸우는 이들 사이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를 고민하던 차에 얻은 작은 깨달음이랄까. 작지만 단단한 프랑스 여인네의 태도 말이다. 돌 마냥 굳어버린 예수보다는 넘치는 사랑으로 인해 고뇌하는 예수가 적어도 나에게는 더 좋게 여겨진다고 편히 말하고 생각하며 살면 될 일인 것을, 쓸데없는 애를 너무 쓴 것만 같다.
예수가 죽기까지 사랑한 이들 속에 ‘여자’가 있다는 사실, 그 스캔들이 바로 복음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살아서도 성불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