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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門
류 현 서
야트막하고 길쭉하며 허리가 잘록한 낭산이다. 여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산이건만, 하늘에서 신령이 내려온다는 영산으로 알려졌다. 산 정상에는 선덕여왕릉이 있고, 산자락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기러기가 날고 오리가 물 위를 헤엄치는 안압지와 반월성이 있다. 남쪽으로 팔을 뻗으면 지척에 신문왕릉이 손에 닿을 듯하다.
가을하늘 뭉게구름은 넓고 넓은 화판에 능란한 솜씨로 풍경화를 그려댄다. 구름은 고풍스러운 누각을 그렸다가 춤을 추듯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어느새구름은 고관들처럼 성터로 향해 줄을 서서 들어간다. 반월성으로 가다가 남쪽의 신문왕릉으로 다가온다. 떠다니는 구름에도 먼먼 태고의 신비가 배어 있는 듯하다.
신문왕릉이다. 봉분은 둥글고 큼지막하다. 좌우와 뒤편에 소나무들이 허리를 굽혀 문무백관처럼 둘러서 있다. 하지만 다른 릉과 다르게 문인석이나 무인석이 없다. 키가 장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높다란 혼유석을 약간 비켜선 채 무인석을 대신하고 있다.
릉의 붕괴를 막으려고 둘레석을 둘렀다. 네모진 벽돌 모양의 돌을 5계단으로 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었다. 릉을 돌다가 받침석을 헤아린다. 바깥쪽으론 일정한 거리마다 44개의 사다리꼴 모양의 석재를 바쳐 놓았다. 서쪽 면의 한 받침대에 문(門)자가 새겨져 있다. 걷던 발길이 정지되면서 온갖 궁금증이 인다.
세상에는 문이 많다. 방문, 창문, 화장실문, 대문, 불이문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하지만 여러 왕릉을 둘러보았으나 무덤에 문이 있는 것은 여기뿐이다. 명을 다한 망자가 어떻게 문으로 나다닐 수 있단 말인가.
문이란 안과 밖을 표시하는 선이다. 방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을 “방문”이라 하고 집터를 구획하는 담에 낸 문을 “대문”이라 한다. 마을과 마을 경계에 세워진 문을 이문(里門)이라 하고, 각 지방의 도나 시의 경계를 긋는 문을 성문(城門)이라 하지 않은가.
문은 경계다. 문의 개념은 하나의 공간적 영역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입을 목적으로 하지만, 출입이 불가할 때도 설치하는 건조물(建造物)이기도 하다. 문은 독립적인 구조물이라기보다는 그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담, 벽, 집의 경계로 쓰이므로 그 기능이 실로 중후하다.
문 門 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지게 짝 두 짝을 마주 보고 붙인 상형문자이다. 지게, 가지 두 짝을 붙인 글자의 형상은 열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의미이다. 누구를 만나려면 문을 통해야 들어가고 문으로 하여 밖으로 나올 수가 있다. 문은 세상과 소통하는 출발점이고 하루 일을 끝내고 휴식의 장소를 찾아드는 공간이다. 예부터 문자는 닫힐 문자이지만, 낮에는 열어놓은 의미로 해석하고 밤에는 닫혀 있는 의미를 두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쓰는 관용구에서도 문 門 자가 들어가는 게 많다. 대성황을 이루는 것을 비유하는 문전성시(門前成巿), 손님을 영접한다는 문불정빈(門不停賓)이 있다. 이 밖에도 도둑 없는 태평성대를 문불야관(門不夜關), 입신출세하면 등용문(登龍門)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문은 인간의 삶과 늘 함께하고 있다.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옛 백제와 고구려를 융합하려고 애를 썼다. 신라의 국학 정책을 펴 최고의 교육기관을 만들고자 노력을 다하였다. 그래서일까. 어느 왕릉에서도 볼 수 없는 문(門)자에 자꾸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저승길은 열두대문을 넘어야 한다지만, 무덤에 새긴 이 문이 이승과 저승을 오갈 수 있는 직통 문이 아닐까 싶다.
서양문화에서도 시월 마지막 날과 다음 달이 시작되는 저녁에 영혼들이 이승으로 온다고 믿는 “핼리원데이”가 있다. 그날 하루만 저승의 문이 열린다는 거다. 그날 밤 죽은 영혼을 대접하는 의미로 술과 맛난 음식을 문 앞에 내다 놓는 풍습이 있다. 종교적인 풍습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저승에서 이승을 오가는 문이 있기는 있는가 싶다.
서양에서 연례행사로 일 년에 딱 하루만 영혼이 온다고 믿는 “핼리원데이” 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신 날 밤 자시에 영혼이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제사를 자시에 모신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세계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이라.
신문왕릉은 혼(魂)이 나와서 쉰다는 혼유석도 아니고 제를 올리는 홍살문 앞도 아니다. 릉 정면에서 남서쪽인데 남방보다는 서쪽으로 더 기울었다. 불교에서 극락세계가 서쪽에 있다 하여 서방정토라 한다. 그렇다면 이 문이 바로 극락으로 가는 문인가. 신문왕(神文王)은 왜 하필 귀신 신(神) 자에 글월 문(文) 자를 썼을까. 귀신이 되어서라도 글을 가르치겠다는 염원인가.
문 門에는 품고 있는 상형문자가 많다. 그 의미를 풀어 보면 재미도 있지만, 그 뜻은 끝없는 평야처럼 넓기도 하다. 문 門 자 안에 날 일 日을 넣으면 틈 간 間 자가 되고, 입구 口를 넣으면 물을 문 問 자다. 또 귀 이 耳가 들어가면 들을 문 聞 자이고, 글월 문 文이 들어가면 위문할 민 閔 자다. 그렇다면 문은 사이를 두고 틈이 생기기도 하는가. 사람은 문을 넘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입을 통해 질문하여 답을 듣고,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위문하라는 뜻이 내포된 것인가. 인간은 문자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정신으로 익혀 가르치고 배우게 되는가. 이렇듯 문이란 넓은 뜻을 품고 있다.
릉에 새긴 문이 극락세계로 가서 편안히 쉬겠다는 문이 아니라, 저승에 가서도 나라가 걱정되어 왕래하는 문일까. 호시탐탐 신라를 노리는 적들의 거동을 살피는 문이었을까. 아무나 볼 수 없는 수억 만 리까지 꿰뚫어 보는 초고속 망원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문왕의 아버지 유언이 사후에도 바다의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고 하였다. 돌보다 굳은 아버지의 그 일념. 아마 신문왕도 그런 신념을 본받았지 않았을까. 부친의 유언에 따라 쓰린 마음을 감수하고 차디찬 동해바다에 수장을 한 그 심정이 어땠을까. 문무왕이 동해를 지키고 신문왕은 당나라와 몽골족의 침입을 주시했을 테다.
나는 눈을 감고 이승과 저승과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가늠마저 할 수 없다. 천년이 훌쩍 지난 빛바랜 돌문 한 짝. 신문왕의 혼이 왕래하던 문. 그의 영혼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선대부터 어렵게 이루고 어떻게 지켜 온 나라인가. 죽어서도 혼의 힘을 다해 지키고 싶은 내 나라라고. 만약 그들의 일념이 없었었다면 지금까지 어이 이어왔으랴.
영혼이 되어서도 생각은 골이 깊어 멀고 먼 하늘길과 꽃피고 새가 우는 이승 길을 오르내렸으리라. 얕게 뚫린 문짝 안에 긴 세월을 잡아놓고 하늘빛 불러와서 습기 찬 곤룡포를 말렸을까. 살아서는 나라의 융성과 백성의 교육을 위하였고 죽어서는 적의 침략을 막았을까. 무덤에 새겨진 상형문(門)자.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수한 문이었으리라.
맑은 햇살이 가을 들판 사이를 달려와 내 머리 위에서 춤을 추듯 날아간다. 좌우를 살피니 들판은 누렇고 잎들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일렬로 선 가로수와 옛 궁궐터 반월성이 노을빛으로 불그스레하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정사를 위해 궁궐로 드나드는 고관들의 붉은 관복 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듯하다.
< 2021년 흑구문학 동상 >
모꼬지
류 현 서
눈을 떴다. 연주황빛 햇살이 사방에 가득 차 있다. 지난밤 칙칙함이 쌓인 그 많던 어둠들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내가 잠든 사이 줄행랑을 친 걸까. 어둠이 사라진 아침은 각고를 겪는 인간사와 아랑곳없이 새롭고 신선하다.
눈 부신 햇살이 창으로 스며든다. 아침에 펼치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외국에서 유입된 신종 바이러스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제와 오늘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여러 매체는 보도를 통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거리를 두라고 연일 당부한다. 확진자가 샛바람에 들불이 번지듯 번진다. 이미 퍼진 지역에서는 구급차가 줄을 지어 달려간다. 하룻밤 자고 나면 코로나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사망자도 잇따라 늘어난다.
누구라도 만났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바깥출입을 자제한다. 집안에 갇혀 갑갑증이 나지만, 함부로 나다니지 않은 것이 서로를 위하는 배려이기도 하다. 맘대로 다닌다면 다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적 가치가 무너진다. 나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오늘따라 ‘모꼬지’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모꼬지는 중세기 때부터 모인다는 어원語原으로 쓰여왔다. 사람들이 다 함께 어울려 놀음을 즐긴다는 말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마음대로 다녔던 일들이 이처럼 그리울 때도 없었다.
예전에 할아버지께서는 모심기를 모꼬지한다고 하시고 할머니는 모를 시집보낸다고 하셨다. 모를 논에 심는다에서 ‘모 꽂는다’로 어원이 변형되어 모꼬지라고 했던 것 같다. ‘모’ 시집 보낸다는 것 또한 모가 못자리에서 새로운 논에 옮겨 심는다는 뜻이다. 모내기 때는 이른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허리가 굽도록 손으로 모를 심었다. 모 ‘한’ 포기의 개수는 5-6개가 적합하지만 대략 7-8개씩 심는다. 기존 포기보다 행여나 싶어 좀 넉넉하게 잡는다. 모포기를 넉넉히 잡는 것은 외롭지 않게 서로 어울려 자라라는 바람에서다.
대학교 신입생들이 입학하여 처음 모임을 갖는 것을 엠티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순우리말 쓰기에 동참하는지 모꼬지하러 간다고 한다. 여기에서 모꼬지는 한 두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제삿날 올리는 제물에서도 꼬지란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전복은 전복대로 홍합은 홍합대로 꼬챙이에 낀다. 상어고기는 상어대로 쇠고기는 야채와 섞여 가지런히 꼬챙이에 낀다. 이것을 산적(散炙)꼬지라고 한다. 음식도 동색 류끼리 끼워놓으면 모양도 예쁘고 한결 더 먹음직스럽다. 여러 가지의 음식이 맛도 각각 이어서 조상님의 입맛을 돋우기에 더없이 좋은 것 같다.
자연도 식물도 음식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어울려야 우선 보는 눈부터 즐겁다. 산과 강과 마을과 들판이 이어져 있거나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있으면 정겹고 풍성함마저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으니 지루하고 단조로워 시원한 바람이라도 쉴 겸 외곽으로 향했다. 사람을 피해 갯바위가 많은 바닷가에 왔다. 바다는 언제 어느 때 찾아와도 왜 왔느냐고 이유를 묻지 않는다. 갑갑해진 마음을 보는 순간이나마 시원하게 해소를 시켜 주는 바다다. 나는 속이 갑갑하거나 외롭다고 생각될 때 바다를 찾게 된다. 갯바위에 펑퍼짐하게 자리를 잡아 앉았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 시선을 멈추었다. 수평선 따라 흰 구름이 떠 있다. 수면은 멀리서 보면 태곳적 숨결같이 잔잔해 보인다. 하지만 멀리 있을 때는 한없이 고요해 보이지만, 차츰 다가와 갯바위를 만나면 성난 짐승같이 사나운 소리를 낸다.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갈매기의 비상은 여전하다. 서늘한 갈매기의 그림자가 눈꺼풀 위로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너른 바다가 점점 눈 속에 잠긴다. 끽끽거리며 날던 갈매기의 그림자가 멀어지면서 점점 다가오는 무엇인가 보인다. 낯익은 듯하면서 낯설고, 낯 설은 듯하면서도 낯이 익다. 정신이 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온몸이 점점 가라앉는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다. 바다도 묵상에 들었는지 내 전신처럼 기척도 없다. 죽음이 바로 이런 것일까. 얼마간 그 세계로 빠져들다가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뿐이다. 파도도 생각에 빠져 날숨 들숨을 쉬는지 숨을 몰아서 철썩거린다.
인간은 자연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터이다. 인간이 자연에게 준 고통은 없을까. 작년에도 올해에도 여기저기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산야에 묻혀 사는 짐승이며 곤충이며 나무와 꽃과 풀들을 전부 몰살을 시켰다. 보다 못한 자연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를 인간 세상에 벌칙으로 퍼뜨린 게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는 자연이 한없이 자유롭다가도 가끔은 아주 무서운 공격의 상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코로나로 인해 알 것 같다. 마치 인정이나 사랑이나 주면 받고, 받으면 갚게 되는 불변의 진리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미생물이 인간 세상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이리라.
전염병을 겪으면서 느끼는 게 많다. 잃은 것도 있으나 얻은 점도 있다. 갑자기 부닥친 위기에 강대국들의 의료체제가 썩은 담 무너지듯 펑펑 뚫린다. 위기를 맞을 때야 비로소 그 나라의 대처능력을 알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시련을 겪은 민족이기에 급한 위기에 대처한 정신력을 가졌다고 본다. 전 세계에 급 난을 극복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보인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란 동물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고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요즘엔 아침마다 눈을 떴을 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보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 일 없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별 일없이 산다는 게 행복이란 걸 이제야 짐작한다.
세균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간 세상은 난국을 겪고 있지만, 자연은 계절을 어기지 않고 순리대로 흐른다. 봄꽃들이 너도나도 앞섶을 벌렸다. 목련꽃이 떨어지고 나니 진달래도 붉은 얼굴을 내밀었다. 어제 세상 떠난 사람 어쩌라고 생각도 없이 마구 흐드러지게 피는지. 동백꽃과 벚꽃도 만개를 넘어 이젠 푸른 이파리가 하늘을 가린다. 신성한 것은 한 줄기 훈풍에 꽃과 잎을 피우고 조그마한 발자국 물을 만나도 생명을 부지하게 되는가. 파도가 몰려와 지나가고 나니 아주 작은 방게들이 주먹만 한 몽돌 밑에서 꼬물거리며 기어 나온다.
거대한 태풍도 지나가면 잠잠해지고 부러진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해가 돋는다. 달콤한 말로도 음식으로도 물리칠 수 없고, 물로도 불로도 소멸시킬 수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고통의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모든 것이 평상으로 돌아오겠지. 사람들은 곰삭힌 시간 앞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펴지는 햇살을 이마에 앉히고 타는 노을을 등에 업을 테지. 또 하루를 채우고 비우고 또다시 채우리라. 개인은 개인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달력에 밑줄을 그어가며 드문 총총 모꼬지 날을 정하여 분주하게 다니겠지.
가라앉은 기분도 바꿀 겸 벌떡 일어났다. 날아다니는 갈매기 날개처럼 두 팔을 벌리고 너풀거리며 파도를 바라보고 섰다. 파도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수없이 날고 드는 도시의 인파같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파도는 잊을 만하면 또다시 달려와서는 야단을 치듯 철썩인다. 철썩이는 파도가 지구촌을 향해 내리치는 죽비소리가 아닐는지.
홀로 핀 꽃
류 현 서
가을걷이를 도우러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빛바랜 열녀각 담장 밑에 때늦은 박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서릿발 시린 가을에 왜 하필 열녀각 담장을 붙잡고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세상에는 소설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런 삶을 보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더 안타깝다. 한 친구는 이십 대 중반에 한 점의 혈육도 없이 혈혈단신이 되었다. 혼자가 된 그녀에게 벗들이 모이면 좋은 짝을 찾으라고 입방아를 찧어도 묵묵부답이다. 꽃도 한철이고 청춘도 한때라며 재혼을 제의해도 소귀에 경 읽기다. 남편은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후세에 가서 못다 한 생을 다시 살아 볼 것이라는 말만 한다. 이구동성으로 이십 대에 간 남편이 먼 훗날 할머니가 된 너를 어찌 알아보겠느냐고 방정을 짐짓 떨었다. 못 알아보면 그때 재혼을 하겠다고 한다.
무엇이 저 친구를 꽁꽁 동여매고 있을까. 그 또한 사람인데 만개한 오월의 장미처럼 싱그러운 한때가 있으련만. 봉숭아도 함초롬한 주머니에 황갈색 사리가 소복이 담겨 건드리기만 하면 툭 터진다. 하물며 농익은 여인에게 터지려는 열정이 왜 없겠는가. 홀로 삭히고 삭혀서 젊음의 혈을 망각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희한하게도 박꽃에는 벌 나비가 오지 않는다. 향기가 없어서일까. 해가 질 무렵부터 밤에만 활짝 피어서 그럴까. 나비가 제집으로 찾아든 뒤라 박꽃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안 올까. 티 하나 없는 순백이어서 감이 넘보지 못해서, 안 오는 게 아니고 범접조차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혼자가 된 그녀에게 한번은 그럴듯한 자리가 있어 만남을 주선했다. 상대가 그 친구와 잘 맞을 것 같아 마련한 자리였다. 그러나 차 한 잔을 마시는데도 손을 덜덜 떨다가 삽살개에게 쫓기는 닭처럼 도망치듯 달아났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먼저 간 남편이 속상해할까 봐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는 거다. 바보라 해도 할 수 없고 멍청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죽어서 남편을 만나면 투명한 삶을 살다가 왔다는, 그 말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한다. 친구가 딱하다. 예전처럼 어느 누가 열녀문을 세워 줄 것이며, 벌 나비를 외면한 그 생을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사랑한 남편을 보낸 아쉬움이 지천명이 넘도록 삭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도 남편의 사랑이 가슴에 알 불처럼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을까. 그 정은 무슨 정이기에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식지도 않는지. 아니면 꽃다운 스물둘에 만나서 환영만 남기고 훌쩍 가버린 사람이 야속해서 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평생 시위라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외골수든 고집불통이든, 청순가련한 형이든, 주름살을 짓지 않는 몽돌 같던 얼굴이든,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 건가. 그녀 역시 만개한 살구꽃 같던 얼굴도, 토끼가 물 먹고 간 옹달샘 같던 눈가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다.
홀로 핀 박꽃이 애처롭다. 동색들은 다 지고 없는데, 생기 없이 홀로 피어 있다. 간밤에 내린 무서리 때문인지, 꽃이라기보다는 세상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하다. 찬바람 속에 혼자 피었다고 좋아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절개 있어 보이고 절개 있어 보인다고. 하지만 의복도 철이 있고 음식 또한 철에 맞는 음식이 몸에 좋듯, 꽃 또한 철에 맞게 피어야 청승맞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녀 역시 세상의 소리에 귀 막고 부동자세로 홀로 걷고 있다. 박 넝쿨에 붙어있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박을 다치게 할까봐 경계를 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거울이 사물을 비추고, 쇠 종이 여운이 깃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냥 지나가는 무심으로 여길 뿐이다.
여러 꽃 중에서 난초도 꽃은 잎을 못 보고 잎은 꽃을 못 본다. 난초에는 벌 나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난초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 내가 자라온 집에도 담장 바깥에 난초를 심어 두고 길렀다. 그뿐이 아니라, 라일락 나무도 집안에 심는 것을 금하였다. 라일락꽃의 향기가 진동하면 여식들이 바람이 난다는 말도 있다. 동백나무도 역시 정원수의 금지목에 속했었다. 동백꽃은 잎이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고 송이째 툭 떨어진다. 그런 현상을 어른들은 그럴듯한 해석을 하여 집안에 심지 않았다. 하지만 벌과 나비들이 찾지 않는 박꽃은 금기하지 않고 집 안팎에 심었다. 박꽃은 성정이 깨끗한 여인으로 여겼기 때문일까.
예전에는 열녀를 우러렀다. 혼자가 된 젊은 며느리가 있는 집안은 어른들이 밤마다 안채를 감시하듯 돌았다. 열녀가 나면 열녀비각을 세워 가문의 영광으로 삼았다.
저의 문중에서도 열려가 났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십 팔년이 되는 해에 열녀각을 세웠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일까. 사람이 많이 나다니는 한 길가에 세워 놓았다. 할아버지와 문중 어른들이 일 년에 한 두어 번씩 열녀각을 드나들었다. 어른들이 가실 때 할머니께서는 여식들은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잖아도 열녀각에 칠한 원색의 칠만 봐도 괜히 무섬증이 들었다. 열녀각의 문은 큰 자물쇠로 늘 잠겨 두었다. 하지만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냉기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아 무단이 소름이 끼쳤다. 열녀도 남편이 있어서 하는 열녀가 있고, 상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의로 하는 열녀가 있다. 저의 문중의 열녀각은 전자에 속한다.
열녀각을 바라볼수록 더 섬뜩해진다. 열녀각 내부와 외부에 칠한 색이 그냥 빛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를 버린 한 여인이 몸을 태워 남긴 흔적. 붉은색은 피가 응고된 덩어리로, 푸른색은 가문을 위한 희생의 빛으로, 하얀색은 나를 버려 나를 살린 여인의 뼈와 살로 보인다.
지금은 뿌연 먼지를 덮어쓰고 세월의 무게에 눌려 있다. 그것은 옛날과 달리 여성들의 도덕적 윤리가 해이해져 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열녀각을 새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시대가 변하고 살아가는 패턴이 달라질수록 여성들이 정절에 대한 신념이 옅어지는 게 아닐까. 저 빛바랜 열녀각이 차차 퇴색되는 정절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열녀각 귀퉁이에 말라가는 박 넝쿨이 널브러져 있다. 내년 가을이 되면 이 자리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박꽃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한참 동안 멍하게 섰다. 아침에는 수줍은 듯 고개조차 들지 못하다가 저녁나절에 핏기없이 피어나는 박꽃.
우리 사람도 꽃과 같이 피었다가 지고 다시 피면 아무런 여한도 없으리라. 친구도 평생을 하루같이, 기다리지 않고 일 년만 기다리면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까. ‘박꽃’ 같은 그녀. 단 한 사람만 가슴속에 간직하는 그녀의 일생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남자들만 대하면 벌벌 떤다. 춥지도 않은데 떨어대는 저 떨림이야말로 이 시대를 혼자 살아내는 그녀만의 독특한 처세술이 아닐는지.
<2021년 이야기보따리 입상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