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운동의 역사
작성일 : 2023년 4월 21일
작성자 : 김태균 장애사랑맘 간사
쓰 임 : 장애사랑맘 23-4월 장애사랑맘 활동지원사 모임 발제문
장애 운동이란?
장애인차별은 노동, 교육, 시설, 이동, 선거, 방송 등 모든 생활영역에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차별로 인해 장애인들이 무기력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차별에 대한 반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무기력화되는 경우 자신을 가치절하 하거나 불만을 내재화시키게 되지만, 차별에 대한 반작용은 차별받는 당사자들의 저항운동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저항운동을 장애 운동이라 칭한다. 또는, 장애인 운동이란 장애인의 열악한 삶을 개선하려는 제 활동을 말하며 장애 해방을 그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장애 해방 운동이란 '장애인이 장애를 입었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받는 온갖 차별과 소외에서 해방되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 즉, 장애인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모든 사회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2. 한국 장애 운동의 역사
2-1) 장애 운동의 태동기(1988년 이전)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주체 형성과 질서의 변화를 가져왔다. 장애 운동 또한, 1987년 양 투쟁을 기점으로 1987년까지 장애 운동의 태동기, 1988년부터 1990년대 중반 장애 운동의 성숙기, 1990년 중반 이후 현재까지 활황기로 구분할 수 있다.
1) 입학 거부에 대한 투쟁
부산중학교 윤철군 군의 불합격 사건(1967년)
장애인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촉발한 사건은 1960년대 말부터 지속하였던 장애인 입학 거부 사건이었다. 1967년 부산중학교에 지원한 윤철군이 학과 시험에서는 만점을 받고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해 1968년 한국 특수보육협회(현재 한국소아마비협회)에서 서명운동을 벌인 일이 있었다. 당시 일류 중학교로 꼽히던 경기중학교나 서울중학교는 합격선이 100점 만점에 97점에 육박하는 정도로 치열했기 때문에 장애인의 경우 체력장에서 5점을 손해 보게 되어 설사 필기시험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합격할 수 없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당시 문교부는 소아마비 아동에게 체능 특전을 주는 안을 마련하였으나 문교부 장관의 교체로 체능 특전안이 전면 백지화되었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1972년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장애 학생에 대한 체능검사를 면제하기로 하였다.
대학입시원서 접수 거절 관련 시각장애인 5인 사건(1974년)
1974년에는 예비고사에는 합격하였으나 시각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대학입시원서 접수를 거절당한 5명에 대해 시각장애 관련 11개 단체가 문교부 장관과 각 대학 총장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 시각장애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학생, 부모 등이 '비교육적 입학 제한 규탄 궐기대회(1976)’ 등을 가졌지만 대안을 찾지는 못하였다.
서울대학교 30여 명의 장애인 대거 낙방 사건(1976년)
1976년 30여 명의 장애인이 서울대에 대거 낙방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부모, 장애인계에
서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는 비교육적 입학제에 대한 궐기대회 등으로 이어졌다.
기타 학교 입학 거부 사건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한 사례는 이외에도 1977년 서울대학교 응용 미술학과에 지원한 청각 장애인 박치곤, 영남대학교 약대에 지원한 장기석, 구본영 등이 각각 장애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으며, 1978년에는 부산 대학교 윤여진. 김호남 등 7명이 무더기로 입학을 거부당하는 사례 등 끊이지 않아 왔다. 1980년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에 필기시험에서 상위를 차지한 장애인을 지체장애인이란 이유로 낙방시킨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1986년에는 가톨릭의대에서 소아마비 학생 3명이 불합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남대학교의 경우 장애인대표학생회의 불합격 철회 요청이 있었으나 학교 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이 제기되었으며 1981년 2월 승소하여 입학이 허가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후 영남대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하는 일은 사라졌다. 가톨릭대 의대에서도 5일 동안의 문교부와 보사부 간의 갈등, 김수환 추기경의 담화, 장애인 단체의 항의 등으로 중대 1명을 빼고는 불합격을 번복, 합격 처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