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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따라간 나그네
이 홍사
신시가지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예전의 산과 들이 없어지고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낮선 번화가가 되어버렸다. 이 도시가 고향이나 진배없지만 신시가지에 새로 들어선 병원을 찾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의 도움이 절실했다. 톨게이트에 내릴 적에 내비게이션으로 병원 명칭을 검색하고 그 길 찾는 기계가 일러주는 대로 핸들을 꺾었다. 병원은 대단지 아파트를 지나고 원룸 촌이 있는 언덕배기에 터를 잡고 있었다. 주차할 곳이 마땅찮을 거라는 짐작으로 영안실 푯말이 보이는 병원 뒷길 아래 주차를 하고 새로 돋아난 잎이 인도까지 휘늘어진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서는데 불쑥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벌은 죽어서도 쏜다.’
난데없는 문장을 불쑥 떠올렸을까 곰곰이 짚어보니 주차를 하고 숲길을 올라오며 윙윙거리는 벌을 보았던 까닭이지 싶다. 그 문장을 곱씹으며 다시 벌을 찾느라 숲을 살피며 담배부터 한 대를 빼물었다. 담배를 다 필 때까지 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벌은 죽어서도 마지막으로 쏜다. 며칠 전 산자락 아래 위치한 등기소 이 층, 내 사무실에 열어놓은 창으로 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덩지가 큰 말벌이었다. 어디론가 들어온 벌은 나가라고 열어둔 작은 창을 찾지 못하고 열어줄 수 없는 큰 유리창에 윙윙거리며 부딪히곤 했다. 그 바람에 방을 같이 쓰는 여직원 둘이 마치 벌에 쏘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보란 듯이 신문지를 말아 쥐고 벌을 단 한 방에 잡았다. 신문지에 맞은 벌은 창가에 둔 화분 위에 떨어졌다. 죽은 벌을 버리려고 화초를 뒤져 벌을 집었는데 녀석은 죽어서도 내 엄지손가락을 쏘았다. 맞다. 벌은 죽어서도 쏜다.
아차! 이런 문장에 매달려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늘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는 나는 정신을 수습하고 영안실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며느리는 내보내도 딸은 내보내지 않는다는 사 월의 따가운 햇살이 병원 뒷산마루에서 비추고 있었다.
어제는 문자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날아왔다.
시대는 변하고 문화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장례문화도 시대에 걸맞게 한 단계 업 그레이더 되었다. 누런 봉투에 담겨 오던 종이나 전화 부고가 이젠 거의 없다. 부고를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온 지가 오래 되었고 그렇게 메시지로 부고를 받는 게 이젠 낯선 일도 아니다.
P의 부친상 강동병원 영안실 특실, 발인 17일 일요일 오전 8시. 많은 조문 바람!
같은 내용이지만 문자를 보낸 곳은 여러 곳이다. 고등학교 동기회 총무, 친목계의 총무, 또 연락이 닿는 전우회 동기, 등 여러 곳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그만큼 여러 군데서 문자가 날아온다는 것은 P와 나와의 두터운 친분관계를 대변해주는 것이다. P는 나와 행정구역상 다른 면이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같은 군(郡)의 동향이며 고등학교 동기생이고 또 죽이 맞는 고등학교 동기들과 만든 친목계의 계원이며 공교롭게도 입대일자가 같은 훈련소 동기다.
P의 부친상이라........
처음 문자를 받고 잠깐 고인이 되었다는 어른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 김치골에 있는 P의 집에 들르면 항상 그의 부친께 인사를 올리고 일장 훈시를 들어야 했다. 까까머리 대여섯 명이 꿇어앉아 맹공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리 정연한 훈시, 거기에 어른의 진한 서정이 담뿍 담긴 한시를 한 수 듣고 저린 다리를 풀며 자리를 물러나곤 했다. 한학에 조예가 깊고 감성까지 풍부한 어른이다. 아니, 이젠 어른이셨다, 는 과거형을 써야 마땅하다. 강단 있고, 깐깐하고, 정정한 노인인데 갑자기 상을 당하다니, 느닷없는 부고를 받은 나로서는 좀 놀랐다. 어른께선 심심풀이로 한시를 지으며 고향인 김치골에서 대대로 이어온 농사를 지으셨다. 지난 설에, 그러니까 정확히 초이튿날 찾아뵈었을 때 아주 정정하셨고 한 달 전쯤 P를 만났지만 편찮으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나는 명절 끝에 꼭 P의 어른을 찾아뵌다. P와 가장 친한 친구이며 조실부모한 나로서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심정으로 찾아뵙고 어쩌다 명절 끝에 내가 찾아뵈지 않으면 도리어 어른께서 며칠 뒤에 어디가 아프냐고 전화를 하실 정도다. 지난 설에도 술을 사들고 가서 세배를 드리고 술 한 잔을 올렸더니 하시는 말씀인즉슨, 자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가? 하고 물으셨다. 담배? 그 많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아직 끊지 못했습니다. 대답을 얼버무려지자 어른께선 윗목에 있는 문갑을 뒤져 담배 한 보루를 내밀었다. 어디서 선물로 들어온 모양이다. 어른께선 담배가 선물로 들어오면 꼭 나에게 주신다. 약주는 하시지만 담배는 태우지 않는 어른 선물로 들어오는 담배를 얻어 피운 지가 벌써 십 년 저쪽이다.
정정하셨던 어른이신데....... 중얼거리며 문자를 보고 날자 계산을 했다. 일요일이 발인이니 토요일 날 저녁에 가서 빈소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발인까지는 보아야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P가 맏이라 밤을 새울 친구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일 것이고 동생의 친구들이라도 안면이 있는 이가 더러 있을 것이다. 발인 날자가 그렇게 되면 굳이 연차나 월차를 쓸 필요가 없다. 또 내 개인적으로 부의금도 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속한 동기회며, 친목계에서 공동으로 조의금을 전하니 나로서는 두 군데서 부의금이 나가는 셈이다.
김치골! 어떤 유래로 그 동네를 김치골이라 부르는지 모른다.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기에 우리는 P가 지점장으로 승진했을 때, 개천에서 용 난 것이 아니라 김치골에서 용이 났다고 했다. 헌데 그 김치골을 이젠 만만히 보면 안 된다. 4공단이 팽창하고 5공단 부지로 선정되어 곧 보상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 공단부지에 편입되지 않는 경계부근의 땅은 금싸라기 땅으로 둔갑을 했다. 그 부지가 확정발표 되자 땅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 사려는 사람은 주위를 맴돌지만 팔려는 사람은 없고 거래는 되지 않지만 땅 값은 연일 오른다. 계약서상 오르는 게 아니고 호가만 오른다는 얘기다.
재작년만 해도 김치골 부근의 시골 동네들은 난리가 아니었다. 토지 보상가격 감정을 받기 전이라 보상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동네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 조립식으로 아래채와 별채를 짓고 밭에는 돈이 되는 유실수를 사다 심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그랬다. 그냥 밭으로 두는 것보다 과수 한그루를 심으면 그 나무에서 보상 받는 웃돈에 주민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P의 부친께선 그런 사람들을 두고 나랏돈을 좀먹는 소인배의 짓거리라고 손가락질 할 뿐 정작 당신의 땅에는 나무 한그루 심지 않았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고 사과밭에서 갓끈을 만지지 말라는 소리를 몸소 실천하는 자기 철학에 도취된 어른이다.
부음을 받은 날 퇴근 무렵이었지만 그 어른을 생각하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허둥거렸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P가 맏이라 연세도 그렇게 많지 않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일흔 중반 정도 되었을 것이다. 참 정정한 노인이었는데....... 편찮으신 줄 알았다면 문병이라도 다녀왔어야 했는데....... 그런 미련과 아쉬움에 구속되어 자유롭지 못한 마음으로 문상을 다녀올 시간을 계산했었다.
경사가 심한 길을 올라서니 바로 영안실이 있는 병원 뒷마당이었다. 새로 생긴 병원답게 영안실 로비부터 넓고 깨끗이 단장되어 있었고 들어가는 입구는 작은 호텔로 착각할 정도로 자동문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슨 호텔이라는 글씨가 쓰인 것이 아니라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문구와 몇 호실에 상주가 누구인지 글씨가 바뀌는 전광판이 길게 걸려있다는 것이다. 넓은 로비에 들어서자 통유리를 박아놓아 실내가 훤했다. 그 창가에 테이블이 있고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었다.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한 한 무리의 친구들이 들어서는 나를 보고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고등학교 동기생들이다. 나는 먼저 그 쪽으로 가서 빙 둘러앉은 친구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했다.
-모두들 문상을 마친 거야?
같이 빈소에 향을 올릴 친구부터 찾았다.
-문상을 한 사람도 있고 지금 막 온 친구도 있네. 천천히 해! 어차피 밤을 새울 건데.......
한 녀석이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며 대꾸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또 다른 녀석이 물었다.
-법원장님! 밤새울 각오하고 왔지?
녀석들은 등기소 말단을 피해 겨우 계장자리에 있는 나를 두고 법원장이라고 놀리고 있다.
-응. 당연히 밤을 새야지.
-그럼 문상은 조금 있다가 친구들이 더 모이면 같이해. 상주 피곤할 터인데 자꾸 절 시키지 말고.
당연히 밤을 새야한다. P가 누구인데? 간단한 세면도구는 차에 실려 있다.
-오늘밤엔 법원장님 돈을 좀 따 먹을까? 주머니 총알은 두둑이 준비했지?
-야! 월급쟁이가 무슨....... 탄피뿐이다.
카드뿐이라는 말인데 그 뜻을 냉큼 알아차린 녀석은 저 쪽 병원 로비에 가면 24시간 되는 현금인출기가 있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하긴 밤을 새우려면 화투놀이가 아니면 카드다. 오늘도 변함없이 노름으로 밤을 새울 꿍꿍이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화투나 카드를 잘 하지 못할뿐더러 그리 즐기지 않는다.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단 앉았다가 적정금액을 잃어주고는 깨끗하게 뒷전으로 물러나는 편이다. 지난번 동기 중의 Q의 모친상에서는 새벽에 판이 커져서 현금으로 천만 원 이상이 판돈으로 깔려 있었다. 그날의 패배자는 B인데 좌중을 훑어보니 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이 도시의 변두리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갈밭에 운이 좋게도 밭 가장자리를 물고 팔차선 산업도로가 터지자 바로 주유소를 차려서 운영하는 B는 오늘 단단히 벼르고 총알을 두둑이, 아니 총알이 든 탄띠를 어깨에 걸치고 허리로 허리에 두르고 쌍권총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고 할까? 항상 문상보다는 뒤풀이 노름을 더 밝히는 녀석이다. 녀석은 학창시절부터 그 쪽 방면에 뛰어난 재능과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짤짤이라고 불리는 동전 따먹기의 제왕이었다. 하여 녀석의 별명이 짤짤이였다. 그 짤짤이는 주유소 문 닫을 시간이 넘어서 나타날 모양이다.
내가 나타나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동기들은 하던 이야기로 이어가고 있었다. 들어보니 김치골의 토지 보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보름 전쯤에 김치골 일대의 토지 보상이 일괄로 나왔다는 얘기다. 많이 받은 사람은 백억을 넘어서고 대충 다 난생처음 만져보는 뭉칫돈이 통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자기 전 재산을 현금으로 손에 쥐는 일은 잘 없어! 촌사람들 간 키우기에 딱 좋지.
-촌사람들이 그런 돈을 쥐면 누구에겐가 들은 무슨 사업 한답시고, 하루아침에 탕진하고 알거지가 되는 사람들도 있을 터인데........
내가 걱정 반 부러움 반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모르는 소리 마. 벌써 후폭풍이 불고 후유증으로 P 같은 일이 생기잖아?
-P가 왜?
-자네 모르고 왔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돌았고 뭔가는 모르지만 보상금으로 인해 P의 어른이 돌아가셨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혔다.
-정말 모르고 왔어?
다른 누군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재차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니까. 나는 아무 것도 몰라. 그냥 문지만 받고 왔어.
-그렇다면 속 편히 왔겠구먼.
속 편히 오다니?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요소를 두루 함유한 한마디였다. 석연찮은 무엇이 있다. P의 부친상에 숨겨진 의혹은 무엇인가?
-야! 좀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무슨 일이야?
내가 몸이 달아서 그렇게 매달렸다.
-알아서 좋을 일은 아니지만........
녀석들은 영안실 쪽으로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뜸을 들인 뒤에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내용인즉, P의 어른께서 천명을 다 한 것이 아니란다. 그기까지 듣고 나는 순간적으로 보상금 문제 때문이라고 넘겨짚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동기들 말에 의하면 P의 어른에게 나온 보상 금액은 이해를 돕기 위해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자면 18억 5천만 원이라고 했다. 밭에다 과수를 심고 마당에다 별채를 짓고 했으면 더 받았을 터이지만 어른께선 그렇게 하시지 않고 순전히 작물이 없는 전답과 고치지 않은 한옥의 감정가격이 그 금액이라고 했다. 김치골 건너편에 있는 P의 선산은 편입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산이 들어가고 보상이 나왔으면 돈을 타작했을 거라고 한 녀석이 애석해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 산은 야트막한 야산이기에 산소 자리만 빼면 공단이 조성되고 난 뒤에 지목변경을 하면 활용가치가 대단한 금싸라기 땅이 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금액을 받은 어른께서 그 돈을 자식들에게 분배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P 형제로는 맏이인 P와 남동생 하나, 그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는 사남매다. 나는 P의 집을 자주 들락거려 그의 여동생들까지도 다 잘 안다. 특히 여동생 중에 막내 혜진이는 내가 고등학생시절,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나를 무척 좋아하고 오빠라고 부르며 제 오빠를 재치고 나를 더 따랐다. 여동생이 없는 나는 P의 집에 갈 적마다 혜진이를 위해 주머니를 털어서 작은 인형이나 사탕을 선물로 준비했었다. 그 녀석이 여고에 다닐 때 P와 나는 군에 있었다. 제 오빠에게는 편지를 얼마나 보냈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한 달에 한 통정도의 편지를 보내주었으며 시집을 간 지금까지도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곤 한다. 혜진이가 전화를 하는 날이면 기분이 유쾌해져서 그날 일이 잘 풀리는 기분이 들 정도다.
P의 부친께서 삼대독자라 다산을 꿈꾸었고, 그 결과 슬하에 사남매를 두었으며, 세상의 개화에 눈이 밝은 어른이라 이제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어려운 시절에 딸들까지 모두 대학을 보내신 분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실적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언제 모가지가 날아갈지 모가지가 덜렁거리는 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P가 사남매 중에서 제일 못하다. 지점장이라는 명패를 달고 앉은 자리지만, 사고만 안치면 정년이 보장되는 내 자리보다는 훨씬 불안한 자리다. P의 바로 밑에 남동생은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알토란같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여동생 하나는 부부교사이고 그 밑에 혜진의 남편은 외무고시 출신의 고위관료로 앞날에 서취라이트가 비춰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시 딴 생각에 잠긴 나는 정신을 추스르고 아무 말 없이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분배의 과정을 상상하고 유추했다. 그 18억 5천만 원을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 찾아 놓고 어른께선 사남매를 모두 얼마 전 토요일을 택해 불렀다는 것이다. 보상금이 나온 것을 알고 사남매는 고향집으로, 친정집으로, 시댁으로, 처갓집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명칭이야 다르지만 한자리에 몰렸을 것까지는 유추가 가능하다.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18억 5천만 원 중에서 맏이인 P에게 15억을 주면서 사대봉제사와 어른 부부의 노후까지 책임지라고 하셨고, 둘째 아들인 P의 남동생에게 3억을 주면서 사업이란 몇 박자가 잘 맞아야 되는 법이거늘, 언제 한 박자가 삐걱거려 위기에 처할지 모르니까 그 때를 대비해서 비자금으로 통장에 넣어두라고 당부하셨고 나머지 5천만 원 중에서 노인도 주머니가 비면 허전하다며 어른의 용돈으로 쓴다며 천만 원을 재치고, 남은 4천만 원을 가지고 나머지 딸 둘에게 각각 2천만 원씩 주면서 너희들은 앞날이 밝고 창창하니까 이 돈은 외손자 둘의 이름을 지칭하며 그 아이들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넣어두라고 하셨단다. 그기까지 들으니 분배에 별 문제가 없이 자식들의 현 상황을 안배한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지극히 객관적이었다. 딸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 이 돈으로 고기나 사드세요.
옆에 앉은 한 녀석이 끼어들어 낭창하게 여자 목소리를 흉내 냈다. 아차! 싶었다. 그 집 거실 탁자머리에서 딸 둘은 그런 소리를 하며 돈뭉치를 밀어놓고 뒤도 안돌아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녀석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충분히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눈에 선한 그림이다. 그렇게 딸들이 가버리고 나자 어른께선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다시 분배하겠다고 선언 하면서 분배를 취소하고 P와 남동생을 돌려보내며 P를 시켜 그 돈을 어른 성함으로 된 계좌에 다시 입금시켰단다. 그 다음 주에 다시 분배하겠다고 선언하고 아들 둘과 약속했지만 딸과 사위들은 그 다음 주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아버지께 보기 좋게 물을 먹인 것이었다. P의 말에 의한다는, 동기들의 말에 따르면, 월요일에 입금시킨 돈을 현금으로 찾아놓고 아들과 며느리들은 다 와서 기다리는데 딸과 사위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전화조차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시위성이 다분히 배어있는 태도였다. 그 철딱서니 없는 시위가 제 아버지거나 장인인, 어른의 심정을 뒤집어 놓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 행위라는 것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어른께선 왜 월요일에 입금시킨 돈을 번거롭게 굳이 금요일에 현금으로 찾아 놓았을까? 그 부분이 얼른 납득가지 않았지만 아마도 당신의 입이 아닌 손으로 그 재산을 분배하고 싶었던 애정이 녹아있었을 것이다. 끝내 딸들은 나타나지 않고, 기다리는 며느리들 보기에 어지간히 무안해서 헛기침을 하며 마당을 서성거리고 계셨을 것이라는 것까지는 녀석들의 말을 듣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녀석들이 하는 말 중에서 어른이 곧 헐리고 공단부지가 될 집의 헛간에서 목을 매었다는 말만 귀에 들어올 뿐 다른 말은 귓전을 스치고 흘러갔다. 녀석들은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해서 토론이 아닌 자기 편견을 늘어놓고 핏대를 세우고 있지만 나는 묵묵히 고개를 주억이며 그 때의 상황을 상상하며 듣고 있었다.
-아버지! 이 돈으로 고기나 사드세요.
딸 중에서 누군가가 했을 그 말이 귀에 맴돌았다. 평소에 했으면 지극히 효녀다운 말이다. 그러나 말이란 때와 장소를 광배로 삼아 빛을 발하거나 독을 뿜는다. 거듭 말하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풍기는 뉘앙스가 백팔십도 달라지는 법이거늘, 그 상황에서는 해야 될 얘기가 아니다. 그 말을 남겨놓고 딸들이 아이들을 챙겨서 떠나 버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니 어른께선 자신이 잘못 가르쳤다는 자괴감과 돈으로부터 밀려난 부권, 그 상실감, 헛기침만으로도 집안을 군림하던 제왕의 자리를 빼앗긴 가부장으로 심한 소외와 우울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녀석들의 말을 종합하자면 두 번째로 돈을 찾았을 때는 딸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그 돈을 다시 은행에 넣지 않고 어른께서 직접 보관한다며 그 돈뭉치를 장롱에 차곡차곡 쌓아두셨다는 것이다. P의 여동생들이 와서 빈소를 지키는지 궁금했다.
-딸들은 다 왔냐?
-제 아버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 올 딸이 어디 있겠냐? 사위 외손까지 빈소가 복잡하다.
-P에게 평생 원망을 듣고 살겠군! 걔들 둘 다 천사 레벨이 붙은 아이들인데.......
-짠! 사라진 오천만 원을 찾아라! 현상금은 천만 원!
둘러앉은 좌중에 한 녀석이 진부한 탐정영화 제목 같은 소리를 구호처럼 외쳤다. 녀석이 외친 소리가 너무 커 앉은 동기들은 빈소가 있는 쪽을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추라고 검지를 입술에 대며 쉿! 했다. 불쑥 외친 녀석도 아차, 싶었든지 손바닥으로 제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모두들 목소리가 조곤조곤해졌다. 그때 좌중에서 U라는 녀석이 일어나 출출하다며 소주 몇 병과 돼지고기를 좀 가져오겠다고 했다. 어떤 자리이든 일탈을 자랑삼아 무슨 짓거리라도 벌이고 예기치 못한 사고를 치는 녀석이다. 성격이 내성적인 모범생, H가 손을 내저었다. 여기는 접견실이 아니라 로비이고 음식물 반입금지일 터인데 괜찮겠냐고, 가만히 앉아 있는 동기생 전체의 체면에 금가는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U는 막무가내였다. 멀쩡한 사람도 죽는 마당인데 그까짓 체면이 대수냐고? 이 로비 어디에 술을 먹지 말라는 문구가 있냐며 일갈하고는 빈소 쪽으로 갔다. 하여튼 못 말리는 녀석이다. 녀석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제 보다 세 살이나 많은 버스 안내양을 구워삶아서 데리고 다니고 시내버스는 늘 공짜로 타고 통학하고 다녔으며 직업을 수도 없이 바꾸어 지금은 이 도시 변두리에서 고물상 중간 도매업을 하는데 수완이 좋아 주머니가 두둑한 녀석이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말린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녀석은 벌써 빈소 접견실로 꼬리를 감춘 뒤였다.
-저 자식, 저거 아직 고물상하고 있냐?
좌중에서 누군가 U의 근황에 대해서 물었다.
-고물상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야. 저 자식이 하루에 주물럭거리는 현금이 몇 억이 된다.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규모가 커! 지난달에 섬유회사 기계 철거 공사를 낙찰 받아서 보름 안에 수억은 벌었을 걸.
규모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U가 고기를 가져와 술판을 벌여도 상관없다. 다행히 P가 상주인 특실 한 곳만 문상객을 받고 대여섯 개가 되는 다른 빈소는 다 비어 있어서 로비에는 눌러앉은 우리 동기생밖에 없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로비에서 술판을 벌이는데 관리인이 와서 뭐라고 하더라도 U가 알아서 처리하고 결국 관리인마저도 소주 한잔을 얻어 마시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 정도 입심과 수완을 지닌 녀석이다.
-그런데 사라진 오천만 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오천만 원의 구호를 외친 놈에게 물었다. 이놈이 하는 말과 저놈이 들려주는 말을 종합해 보면 헛간의 허공에 매달린 P의 어른을 발견한 이는 바로 옆집에 사는 노인이었다. 어른과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그 노인이 곡괭이를 빌리러 왔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 때 P의 어머니는 경로당에 나가시고 빈집이었다고 했다. 119가 오는 동안 노인이 경로당으로 달려가서 P의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P의 어머니는 허겁지겁 집에 도착했을 때 119가 왔다. P에게는 그의 어머니께서 다급하게 연락을 하셨다고 했다. P의 어머니는 병원보다 장롱 속에 든 돈을 사수해야한다는 생각에 보호자로 119응급차를 타지 않고 큰아들과 작은아들에게 연락을 하고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많이 놀라셨겠구먼! 내 입에서 흘러나온 비통한 한마디였다. 예상치 못한 급보를 받고 사태의 추이를 파악한 P는 은행에서 뼈가 굵은 지점장답게 침착하게 부하직원을 집으로 보내 돈을 은행 금고에 보관시키라고 지시하고 바로 119가 갔다는 강동병원으로 내달렸지만 어른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이 아닌, 안치실 냉동고에 있었으며 경찰들과 그의 동생이 먼저 와있었다고 했다.
-딴소리 그만하고, 그 오천만 원을 찾으라는 소리는 무슨 소리야?
조급해진 내가 옆에 앉은 녀석에게 돼지고기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그땐 이미 U가 일회용 접시에 가득 담아서 가져온 돼지고기와 소주를 몇 병째 비우고 있는 참이었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그렇게 뜸을 들인 녀석의 말에 의하면 P의 부하직원이 P의 집으로 가서 어머니께서 장롱에서 내주는 돈뭉치를 차곡차곡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P의 어머니를 어른이 계시는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은행에 가서 돈을 확인하니 정확히 18억이라고 P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18억 5천만 원이었는데 5천만 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집으로 가서 다시 찾아보라고 P가 지시했고 그 부하직원이 다시 집으로 달려가 장롱을 다시 뒤져 보았지만 장롱은 텅텅 비어있었고 집안에 돈을 숨겨둘만한 곳을 뒤졌지만 5천만 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고 했다. 이거, 일이 점점 흥미로워지는 걸.......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P나 어른께서 들으시면 뒤통수를 철썩 맞을 이야기지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침을 삼키며 녀석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한 녀석은 119에 신고를 한 그 동네 노인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을 했고, 한 녀석은 딸들이 가져가지 않는 돈이니 어른께서 홧김에 아궁이에 쑤셔 넣고 불을 질렀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죽는 마당에 무슨 짓을 못하겠냐고, 딸들의 시위에 대한 앙갚음으로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고, 제 추측을 주장했고 둘러앉은 동기들은 사라진 돈의 행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벌은 죽어서도 쏜다. 나는 어른께서 돈을 아궁이에 쑤셔 넣고 불을 질렀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며 그 문장을 곱씹었다.
딸들은 비보를 접하고는 쏜살같이 달려와서 제 아버지 영전 앞에서 잘못했다고 백번 사죄하고는 지금 P 앞에서 고양이 만난 쥐 꼴이 되어 상주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P는 일찍 문상 온 동기생들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고 했다.
“여동생들이 아버지 앞에서 분배한 이천만 원씩 고분고분 받아갔으면 아버지 몰래 뒤로 일억씩 송금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녀석들은 P의 말에 대해서 그게 실현 가능한 부분인가? 과연 그랬을까? 하는 데 자기주장을 또 펼치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P의 체면치레로 뱉은 소리일거라고 했고, 한 녀석은 지금의 심정이야 그렇지만 딸들이 고분고분 받아갔으면 마음이 바뀌었을 것이라 했고, 남의 돈을 주물럭거리지만 큰돈을 가지고 노는 P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위인이라고 한 녀석이 핏대를 세웠다.
-야 그런 일에 핏대를 세울 건 없고 술 더 취하기 전에 문상이나 하자. 아직 문상을 안 한 사람이 누구누구야?
의견이 분분한 무리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녀석들은 소가 닭을 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여기 문상을 안 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네뿐이야. 다른 친구들이 오면 같이 하란 이야기지! 우리는 이제 총을 쏠 일만 남았어.
U란 자식이 나에게 퉁을 먹였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투덜거리며 나는 뒤에 나타날 누구인지 모를 친구를 기다리지 않고 문상을 하려 자리를 털었다. 빈소 쪽 통로로 들어서니 어디서 그렇게 많이 들어왔는지 양쪽으로 길게 도열해선 화환이 겨우 통로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 화환 끝에서 내가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올리자 검정색 치마저고리에 머리에 흰 리본을 꽂은 혜정이가 빈소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 오빠라고 부르며 내 품에 안기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주고는 신발을 벗고 빈소로 올라서자 검정색 정장에 검정색 넥타이를 매고 삼베 완장을 둘러 상주로 복장을 갖춘 P와 남동생이 자리에서 일어서 곡을 했고 완장을 하지 않았지만 검정색 넥타이를 맨 나는 엄숙하게 어른의 사진이 있는 영정 앞에 꿇어앉아 향을 두 자루 뽑아 불을 붙여 향로에 꽂은 뒤 두 번 절을 올리고 잠시 읍을 했다. 그리고 상주들과 절을 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 애도의 말을 전했다.
P가 붉은 눈시울로 인사를 제외한 나에게 해야 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꿇어앉은 P의 손을 슬며시 끌어다가 쓰다듬으며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밖에서 친구들에게 대충 듣고 왔네. 갑작스런 일이지만 어른께선 천명을 다 하신 거야. 너무 죄스럽게 생각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말게. 어른 연세가 올해 일흔 넷이시지?
-일흔 다섯이야!
-그래, 그 정도면 천명을 다 하신 거야. 아버님께서 뭐 남기신 글 같은 거 없었어?
-모르겠어. 찾아볼 겨를도 없었고.......
-오천만 원이 사라진 거 뭐 집히는 거 없어?
-그런 소리까지 들었어? 이거 참....... 자네 보기 민망하네.
-무슨 소리야........ 자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자네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옆에 꿇어앉아 듣고만 있는 남동생에게 물음으로 말길을 돌렸다.
-그렇죠. 형님!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자! 자세들 고쳐서 편히 앉게!
그런 말을 하면서 나부터 편히 앉았다. 그러자 상주들도 편히 앉았다.
-혜진이 하고 혜정이 너무 원망하지 말어! 걔들이 더 놀랐을 거야.
-원망한들 소용이 있나? 아버지가 택한 길인 걸!
-그래 대범해져야지.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네들이 걔들을 더 보듬어 줘야지. 말은 안하지만 개들도 심한 상처를 받았을 거야. 자네 형제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겠지. 까딱하다간 장례 치르고 우울증 걸린다.
그 말을 마치고 장례절차에 대해서 물었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선산에 매장으로 모실 것이라 했고 상석과 석관은 이미 맞추어 놓았으며 장의차로 김치골까지만 운구하고 아직 이주하지 않은 김치골 젊은 사람들을 상두군 삼아 꽃상여로 선산까지 운구한다고 마을 이장과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장례절차가 그렇게 잡혀있다면 나는 그저 따라가서 하관까지만 보고 돌아가면 되겠다고 내 행보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께서 뭐 남기신 거 없든가?
-남긴 거?
-아무리 생각해도 워낙 붓을 가까이 하는 분이라 자네들이나 혜정이 혜진이에게 뭐라고 남기신 글이라도 있을 텐데.......
-찾아볼 겨를이 없었어.
-내가 지금 김치골로 가서 당신께서 쓰시던 방을 한번 둘러보고 올께! 혹시 사라진 오천 만원에 대한 단서라도 있는지. 뭐 집히는 게 있는지.
-수고스럽지만 자네가 그렇게 좀 해주시려나?
P는 심한 갈증에 물병 받듯이 내 제안을 덥석 받아 삼켰다. 나는 P와 동생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 바로 자리를 털었다.
화환이 늘어선 통로를 따라 로비로 나오니 그 사이에 빈 소주병 열댓 개 탁자 옆에 도열해 있었다. 확실히 소주잔으로 마시는 속도보다 종이컵으로 마시면 속도가 빠르고 많이 마시게 된다. 빈소주병이 쌓일수록 목소리가 높아지는 정비례원칙으로 녀석들의 목소리들이 상당히 높아져 있었고, 맑은 정신을 지닌 녀석으로는 방금 온 듯한 U란 녀석 밖에 없었다. 주유소 주인답지 않게 말쑥한 정장차림에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디 볼일을 보고 바로 온 모양새다. 앉은 녀석들은 사남매 중에서 누구의 손님이 가장 많고 누구 앞으로 들어오는 조의금이 가장 많을까에 대해서, 지극히 영양가 없는 내기들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취기가 올라 그 내기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걸고 있었다.
-총알 두둑이 준비했냐?
U의 어깨를 툭, 치며 농을 했다.
-저 자식 탄띠까지 두르고 탄통을 들고 왔잖아?
들고 있는 서류 가방을 가리키며 한 녀석이 거들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내 총구는 네 탄통을 겨냥한다. 그건 그렇고, 나 잠시만 나갔다가 올게.
-어딜 가는데? 문상 마쳤다고 바로 도망가는 건 아니지?
영양가 없는 소리로 어수선한 가운데 U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상주의 특사로 파견 근무 나간다. 잠깐이면 돼!
그렇게 던져놓고 로비를 빠져나와 언덕길을 내려와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병원에서 김치골까지는 채 이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머지않아 철거될 마을은 을씨년스러웠다. 십 년 전부터 계획에 의해서 개발의 뒤안길에 밀려난 낙후된 자연부락이라 P의 집 마당까지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까닭으로 마을경로당 뒤에 주차를 하고 비포장 골목을 걸어서 P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본채와 사랑채로 구분된 기역자 한옥이고 뼈대가 실한 기와집으로 옛날에 큰마음 먹고 지은 집이다. 빈집 마당에 들어서니 어딘가 모르게 썰렁한 기운이 내 전신을 휘감았고 헛기침만으로도 집안을 제도하던 어른의 기침소리가 빈집 곳곳에 박혀 있었다. 나도 따라서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하고 마루의 미닫이를 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목조 미닫이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P의 은행에서 나온 부하직원이 뒤졌다지만 혹시나 싶어 장롱 곳곳을 뒤져도 지폐뭉치가 있을 만한 곳은 없다. 나는 안방을 나와서 어른께서 쓰시던 사랑채의 작은 방문을 열었다. 휘 둘러보니 방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른의 방에서 항상 풍기던 은은한 묵향은 그대로 배어 내 후각을 자극했다. 묵향이 바로 어른의 체취처럼 여겨져 코끝이 찡해졌다.
마주 보이는 바람벽에는 쓰신지 얼마 되지 않은 한시가 어른의 유려한 필채로 쓰여 한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한문으로 쓰인 문장이라 무슨 뜻인지 나로서는 한눈에 해독이 불가능했다. 어른께선 한시를 한 수 지으시면 저렇게 큰 글씨로 써서 바람벽에 붙여놓고 며칠이고 읊으시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고쳐서 다시 쓰시곤 한다. 어른만의 독특한 퇴고 방법이다. 그 시가 완벽하다고 생각되면 붓글씨가 아닌 펜글씨로 다이어리나 대학노트에 정리해서 보관하신다. 잉크로 쓰시는 펜글씨가 불편하시리라 짐작하고 언젠가 명절 끝에 나에게 굴러들어온 파카 만년필을 선물로 드린 적이 있다. 그 때 만년필을 쓰다듬으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선한데 눈치를 보니, 아끼시는지 습관이 안 되어 불편하신지 그 만년필은 잘 쓰시질 않고 직접 잉크를 찍어서 펜글씨를 쓰시는 것 같다.
문을 열고 휘둘러보던 나는 방으로 들어섰다. 윗목에 지필묵紙筆墨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습작으로 벽에 붙여두시던 한지는 두루마리로 변해 작은 문갑위에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고 몇 권의 서적과 여태까지 쓰신 다이어리는 문갑 옆에 서있는 고풍스런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방바닥에 놓인 개다리소반이었다. 어른께선 그 개다리소반을 탁자 겸 책상으로 쓰시는 물건이다. 그 개다리소반 위에 잉크병과 도자기로 만든 필통에 몇 자루의 펜이 꽂혀 있었고 다이어리 한 권이 놓여있다. 다이어리는 바로 P가 다니는 은행의 마크가 찍힌 올해의 것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개다리소반 앞에 어르신께서 평소에 앉으시는 양반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이어리를 넘겨가며 훑었다. 한시가 운율에 맞게 한문으로 적혀 있었고 그 아래 한글로 해석을 해서 주석으로 씌어져 있었다. 한글로 주석을 달아놓은 부분은 간간히 밑줄을 긋고 고쳐 쓴 부분도 있고 띄워 쓰기나 한두 자 철자가 틀린 글씨도 있었지만 유려한 필체에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떤 페이지는 그날의 일기를 국한 혼용체로 씌어져 있었다. 일기는 매일 쓰시는 게 아니라 특별한 일이 있는 날에만 쓰시는 것이다. 먼 곳 타향에서 정착한 친구가 찾아온 날 참으로 반가웠으며 하나뿐인 아들이 케나다로 이민 간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 친구가 가엾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시가 적힌 페이지를 몇 장 넘기니, 혜정이 생일날 혜정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적힌 곳이 있어서 나는 그 페이지를 찬찬히 읽었다. 별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권위적인 가부장이라 말은 않고 표현은 아니 하지만, 너를 총애한다. 앞으로도 질곡 없는 생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평범한 내용이었다. 이렇게 적은 것은 손수 편지를 쓰서 혜정이에게 우편으로 보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냥 그 날의 마음을 기록하신 것이다. 또 한시가 적힌 페이지를 몇 장 넘겼다. 일기처럼 씌어진 국한혼용체의 글이 있었다. 이 집이 헐리고 떠나가야 하는데 마음이 처량하다는 내용이며 이럴 때 규정이를 찾아가 막걸리라도 한 대포 하고 싶은데 비가 이렇게 오니 기름 먹는 당나귀를 탈 수가 없어 방에 갇혀 있으니 더욱 처량하여 붓도 잡히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한문으로 씌어진 규정圭晶이란 이름은 아무래도 이웃마을 어딘가 살고 있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의 이름이고 기름 먹는 당나귀란 어른의 애마인 스쿠터를 지칭함이리라. 그 다음 페이지를 찬찬히 훑으며 넘겼다. 한시에 주석을 달아서 정리한 몇 페이지를 넘기자 내 눈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었다. 글씨를 정성들여 빼곡하게 씌어진 다른 페이지 비해 아주 짧은 글귀였고 뭔가 집히는 글귀였다. 국한혼용체를 그대로 옮겨서 적어보자.
*서천西天에 낮달이 기울고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인간人間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아니한가.
때가 되었다. 나는 저 낮달!
행수 월광여자行隨 月光旅者가 되리라.*
유서로 봐 주기에는 너무나 짧은, 어른께서 마지막으로 쓰신 글이다.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깨끗이 빈장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아니한가. 이 미학적 문장은 어느 현대시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작가와 그 다음 내용은 잊었지만 분명 어디선가 읽은 현대시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한문으로 씌어진 행수行隨, 이 한문이 ‘따를수’ 자인지 ‘쫓을추’ 자인지 좀 아리송했다. 일단 ‘따를수’자라고 나름대로 집작을 하고 다시 읽으며 찬찬히 해석을 해보았다.
-낮달은 기울고 가야할 때는 되었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기 위해 달빛을 따라가는 나그네가 되리라 -
유서로 봐 주기에는 너무나 짧고 서정적이지만 어른의 깔끔한 성격에 반추한다면 유서라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꺼내 빈 페이지에 짧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한문은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따라 그렸다는 말이 맞다. 특히 행수行隨에서 수隨자는 긴가민가하며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따라 그렸다. 수첩에 메모를 마치고 다이어리를 덮어놓고 개다리소반에 팔을 얹어 턱을 고이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어른께선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잠시 달빛을 따라 길을 나선 나그네고 언젠가를 달빛을 따라 다시 돌아오리라는 지극히 서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달빛을 따라간 나그네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행수 월광여자가 되리라......... 월광지객月光之客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문체에 있어서 더 부드럽고 운율에 맞을 듯싶은데 월광여자라고 쓰신 이유가 무엇일까? 강조를 고려하신 것일까? 아니면 객관적인 시각을 피해 지극히 주관적인 점을 감안하신 것일까? 다시 그 페이지를 펴서 훑어보았다. 언제 쓴 글인가 찾아보니 날자나 요일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인가를 더듬어 보았다. 방을 둘러보았지만 달력은 걸려있지 않았다. 다이어리 앞에 있는 달력을 보니 이미 방에 초저녁어둠살이 끼어서 작은 달력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양반다리를 풀고 일어나 형광등을 켜고 다이어리 앞장에 있는 달력을 음력으로 계산했다. 오늘이 열 하룻날이다. 서천에 기우는 낮달을 보려면 아무래도 음력으로 초닷새 정도가 가장 잘 보인다고 나름대로 계산했다. 어른께선 어제 돌아가셨으니 돌아가시기 사나흘 전에 쓰신 글이라는 것을 대충 감 잡았다. 그 마지막 글을 쓰신 이후에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으셨다.
오천만 원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잡으려고 왔으나 돈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이어리를 덮고 어른의 그 글을 쓰신 어른의 심정을 헤아리며 방을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 오천만 원이 어디로 갔을까 도무지 집히는 게 없었다. 오천만 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고 어떤 단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냥 돌아가야겠다고 방의 형광등을 끄고 방문을 나와 신발을 신다가 하늘을 보니 반달이 넘어선 상향달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집이 앉은 좌향이 안채는 남향이고 뒤로 대밭을 지고 앉은 사랑채는 서향이다. 그렇다면 어른께선 방문을 열어놓고 저 달을 보면서 마지막 글을 쓰신 것이 지난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이다. 그 때 이미 어른께선 가야할 시기임을 스스로 정하시고 금요일로 디데이를 잡은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도 휴일을 끼워서 자식들이나 문상객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그 정도까지 세심하게 배려할 만큼 깔끔한 성품을 지니신 어른이다. 주인을 잃어 어딘가 모르게 썰렁한 기운이 곳곳에 배어있는 집을 등지고 골목을 빠져 나오면서 달을 자꾸 쳐다보았다. 아니, 달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어른께선 저 달빛을 따라나선 나그네가 되신 것이다. 달빛을 따라간 나그네가 되신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갔던 길을 되짚어 영안실에 돌아오니 로비에는 더 많은 녀석들이 모여 거창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새로 온 녀석들과 인사를 하고 빈소로 갔다. 줄지어 선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P와 동생, 사위들은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조문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다. 넓다고 특실로 잡은 접견실은 앉을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누군가 나를 불렀다.
-어이, 이 병장! 위치로!
접견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본 한 녀석이 나를 부르며 손짓을 했다. 만기 전역한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입대 동기들이 앉은 자리다. 그 전우회 팀과는 모처럼 만나는 자리다. 이 병장, 조 병장. 오 병장, 모두 병장이다.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호칭은 어김없이 군대식이다. 돌아가며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조 병장이 건네는 술잔을 받으며 빈소 쪽을 힐끔 거렸지만 조문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야, 조 병장! 상주들 저녁이나 먹었냐? 저렇게 절만 해대다가 허기지겠다.
-그런 걱정은 말고, 이 병장 너는 저녁 먹었어?
-좀 있다가 먹지.......
말을 얼버무리자 김 병장이 앉은 채로 상조회사에서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밥과 국 한 그릇을 시켰다. 시장한 참이라 가져온 밥과 국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옆에 앉은 오 병장에게 수첩에 적힌 글귀를 슬쩍 보여주며 내가 아리송한 글자를 가리키며 이게 무슨 자인지를 물었다.
-이 자 말이지 수隨, 따를 수자야!
-나는 ‘쫓을 추’자 인 줄 알았는데 ‘따를 수’자구나!
이야기는 다시 원대 복귀했다. 군대 동기들과 만나면 하는 이야기는 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얘기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술을 마시며 군 시절의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군대에서 사고를 두 번이나 쳐서 영창을 두 번 갔다 온 조 병장이 화재를 몰고 갔다. 만나면 늘 듣는 진부한 소재지만 입심이 걸쭉한 조 병장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보초 근무 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하여 총을 맨 채로 오입하러 갔던 얘기부터, 단골이 되어 외상으로 오입을 한 경험담이며 금방 들어온 신참 하사관들 길들인 얘기까지 모두가 군 시절 얘기다.
잔치집인지 초상집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호탕하게 웃으며 떠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로비에서 술판을 벌이던 고등학교 동기 녀석들이 의기양양하게 들어와 접견실 구석자리에 있는 상을 밀치고 자리를 깔고 쭉 둘러앉았다. 그러고 보니 조문객들이 빼곡히 앉아 있던 접견실의 자리가 이빨 빠진 듯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이제부터 패가 돌아갈 모양이다. 벌써부터? 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보니 밤 열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되니 줄을 잇던 조문객들도 발길도 점차 줄어 이제는 뜸해졌다. 상주가 절하기에 바쁜 시간은 어지간히 지나간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나 한잔 거나하게 걸친,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그야말로 시들어가는 병장들이 문상이라는 이름의 근무를 충실히 끝내고 상주들에 전역신고를 하고 돌아가는 자리에 나는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로비를 통해 영안실 밖으로 나왔다. 시골교회 장로인 배 병장은 술을 하지 않아, 취한 늙은 병장 두 놈을 태우고 먼저 떠나고 조 병장과 오 병장은 대리운전자를 불렀다. 대리운전자를 기다리며 우리는 영안실 밖 정원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물고 하늘을 보니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달을 보고 나도 모르게 두 녀석에게 한숨처럼 말을 흘렸다.
-P의 어른은 저 달빛을 따라가신 거야!
-그게 무슨 쉬어터진 소리여? 이 병장 시인이라고 시어를 읊조리는 겨?
-아냐. 그런 게 있어.
그 사이에 대리운전자 두 명이 나타났다. 조 병장은 집이 이 도시고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기본요금만 물면 되지만 오 병장은 이웃도시에 사는지라 대리운전자 비용만 해도 오늘 낸 조의금 정도는 날아갈 것이다. 그래도 접견실 포커 치는 자리에 끼어 왕창 잃는 놈보다는 싸게 먹힌다.
나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늙은 병장 두 놈을 대리운전자에게 배달시키고 들어와 빈소를 둘러보았다. 조문객이 없는 틈에 절하기에 지친 상주들이 퍼질러 앉아 잠시 지친 다리를 풀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사위 둘은 새로 온 조문객인 줄로 착각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는 문상은 벌써 마쳤으니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 사위들이 자리에 앉히고 안부부터 물었다.
-저녁들 먹었어?
-아직.........
-허기지겠다. 저 방에서 밥부터 먹어!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 빈소 입구에 서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쫒아온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상주들 밥을 빈소에 붙은 작은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 했다. 작은 상이 들어오자 상주 둘과 사위들은 허겁지겁 숟가락 놀림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있었다. 그 틈에 내가 나가서 소주 한 병과 돼지고기 한 접시를 가져왔다.
-자, 입가심으로 한 잔씩들 해!
소주잔이 아닌 종이컵을 돌리며 한 잔씩 가득 부어주자 누구도 거절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원 샷으로 쭉 들이키고는 돼지고기 수육이 담긴 접시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돼지고기 한 접시가 순식간에 없어지자 나는 쫓아가 돼지고기 한 접시를 더 가져왔지만 그것도 순식간에 비었다.
-거 봐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상주 굶겨서 줄초상 내겠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조문객들이 빈소입구에 들어섰다. 문을 열어두고 있었고 문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조문객이 왔다고 말하자 상주들은 벌에 쏘인 것처럼 후다닥 일어나서 빈소로 나갔다.
조문객은 셋이었다. 모두 다 검정색 양복차림에 검정색 넥타이를 매고 있어서 얼른 보기에는 누가 상주이고 누가 조문객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 간단한 조문이 끝나고 혜정이 남편이 그 조문객 접견실로 안내하는 것으로 미루어 혜정이 남편이 근무하는 외교부의 고위관료들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식사를 마친 상주들은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아직 있을지 모르는 조문객을 위해 서열대로 빈소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젠 조문객이 거의 없겠구나, 판단하고 상주들이 있는 빈소로 나가 마주 앉았다. 나는 주머니의 수첩을 꺼내 옮겨 적은 페이지를 펼쳐놓고 말했다.
-어른께선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달빛을 따라간 나그네가 된 거야. 여기 봐! ‘行隨 月光旅者(행수 월광여자)가 되리라.’ 라고 적혀 있잖아? 당신께서 쓰시는 다이어리에 적힌 글귀인데 유서라고 보이는 건 이것 밖에 없더라.
P가 먼저 내 수첩에 적힌 글귀를 보자 동생과 나머지 상주들이 둘러앉아 그 글귀를 보았고 혜정이는 내 전화번호 수첩의 그 글귀를 손에 들고 기어이 흐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고 있었다. 혜정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P에게 한마디 던졌다.
-오천만 원에 대한 단서는 잡지 못했어.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더라. 그냥 잊어야 할 것 같아. 아마 어른께서 꼭 필요한 곳에 쓰고 가셨겠지.........
-아하, 그거 신경 쓰지 마시게. 어디에 쓰셨는지 알아냈어!
-뭐라구? 알아냈다구?
화들짝 놀라는 나를 보고 P는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턱짓으로 빈소 제단을 가리켰다. 제단에는 제물이 차려져 있었고 그 옆에 못 보던 물건이 세워져 있었다. 저게 뭐야? 벌떡 일어나 제단 앞에 가서 그게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투명하고 두꺼운 아크릴판에 새겨진 감사패였다. 살아생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셔서 그 감사의 마음을 패에 담아 전한다는 평범한 내용이었고 맑음선교원 원장이름을 꼬리표로 달고 제단에 올라앉아 있었다. 맑음선교원? 내가 아는 한 어른께선 불자로서 불교교리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선교사에게 감사패를 받다니 좀 의아했다.
-어이, 상주! 어른께선 불교교리를 훤히 꿰뚫는 불자가 아니셨나?
-아무튼, 조금 전에 그 젊은 선교사가 저 물건을 들고 와서 제단에 얹어놓고 문상을 하고 갔어! 들어 봐.
나에게 퉁을 먹이며 시작된 P의 설명을 요악해 보면 김치골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위에, 예전부터 농산물집하장을 겸하여 창고로 쓰던 낡은 건물이 있다. 농작물 수매 때마다 경운기와 달구지가 들락거리던 마당이 넓은 그 건물은 농협의 소유다. 아니. 그것마저도 ‘소유였다’는 과거형을 써야 마땅하다. 아무튼, 사 오년 전에 그 비어있는 농협창고를 빌려서 창문을 내고 실내를 개조하여 들어온 선교시설이 있었다. 그 선교원은 보육시설을 겸하고 있다.
얼른 보아서는 보육시설이라기 보다 십자가가 걸린 작은 창고처럼 보인다. 선교원이라는 현판이 없다면 지나치는 사람들이나 마을 주민조차도 독실함의 한계를 초탈한 광적인 신자가 창고나 다른 용도로 쓰는 건물로 여기기 십상일 정도라고 했다. 나도 언덕배기의 그 건물을 멀리서 보았지만 보육시설까지 겸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 보육시설에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데?
중간에 끼어든 내 질문에 ‘아마 열댓 명쯤 될 걸!’ 하며 일축하고 P는 낮고 촉촉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는 것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진지하게 들었다. 그 십자가가 달린 창고도 오 공단 부지에 편입대상이 되어 보상이 나왔다. 그러나 그 넓은 대지와 건물은 농협의 소유임으로 조합원이 주인인 단위농협으로 보상금이 흘러들어간 것이다. 다만, 그 창고에 창을 내고 내부 수리한 것이 감정가에 포함되어 이윤만을 추구하는 농협에서 이례적으로, 조합장의 지극한 배려로 그 금액을 찾아내고 분리시켜 젊은 선교사의 계좌로 넣어주었지만 겨우 몇 백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자세한 내용은 P는 모르고 있었고 선교사가 조금 전에 와서 말을 해주어서 알았다고 했다. 그 선교사는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다녔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고 근방에 있는 국유지, 지금은 밭으로 둔갑한 하천부지를 약 오백 평 무상으로 사용한다는 허가는 받았지만 농협으로부터 받은 돈은 전기를 넣고 지하수를 개발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라고 했다. 조립식이라도 건물을 무허가로 짓고 싶지만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얘기를 들었으면 삼척동자라도 오리무중인 오천만 원의 행방에 대한 감이 잡힌다. 하지만 나는 못마땅한 부분이 있어 불쑥 나섰다.
-그럼 시청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잖아? 이 복지국가에서 그냥 두겠어?
-복지국가? 우리나라가 어디 복지국가야? 무늬만 그럴듯하지!
동의를 구하는 내 질문도 다분히 역설적이었지만 P가 지닌 예리한 비판적 사유, 그 비판정신이 본능에 가까운 골수파 안티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는, P는 자신의 견해를 도마에 얹어놓고 칼자루를 빼어들고 피력하려는 찰라, 옆에서 듣고만 있던 남동생이 P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일어섰다.
빈소 입구에 늦은 조문객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모두들 양복을 말쑥하게 입은 무리들이다. 그들이 들어서는 걸 보았는지 접견실에 있던 혜정이 남편이 신발 신을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빈소로 건너왔다. 보아하니 혜정이 남편의 조문객이었다. 나는 뒷전에 서있거나 슬그머니 방으로 사라질 짬도 없거니와 그런 태도가 도리가 아닌 듯해서 상주들과 나란히 서서 조문객들과 맞절을 했다. 엉겁결이지만 나도 상주가 된 셈이고 조문객들은 완장을 두르지 않은 내가 고인과 어떻게 되는 사이인지 묻지도 않았거니와 알 턱이 없다. 맞절이 끝나자 혜정이 남편이 조문객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어느 나라 대사관으로 있던 김 거시기, 어느 나라 영사로 갔다 온 최 아무개, 모두가 걸쭉한 국제파 인물이었다. 흔하디흔한 말로 의례적인 조문을 마치고 혜정이 남편이 접견실로 그들을 안내하여 모시고 나가자 자정이 가까운 시계를 보며 비꼬는 듯이 내가 입을 열었다.
-대사관으로 갔다 오면 한국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는 모양이지? 조문마저 프랑스어나 독어로 하지 않은 게 다행이네.
-시차도 그렇지만 부의금도 달러나 유로화, 혹은 엔화로 내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P가 맞장구를 치고 이야기는 다시 보육원 선교사에게로 돌아갔다. 그렇게 시에 지원을 요청하고 싶지만 시에 보육원으로 등록 조차되지 않았고 늘려있는 복지기관의 어떤 보조를 전혀 받지 않는 사설 보육원이라고 했다. 순전히 그 선교사가 사비를 털어 제 자식처럼 데리고 있는 곳이라 지금 와서 시청이나 복지 기관에 손을 내밀면 다른 보육시설로 아이들을 보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생색내기를 좋아하고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조차도 딴 주머니로 쑤셔 넣는 보육원, 위선으로 무장한 전투적인 장사치에게 사랑으로 키우던 자식들을 도저히 도매로 처분할 수가 없다는 선교사의 말에 P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 계셨는지, 어른께서 며칠 전 해가 질 무렵에 작은 스쿠터 뒤에 보자기에 싼 현금뭉치를 고무줄로 야물게 묶어 싣고 보육원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익명으로 써 달라며 그 보따리를 통째 던져놓고 가셨다. 누누이 익명을 당부하셨지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 그만한 돈이면 조립식자재를 이용하여 아쉬운 대로 보육원을 지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했다. 하여 감사패라도 만들어 영전에 올리는 게 도리다 싶어 원생 중에 비교적 철이 든 놈, 중학에 다니는 두 놈을 데리고 초저녁에 문상차 다녀갔다고 상황을 설명한, P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참으로, 우리 아버지답지?
-아녀! 달빛을 따라간 나그네다운 거지. 가시는 걸음, 걸음이 참 가볍겠다. 어이, 대빵 상주! 벌은 죽어서도 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자네는 죽은 벌에 쏘인 거야. 어때 아프지?
-아픈 건 아니고 따끔한데........
-따끔하긴? 시원섭섭하겠지.
그렇게 말하며 상주의 손을 슬며시 잡고 제단의 영정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양복차림의 증명사진을 확대한 P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중절모에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허공으로, 허공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노인의 희미한 뒷모습이 달빛처럼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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