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땅이 한성(漢城)백제의 첫수도...
백제문화연구회 한종섭회장과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강찬석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이 20여년간
경기도 하남시 일대 유적을 이잡듯이 뒤지며 내린 최종 결론이다.
하남이 백제의 첫수도 한성(漢城)백제라는 한회장은 백제초기 왕릉으로 판단되는 춘궁동 능너머 고분군이
위치한 고골(춘궁동과 교산동) 일대가 왕궁터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이곳은 최근 2∼3년새 고대도시의 흔적을 보여주는 건물터가 집중적으로 발굴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다.
◈풍납토성 왕성은 식민사관의 유산 〓 우리나라 고고학계 주류측은 초기백제사 연구분야에서 몽촌토성(6만평)과 풍납토성(22만평)이 왕성일 것이라는 ‘환상’에 매달려온 것은 아닐까.
백제문화연구회측의 주장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 고고학계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였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그 환상의 배경에는 일제 식민사관이 똬아리를 틀고있다는 것이다. “풍납토성이 있는 곳은 한강변의 상습 침수지대입니다.
왕이 풍납토성에 살고있다고 가정할 경우 한강 건너 아차산에서 굽어보면,왕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수 있지요 .
그런 위치에 왕도를 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겠습니까.”
한회장은 “풍납토성을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이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들은 일제시대 일본학자들로
이들의 학설이 굳어져왔다”고 말했다.
한반도 남부에 일본이 경영한 임나일본부설등이 신빙성을 가지려면 백제의 왕도는 축소돼야 한다.
실제 일본서기 역사서에는 백제사 관련 기록이 무수히 많다.
시골마을 단위밖에 안되는 풍납토성 정도가 초기 백제 왕도여야 일본인은 뿌리깊은 ‘백제 콤플렉스’에서 해방될 수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성시기 백제는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되는 한강유역을 차지하였으며 근초고왕때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깃발을 사용하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할 정도로 강력한 정복국가였다.
더구나 중국 정사에는 서해 큰섬인 강화도를 발판으로 수군을 이용해 중국의 요서(療西), 양자강 하구지역으로 뻗어갔으며,, 왜국(倭國)으로 진출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4세기 들어 남진정책을 감행한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와 치열한 공방전 끝에 475년 한성을 전면 공격, 개로왕이 전사하면서 수도가 함락 당해 공주로 남천했다.
◈하남 고대도시의 흔적들〓몽촌토성, 풍납토성에 집착해오던 주류 학계가 하남시 유적에 눈길을 준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 5월 하남시 서쪽이성산성을 주제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김윤우 동양학연구소전문위원과 일본의 아라이 히로시교수등은‘이성산성이 삼국시대 이전의 건축물로 초기백제 수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백제 초기왕릉으로 추정되는 능너머고분은 남북 70m, 동서 50m의 장방형 구릉으로, 높이는 4∼5m이다. 이 능위에서 삼국시대 명문 기왓조각이 다수 발견됐다. 한회장은 ‘으뜸되는 지아비’를 뜻하는 ‘원부(元夫)’는 시조의 능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명지대 오순재(문화재관리학과)교수는‘왕을 지킨다’는 뜻의 왕수(王戍)’라 쓰인 기와는 고구려 장군총 꼭대기에 있었던 것처럼 으로 보이는 향당(享堂)과 같이 이 능 정상부의 향당(享堂)에 쓰인 기와로 추정했다.
그외 ‘장해(丈解)’는‘10척이나 되는 태양’으로 거대한 태양과 같은 왕의 존재를 일컫는다. ‘수언유(壽言由)’는 ‘
오래 살기를 빈다’는 뜻으로 고구려 천추능에서
나온 ‘천추만세(千秋萬歲)’와 비슷한 뜻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하남시 고골일대 도성체제 삼국사기 기록과 유사〓오교수는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대 기록을 토대로 ‘한성시대 왕성은 북으로는 강을 끼고 동으로 고악(高岳또는 숭산·崇山)을 의지하며,남으로 기름진 평야를 갖고 서쪽으로는 머리바다(西海)를 끼고 있는 천혜의 분지임을 나타낸다’며 하남시 고골일대의 형태와그대로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교산동 토성을 중심으로 한 하남시 고골일대는 북쪽에 한강이 흐르고 동쪽에 숭산인 금단산이 자리잡고 산 정상부근에는 동명묘(東明廟) 제단터로 볼수 있는 제사유적이 발견됐다. 남쪽으로는 한산(漢山)으로 볼수 있는 청량산과 남한산성이 있고 남한산성 남쪽 탄천변의 둔전동에는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오교수는 “한성백제 왕성은 고구려 침입에 대비해 한강 건너편의 수석리토성-안산성-역촌토성을 비롯,
왕궁 주변에 이성산성 일자산과 미사리 주변 강변을 따라 뻗은 토성, 한강 수로관리성인 몽촌토성과
풍납토성등이 겹겹이 에워싸고 최악의 경우 후방인 남한산성으로 대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