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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장 1-25절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룹바알은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이름이다. 하롯샘은 두려워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의 얄룻 샘으로 알려져 있다. 이샘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과 엘리가의 출신지로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블레셋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이었는데,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레산에서, 모레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이 있는 세겜에 속한 한 지역이다.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32,000명으로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적들의 수는 사시기 8장 10절에서 135,000명으로 소개한다. 많지 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에서였다. 첫째,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두번째는 믿음의 정예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우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한 목적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주요 목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투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겸손히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였고,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3.『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거절하셨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셨다. 만일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킨다. 돌아가라는 말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4.『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일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이들 백성 중에는 졸장부'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 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을 불신앙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일만 명도 많게 보시고 다시금 감군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 전쟁에 합당한 자를 고르시는 것을 의미한다.
5.『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 6절에서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서서 물을 움켜 조금씩 핥았던 자들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보다 훨씬 재빠르므로 전쟁에 보다 적합한 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위를 경계하면서, 방심하지 않는 자들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들은 매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횃불 작전에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전쟁에 임할 자들 치고는 너무도 안일한 자세를 취한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조심스러운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므로, 숫자가 적은 곳을 택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부분 전쟁을 준비하다 보면 급하게 물을 마시게 마련이다. 무릎을 꿇고 허급지급 물을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의 군사만 손으로 움켜서 입에 대고 핧는 자가 되는 것이다.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삼백명에서 삼은 하늘의 숫자이지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삼백이라는 군사가 그런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군사에 해당된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 하르마겟돈에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모이는데, 적군들도 모인다. 영적인 전쟁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기드온 용사 300명도 영적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전쟁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싸우시는가를 이해해야만 한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백 용사의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즉 비록 숫자 면에서는 엄청난 열세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되었기에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철저한 임전 태세를 갖춘 자들이었다. 비록 소수일망정 확고한 목표 아래 한 마음 한 뜻으로 강력하게 결집될 때 위대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7-8.『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이 승리의 약속은 이미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셨던 바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산당을 제거하게 하시고, 군대를 선발하시는 등 모든 절차를 끝내신 후 비로소 기드온에게 승리를 다시 확증시키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 중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선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으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나팔에 해당하는 단어인 '쇼파르'는 대개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킨다. 본절의 백성은 선발된 삼백명을 의미한다.
9.『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그 밤에” 문자적으로 '그리고 바로 그 밤에 그것이 있었더라'는 뜻이다. 이는 곧 정예 300명을 뽑고 그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 보낸 그날 밤에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즉시 명령을 내리신 것은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군대의 수효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0.『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300명을 남겼으나 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아직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세번씩이나 표징을 구했었던 바 있으므로 적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워 망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또 다른 표적을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
11.『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 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으로써 적과 싸울 수 있는 담력을 그에게 주시고자 원하셨다. 그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기드온과 그의 백성들의 용기와 지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군대가 있는 진영”문자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는'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적들이 순수한 병사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이므로 여인들과 아이들도 데리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아마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진과 마주 대하여 배치했을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짐승과 더불어 안전한 곳에 배치시켰을 것이다.
12.『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기드온이 부하 부라와 함께 적의 진지로 정탐하러 간 때가 밤이었으므로 적군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누워 있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골짜기는 모레산 앞 꼴짜기를 의미한다. 한편 이처럼 적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가까이에 두고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기에 기드온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에 정신이 없어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을 정도이다. 더욱이 기드온이 정탐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이경 초 곧 밤 10시에서 11시 이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수효가 메뚜기 떼같이 많은 것만을 믿고서 정신 상태가 해이해져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무수한 메뚜기 떼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을 상징하였다. 낙타는 유목민들이 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운송 수단이다. 특히 미디안의 침략에는 이 낙타가 병기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은 전투시에 상당한 기동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그 위용면에서도 상대방을 크게 위압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낙타를 사용한 예는 여기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적절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13.『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꿈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기도 하셨다. 기드온과 부라가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들어갔을 때, 두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일 기드온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14절과 같이 해몽하였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기드온에게 큰 확신을 주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면 그 해몽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 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일행이 잠복한 때에 꼭 맞춰 꿈과 해몽을 적병의 입을 빌어 들려주심으로써,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보리떡 한 덩어리” 표면적으로는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 기드온을 상징한다. “한 장막”은 미디안 전체 장막을 의미한다. 특히 장막이라는 표현은 유목민의 거주지이므로 미디안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용어이다.
보리떡의 영적인 의미는 오병이어에서 찾을 수 있다. 오병이어의 참된 영적 의미는 성만찬과 같은 개념인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보리떡을 먹는 것은 육적 몸은 죽고, 하늘의 생명을 먹고 영적 몸인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육적 장막이 반드시 무너져야만 하는 것을 알려준다. 미디안의 장막은 바로 육적 장막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14.『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이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란 의미이다. 즉 이것은 어떤 사실을 단정적으로 확증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동료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미디안 사람이 이처럼 판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은연 중에나마 미디안 진영에 기드온이란 인물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15.『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기드온은 그들의 꿈과 해몽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리라 약속했던 또 하나의 증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을 자기에게 붙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장비와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군대의 정신력이 더욱 중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전투력이 두려움으로 인해 매우 저하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싸움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것이다. 미디안 군대는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의 연합 군대를 가리킨다.
16.『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기드온이 수립한 횃불 작전은 비밀스럽게 적진 가까이 가서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 와중에 뛰어들어 싸우는 것이었다. 기드온이 자신의 용사 300명을 100명씩 세 대로 나눈 것도 보다 비밀을 잘 유지할 수 있고, 적들이 방어할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한꺼번에 기습 공격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사실 병사를 세 대로 나누어 미디안을 공략하는 것은 꼴짜기에 위치한 미디안 사람들을 공격하는데도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나팔과...횃불을 감추게 하고” 기드온 군대의 주무기는 이처럼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횃불이었다. 이는 전쟁 무기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다음과 같은 목적에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나팔을 붊으로써 마치 천군만마의 대 공격을 알리는 신호인 듯한 위협을 주고자 하였다. 이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천사들을 통해 들릴 나팔 소리를 상기케 한다.
항아리는 횃불을 감추는 데에 사용되었음은 물론, 깨뜨려질 때의 그 요란한 소리는 마치 적군을 짓밟아 부수는 듯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야밤에 횃불을 한꺼번에 밝힘으로써 군대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드온 군대는 갑자기 기습하여 대적들의 장막을 불태우려는 계산도 하였을 것이다.
17-18.『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횃불 작전은 한 두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드온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호에 따라서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명령했다.
“여호와를 위하라” 20절에는 '여호와를 위한 칼이여'라고 하여 '칼'(헤렙)이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기드온이 용사들에게 함성의 군호를 주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고, 20절은 300명이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어떻게 함성을 질렀는가 하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다.
19.『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이경 초에”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의 밤 시간 계산은 해지는 시각과 해뜨는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해질 때 부터 밤 10시경이 초경이며, 10시경부터 2시까지가 이경, 그리고 2시부터 해뜰때까지가 삼경이다. 따라서 이경 초라 함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를 가리킨다. 한편 신약시대에 와서 이러한 시간 구분법은 좀더 세분되어 일, 이, 삼, 사경으로 나뉜다. 이는 곧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인들의 시간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기점으로 하여 기드온 군대는 공격을 개시했다. 그 시각은 근무 교대를 위해 인수 인계를 함으로 말미암아 아무래도 외부 경계에 소홀히 하기 쉽다.
20.『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기드온의 군대가 횃불과 나팔 소리 그리고 함성 소리로 보초 교대 중에 있는 미디안 사람 뿐 아니라 편히 잠자고 있는 낙타 떼까지 놀라게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그곳은 골짜기였으므로 미디안 사람들에게는 평지보다 나팔 소리와 함성 소리가 더욱 크고 우렁차게 들렸을 것이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이 함성의 표현은 이스라엘 군대의 대표가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군대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대표자는 바로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종으로서 그분을 대리할 뿐이다. 한편 기드온은 300명 용사들에게 이 함성을 지르게 함으로써 이미 이 이름들로 인해 두려워 떨었던 미디안 군대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이다.
21.『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기드온의 용사들은 포위망을 좁히지 않고, 단지 적진의 사면을 에워싸고서 계속하여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나팔 소리와 함성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미디안 군인들의 마음은 무너져 버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은 혼비 백산하여 도주하기에 급급하였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승리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22.『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불의와 비리는 스스로 자멸하기 때문에 구태여 손을 써서 패망시킬 필요조차 없을 때가 많다.
“스레라의 벧싯다”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지명이다. 스레라를 여호수아 3:16과 열왕기상 7:46에 언급된 '사르단'과 동일시 하기도한다. 사르단은 여리고 북방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던 성읍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여리고 가까운 요단 나루 턱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그 부근에는 아벨므홀라가 있다. 이곳으로 도망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므낫세 남쪽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가 동원된 점으로 보아 '스레라'가 '사르단'과 동일한 성읍일 가능성이 크다. 답밧은 요단 강 건너편, 즉 동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 외에는 달리 정확한 위치를 획인할 수 없다. 혹자는 길르앗 산지의 라스 아부 타밧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23-24.『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에브라임 온 산지”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 남쪽에 넓게 펼쳐진 산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경계를 이루었다. 이 지파는 처음에는 전쟁에 소집되지 않았으나 도망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후에 소집되었다. 이로 보아 미디안 사람들이 주로 도망해 간 곳은 가나안 남부 지역임이 분명하다. “벧 바라”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다. 다만 문맥상으로 보아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요단 나루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나루턱을 취하고” 문자적으로는 '그 물들을 취하고'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벧 바라에서 여리고 동편 요단 나루턱까지 이르는 모든 나루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이 나루턱들을 지키게 한 것은 적들이 요단을 건너 동편땅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25.『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 이들은 미디안 연합군의 군사 지도자 중 일원이었지 미디안 족속의 최고 통치자들은 아니었다. 이것은 사사기 8장 5절에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언급된 점으로 보아서도 확증된다. 왜냐하면 한 족속에 두 왕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렙 바위...스엡 포도주 틀” 본 전투에서 오렙과 스엡이 죽임을 당한 것과 관련하여 알려진 지명이므로 이사야 10:26 외에는 성경 다른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오렙은 갈가마귀'를 스엡은 늑대를 뜻한다는 것 외에 달리 그것들이 어디에 위치하였던 바위이며 포도주 틀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영적으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 타작마당에서 타작하지 못하고 포도주 틀에 숨어서 했는데, 이제는 포도주 틀에서 적을 죽이는 장면이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기드온을 따르는 군사들의 숫자가 많아 그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두려움을 사용하셨다. 전쟁에서 이기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이긴 것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시려고 군대 숫자를 줄이셨다. 전쟁을 앞두고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들이 만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기드온에게 아직도 백성이 많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물가에서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삼백 명으로 기드온과 함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개처럼 물을 핧아먹는 자를 제외하고, 손으로 물을 떠서 핧아마시는 자를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을 할 수 있는 자를 선택하신 것이다.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방법은 삼만이천명의 군사중 99%를 줄여서 단 1%로인 300명만 남게 하신 것이다. 인간의 전쟁이라면 당연히 싸움이 되지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쟁이었기에 삼백명으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삼만 이천명의 군사에서 99%를 돌려 보내고 300명만 남은 기드온이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기드온과 그 부하 부라가 미디안의 진영까지 들키지 않고, 그것도 꿈과 해몽을 나누는 미디안 병사들의 막사에 정확히 도착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기드온과 그 부하 부라의 발걸음이 좀 늦었거나 좀 빨랐으면 그 미디안 병사들이 이야기하는 꿈과 해몽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은 이처럼 아주 세밀하고 치밀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기드온의 발걸음과 미디안 병사들의 꿈 이야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추시는 것이다.
미디안 병사의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 왔다고 한다. 당시 보리떡이라는 것은 제일 볼품없는 떡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볼품없는 보리떡은 다름 아닌 기드온이라는 것이다. 기드온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자신은 약한 므낫세 지파사람으로 자기 아버지 집에서도 가장 작은 자라고 했는데 이처럼 기드온은 많은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기드온이 가진 두려움의 원인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열등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두려움과 열등감을 터치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꿈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기도 하셨다. 기드온과 부라가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들어갔을 때, 두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일 기드온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14절과 같이 해몽하였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기드온에게 큰 확신을 주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면 그 해몽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 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일행이 잠복한 때에 꼭 맞춰 꿈과 해몽을 적병의 입을 빌어 들려주심으로써,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보리떡 한 덩어리” 표면적으로는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 기드온을 상징한다. “한 장막”은 미디안 전체 장막을 의미한다. 특히 장막이라는 표현은 유목민의 거주지이므로 미디안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용어이다.
보리떡의 영적인 의미는 오병이어에서 찾을 수 있다. 오병이어의 참된 영적 의미는 성만찬과 같은 개념인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보리떡을 먹는 것은 육적 몸은 죽고, 하늘의 생명을 먹고 영적 몸인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육적 장막이 반드시 무너져야만 하는 것을 알려준다. 미디안의 장막은 바로 육적 장막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이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며 소리쳤을 때 미디안의 모든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진영에서 자기들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한밤중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와 함성, 타오르는 횃불은 미디안 군사들의 마음을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러나 미디안 군사들의 공포심은 이스라엘의 군사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사들의 마음에 이미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 놓으셨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전쟁은 영적 전쟁으로 우상인 바알과의 전쟁이기도 하다.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출애굽, 여리고 성을 점령 할 때도 나팔을 부는 (쇼파르)것이 등장한다. 횃불(라피드)은 창세기 15장 7절에서 등장한다.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횃불언약에서 등장한다. 하나님의 죽음(예수 그리스도)을 상징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20장(십계명)에서도 횃불이 등장한다.
빛은 하나님이시며, 항아리에 빛을 보관했다. 고린도후서 4장 6-7절에서『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인간을 질그릇으로 표현했다. 깨지기 쉬운 항아리 같은 인간의 육체에 하나님이 빛을 두셨는데, 이게 하늘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항아리에 있는 빛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삼백이라는 숫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옛사람(미디안)은 죽고, 새사람(기드온)은 부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의 압제에 있지만 결국 바알의 우상 앞에 제압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압제 당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것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외에는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받아드리지 않으면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자요 하늘의 생명이 없는 자가 된다.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해서, 육적 자아를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육적 자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오직 삼백의 군사만이 필요하듯, 육적 자아인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부활하여 새생명으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