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못 알아들었는데, '변화'가 무슨 뜻이죠?
"어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참여하고, 세월이 흘러 그 열매를 보게 될 때 제 기쁨이 있어요. 그런 아이 중 하나가 '탈주범 사건'의 김성진이에요. 그 아이는 25년 살다가 작년 초 출감했어요. 지금 고물상 일을 배우고 있어요."
'
탈주범 사건'은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8년 10월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교도소로 재소자 12명을 이감하던 중 발생했다.
이 중 일부는 서울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그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탈주범의 말이 세간에
회자됐다. 현장에서 탈주범들이 틀어놓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도 그 뒤 한참 유행했다. 인질극을 벌이던 지강헌씨 등 3명은
숨졌다. 김성진씨는 이런 인질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지하 주점에서 다른 탈주범과 함께 양주를 마시던 중
체포됐다.
"20대에 들어가 오십 가까이에 나왔으니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아요. 성진이는 '어머니, 내 주위에 있는
출소자들 모두 다시 (감옥에) 들어간 걸 아시죠?'라고 했어요. 제가 '그래, 너 같은 사람이 없어. 대한민국에서 최고야'라고
말해줬어요. '내가 인정받는구나' 하는 자존감이 생기면 나쁜 길로 안 빠져요.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세상을 조금씩 밝게 만드는
거죠."
―감옥에서 출소해도 계속 연락을 해오나요?
"제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줘요.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고 합니다."
―몇 명과 그런 관계를?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제가 인연을 맺은 재소자들은 600여명쯤 돼요. 출소하면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어 해요. 그래도 이 중 71명과는 연락이 돼요. 대부분 살인 등으로 장기 복역했던 아이들이에요."
―사회에서도 관계를 지속하는 게 찜찜하지 않은가요?
"
교화라는 게 교도소 안에서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하는 거죠. 사실은 출감 뒤가 더 중요해요. 이런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낙오자죠.
따뜻한 관심이 없으면 이들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죠. 한 인간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요. 세월이 필요하고 저 혼자 힘으로만 안
돼요. 주위에서 '당신은 잘할 수 있다'며 아이들의 자존감을 살려줘야 해요. 3년만 그런 울타리가 돼주면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재범(再犯)을 하지 않아요. 제 경험에서 이런 확신을 얻었어요."
―이들이 집착과 충동적인 폭력을 보이지는 않습니까?
"
술에 취하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시도 때도 없이 제게 전화를 걸어와요. 달리 하소연할 대상이 없으니까요. '어머니, 죽고
싶어요'라고 외치면, '그래, 죽어라. 거기서 죽어'라고 쿨하게 받죠. 보호자로 경찰서에 찾아가고 치료비나 합의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지요. 제게도 '죽이겠다'고 덤벼들 때도 있었죠. '이제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그렇게 해라'고 말합니다. 다음 날 아이가 풀
죽은 채로 '어머니, 어제는 잘못했어요' 해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죠."
―이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던가요?
"
대부분 집안에서 구박과 학대를 받고 자랐어요. 인간 취급을 못 받았던 거죠. 그런 결핍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큽니다.
어떤 아이는 전화를 걸어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만 되풀이해요. 그냥 어머니를 불러보고 싶은 것이죠. 저는 '그래,
그래, 그래' 답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