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Ἰωάννης ταῖς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ς ταῖς ἐν τῇ Ἀσίᾳ·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ἀπὸ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καὶ ἀπὸ τῶν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 ἃ ἐνώπιον τοῦ θρόνου αὐτοῦ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오르코메노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헾타) 영(프뉴마톤)과』(개역개정)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현재 존재하고, 미완료로 존재하고, 지금도 오고 계신 그 분과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헬라어 번역성경)
개역개정에는 “편지하노니” 라고 말을 했지만, 헬라어에는 이 말이 없다. 요한(히브리어 3110에서 유래)에 대해서, 3076의 한 형태; 아홉 이스라엘인의 이름‘요하난’:- 요하난 Yuwtah 유타: 3194를 보라. 3076은 3068과 2603에서 유래;‘야훼께서 총애하심’ 여덟 이스라엘인의 이름‘여호아난’: 여호아난, 요하난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는데, 언약은 아들이 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언약은 창세기 1장에서 일곱째 날로 등장한다. 칠은 엘로힘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이며,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알려주신 것이 십계명이다. 이 십계명은 계명이라기 보다 언약을 의미한다. 십을 둘로 나누면 위(하늘)의 오와 아래(땅)의 오로 나뉘어진다. 이 모든 것의 축약은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를 하나되는 자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자를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시아는 아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 에클레시아(~강권하여 밖으로 불러냄)는 오늘날 교회라고 부른다. 세상 밖으로 불러내진 자들이다. 교회는 엑스도스된 자들이다. 모세가 바로의 왕궁으로부터 나오는 것,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심령 속에 세워진 교회가 된 성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지만, 참 성도가 없다면 교회라고 볼 수 없으며, 마치 동아리 모임과도 같은 그런 곳이 된다.
교회는 여자로 비유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정결한 다섯처녀인 것이다. 신랑은 씨(쩨라)를 가진 남자(자칼:언약을 기억하다)이다. 씨는 언약의 말씀의 씨이며,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통해서 요한을 통해 아시아 일곱 교회 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일곱 교회의 의미는 언약을 가지고 있는 성도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에서 일곱째 날이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언약은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세상에 온 자들을 마지막 아담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이제 오시려고 하는 분. ἀπὸ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현재 존재하고, 미완료로 존재하고, 지금도 오고 계신 하나님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미래에도 오실 그 분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에르코메노스(ἐρχόμενος)는『오시려고 하는』(문법적으로 현재시제 중수디포테)이라는 의미다. 미래가 아니라 이제 오시려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나는 스스로 있는자 (하야 아세르 하야)라는 표현은 헬라어로는 에이미(존재)가 된다. 하야 아세르 하야는 하늘의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온 존재의 하나님이시다. 하야가 현재이면서 미완료이고 지금도 역사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시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헾타) 영(프뉴마톤)』보좌(드로노스) 먼저 보좌에 대해서 보면, 마태복음 5장 34절에서『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하늘이 호 데오스의 보좌라는 것이다. 하늘은 단수로 사용되므로 보좌는 성전에 있다. 요한계시록 4장 5절에서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일곱 등불(등잔대)이 일곱 영이다. 보좌는 일곱 등잔대 뒤에 있으므로 지성소에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이나, 성막의 지성소나 같은 개념이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서『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우라노이스:복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복수의 우라노이스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히브리어 샤마임)를 의미한다. 하늘은 샤마임으로 표현되는데, 진리의 말씀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비진리는 땅을 의미한다. 보좌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28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보좌는 심판의 장소인데,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성도 역시 열두 보좌들에 앉아서 심판한다는 의미가 된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있기 때문이다.
『일곱(헾타) 영(프뉴마톤)』은 일곱 등잔대라 했다. 일곱은 언약, 영은 말씀이다.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일곱을 통해서 구원을 말씀하시는데, 비진리의 인간들은 육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 계시록에서 칠(언약)을 말하고 있다. 언약의 말씀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주어지는 것이다. 언약의 말씀이 없고, 율법으로 살아가면 은혜와 평강이 없다는 말이다. 언약을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성도 역시 언약의 성취자가 된다.
5. καὶ ἀπὸ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ὁ μάρτυς, ὁ πιστός, ὁ πρωτότοκος τῶν νεκρῶν καὶ ὁ ἄρχων τῶν βασιλέων τῆς γῆς. Τῷ ἀγαπῶντι ἡμᾶς καὶ λύσαντι ἡμᾶς ἐκ τῶν ἁμαρτιῶν ἡμῶν ἐν τῷ αἵματι αὐτοῦ,
『또 충성된(피스토스)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개역개정)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을 통치하시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를 통하여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고』(헬라어 번역성경)
헬라어 성경은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라고 되어 있으며, “있을지어다” 라는 표현은 개역개정이 추가한 것이다. 은혜와 평강은 칠에 해당되며, 안식에 들어간 존재의 개념이다. 이렇게 되라는 말이다. 은혜라는 말은 창세기 6장 8절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히브리어 헨2603)를 입었더라(마차)』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노아가 진리를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마차는 발견하다 라는 의미다.
2603은 기본어근【2583과 비교】; 본래의미는‘구부리다’,또는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은혜를 베풀다,‘주다’, 사역동사 ‘애걸하다’(즉, 간청으로 은혜를 얻다 ):- 간구하다, 은총입다, 베풀다, 은혜롭게(대하다,베풀다), 자비롭다, 자비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 기도하다, 기원하다,
2583은 파생된 내용으로서, 2580과 1908에서 유래; 본래 의미는‘기울다’ 함축적으로 (저녁의 비낀 빛이)‘기울어지다’ 특히 진을‘치다’ 일반적으로‘진치다’(거주, 또는 공격을 위해) :- (장막에) 거하다, 장막치다, 거하다, 진치다, 끝나다, 눕다 라는 의미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ἐν ἡμῖν 엔 혜민) 거하시매 (ἐσκήνωσεν에스케노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거하시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헨과 같은 단어인 것이다. 에스케노센(ἐσκήνωσεν) 엔 헤민은 우리(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텐트(심령 속에 성전) 안에서 라는 말이다. 그래서 은혜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개념인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긍휼(칠)을 베푸는 것이다.
평강은 결합하다, 하나가 되다, 안식 등의 의미가 있다. 하나가 되므로 안식이 된다.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의미다. 샬롬은 샤람(완전하다)에서 나온 단어다. 완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세상에서 나타나는 평강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평강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세상에 대한 고통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쁨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고통과 기쁨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이 나누어지면, 고통은 악하게, 기쁨은 선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누어지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5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죽음으로부터 먼저 일어나신 믿음이라는 증인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네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피스토스는 신실하다 라는 의미다. 신실한 증인, 처음 나신 분, 통치하신 분, 죄들로부터 해방하시는 분으로 소개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 대제사장으로 함께 거하신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성도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났다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하늘의 생명으로 나신 분을 의미하며, 부활의 첫열매를 의미한다. 그리고 땅의 임금들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땅의 임금들은 세상에서 권세를 쥐고 있는 사탄 아래 있는 모든 세력을 의미한다. 결국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정기간 그들에게 세상 통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그의 피로 성도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다.
위의 네가지를 통해서, 성도들도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나님에 대한 증인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거듭남)에 참여하고, 땅의 세력(사탄의 세력)을 통치하는 왕 같은 제사장(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로부터 해방시켜주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