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드리는 첫 예배...
저를 아껴주시는 선배님, 원주제일교회 최헌영 목사님께서 선한목자 지팡이를 선물로 보내 주셔서 성도들 앞에서 지팡이를 전해 받았습니다. ^^
제 키보다 훨씬 큰 지팡이인지라, 승용차에는 들어가지 않아 토요일 원주에서 인천까지 직접 배달을 해 주셨습니다.
만사는 형을 통해~! 만사형통입니다.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지팡이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양을 돌보는 목자의 책임을 다하겠노라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성남에서의 개척 목회지는 신도시 분당이 개발되면서 그곳으로 집단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불가피하게 목회의 변화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개척 목회를 마무리 하면서 부목사로 갔던 교회가 우이교회였습니다. 당시 우이교회는 신경하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이셨습니다.
3년 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신경하 목사님과 함께 했습니다만, 지금 저의 목회를 가만히 되짚어보면 거의 그 당시 신목사님의 목회 스타일을 닮은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게 저의 목회에 큰 영향을 끼치신 신목사님을 오늘 취임 후 첫 예배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가운을 입혀 주시는 의식을 해 주셨습니다.
목회자가 갖춰야 할 소양과, 겸손한 섬김의 모습을 가르쳐 주신 신경하 목사님...
감사합니다.
무뚝뚝하고 가족들에게는 엄한 아버지신지라... 그다지 아버지랑 살가운 관계는 아니어서 아버지와의 자잘한 추억의 장면들은 잘 생각나질 않는다.
그런데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 속 깊은 데에서부터, '아, 이럴 때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아버지(정동화 목사님)는 목원에서 신학을 시작하셨지만 학교를 다 마치진 않으셨고, 당진의 기지시리에서 기지시 고아원 원장을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야 사업에 실패하신 후에 안양에서 만안교회를 개척하셨고 30년을 목회하시다가 그 교회에서 은퇴하셨다.
아버지는 평생을 협동목사로 지내셨다. 귀로 전해 듣는 바로는 그 때 그 시절의 협동목사는 많은 서러움을 겪으셨단다.
68세가 되어서야 흔히 말하는 '정 꼭지'가 떨어져서 68세에 근 30여년 목회한 안양지방에서 감리사 한번 지내시고 은퇴하셨다.
내가 11살이나 되었을 때에 개척하셨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 아버지가 개척하신 닭장에서의 첫 예배부터 천막교회, 그리고 건축의 과정 모든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 목회에 불만도 많았었다. '나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때를 지나, 이제는 '아버지처럼 은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아들이 감독이 되는 모습을 보셨더라면 참 많이 기뻐하셨을텐데...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버지.
하늘 나라에서 지켜 보고 계시지요?
아들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아버지처럼 좋은 목사가 되도록 더 노력할께요.'
교육전도사님들의
뻔뻔한 멘트.~^^
어제 추수감사주일에는 몸이 아파 강단에 서지 못한 서신천 목사를 제외한 우리 교회 목회자가 골고루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엔 박수 받은 적이 없는데 부교역자들 설교가 마칠 때마다 성도들이 박수를 힘껏 쳐 주었습니다~^^.
5인5색 설교가 4인4색이 되었지만,
저보다 훨씬 더 설교를 감동있게 해 준 부교역자들에게 저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엄은용 전도사. 신용욱 목사.
이향기 목사.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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