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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장소와 기억을 찾아서
- 정동철, 모롱지 설화, 걷는사람, 2023.
정서희(시인)
1. 망각을 되살리는 것이 시인의 임무다
조르조 아감벤(G. Agamben)은 불과 글에서 오늘날의 작가들이 ‘불’과 같은 영성과 신비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신비와 서사’는 문학의 본령이므로 잃어버린 신비를 회상하고 복원하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고 사라져가는 고향의 언어를 복원해 낸 시인이 있어서 그의 기억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정동철 시인은 전북 전주에서 출생하여 2006년 광주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으로 나타났다를 상재하고 마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연대 시집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를 번역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작가의 눈’ 작품상과 전북작가회의가 선정하는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글에서 소개할 모롱지 설화는 정동철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롱지의 이야기 49편이 4부로 나뉘어 실렸다. 소멸되어 가는 고향 모롱지의 삶과 풍습 그리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아름답게 복원되고 있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돌이켜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자리한 모롱지는 설화와 근대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황구렁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똥방적을 뒤집어 쓰기도 하고 송장헤엄을 치면서 자랐다. ‘모롱지’라는 말은 전라북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서곡지구를 가리키는 옛말인데 오늘날의 ‘모퉁이’에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할 뿐 정확히는 모르겠다.
시인은 이 시집을 기획하면서 ‘지금 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쓸 수 없고,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당신이 글을 쓰려거든 꼭 써야만 하는 근거를 찾고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난 후에야 쓰라는 충고 말이다. 정동철 시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고향을 회복해 내야 한다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시인으로서 ‘나는 누구이며, 그리고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실존론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2. 모롱지에서 탄생한 말, 말들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 첫머리에서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말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적인 시대를 흠 없는 유기적인 공동체로 보았던 루카치처럼 ‘모롱지’라는 장소 역시 총체성이 가능한 사회처럼 다가왔다. 근대 이후 인간은 산업화의 그늘 아래 고향을 잃어버린 채 소외된 존재로 살고 있다. 모롱지 설화는 시인이 아직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듣고 몸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학과 익살로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신혼 첫날밤이 무서워 성례 후에 뒤안 장꽝 위 빈 된장독 속에 숨어 있었다는 열여섯 살 소망니 할매
동네 사람들이 횃불까지 치켜들고 동네방네 찾아댕겨도 못 찾다가 자정이 돼서야 제 발로 장독에서 나왔지만
몸뚱이에서 장 냄새가 겁나게 나는 통에 첫날밤을 모욕통에서 보냈다
- 「말의 탄생」 부분
생략된 뒷부분을 살펴보면, 밤새도록 신부를 찾아 헤매다 화가 난 새신랑 열여덟 살 소망쇠 할아버지는 신행 가마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다독거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신부를 데려다가 살기는 살았다고 한다. 그 뒤로 모롱지에서는 “장이 너무 되었으면 소망니 원삼 족두리에서 나는 꾼내보다 낫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 시집에는 말의 어원뿐만 아니라,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더 나온다. 음식 솜씨가 좋아서 대삿집이나 잔칫집에 맡아 놓고 불려 다니는 ‘판니’ 아주머니의 사연을 담은 「팥니」라는 시도 있다. 이름이 ‘풍신수길’이와 비슷하여 이름을 바꿔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떼를 써서 이름을 바꾼 수길이 이야기 「떼보 수남이」도 빼놓을 수 없는 시이다. ‘조앙’은 조왕의 사투리다. 즉 부엌에서 낳았다고 ‘조앙쇠’라는 별호를 얻은 조앙쇠 할아버지는 김딸고마니를 아내로 맞았고, 할머니는 ‘조앙니’로 불린다.
여우가 웃었다는 내력에서 유래한 ‘요시롱 캥’ 역시 모롱지에서 나온 말이다. 옹새완 영감이 닭을 물고 달아나는 여우를 쫓다가 여우가 “캥” 소리를 내며 웃었다는 설에서 유래한 어휘다. “그 두여로 모롱지서는 고지가 안 드끼는 소리를 흐거나 택도 없는 짓꺼리를 부리면 ‘요시롱 캥이다 이늠아’ 그러는 거셔”(「요시롱 캥」) 이 시 역시 말의 탄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980년대 광주사태에 대해서 다룬 시 「대한 뉘우스」에서 다시 한번 “요시롱 캥이다 이 도적노모 쌔깽이덜아”라는 말이 나온다. 이로써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고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해야 하는 뉴스가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호도하는 상황을 에둘러 풍자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 모롱지 설화는 시에 들어 있는 이야기만큼이나 입말이 재미있고 구수하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뽀로로’가 ‘모롱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다들 깜짝 놀랄 것이다. 그 이외에도 시집 속에는 해학이 넘치는 전라도 말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예를 들면, ‘포도시’ ‘모더락불’, ‘꽃 받쳐 주기’ ‘옹구락지다,’ ‘오속뽀속허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저기서 용례를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한 말도 더러 있다. 계속 행간을 읽다 보니 맥락상으로 대강 파악이 되기는 했으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토속적인 방언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좋으나 독자를 생각해서 현대어로 주(注) 달아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살짝 들었다.
다리가 장마비에 떠내려가면서 첼로 큰일은 동네 알뜰이 학교 가는 일이었다 조금 큰 앳덜은 아침부터 꾀를 벗고 옷가지와 가방을 머리에 이고 냇깔을 건넜지만 어린 동생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죽나 사나 아무리 바뻐도 학교 가는 알뜰을 둔 부모들은 업어 건네주거나 꽃을 받쳐 건네줬다
- 「꽃 받쳐 줄게」 부분
그중에서도 ‘꽃 받쳐 주기’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충청도 내 고향에서도 어린 시절에 몇 번 들어본 말이다. 「꽃 받쳐 줄게」는 비 오고 난 후 냇물이 불어나서 아이들이 길을 건너지 못할 때, 어른들이 목마를 태워서 건네주거나 업어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 나온 말이 “꽃 받쳐 줄게”라는 말이다. 소리내어 곱씹을수록 참 아름다운 토속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꽃처럼 받쳐 준다’는 의미가 좋아서 몇 번을 반복하여 중얼거려 보기도 하였다. 모롱지 사람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공동체 정신을 잘 드러낸 말이다.
3. 사는 건 업(業)을 짓는 일
현대사회에서 잊히고 소멸해 가고 있는 우리의 옛 문화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동철 시인의 첫 시집 나타났다에도 ‘비암 구덕’이란 장소가 고향 마을 뒤꼍에 있었다고 나오는데, 이 시집에서도 뱀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더위에 쓰러진 소를 꽃뱀이 살려내는(「늘메기」) 이야기와 소풍날만 되면 구렁이의 혼이 운다는 사연(「구렁이 비」), 그리고 상도가 먹구렁이 남편을 잡아먹어서 보복하려고 장독대에서 허물을 벗는다는 황구렁이 이야기(「황구렁이 울음」) 등 구렁이가 자주 나온다. 이렇듯 동양에서는 서양과 다르게 뱀을 신성하게 여겼다. 뱀에 대한 민속신앙에는 ‘업’이라는 것이 있다. ‘업’은 흔히 집안 살림이 그 덕이나 복으로 늘어 가는 것으로 믿고 소중히 여기는 동물이나 사람을 말한다. 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집마다 업구렁이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구렁이가 집을 나가거나 잘못되면 집안이 망한다고 믿었다.
야! 이늠아! 구랭이는 업이여
업을 잡아서 묵으면 벌받는 거여
묵을 게 읎다고 업을 잡아묵냐
성주신이 노하면 집안이 망하는 뱁여
아 그라믄 안 된당게로
당최 그러들 말랑게로
- 「먹구렁이 업보」 부분
이 시는 「잔밥각시」라는 시를 낳게 하는 모티프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구렁이가 한 집안의 수호신으로서 그 집안을 지켜준다는 설은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민담에서는 구렁이가 자신을 해코지한 대상에게 보복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집안의 재산을 늘려 준다는 업구렁이를 없애고 업보(業報)를 받는 상도의 이야기가 그 중심축이다.
영검한 잔밥각시 전으 빌고 또 비나니다 어리석고 답답한 머거죽이 상도늠 연전 대밭서 허지 말랑게로 업을 잡아묵고 말았어라우 오널 외약뿔 비얌 허물 누디기진 것아 다 업 잡아묵고 동투난 것 인지사 알았응게로 미련헌 빈차리 개똥이 아부지 차말로 착아게살랑게로 황구랭이 먹구랭이 다 불러다 잔밥 조께 맥여 주시고 불쌍한 개똥이 뿔따구 난 비얌 허물 잠 거둬가소서 영검하고 신묘한 잔밥각시님 전으 비나니다 지발덕덕 잘 타일러서 구랭이 원혼 물러가게 하옵소서
- 「잔밥각시」 부분
시를 따라가 보면, 서사가 매우 인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릴 적에 상도는 동인이네 대밭에서 잡은 먹구렁이를 삶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후 장가를 들고 아들 개똥이를 낳았는데 얼굴 한쪽이 뱀의 허물처럼 누더기가 져서 그것을 없애려고 올기쌀로 잔밥을 해서 먹이는 장면이다. 이런 행위를 ‘뱅이’라고 하는데 잔밥을 먹여 구렁이의 한을 풀어준다는 의미이다. ‘뱅이’는 인간을 위협하는 사고나 질병을 예방하는 주술적인 방법이다. ‘뱅이’가 끝난 후의 상황을 시인은 이렇게 형상화하고 있다. “작약 나무 그늘 밑으로 움쩍움쩍 사라지는 황구렁이 서러운 몸뚱이가 보였다/ 대숲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누런 등짝을 가려 주는 것을 늙은 삽살개가 무심히 바라보았다”라고 적고 있다.
위의 시에서 생략된 부분을 살펴보면, 동인이네 할머니가 목욕재계를 한 후에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치성을 드리자, 작약 나무 그늘 밑으로 황구렁이가 사라지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다. 구렁이의 원혼을 달래는 다음의 시구에서 “나도 스물야답 살에 청상이 되얐응게로 늬 설움 잘 안다 아그한티 해꼬지헌다고 죽은 낭군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닝게로 너도 헐만큼 했응게로 이 잔밥 덜컥 묵고 가서 다시는 오지 말그라”라는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다. 여기서 동인이 할머니는 구렁이의 서러움을 ‘청상과부’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처럼 모롱지 설화는 모롱지라는 마을에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겪은 민초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 있다. 문학평론가 노드롭 프라이(N. Frye)는 ‘신화는 문학의 종합적 요소이며 신화의 생명은 항상 스토리’라고 했다. 정동철의 시는 스토리가 없는 시를 찾을 수 없다. 그만큼 탄탄한 서사가 압권이다. 또한 토속적이고 설화적인 장소에서 풍기는 전라도 말이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입안에 척척 감겨온다. 유년 시절 성장하면서 체험한 일들이 가족이나 친구, 이웃 공동체의 삶 속에 그대로 들어 있어서 마치 만화경을 보듯 과거의 한 시절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한다.
4. 모롱지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지역공동체
시인이 살던 고향의 풍경과 서정을 고스란히 복원한 모롱지 설화는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다른 농촌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시사철 24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하는 등 가난한 농촌공동체의 삶의 풍경들이 구석구석 잘 나타나고 있다.
샛때가 되어 샛거리를 먹을라고 논일 밭일하던 놉들이 뫼는 장소도 정지낭 그늘이었다 주인 아짐들이 샛거리를 이고 오면 일하던 놉들이 기심을 매다 말고 모여들고 정지낭 그늘은 금방 샛밥을 먹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중략...)
어이 일루 와 한술 떠/ 암 모지리먼 모지런 만큼만 묵으면 돼야/ 막걸리도 한 사발씩 허고
요놈 한잔 묵고 땀 쪽 빼 버리면/ 산삼 묵은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어
- 「샛밥」 부분
일을 하다가 새참을 먹는 농부들이 마을의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 나온다. 생략된 부분을 살펴보면, “물외소곰지는 팥니네 지가 최고,” “조앙니네는 잔새와젖” 등 집집마다 안주인의 솜씨에 따라 맛이 다른 식찬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함께 등을 맞대고 밥을 먹던 누군가가 좌중을 훑어보며 “모지리먼 모지런 만큼만 묵으면 돼야”하고 소리친다. 모롱지 사람들은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이 말 한마디로 그들이 얼마나 풍요의 심리를 소유하고 살았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는 현대를 ‘선험적 고향을 상실한 시대’라고 보았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잃고 어둠과 고독 속에서 번민하며 살아간다고 보았다. 모롱지 설화에 나오는 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매우 친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상호부조의 사회적 풍속 또한 조화롭게 잘 지켜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도랑 점동이는 가서 쓸 만헌 늠으로 솔낭구 열 낭구만 비어 와 빤듯한 말목 헐 놈허고 베를 탈 늠은 따로따로 챙겨 놓야 혀 뙤는 맷 바작이나 떠와야 된대요? 작년으 열 바작 했는디 모지랬응게 열다섯 바작은 해야것지라우? 올해는 떼는 뜨지 말어 동네 으르신 덜하고 얘기해 봉게로 마실 돈으로 낭구를 베를 타서 아예 송판으로 다 깔기로 힜어 뙷장으로 다리를 덮어 농게 애린것덜 발모감지가 트매기로 폭폭 빠지고 비 오면 질척거리고 헝게 요참에는 돈이 좀 들드래도 송판으로 다리 상판을 깔기로 힜으니께로 그리덜 알어 베는 누가 타로 가는 것이 좋을까라?
- 「울력다짐」 부분
가을걷이가 끝나면 장마로 인해 유실된 다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석골 사람들은 ‘울력다짐’을 했다. 위의 시 「울력다짐」에는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상도와 점동이, 상렬이 아저씨, 근배네 아버지, 덕쇠 양반, 조앙쇠 할아버지까지 마을 사람들이 죄다 동원되고 있다. 형편대로 자신의 타고난 재주나 기술에 따라서 봉사하는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 역시 울력할 일꾼들의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 분주하다. 시월 지나 쌀쌀해진 날씨에 울력다짐에 나선 마을 사람들은 발을 맞추어 “이여지기 여응차/ 말목 들어간다고 여응차/ 이여지기 여응차”(「섶다리 놓기」) 노동요를 부르며 섶다리를 놓는데 그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인자, 석골 사램덜 모다 올라오시오
다리 말목이 냇깔에 푹 백여야 헝게로
다덜 올라와 다리볼끼 좀 해얀당게로
얄뜰아 느그덜도 얼름 올라오니라
중간 중간은 살째기 밟고
다리 말목 우게서 깡깡 한 번썩만 볼바도라
아따! 야가 누구 아덜여?
니나부지 이름 머시냐?
볼브랑게로 깡깡 잘 봅는당게로
- 「다리 밟기」 부분
섶다리 놓기가 끝이 나면 마을의 주민들 남녀노소가 모여서 다리 밟기를 한다. 그동안 함께 고생한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노동을 통해서 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축제의 현장이다. 모처럼 돼지를 삶고 술을 곁들이고 춤을 추며 온 주민이 한데 어우러져서 다리 밟기 축제를 하는 것이다.
5. 한 방에 낫는 몽혼주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마을에 한두 명씩 악동이 있듯이 모롱지 설화에도 걸핏하면 아이들을 두드려 패는 석찬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있다. 모롱지의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시 속 화자인 ‘나’와는 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로 그를 ‘석찬이 성’이라고 부른다. 이 시집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사람으로 단연코 석찬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셌던 석찬이는 어릴 적 우황을 잘못 먹어서 말이 어눌했고 게다가 언청이다. 그는 ‘몽혼주사’ 한 방이면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질병에서 해방된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몇 번 들었던 적이 있는 ‘몽혼주사’는 모르핀으로 마약성 진통제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서사를 통해서 잃어버렸던 유년의 한 시절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야, 너 몽홀주사 아냐? 그 주사 한 방이먼 확 나서분다는디 발바닥이 너무 아풍게 그려
가까이서 보니 뚱뚱 부은 발바닥이 길게 갈라져 피고름이 흘렀다 재생빙원 가서 몽홀주사 한 방만 맞으면 금방 나슨단디 우리 집은 돈이 없어 그 주사 한 방이면 내 언챙이도 낫게 해 준단디 그 주사 한 방이먼 우황 때 멍충해진 나도 똑똑해질 수 있단니 너는 석골서 공부도 첼로 잘헝게 나중에 크게 되먼 나 몽홀주사 한 방만 노아도라
- 「몽혼주사」 부분
“뚱뚱 부은 발바닥이 갈라져 피고름이 흘러도” 치료를 받을 수 없던 그는 재생병원에 가서 몽홀주사 한 방이면 다 끝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특한 화자에게 “나중에 크게 되면 몽홀주사 한 방만 노아도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석찬이 형은 그해 겨울에 물에 빠져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힘이 세서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존재였지만, 유독 시적 화자에게만은 부드럽고 온순했던 그가 결국 썰매를 타다가 물에 빠져서 죽는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얼음이 풀리는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다. 모롱지 아래뜸에 사는 나규가 혼자서 썰매를 타고 있는데 석찬이가 빼앗아 타다가 그만 얼음장이 깨지면서 생긴 일이다. 당골네가 징과 장구 그리고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석찬이의 넋을 건지는 광경은 소설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어, 저그 혼불 나간다
하따 석찬이란 늠 똑 사흘 만이고만
살아서도 자발거리고 싸돌아댕기기 좋아흐더만
석찬이란 늠 혼불 저 방정맞은 것 좀 봐라잉
애린것이라 혼불이 진짜로 퍼렇다잉
- 「석찬이 형」 부분
파란 혼불이 나가는 장면은 참 드라마틱하다. ‘혼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는 푸른빛으로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대개 사람의 ‘영혼’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는데, 전라도 지방의 사투리다. 시 「혼불」에서는 나이가 든 사람의 혼불은 노랗다고 표현된다. “애린 것이라 혼불이 진짜로 퍼렇다잉”이라는 시구를 보면, 신비로운 감정마저 든다. 아직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봉오리, 석찬이의 죽음은 그래서 안타깝고 슬프다. 시 속 화자가 “석찬이 성! 성이 얘기했던 ‘몽혼주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크면서 어쩌면 나도 몽혼주사가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그래서 몽혼주사를 찾아댕겼는지도 몰라 그런 주사는 원래 없는 것이랴 그렁게 인자 잊어 먹어 나도 잊어벌랑게로” 하고 그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석찬이가 그렇게 원했던 것처럼 한 방에 낫는 ‘몽혼주사’같은 것은 없다. 인생의 파고((波高)를 넘을 때, 우리는 ‘한 방에 낫게 해주는 만병통치약 같은 행운이 내게도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러나 자고이래 그런 단방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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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지역 문학의 연구자 박태일은 “좋은 작품, 뛰어난 작품은 흔히 지역과 지연에 깊은 뿌리를 둔다”고 했다. 모롱지 설화 역시 ‘모롱지’라는 한 지역에 뿌리를 두고, 그 지역의 방언으로 그 지역민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유년기의 체험을 다룬 이 시집은 지역공동체 속에서 체험된 이야기들이 모여서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했다. 추억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시편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 시대의 문화를 오롯이 만날 수 있다.
풍요로운 21세기 최첨단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는 모롱지 이야기는 시인 자신에게는 ‘시적 성취’요. 지역사회에는 사료적인 가치로 남을 것이다. 정동철 시인의 모롱지 설화로 인하여 사라져가는 전라북도 방언이 우리 문학사에서 훌륭하게 복원되었다고 본다.
정서희 : 1966년 충남 서산 출생, 창원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 수료, 2020년 문학과 사람 신인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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