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검정 2020학년도
3.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왜곡된 제주4·3사건내용 - 씨마스
-단원편제-
Ⅳ. 대한민국의 발전
1. 8.15 광복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3)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다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일이 5월 10일로 확정되자, 이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갈등은 무장 봉기로까지 이어져 제주4·3사건이 일어났다.
제주도에서는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제주 도민이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자, 미군정은 경찰과 극우 청년을 동원하여 탄압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48년 4월 3일 남조선 노동당(1946년 서울에서 결성된 좌파 정당)주도로 좌익 세력이 5·10 총선거를 반대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미군정은 육지에서 경찰과 군대를 파견하여 무장대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다. 또 제주도 세 개 선거구 중 두 곳에서 치른 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무효 처리되면서 제헌 의원(헌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을 뽑지 못하였다.
한편, 5·10 총선거 후 강도 높은 진압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육지 병력을 증파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군을 진압하였다(여수·순천 10·19 사건, 1948).
▲ 토벌대를 피해 중산간 지대에 피신한 제주 도민들
▲생과 사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1948. 11. 1.) 진압군이 학교 운동장에 지역 주민을 모아놓고 '여수·순천 10·19사건' 관련 협력자를 색출하고 있다.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왜곡된 제주4·3사건
이렇게 수정해야 한다. - 씨마스
Ⅳ. 대한민국의 발전
1. 8․15 광복과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노력
1-3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다
제헌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거일이 5월 10일로 확정되자, 이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갈등은 무장 폭동으로 이어져 제주4·3사건이 일어났다.
제주도에서는 1947년 3월 1일, 3·1절 불법 시위에서 시가행진을 벌이던 과정에서 기마경관과 주민 사이에 충돌이 빚어져 군중들이 동요하게 되고 기마경관 한명이 민애청 청년들에게 다리가 붙들려 말에서 끌려 내려지고 있었고, 이 광경을 본 망루에서 근무하던 응원경찰이 동료를 구하기 위해 총격을 하게되었다. 이 총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남로당제주도당은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3.10총파업 사태를 주동하였다. 경찰은 이 사건의 배후 세력을 색출, 체포, 구금하고 조사해 나가는 과정에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1948년 4월 3일 남로당(1946년 서울에서 결성된 좌파 정당) 제주도당의 좌익 세력이 5·10 단선반대, 단정반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될때까지 투쟁을 주장하며 무장 폭동을 일으켰다.
미군정은 육지에서 경찰과 군대를 파견하여 남로당제주도당인민유격대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다. 또 제주도 세 개 선거구 중 두 곳에서 치른 선거가 남로당제주도당의 선거 거부 투쟁으로 투표율 미달되어 무효 처리되면서 제헌 의원(헌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을 뽑지 못하였다.
한편, 5·10 총선거 후 강도 높은 진압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육지 병력을 증파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란군을 진압하였다(여수·순천 10·19 사건, 1948).
사진설명: 남로당은 조직을 통하여 마을자위대로 하여금 5·10총선거의 투표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어린아이까지 산으로 올려보내어 선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사진설명: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반란군을 색출하기 위하여 여수 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시민들, 사진 우측은 반군의 부역자로 분류된 사람들이고 좌측은 부역하지 않은 사람들의 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