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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후딱 좀 와봐라. 내가 골머리가 다 썩는다. 무슨 놈의 꿈이 그렇게 질긴지 나가떨어지지도 않는구나. 너랑 좀 얘기를 하면 나아질 지도 모르겠으니 내일부로 빨리 와라. 알았제? 늙은 에미 노망났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얼굴 비춰, 얼굴 좀. 시집도 안 가고 뭐가 그리 바쁘다고 못 온다고 하나? 내가 네 년이 딴 집 식구 되서 바쁘다고 한다면 믿는다 만은 여전히 우리 집 식구면서 바쁘다고 하는 건 내 못 믿것다. 못 믿것어.
어머니는 으레 집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면 시집 안 간 것을 빌미로 물고 넘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해 일자리에 겨우 정착했다 싶더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고향에 가서 웃어른들에게 붙잡혀서 한바탕 잔소리를 들을라치면 온 몸에 소름이 쫙 돋곤 했다. 고향 사람들은 다 내 일이라면 의기투합하여 몰려들곤 했다. 고향에서 배출한 최초의 의사라서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하다는 생각을 내심 떨쳐버릴 순 없었다.
그렇게 자기 딸이라도 되는 듯 말을 아끼지 않더니 뒤에서 새장수 딸이 꼴값이네 란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마치 의기투합한 이유가 내 꼬투리라도 잡고 늘어질 심보인 것처럼.
결국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동료 의사에게 삼일 휴가를 내고 고향으로 향했다. 운전면허증을 따지 못한 나는 기차를 타고 가야만 했다. 기차 안은 시끄러웠다. 계란 있습니다, 김밥도 있습니다.
도착한 군산역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사치들이 자리싸움을 하며 뭐하나 팔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잃어버린 버스 노선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실 버스를 탄 지도 오래된 터였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다가 우연치 않게 남동생의 친구를 만나 쉽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남동생 친구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줘서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내가 미안한 눈치를 보이자 남동생 친구는 자기도 마을을 가는 중이었다며 웃었다.
“아, 그 대학 다니는구나. 어릴 때 못하는 게 없더니.”
“아이고, 누나는요. 공부만은 똑부러지게 잘 하시지 않았습니까.”
버스 기사인 동생의 친구는 싹싹한 녀석이었다. 온몸에서 시골 냄새가 나는 녀석은 뭐가 좋은지 계속 웃었다. 나 역시 웃었다. 용케 나를 기억해주고 버스도 태워주다니. 웃음을 금할 때가 없었다.
“근데 여기는 어찐 일로 오셨어요? 한창 환자 보시니라 바쁘실 터인디.”
“아, 어머니가 부르셔서.”
동생 친구 입에서 술술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했다. 아. 동생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내게 다급히 물었다.
“누나 원래 꿈이 새장수였다면서요? 준석이한테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자주자주 오세요. 마을 사람들이 누나라면 활기차서 들뜨잖아요.”
“그래, 그래야지.”
대답을 얼버무리며 나는 창가를 내다보았다. 푸르게 날이 선 벼들은 아버지가 어린애로 살았던 예전의 삐뚤빼뚤한 벼와 달리 반듯했다. 난 아버지의 세계를 동경했었다. 모든 것이 사람의 손으로 서툴지만 그 무엇보다 잘 어우러지게 되는 그 세계는 미지의 세계이자, 이제는 없어져 버린 옛 세계였다. 무엇에 저리 화가 났을까. 산들산들한 바람에도 벼들은 잔뜩 도사린 채로 꿋꿋하게 서서 제자리들을 지키고 있다.
내 눈에 비치는 벼들은 온통 화가 나 있었다. 익숙한 빨간 벽돌이 정류장에 일 줄로 서 있는 그 곳에서 내렸다. 나는 동생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동생 친구는 내리지 않았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가 옷가방을 낑낑대며 끌자 동생 친구는 잠시 웃더니 손까지 선하게 흔들어주었다. 힘들게 내리자마자 버스는 가버렸다.
나는 가는 버스를 잠시 쳐다보았다. 이제 집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자주 갔던 길들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며 길을 찾아 헤맸다. 자그마치 6년이나 오지 않은 고향이었지만 19년 동안 살았던 적막을 깨트리기가 쉽지 않다. 내 머리보다 내 다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분홍 꽃잎을 자랑하는 무궁화 떼가 길거리마다 다문다문 피었다. 무궁화의 노란 수술과 분홍 꽃잎들은 마치 초록색 넝쿨에 매달린 듯 어색하게 피었다.
마을 회관은 갈무리가 잘 되어 있었다. 대학교 학생들의 농촌체험활동을 받아들였는지 잡초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노란 페인트로 칠한 마을 회관 옆에는 분홍색 꽃잔디가 무리지어 작게 피어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로 싹 밀어버린 마을길은 평평하니 걷기 불편했다. 뜨거워진 아스팔트에 닿는 내 구두굽이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는 며칠이나 계속 될 것인가.
비틀비틀 거리는 걸음이 이끈 곳은 다행이도 집이었다. 주황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바른 대청에서 나를 본 어머니는 반갑게 대문 밖으로 달려 나왔다. 어머니의 낡은 대문은 생전에 아버지가 군청색 페인트로 물들이다만 그대로 있었다. 어머니는 옷가방을 받아 집안으로 후딱 들어갔다. 나는 대청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았다.
“날씨 꽤 덥지? 장마가 막 지나가서 그러는 거니께 몸조심 하거라. 삼계탕 많이 먹어두고 알긋지?”
어머니의 말에도 탐탁지 않은 내 표정에 어머니는 금방 뾰로통해져서 부엌에서 쿵쾅쿵쾅 발소리를 심하게 내며 물을 가져왔다.
“이거 좀 들이키라. 있다가 수박 올 거야. 지금은 마시기만 혀둬.”
수박이 없는 게 미안했는지 어머니는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괜스레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나도 그냥 미소 지으며 물을 마셨다. 미리 얼음을 준비했는지 물 위에 자글자글한 얼음 알갱이들이 둥둥 떠 있었다. 덕분에 물을 매우 시원했지만 목에 뭔가가 켕기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재주껏 맛있게 물을 삼켰다.
후아, 입가에 묻은 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물 컵을 대청에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나를 계속 쳐다보다가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기억나나?”
“뭐가요?”
“네가 새 키우겠다고 선전포고 한 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 하면 참 웃긴디. 근데 요즘 꿈속에 네가 계속 아른거린다.”
어머니는 놀라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쩍쩍 다셨다.
꿈속에 아버지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올지 알았는데 내가 나오다니. 나이가 들면 잠이 많아지고 그 깊이가 얇아져서 꿈을 자주 꾸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의 부름에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이야기가 달랐다. 나라니. 눈앞에 이렇게 살아있는 내가 꿈에 계속 나온다는 건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어머니도 그걸 알고 있기에 고향에 내려오라고 그리 부산을 떤 것이었다.
네가 한 여섯 살, 일곱 살이었나. 학교에는 아직 안 갔던 나이었어. 어렸을 때 너는 참 궁금하게 많아서 누구한테나 묻곤 했었지. 그 사람이 쉽게 대답을 못 해주면 다른 사람들을 찾고 다녔었어. 근디 그때가 꿈에 아른 하게 나와. 네가 막 우는 게. 왜 우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만 뭐가 그리 슬픈지 울고 자빠져 있기래 내가 달랬어. 그러면 너는 계속해서 묻곤 한다. 내 새 어디에 둔거야? 하고 계속 칭얼거려. 무슨 꿈인지 진짜로 모르것어. 그게 지금 한 달 내내 꿈에 나타난다. 꿈에서 네가 계속 울어. 왜 그랬냐? 그때 우리가 힘든 시절이었냐?
멀쩡하게 살아있는 딸이 꿈에서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울면서 나오니 이 에미 맘이 오죽 타야지. 네가 좀 와서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는 건 어떠냐. 그 때 상황 좀 알아야 해몽을 하지 않것냐, 응?
어머니는 걱정스레 내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되물었다. 응?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기억해보도록 노력할게요. 그제야 어머니는 안심했는지 대청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며 갔다. 나는 덩그러니 대청에 홀로 남아 연신 눈만 깜빡였다. 대청 맞은편에는 화단이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면 주로 화단이야기였다. 이파리가 얼마나 파란지 몰라. 어머니는 연애하는 처녀처럼 목소리를 떨기도 했다.
어머니가 가꾼 화단에 여름 꽃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처럼 화단을 열심히 가꾼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알리아보다 더 큰 잡초가 무성히 자라서 화단을 거의 덮다시피 했다. 몸을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어머니의 성격상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늘 화단을 가꾼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당신이 손으로 무언가 길러내는 것이 낙이라고 자주 말을 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가 화단에 채송화 씨앗이나 지금 자라서 향을 진하게 내뿜는 수국을 심는 모습은 행복했다. 굽은 허리는 그가 살아온 삶의 표상인 듯 아름다워 보였다. 그는 내게 있어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게 이 집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구나. 착잡한 마음에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눈물이 콧속으로 들어가 코가 맹해졌다. 집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듯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에 녹아버린 구두 대신에 어머니가 자주 신는 진보라색의 신발을 신었다. 발에 약간 헐렁했지만 끄시고 다니기에 가장 편한 신발이다.
신발을 신고 나니 대문 옆 텅 빈 개집이 눈에 들어왔다. 개집에 거미줄이 많이 걸려있다. 내가 이 곳을 떠나기 전만 해도 풍산개가 개집에서 날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이북에서 왔다는 풍산개는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고 절대로 짖지 않았다.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었을까. 풍산개는 까만 눈을 어둠 속에서 반들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하얗고 짧은 털을 백구와 비슷했지만 특유의 온순한 까만 눈을 잊을 수 없다. 나를 보며 그 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이 집을 떠나던 그 날까지 분명 개는 있었다.
“도망쳐버렸어.”
어머니가 부엌창가에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개집을 유심히 본 것을 봤는지 변명하듯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대학교간 그 날에 누가 줄을 풀어 주었는지 없어졌어. 원래 주인을 찾아갔나? 주인은 저기 이북에나 있을 터인디…쯧쯧.”
혀를 차는 어머니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눈동자는 나에게 시종일관 갈구하고 있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자유를 향해. 아니 분명히 말했다. 반들거리는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가고 싶다고.
주전자가 힘차게 울자 어머니는 다시 부엌일에 몰두했다. 나 또한 개집에서 눈을 떼고 신발을 질질 끄시며 뒷산으로 갔다. 다행이도 신발은 구두처럼 녹는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쉽게 벗겨졌다. 내 발은 어머니 발보다 더 작았다. 미인은 발이 작다는데 우리 찬미가 미인인가? 이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고모가 어린 내게 낯선 목소리로 자주 농담하곤 했었다.
뒷산은 집에서 채 3분 거리도 안 걸리는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어렸을 때 자주 놀곤 했던 곳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학교를 가자 늦둥이로 태어난 남동생은 내가 중학교에 갈 때, 나대신 뒷산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그 당시 난 공부 때문에 뒷산은 쳐다보기만 했었다. 그런 나에게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동생은 뒷산의 여름풍경을 아는 어휘를 총동원해 말해주었다.
산이 댑따 푸르다, 누나야. 얼마나 푸르냐면! 보고 있으면 절로 입이 확 벌어진당게. 킥킥. 소나무가 이만큼 - 동생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 이나 크다고. 소나무에 가끔씩 쥐새끼 같은 놈들이 폴짝폴짝 뛰어 댕겨. 그리고 해를 향해서 노란 잎을 몇 개씩 가지고 있는 키 큰 꽃이 있는데, 그게 떼 지어서 펴 있다구. 거기에 파란 잔디들이 잡초 없이 잘 가꿔 있다아. 누나도 이렇게 공부만 하지 말고 같이 놀자아. 아버지가 그러는데 새도 무지 많대. 누나가 좋아하는 새가 나무에 몇 마리씩 달려있어. 그니까 가자, 응?
하지만 이제 뒷산은 그리 푸르지 않다. 어린 동생이 보기에 무척 커보였을 뒷산은 나에게 언덕배기처럼 보였다. 높지 않지만 뛰어 놀기에 큰 언덕. 과연 동생 말대로 소나무만큼은 하늘과 맞닿을 듯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해바라기 떼들이 휘어질 듯 설 듯하며 계속해서 바람에 스치었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아보는 게 이 얼마만인가. 마을의 검은 아스팔트길이 익었다면, 산의 오솔길은 적당히 물기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뒷산은 마을과 달랐다. 싱그러운 매미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잔매미들이 다닥다닥 소나무에 붙어 불규칙적이지만 듣기 좋게 울었다. 소나무 밑동에는 버섯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웃음을 자아냈다.
“산이 참 좋죠?”
낯선 사내 목소리에 놀라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내는 내가 걷고 있던 오솔길을 벗어나 삐뚤빼뚤하게 자란 잔디수풀 속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햇빛에 많이 그을려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향해 있었다. 늘 눈을 찌푸리고 있는지 그늘에서도 눈을 작게 떴다. 옷차림은 등산객처럼 보였으나 그의 왼손에 긴 엽총이 쥐어져 있었다.
“아, 새사냥 좀 나왔습니다. 새가 말썽을 부린다는 제보를 듣고 처리 해주려고요. 불법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내 시선이 총에 머무르자 사내가 넉살좋게 말했다. 법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웠으나 어딜 봐도 협잡꾼으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새를 전문적으로 잡는다는 사내는 보법도 꽤 노련했다. 내가 갑자기 뒷산에 와서 새들이 날아갔다며 사내는 안타까워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피해가 안 가도록 같이 동행하겠다고 말했으나 사내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을길에서는 햇빛이 그리 쪼아대더니 뒷산은 소나무 그늘 덕인지 햇빛이 세게 비추진 않았다. 나는 사내의 옆에 바짝 붙었다. 사내는 정말 새사냥꾼같았다.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어도 참새에요, 소쩍새에요 연발아 말해주었다. 나는 똑같이 들리는 새소리인데도 사내는 금방 구별했다.
“놀라지 마세요.”
사내의 경고가 느닷없이 떨어졌다. 탕! 엽총이 탄알을 소나무 높은 가지 쪽에 쏘았다. 푸드득푸드득. 새였다. 어떤 새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집을 보니 꽤 큰 새였다. 새는 전나무의 그 가지 쪽에서 당황하며 애써 높은 목소리로 울어댔다. 왜 그러나 해서 소나무 가지 쪽을 유심히 쳐다봤더니 여러 지푸라기와 끊어진 솔가지로 만들어진 새둥지가 비스듬히 끼어있었다. 둥지 안에는 날고 있는 새의 새끼인 듯한 아기 새 세 마리들이 목청 돋우어 울어대고 있었다. 차마 놀라서 말을 잇지도 못하는 데 사내의 엽총은 정확히 어미 새의 복부 쪽을 쏘았다. 탕. 어미 새는 구슬피 울며 소나무 가지에서 뚝 떨어졌다. 순간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사내는 떨어진 어미 새를 가지고와 내게 보였다.
어미 새의 눈동자는 까맸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일까. 어미 새는 눈을 뜨고 죽었다. 어미 새는 멀리서 봤을 때 예상했던 크기보다 더 작았다. 사내의 두 손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새였다.
어떻게 이리 허무하게 죽을 수가 있는가. 자기 배로 낳은 새끼를 놔두고 이리 눈을 감을 수 있단 말인가. 어미 새의 배 쪽에 정확히 탄알이 박혀 있었다. 배에서 피가 고여 흐르지 않았다. 얼마나 놀랐으면 피가 다 안 흐를까.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오랫동안 어미 새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어미 새의 까만 눈동자가 이윽고 몇 번 깜빡하더니 슬슬 감기기 시작했다. 분명 죽었는데 스스로 감기다니. 나 스스로 놀라 눈을 비비자 여전히 어미 새의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까만 눈동자. 흐르지 않는 피. 나는 사내가 신나게 떠드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 새는 지난 날 나의 새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미 새의 가슴팍에 손을 대자 사내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내게 새를 주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받듯 어미 새를 조심스럽게 받아 가슴에 품었다. 어미 새는 죽지 않았다. 심장이 파르르 뛰고 있었다. 어린 내 심장처럼 두근두근 조용히 뛰었다.
*
우리 집은 군산에서도 유명했던 새장수집이었다. 내가 외동딸이었을 때, 그러니까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나를 금지옥엽으로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십자매, 원앙, 앵무새 심지어 칠면조까지도 새란 새는 우리 집에 다 있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을 새집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새장수라고 했다. 나를 새장수 딸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집은 남새밭 말고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걸 언짢게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전혀 속상해하지 않았다. 사실이었고, 변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도 않았고, 정정당당한 것이었다. 우리 집 새는 아름다웠고, 도시 사람들도 새를 사러 우리 집에 들렀다. 땀을 흘리진 않았으나 살이 깎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우리 집에 도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면사무소와 파출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밖에 자주 나가자 대신 뒷산에 나가 맘껏 뛰놀았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올라갈 무렵 우리 집에 하얀 연기가 올라오면 나는 집에 돌아왔다. 나와 아버지는 가끔씩 서로 대문에서 마주쳤다.
하루는 아버지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오셨다. 텔레비전으로 보던 총이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엽총이라고 불렀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만큼 유력이 센 것이 아니라 사냥꾼들이 동물을 잡기 위해 주로 쓰는 거라며, 한 번 당신의 손으로 새를 잡아야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나도 총이 무서운 것인지는 알았으나 아버지가 샀으니 토를 달지 않았다.
아버지가 엽총을 사가지고 온 다음 날 밤, 어머니는 고기를 저녁으로 내놓았다. 난 그날 뒷산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작업을 한다며 집에서 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 돌아왔다. 팔고 남은 거라며 어머니에게 검은 봉투를 들이 내밀었다. 어머니는 순순히 그것을 받았다. 검은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저녁은 고기였다.
“맛있게 먹그라, 비싼 기라.”
아버지가 직접 고기와 밥을 쌈해 준 것을 나는 잘 받아먹었다. 닭고기 같은 맛이었는데 담백했다. 양은 적었다. 지글지글 익는 살 점 하나를 나는 익숙지 않는 젓가락질로 겨우 잡아 입에 넣었다.
“우리 찬미는 커서 므가 되고 싶으냐?”
“새장수요!”
양쪽 볼에 고기를 우물우물 거리며 내가 크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크게 웃었다.
부녀의 저녁 만찬을 보던 어머니가 푸릇한 상추를 더 가져오며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새장수 되고 싶다는 년이 새고기를 잘만 목구멍으로 삼키네.”
“새고기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헛기침만 해댔다. 순간 내 뱃속에서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석판에서 익어가는 살 한 점이 죽은 새로 보였다.
으엑. 나는 그대로 고기를 토해냈다. 누렇게 상추랑 토물이 섞인 고기는 우리 집 푸른 잔디위로 달라붙었다. 구토하는 내 모습에 놀란 아버지는 내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손을 쳐서 치워 버렸다. 어떻게 당신이 제 새끼 같다던 새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다니. 배신감이 들었다.
한바탕 토를 하고 나서 나는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쓰고 자버렸다. 아버지는 내가 방에 들어가 있는 내내 미안했는지 뜰에서 빙빙 돌다가 어두운 밤이 되서야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숨죽여 울었다. 새야 미안해, 미안해. 내가 크면 꼭 네 새끼를 잘 키워줄게. 몇 번이고 배를 주무르며 나는 울었다. 어떻게 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아버지는 식사를 들지 않고 읍내 시장으로 갔다. 어머니는 속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숭늉만 들이켰다. 밖에도 나가지 않고 나는 집안에서 낑낑댔다. 부엌 뒤에 창고가 바로 새들을 기르는 사육장이었는데 들어가는 문이 웬일인지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새를 보지 못해, 나는 그때만 해도 반질반질했던 갈색 대청에 앉아 길거리를 지나가는 또래의 동적인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찬미야, 나와 보그라!”
커다란 아버지의 음성에 나는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문에는 잘 익고 있었던 감이 납작하게 절여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잘 다시 다시다가 왼손에 들린 새장을 내게 주었다.
“우아, 예쁜 새다.”
하얀 새장은 묵직했다. 하지만 난 무거운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처음 보는 새에게 마음이 온통 쏠렸다. 새의 깃털은 병아리보다 더 옅은 노란색이었다. 눈에 확 띄는 새가 간드러지게 물었다.
“카, 카나리아든가. 하여간 우는 게 어찌나 예쁜지 네 생각나서 사왔다. 사과의 선물이다, 녀석아.”
확실히 새의 울음은 맑고 고왔다. 생긴 것도 무척 작아서 한 손에 두면 좋아 보일 새였다. 노란 새의 이름을 어린 나는 별이라고 지었다. 별이는 하얗고 깔끔한 새장에서 가끔씩 청아한 목소리를 내곤 했다. 별이는 아버지의 사과이자, 동생이었다. 새장수 딸이라고 해서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나는 별이가 온 뒤로 집밖에 자주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 매혹된 듯, 심취된 듯 별이 옆에 있었다. 별이는 잘 지저귀었다. 찌르레기보다 더 높게, 참새보다 더 얇은 음으로 울었다. 그렇게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머니는 당신의 딸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도마 위에서 식칼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 그 소리에 별이는 놀라서 푸드득 거렸다. 어린 나는 별이의 행동이 한참동안 이해가 안 갔다. 걱정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답답해서 몬 살겠다고 시위하는 거 아닌가. 이제 네가 신경 좀 쓰지 말래.”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어린 내 생각에도 아버지는 새에 대해서 잘 알았다.
새는 날개가 있다. 날개는 날라고 주어진 것이다. 있는 힘껏 파닥거리라고. 하늘을 향해.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난 그래서 새를 좋아했다. 나에게 없는 날개를 가지고 있는 새가 부러우면서도 미웠지만, 좋았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보면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새에게 날개가 있는 이유는 꿈을 꾸기 위해서가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건대 인간에게 꿈을 꾸도록 한 게 아닐까 싶다. 너도 하늘을 날아보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날개가 없는 새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신이 준 유일한 축복이자 나에게는 꿈이었다. 새장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그와 맥락이 같았다. 전 세계에 있는 새를 다 사서 그 새들이 나를 하늘로 태워주는 걸 꿈꿨었다.
하지만 꿈을 위해서 새가 죽는 모습을 보는 건 싫었다. 언제든지 꿈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심 끝에 나는 새를 놓아주기로 했다.
찰칵. 새장이 열렸다. 나는 오른손을 새장에 집어넣어 별이를 꺼내주었다. 별이는 미끄러운 장판에서 미끄덩거리더니 익숙지 않은 듯 몇 번이고 활개 치기 시작했다. 내 한 손보다 작은 별이는 아주 열심히 날개를 퍼덕였다. 나도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별이는 즐거운 듯 울었다. 날씨도 청아하니 맑았다. 구름이 싹 갠 날이었다. 새파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났다. 어떤 색도화지도 이렇게 예쁘지 않으리라. 나는 발돋움을 하여 손을 위로 쭉 올려 보았다. 하늘이 닿을 듯 말 듯, 내 콧잔등에서 땀이 났다.
하늘을 언젠가 꼭 잡을 거야. 별이에게 나는 중얼거렸다. 별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울었다.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오랜만에 뒷산에 올라갔다. 별이도 손 안에서 계속 날갯짓을 했다.
푸드드득. 별이가 날개를 완전히 펴면서 날았다. 나는 별이가 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별이는 날았다. 더 높이, 더 높이. 뜨거운 태양빛에 눈을 감았다 다시 뜨자 검은 새가 눈앞에 보였다. 내 눈으로 내리쬐는 태양을 두 날개와 몸뚱이가 막았다. 순간 내 눈에 보였던 검은 새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 더 그 검은 새는 날개를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퍼덕이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나는 두 눈을 가득 채웠던 새가 사라지자 별이가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별이는 노란 깃털을 가진 새였다. 해를 가릴 만큼 큰 크기의 새도 아니었다. 그럼 별이는 어디로 간 걸까.
바람이 잔 머리를 만지고 지나쳤다. 뒷산에 있는 소나무가 푸르렀다. 그 옆에는 대나무들이 바람에 쏠려 잎을 떨었다. 어둠을 잊은 듯 다시 태양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태양이었다. 노란 태양이 아닌 붉은 태양이 뒷산의 키 큰 소나무에 걸쳐서 사라지려고 했다. 그제야 난 눈물이 났다. 별이는 잘 날아서 태양에 도착했으면, 별이만은. 어린 새장수는 별이가 검은 새처럼 크길 빌며 눈물을 소매로 훔쳐냈다.
빈손으로 돌아온 나를 보며 어머니가 물었다.
“새는 어디에 두고 혼자 왔냐?”
“….”
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청에 벌러덩 누웠다. 천장에는 건어물들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다 말라서 심지어 원형을 못 알아볼 건어물들은 모빌처럼, 또는 절간의 풍경처럼 빙그르르 돌았다. 내 눈동자도 동시에 돌아갔다.
“왜 그러냐?”
어머니는 부엌일을 마치고 나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한동안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는데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버지와 내 눈동자가 마주쳤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종잡지 않을 정도로 흔들렸다. 나는 아버지의 당황스러운 눈동자에 놀라서 입이 살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나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난 어머니의 딸이었다. 더 집요하고 영악스럽게 아버지의 등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등이 미약하나마 떨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봤다. 전 같으면 꽤 무거워 보였을 봉지는 주먹만한 하나의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당신의 방에 던져놓았다. 툭.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곧 그 옆에 아버지가 귀이 여겼던 엽총도 던져졌다. 아버지는 등목을 해야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나는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쇠고리로 문을 걸었다.
아버지의 방은 깜깜했다. 해가 거의 저물어서인 것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평소 어두운 곳에서 생각하는 걸 즐겨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은 아니었다. 아직은 오후, 6시. 아직은 이른 밤. 나는 어머니의 노랫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소리를 냈다. 다행이도 어머니는 설거지로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릇 부수는 소리에, 아버지의 물 받는 소리까지 해서 내 소리가 안 들린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심호흡을 조절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엽총 쪽으로 기어갔다. 도둑고양이마냥 내 움직임에 일일이 신경써가며 엽총 쪽에 도달했다. 엽총은 가까이서 보니 더 묵직해 보였다. 이제 그 옆에 있는 봉지를 잡을 차례였다. 봉지는 생각대로 가벼웠다. 도대체 이 속에 뭐가 들어있는 걸까. 나는 심장소리 때문에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내쉬고 봉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만져지는 것은 물컹했다. 미지근하며 부드러운 것이 만져졌다. 만지면서도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꼭 새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좀 전에 스쳤던 단단하고 뾰족한 것은 부리, 봉지에 손을 넣자마자 껄끄러운 느낌의 긴 것은 다리. 그리고 만지고 있는 건 몸뚱이에 장식처럼 달려있는 깃털.
“찬미 어디 있냐? 유찬미!”
아버지가 다 씻었는지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성급하게 봉지에서 덩어리를 손에 잡았다. 아버지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유찬미! 너 왜 아버지 방에 들어간기냐! 당장 이 문짝 못 여나!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나는 겁이 질려 주먹을 쥐려했다. 하지만 이미 손에는 뭔지 모를 덩어리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덩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그것을 가슴에 품었다.
아버지는 힘으로 문을 부셨다. 문이 부셔지자 그 사이로 빛이 환히 들어왔다. 저녁이라 은은한 빛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보고 고개만 푹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덩어리도 더욱 세게 품었다.
“찬미야…네 뭘 가지고 있는 게냐? 응?”
아버지의 고함이 들릴 줄로만 알았던 나는 울음기 섞인 말에 조용히 눈을 떴다.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과 잘 깎지 않은 수염, 그리고 전보다 더 흔들리는 눈동자가 나로 하여금 더 떨게 만들었다. 표정은 심하게 굳어 있었다. 왜 거기서 난 덩어리를 봤었을까. 내가 고개를 숙여 덩어리를 보려하자 아버지가 소리 질렀다.
“보들 말아라! 절대 네 손에 있는 걸 보들라고를 하지마. 눈을 감고 천천히 그것을 놓아라!”
하지만 아버지의 고함은 오히려 고개를 숙이게끔 만들었다.
아아. 입에서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덩어리는 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덩어리는 죽은 별이었다. 그것도 문드러지고, 내가 부러워하던 날개도 부러지고, 노란 몸뚱이 하나만 온전해 보이는 별이는 눈을 뜨고 있었다. 별이를 쥐었던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나는 흐느낄 수조차 없었다. 왜 별이가 이런 모습으로 내 손에서 나가 떨어져 있는가. 별이는 분명히 날았다. 어디론가 가버렸었다. 뒷산을 향해 날갯짓을 했던 것은 큰 검은 새였다. 나의 작은 노랑새 별이가 아니었다.
새가 보이기에 그냥 쏜 것뿐이다. 이 애비 죄가 있다면 총을 쏜 것뿐이다. 그 전에 별이에게 죄가 있다믄 너무 크게 날갯짓을 한 것뿐이다.
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듯 멍한 상태로 내 새, 어디에 둔 거야를 반복하는 나를 껴안았다. 나는 그 순간에도 별이와 눈이 마주쳤다. 까만 눈이 말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으아아앙- 그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별이가 검은 새였던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울음을 참지 않았다. 별이는 그 새가 아니니까, 아버지는 오늘 밤 그 새를 잡아 오실거야. 되게 멋있는 새일 텐데. 아버지 친구 분이 사시겠지. 그럼 난 그 돈을 받아서 또 다른 새를 살 테야. 또 사고, 사고 새장수가 돼야지.
내 어릴 적, 처음으로 꾸었던 꿈은 어렸지만 마음만은 새장수였던 아이의 무지한 욕심 때문에 더 이상 새를 볼 수 없었다. 날개를 좍 펴서 하늘 높이 올랐던 그 새를.
*
“이젠 저 새끼들이나 잡을까요. 박제하는 친구 놈한테 선물로 줘야겠군요.”
사내는 떨고 있는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그의 웃음에 어미 새에게서 눈을 떼었다. 사내는 둥지를 향해 정확히 과녁을 맞혔다. 나는 재빨리 둥지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총탄은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빨리 비켜, 죽을 셈이야?!”
사내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체 하며 돌진하는 총탄 앞에 섰다. 아슬아슬하게 총탄은 내 귀밑을 살짝 스쳐서 둥지를 향해 날아갔다. 둥지는 힘없이 툭하고 땅바닥에 바로 떨어져 버렸다. 나는 둥지가 떨어진 자리로 빨리 뛰어갔다. 둥지 속에 있던 아기 새 세 마리 중에 한 마리는 총탄을 맞아 죽었고, 한 마리는 땅에 정통으로 머리를 부딪쳐 죽은 모양이었다.
사내는 미쳤어요? 격하게 소리치더니 나를 밀치고 둥지를 쳐다봤다. 곧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풀밭에 넘어져서 신발이 벗겨진 채로 다시 둥지 쪽으로 갔다. 아기 새 한 마리는 살아 있었다. 아기 새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우악스럽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찌르레기 울음이 가장 크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진짜 시끄럽네.”
사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죽은 새 두 마리를 집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인사 없이, 내가 떨어트린 어미 새를 쓰레기 집듯 줍고는 산을 내려갔다.
산에는 나하고 금방 어미를 잃고, 형제를 잃은 아기 새만 남았다. 해는 더 이상 노랗지 않았다. 어렸던 내가 보았던 붉은 해가 소나무에 또 다시 걸려 있다. 나는 아기 새를 조심스럽게 손 위에 올려두었다. 아기 새의 떨림이 피부감각을 통해서 느껴졌다. 아기 새의 공포, 울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기 새는 제 어미를 닮았는지 눈이 유난히 까맣고 예뻤다. 그리고 끝까지 살려는 것까지 닮아 있었다. 내 손 위에서 아직 펴보지도 못했던 약하고 작은 날개를 어떻게든 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아기 새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품속에서 조차 날개가 꿈틀꿈틀 거렸다.
아기 새가 맺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디에서 나온 지 모를 눈물이 아기 새 날개에 뚝뚝 떨어졌다. 내 눈물이 힘이 될까. 나는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눈을 비볐다. 눈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 새 날개에 한 방울도 빗나가지 않고 떨어졌다. 아기 새의 작은 부리가 살짝 열렸다. 두 부리 속에 눈물이 들어갔다.
눈물을 마신 아기 새는 눈물이 떨어진 날개를 활짝 폈다. 활짝 펴진 날개에 따뜻한 미풍이 불어왔다. 날개는 바람을 타듯 몇 번이고 푸드득거리더니 바람을 탔다. 드디어 아기 새가 날았다. 금방 하늘 위로 올라 갈 수는 없었지만, 불안정하게라도 날아올랐다. 나는 탄성을 내지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기 새가 찌르르 울었다.
산에서 가장 큰 소나무를 향해 아기 새는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에 걸려있던 태양에 닿은 것처럼 보였을 때 나는 눈물을 삼키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내 귀밑으로 불어왔다. 따가웠다. 귀밑에 생긴 상처가 아파왔다. 귀밑에 살짝 손을 대보니 피가 묻어 나왔다. 붉고 맑은 피였다.
날개가 돋아나려고 하나. 나는 귀밑이 간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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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썼던 소설입니다.
꾸물꾸물 꺼내다가 부끄러워지는 소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