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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산헤립과 구원하시는 하느님(36-37장)
역사적 배경
36-37장은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파견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던 기원전 701년의 사건을 묘사한다. 산헤립은 기원전 705년에 임금으로, 즉위하여 아시리아를 부흥시켜 다시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의 즉위 이전 아시리아는 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를 틈타 서쪽 지역의 작은 민족들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아시리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다. 그러자 산헤립은 기원전 701년에 출정하여 해안 지역에 위치한 시돈을 시작으로 남쪽의 아스클론과 에크론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산헤립은 이집트의 원군을 엘테케에서 격파하여 기세를 올렸으며, 이어서 유다 지역을 점령하였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바로 공격하지 않고, 라키스를 점령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라키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4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산헤립은 라키스 점령에 집중하는 동안 랍 사케에게 병력을 주어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한 이 사건이 36-37장의 배경이다.
36-37장의 개요와 구조
36-37장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위협하는 아시리아의 군대와 이에 대응하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네 부류이다. 첫째, 아시리아의 임금 산헤립이다. 물론, 그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그의 신하 랍 사케를 통해 자신의 말을 유다 임금 히즈키아에게 전한다. 둘째, 유다 임금 히즈키야와 그의 대신들이다. 산헤립이 자신의 말을 랍사케를 통하여 전달하듯이, 히즈키야도 아시리아인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그의 신하를 통하여 대응한다. 히즈키야의 대신으로 엘야킴, 세부나와 요아가 등장한다. 셋째, 하느님과 그분의 사자(使者)인 이사야 예언자다. 산헤립이 랍 사케를 통해, 히즈키야가 대신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 전달하듯이, 하느님께서도 자신의 사자인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신다. 또한, 이사야는 히즈키야 임금의 이야기를 주님께 전달하는 중개자의 역할도 수행한다. 넷째, 마지막은 시온이다. “딸 시온”(37,22)의 명칭으로 등장하는 시온은 노래를 부르면서 산헤립을 조롱하고, 그의 운명을 예고한다. 36-37장은 이러한 네 부류의 등장인물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본문은 설화자의 이야기와 등장인물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여기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과 유다 임금 히즈키야는 직접 대화를 진행하지 않고, 신하들 사이의 대화로 본문이 구성된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이는 산헤립의 신하 랍 사케와 히즈키야의 신하, 엘야킴, 세브나, 요아이다. 대리자 사이에 전개되는 대화는 산헤립과 히즈키야의 거리감을 보여주고 동시에 이 둘의 운명이 다르게 흘러가게 되는 모습을 암시한다.
랍 사케는 두 번에 걸쳐 히즈키야가 어떤 인물인지를 제시한다(36,4-10.14-20). 그는 히즈키야가 주님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치워버려서 주님을 거스르게 되었고, 그래서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증언하며(36,7), 히즈키야가 ‘주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해내신다’라고 말하면서 백성을 속이고 있다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36,15.18). 설화자는 히즈키야가 행하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인용하여 랍 사케가 제시한 히즈키야의 인물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37,1-4.14-20). 동시에 히즈키야가 이사야와 함께 하느님께 의지한다는 사실과 그의 믿음에 부합하게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심으로써 산해립의 생각과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한다(37,2.5-6.14.21).
이야기는 아시리아 군대가 도착해서 예루살렘을 위협하다가 주님의 천사에 의해 몰락하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도한다. 이를 통해 36-37장은 구원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묘사하고(37,36-37), 시온의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며, 예루살렘이 구원된 사건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예루살렘을 향한 산헤립의 위협과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전개되는 36-37장은 산헤립 (랍사케)과 히즈키야(대신들)의 대화 구조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사건의 개시(36,1-3) ; 첫 번째 장면(36,4-10) ; 두 번째 장면(36,11-21) ; 세 번째 장면(36,22-37,7) ; 네 번째 장면(37,8-13) ; 5번째 장면(37,14-35) ; 이야기의 마무리(37,36-37).
36,1-3 사건의 개시
이야기는 “히즈키아 임금 제십사 년”이라는 연대기와 함께 상황 설명으로 시작된다. 산헤립은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라키스에서 랍 사케를 시켜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이다. 이런 설명만으로도 예루살렘이 처한 군사적 위협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명의 임금, 유다 임금 히즈키야와 아시리아의 임금 산헤립의 대결 구도가 준비된다. 산헤립이 자신의 신하 랍 사케를 보낸 것처럼, 히즈키야의 신하 엘야킴, 세브나와 요아가 그를 마주한다.
36,4-10 산헤립(랍사케)의 조롱-첫 대화
이 단락은 랍 사케의 담화로 구성된다. 그는 히즈키야와 산헤립을 대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설화자는 1절에서 ‘히즈키야 임금’과 ‘아시리아 임금’이라는 호칭을 모두 사용하지만 랍사케는 자신의 담화에서 히즈키야에게 임금이라는 호칭을 부여 하지 않고, 산헤립에게는 “대왕이신 아시리아 임금님”(36,4.13)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유다가 아시리아에 종속 되어 있는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랍 사케는 히즈키야가 현재 이집트에 의지하고 있다는 상황도 알려준다. 히즈키야는 아시리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자 했으며, 이러한 그의 시도는 이사야의 비판을 받았다(30,1-7 ; 31,1-3). 랍 사케는 이집트를 의지하는 유다의 모습(36,4-6)과 기마대를 다룰 줄 모르는 유다의 군사력을 조롱한다(36,8-9). 아울러 주님의 명령으로 공격했다는 거짓을 말한다(36,10). 랍 사케는 히즈키야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까지 조롱하는 모습을 보인다.
36.11-21 히즈키야의 대신들과 랍 사케의 대화
이 단락은 두 부분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히즈키야의 대신들과 랍 사케의 대화이다(36,11-12). 이들의 대화는 외교적 대화이므로 히즈키야의 대신들은 비밀을 요구한다. 반면에 랍 사케는 그들을 조롱하며 계속해서 유다 말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둘째, 랍 사케는 백성을 수신자로 삼아 담화를 이어간다(36,13-21). 그는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듯이 ‘사자전언(使者傳言)’ 양식에 따라 “대왕이신 아시리아 임금님의 말씀을 들어라”(36,13)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랍 사케의 선포 내용은 다음 두 가지를 지향한다. 하나는 히즈키야와 야훼 하느님의 틈을 노리고, 다른 하나는 히즈키야와 백성 사이의 틈을 노린다(36,15-18). 곧 그는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흔들고 이를 통해 백성을 동요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산헤립은 복지의 수여자로 묘사된다. 결국 그의 제안은 항복이다. 아울러 그는 새로운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제안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은 주님께서 주신 유산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유산으로 받은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복지와 땅의 수여자로 묘사되는 산헤립은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모습이다. 이어지는 랍 사케의 담화는, 이방 신들이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누구도 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열거하며(36,18-19), 궁극적으로 아시리아의 위협 앞에서 야훼 하느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교만한 모습을 드러낸다.
36,22-37,2 히즈키야의 대응
랍 사케의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히즈키야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주님의 집에 들어가고, 이사야 예언자를 찾고, 그에게 랍 사케의 조롱을 들려주며, 기도를 청한다(37,4). 하느님의 사자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히즈키야에게 전달한다. 그 말씀에서 하느님께서는 산헤립이 칼에 맞아 죽을 것을 예고하신다(37,6). 하느님은 이 둘의 대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으시지만, 대화 뒤에 ‘살아계신 분’으로 존재하신다(34,7)
37,8-13 새로운 긴장
또 다른 전투를 위해 이동하는 가운데(37,8-9) 산헤립은 신하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히즈키야에게 전한다. 히즈키야와의 첫 대면(랍 사케와 히즈키야의 대신들)에서 산헤립은 히즈키야를 겨냥하여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산헤립이 노골적으로 하느님을 목표로 삼으면서 하느님께 정면으로 대항한다. 이미 그는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복지의 수여자 행세를 하였고(36,16-18), 교만하게 하느님의 자리에 서 있다.
37,14-35 히즈키야의 기도와 그를 위한 표징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자신이 받고 읽은 편지를 성전 앞에서 펼쳐놓고 기도한다. 히즈키야의 기도는 임금이 봉헌하는 기도 가운데 모범적이며,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한다. 그의 기도는 하느님만이 홀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유일하고 참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곧 아시리아의 임금이 이야기한 이방 신들은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는 우상이었다(37,18-19). 하지만 하느님은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분이시니 산헤립의 손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원한다(37,15-20).
그의 기도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 그 응답은 예언자에 의해 전달된다(37,21). 산헤립이 하느님을 조롱하였듯이 하느님도 산헤립을 조롱하신다. 여기서 등장인물의 네 번째 부류인 시온이 “딸 시온”으로 등장한다(37,22). 시온은 산헤립의 위협을 받은 장소이다. 이제 시온의 의인화를 통해 아시리아의 산헤립을 향한 조롱이 전개된다. 산헤립이 조롱한 대상은 이방 신들과 같은 우상이 아닌 ‘이스라엘을의 거룩하신 분’이시다 산헤립이 막강한 군사력을 뽐내며 위세를 떨쳤지만(37,24-25),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다.
시온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이고 37,36부터 화자가 하느님으로 전환된다. 하느님 말씀에 따르면, 산헤립이 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느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37,26-27). 이러한 맥락에서 이사야 예언서는 아시리아를 그저 하느님의 도구로만 인식할 뿐이다(10,5 참조). 산헤립은 지금 하느님께 격노하고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마침내 코에 주님의 갈고리를 꿰고 입술에는 주님의 재갈이 물려, 왔던 길로 되돌아갈 것이라 예고된다(37,28-29). 그의 모습은 정상적이지도, 승리하여 개선하는 장수의 모습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포로의 형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그의 몰락 예고는 시온의 구원을 의미하며, 하느님께서 시온을 지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말씀이 된다.
이사야 예언자는 히즈키야에게 또 다른 표징을 전해 준다(37,31-35). 하느님을 조롱한 산헤립에게는 조롱의 노래가, 하느님을 신뢰한 이에게는 표징이 주어진다. 표징은 예루살렘이 산헤립으로부터 구원될 것을 예고한다(37,31). 37,31-32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첫째, 31-32절의 생존자와 남은 자를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해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곧 아시리아의 위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구원이 온다는 사실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다 집안의 생존자(37,31)와 예루살렘 및 시온산에서 나오는 남은 자와 생존자를 구별하는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유다 집안의 생존자는 산헤립의 침략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 및 시온산에서 나오는 남은 자와 생존자는 아시리아의 군대를 의미한다. 그런데 유다 집안의 남은 자들은 뿌리를 내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이 예고되고(37,31), 아시리아 군대의 남은 자들과 생존자들(37,32)은 물러가는 상황이 묘사되면서 예루살렘의 구원이 선포된다.
37,36-37 산헤립의 죽음
마지막 장면은 하느님께서 예고하신 예루살렘의 구원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의 십팔만 오천명을 쳤고, 산헤립은 그곳에서 니네베로 돌아간다. 주님 천사의 등장은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탈출을 연상시킨다(탈출 14,19). 구원된 이스라엘 백성이 죽어있는 이집트인들을 보았던 것처럼(탈출 14,30), 예루살렘의 해방을 체험한 이들은 아침에 죽어있는 아시리아 군사들의 시체를 본다(36,36). 그들의 죽음은 아시리아에 대한 심판 신탁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8,8-10 ; 10,12.16-19.24-27 ; 14,25-27 ; 17,12-14 ; 29,5-8 ; 30,31-32 ; 31,5.8-9 ; 34,3). 또 그 군인들의 시체는 이사야 예언서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하느님께 거역하는 이들의 주검을 예시한다(66,24 참조). 그러므로 아시리아 군사들의 죽음은 과거 이집트 탈출 사건을 회상시키는 한편, 하느님을 거역하는 이들의 마지막 운명도 보여준다.
36,1-3과 37,36은 아시리아 군대의 시작과 마침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기세로 도착해서 도성을 포위했으나, 전멸이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에 부합하여 산헤립도 히즈키야와 하느님을 향해 자만을 뽐냈지만, 그 또한 죽음을 맞게 된다(37,37).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아시리아 군대에는 주님의 천사에게 몰락하지만, 산헤립은 주님의 천사가 아닌 그의 두 아들에게 살해된다. 그의 모습은 히즈키야와 대비되는데, 히즈키야는 위 이기의 상황에서 주님의 집으로 가(37,1.14) 그곳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한다. 반면에 산헤립은 자신의 도성 니네베에서 자신의 신 니스룩의 신전에서 예배드리는 가운데 죽임을 당한다(37,37). 대비되는 두 임금의 모습은, 하느님을 믿는 이가 구원된다는 신학적 주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니스룩이 아닌 하느님만이 참되고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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