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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가이 자트라(Gai Jatra) 35장
►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에서의 소를 앞세운 퍼레이드
► 암소가면을 한 소년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 고적대의 행진
► 죽은 가족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행진에 참여한 가족들
► 코믹한 분장을 한 자유 참가자들
► 박타뿌르의 유명한 ‘기힌타 기시(Ghinta Ghisi)’ 춤을 출 때 “기니 탕 기니 탕 긴타 기시 탁” 소리가 난다.
► 박타뿌르 가이자트라의 명물, ‘타하마차(Taha-Macha)’라는 높은 무등 가마의 행렬이 더르바르에 집합하고 있고 그 뒤를 기힌타기시 놀이패들이 검은 옷을 입고 뒤를 따라가면서 망자의 혼을 천도하고 있다.
네팔에서 가장 볼만하고 유명한 카니발형식의 거리축제의 하나로, 특히 이방인들과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것이 바로 ‘가이쟈트라’이다. 네팔에서는 암소를 ‘가이(Gai)라고 부르기에, 일명 ‘암소축제’라고도 한다. 네팔력(2075년)군라(Gunla) 달초부터[2018년 8월 19일(Sun)]부터 8일간 계속된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한 동물로 여긴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하얀 소는 로드쉬바(Lord Shiva)의 탈것인 바하마(Bahama), 자가용으로 여겨져 성우(聖牛)로 대접한다. 만약 이 소들이 큰 도로 중간을 막고 있어도 경적을 울려서 소들을 놀라게 하거나 힘으로 쫓아내지 않고 다만 소들이 스스로 비켜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힌두이즘에는 소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 세상의 입구까지 이끌어 준다고 인식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소축제를 기획한 본래 의도는 ‘죽음의 신’인 야마라즈(Yamaraj)를 경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가이 자트라’는 카니발 성격의 거리 퍼레이드가 백미이다. 목에 꽃다발을 두르고 멋진 치장을 한 암소들이 이날의 주인공이기에 이 소들이 행렬의 선두에 서지만 그외 암소의 가면을 쓴 소년들도 축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여 ‘소의 축제’ 임을 실감케 한다. 그 외에도 온갖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자원봉사자들도 자발적으로 퍼레이드에 참여하여 ‘독특하고 코믹한 콘셉트’를 내세우며 축제의 분위기를 띠우는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축제날이 다가오면 축제에 참가할 사람들은 그 준비에 바빠진다. 우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짜내서 그에 맞는 가면 등 소도구와 복장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의무적으로 그 페레이드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난해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단위로 고인의 영정을 태운 수례나 가마를 준비하거나 또는 혼자 가슴에 안고서 행렬에 참여한다. 그리고는 소들에게 고인의 영혼을 무사히 저승세계로 모시고 가 달라는 기도를 한다.
여기에는 물론 신화적인 유래가 없을 수가 없다. 힌두이즘에서는 한 인간이 죽으면, 우리의 염라대왕 같은, 죽음의 신인 야마라지(Yamarj)가 지하세계에서 장부를 가지고, 망자의 이번 생에서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질하여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인과설(因果應報說)을 철저하게 믿는다. 그리하여 한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면 야마리지는 까마귀를 보내서 망자들의 영혼을 심판의 문 앞으로 모이도록 통지를 하는데, 이 문은 일 년에 딱 한 번 열린다고 한다. 바로 그 날이 ‘가이 자뜨라’가 열리는 날인데, 이때 망자의 영혼은 암소의 꼬리를 잡고 이 문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요즈음의 축제 형식은 14세기 중세시대 카트만두 분지를 다스리던 쁘라탑 말라(Pratap Malla) 왕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말라 왕에게는 어린 왕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 왕자가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 이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왕비는 삶의 의욕을 잃고 시들어 갔는데, 이련 왕비를 보고 있던 말라왕은 안타까움에 왕비에게 웃음을 돌려주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이에 말라왕은 누구든지, 무슨 방법으로든지, 왕비를 웃게 만든다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공고를 내었다.
이 때 몇몇 사람들이 궁전 앞에서 사회 모순과 불의를 풍자하는 가장행렬을 하자 이외로 왕비가 웃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왕은 이러한 사회비판과 풍자를 담은 행렬을 일 년에 단 하루만 허락하게 되었다. 그 후로 가이자트라 날에는 코믹한 탈이나 의상과 분장을 하고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친 풍자를 통해 집권자들에게 민초들의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축제는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는 의미 이외에도 거리축제 본연의 놀이문화에 충실하여 노래하고 춤추며 먹고 마시는 놀이판을 넘어 민초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날로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래로 인하여 요즘도 이 기간에는 언론, 출판의 자유가 허용된다는 한다. 말하자면 권력자들에게 직접 억울한 사연을 전달하는 일종의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는 셈인데,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는 이때만은 특별판을 발행하여 평소 쓸 수 없는 기사를 쓰는 것이 허용되기에, 정치가나 저명인은 이러한 표적이 된다는 점은, 후진국형 언론통제 체제를 시행하고 있는 현 네팔정국 치하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축제 기간 동안 일반 가정에서는 기르던 소의 목에 금잔화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소가 좋아하는 별식을 대접한다는데, 신문 토픽뉴스 난에는 어떤 집의 소가 이날이 자기네 진짜 생일날인 줄 알고 안방으로 들어와 좌정하고 당연한 태도로 뿌쟈를 받는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또한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는 소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소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소는 전생에 인간이었고 또 다음 생에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소라고 인정을 한다고 러떤 구루는 한 수 보태기도 한다. 우리들에겐 황당한 이야기지만. 신들이 너무 많은 나라인 네팔에서는 별로 새삼스런 일화가 아니다.
이 축제는 네와리와 따루족에서 기념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은 휴일도 아니고 또 다른 부족에서는 축제를 따로 챙기거나 즐기지도 않고, 다만 카트만두 분지의 몇몇 도시들만 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단지 포카라 인근 마을에서 열리는 ‘타야 마차(Taya Macha)’ 춤이 흥미로운데, 이때 천사옷을 입은 4명과 어릿광대 한사람이 벌리는 이 퍼포먼스는 지난해 죽은 사람의 넋을 천도하는 목적이 있다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아마 이 축제는 수세기 전에 포카라로 이주한 네와르에 의하여 전래되면서 포카라에 맞게 차별화 된 가이 쟈트라의 패러디물이라고 여겨진다.
반면 또 하나의 고도 박타뿌르(Bhaktapur)의 가이 자트라는 오히려 카트만두보다 더 흥미로워 이방인들이 꼽는 최고의 페스티발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타하마차(Taha-Macha)’라는 대나무로 만든 높은 무등 가마의 행렬과 ‘기힌타 기시(Ghinta Ghisi)’라는 방망이 춤과 노래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로 박타뿌르의 가이 자트라는 매력적이다. 이 수레행렬은 두바르 광장으로 수 없이 모여들기에 흥미 있는 볼거리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음으로 이방인들을 바쁘게 만든다.
박타뿌르의 가이 쟈트라가 지금의 형식을 확립한 때는 14세기 말라왕국의 야스티띠 말라왕(Jayasthiti Malla) 때였다고 한다. 당시는 말라왕국의 수도가 카트만두가 아니라 박타뿌르 이였는데, “아마도 다른 곳과 차별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무등가마행열[Taha-Macha]과 방망이 노래와 춤[Ghinta Ghisi]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라고, 네팔의 민속학자 쉬레스타(Dr Shrestha)교수는 신문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박타뿌르의 명물이 된 ‘타하마차(Taha-Macha) 가마는 지난해에 초상을 치른 망자의 집집마다 만드는데, 우선 두 개의 굵은 대나무를 바탕으로 여러 사람이 어깨에 둘러 맬 수 있는, 무등가마를 만든 후에 그 위에 다시 긴 대나무를 여러 개 세워서 그 끝을 묶은 다음 표면은 볏짚으로 감싸서 만든다. 그리고는 그 앞면에 망자의 사진과 안치하고 망자가 쓰던 옷가지들은 속에다 걸어 놓고는 꼭대기에서부터 오색 천을 묶어 늘어트리는 것으로 완성된다. 어찌 보면 우리의 상여(喪輿)에 상응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다만 우리 상여가 시신을 운반하는 용도라면 네팔의 것은 영혼의 천도용이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이윽고 기다리던 축제의 날이 밝으면 이 타하마차를 어깨에 맨 가족들은 일제히 더르바르 광장으로 출발한다. 이때 만자와 인연이 깊은 일단의 ‘기힌타 기시(Ghinta Ghisi)’춤 패들이 그 뒤를 따라가며 길 위에서 흥을 돋운다. 그들은, 여자들은 하쿠빠타시(Hakupatasi)라는 전통적인 검은 사리(sari)형태의 옷을 입고 남자들은 단순한 사리 형태의 옷을 입고서 거리를 누비며 행진을 한다.
또한 이날을 위해 축제운영회 측에서는 최고로 큰 특별한 허수아비 무등가마을 두 채 따로 준비해둔다. 하나는 분노의 신 바이랍(Bhairab)신을 태우고 또 하나는 바하드라 깔리(Bhadrakali) 여신을 태운다. 이윽고 이 큰 허수아비 바이랍신을 따라서 행진은 시작되는데, 이 때 골목골목마다 ‘타하마차(Taha-Macha) 가마 중간 중간에 ’기힌타 기시‘ 놀이패들이, 일명 ‘원숭이 춤’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역동적인 노래와 춤을 추면서 행진을 하며 각자의 정해진 골목길을 따라 더르바르 광장으로 모여든다.
그 때 이 놀이패들은 선두 지휘부의 신호에 따라 우리의 ‘발라(鉢鑼)’ 같은 두 쪽짜리의 금속타악기인 ‘강라(Ghangla)’의 박자에 맞추어 두 사람이 짝을 맞추어 걸어가면서 몽둥이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박자에 맞추어 상대방의 그것과 두드려 댄다.
생각해보라. 한 여름 삼복더위에 고풍스런 중세의 고도 뒷골목에서 수천 명이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가마를 메고 행렬을 지어 움직이면서 방망이를 교차적으로 무아지경이 되도록 두드려 대는 모습이 가히 어떨지? 네팔 같은 나라가 아니면 좀처럼 상상하기도 어려운 흥미로운 광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기힌타 기시’라는 방망이 춤은 가이자트라 때부터 크리쉬나 아스타미(Krishna Janmashtami) 축제 때 까지 일주일이나 계속해서 박타뿌르 일원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춤은 열을 맞추어 짝을 이루며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의 나무 스틱을 두드려 댄다. 이 때 “기니 탕 기니 탕 긴타 기시 탁”이란 독특한 소리가 난다. 물론 박타뿌르에서도 가이자트라 때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물론 우리의 할머님과 어머님이 한 여름 날 대청마루에서 두르려대던 그 다듬이 소리와 거의 같다고 우리 독자 제위께서는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이미 까마득히 잊어버린 우리의 소리이겠지만….
이때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나온 일반 참석자들도 각자 자신이 설정한 콘셉트에 맞추어 무섭거나 코믹한 가면을 쓴다든가 얼굴에 오색 칠을 하고 남녀가 옷을 바꾸어 입는다든가 하는 등의 코믹스런 복장을 한다. 또한 어린이들은 아예 자기가 좋아하는 신들의 분장을 한다는 식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축제의 행렬에 끼어들어 같이 즐긴다. 이처럼 고도 박타뿌르의 가이 자트라 축제는 네팔의 문화적인 요소들이 서로 혼합해 가면서 모든 주민들과 인근의 지역민들이 참여하여 하루를 즐기는 아주 훌륭한 축제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기힌타기시’는 뭐 어려운 민속춤이라기보다는 남녀노소 국적불문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퍼포먼스(performers)이기에, 물론 우리의 ‘다듬이방망이’만한 것 두 개는 있어야하지만, 처음 기획된 목적인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차원을 넘어서 오히려 무대 따로 관중 따로 국밥으로 노는 일반적인 축제 마당보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결집력 측면에서는 훨씬 효율적이고 완성도가 아주 높은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춤의 동작들은 옛 날에는 ‘6다스’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현재는 많이 잊히고 겨우 3다스 정도만이 남아 있다고 쉬레스타(Dr Shrestha)교수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춤이 삶과 죽음이 병존하고 있는 우리네 인생을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다.
네팔이 이런 축제를 통해서 고유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살려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설렘 속에서 그 때를 기다린다.
첫댓글 한 번 꼭 가보아야할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