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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여인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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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라합
2015년 11월 15일 / 대예배 / 마태복음 1:1-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가나안 땅! 그 땅에서도 노른자위와 같은 여리고 성은 유서 깊은 도성입니다.
여고고학적인 발굴결과 당시 여리고 성의 넓이는 32제곱km(8에이커)로 보통 성의 크기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리고 성이 있던 구릉(mound or tell)은 아래쪽에 돌로 된 옹벽(retaining wall, 기초성벽)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토벽(earthen rampart)으로 둘러싸여 있었답니다. 옹벽은 무려 4-5m(12-15feet)의 높이에 달했고,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벽돌로 된 성벽(mudbrick wall, 외벽)이 있었습니다. 이 진흙벽돌의 제방(둑, embankment) 위로는 유사한 진흙벽돌로 된 성벽(내벽)이 있었는데, 그 내벽의 기저부위는 외벽의 바깥쪽 땅에 비해서 14m나 높았었습니다.
내벽 안쪽의 도시 면적은, 안쪽 도시와 요새화 된 성벽들이 차지하는 면적들을 다 합하면, 전체 약 9에이커 정도가 된답니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에이커 당 200명을 기준으로 하면, 상부 도시의 인구는 대략 1,200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금세기초 독일 팀의 발굴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이 외벽과 내벽 사이의 제방에서도 산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또한, 성 주변의 마을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도 성 안으로 피난을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했을 때 수천 명이 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거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위에 대해 잘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고대는 물론이었고 현재에도 오아시스 지역인 여리고 성내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샘이 성벽 안쪽에 있습니다. 공격 시점은 곡식 수확이 막 끝난 시기였으므로(수 3:15) 충분한 식량도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1930년대에 존 가스탕(John Garstang)의 발굴 자료와 또한 캐슬린 케년의 발굴에서 가나안 인들의 집들에서 곡식이 가득 찬 항아리들이 발견된 사실로도 입증이 됩니다. 풍부한 식량 공급과 충분한 물이 있었으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여리고 백성들은 아마 몇 년 동안을 버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라합(Rahab)의 집은 요새화된 성벽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수 2:15). 만일 성벽이 무너졌다면,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조되었습니다(수 2:12-21, 6:17, 22-23). 여리고 성의 둔덕 북쪽 끝에서 고고학자들은 라합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1907-1909년 독일팀의 발굴에서, 북쪽 성벽의 짧은 구간은 다른 부분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진흙벽돌 성벽의 일부분은 아직도 2m 이상의 높이로 서 있었답니다. 더구나 이 성벽에 잇대어 집들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이곳에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위쪽의 내벽과 아래쪽의 외벽 사이의 제방에 위치한 이곳은, 전쟁이 났을 때는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므로, 집값이 쌌을 것입니다. 이 지역은 도시 내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으로, 아마도 빈민촌이었을 것입니다.
그 여리고 성에 기생을 직업으로 삼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라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리고 성에는 얼마나 많은 기생들이 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생이 라합 한 사람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라합이라는 기생의 이름이 이스라엘 역사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그 기생의 이름이 이스라엘 역사에 최고 명문 집안인 다윗 왕가의 족보에 당당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대로 보고 지나치기에는 많은 여운이 남습니다.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성경의 기록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라합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능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라합이 여리고가 함락되어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멸망될 때에 그녀만이 구출되는 일은 여호수아서에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그 다음에 그녀가 어떻게 살다가 어떤 계기로 출세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하지 않았기에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상명세서를 엮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실상은 라합의 기록이 오히려 많은 편에 속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앞뒤가 완전히 잘려나가고 이름 몇 자만 댕그라니 남아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는 사람이 사사건건 ‘왜?’라는 이유를 제기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 못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기생처럼 그 사회로부터 비천하게 분류된 인생도 아주 많습니다. 기생처럼 힘이 없고 배경도 없고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리고 기생 라합이 여리고에서는 기생으로서의 삶을 살아갔지만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한 후에는 귀족이 되어 있었더라고 말한다면 누가 수긍하겠습니까?
▶ 그렇지만 성경에는 라합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언급하는 이상한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에 대한 이야기가 여호수아에 기록된 것이 전부가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 라합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에는 라합이 살몬이라는 남편과의 사이에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는 보아스를 낳았노라고 자랑스럽게 기록해 두었으며(마 1:5-6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 히브리서에는 구약의 영웅들의 열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에 이어 라합의 이름이 연이어 나올 정도로 큰 인물로 취급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경우 이름만 쓰여 있기도 합니다.
히 11:30-32 /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레 동안 여리고 성곽을 돌자 성벽이 무너진 것도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31) 창녀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자기 집에 숨겨준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여리고성 사람들이 멸망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32) 이제 얼마나 더 말해야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밖에 다른 예언자들의 신앙에 대해서 다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어떻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밖에 다른 예언자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기생 라합에 대하여는 한 구절씩이나 기록하였는지 말입니다. 물론 여리고 성에는 수 천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그 중에 구원받은 사람은 기생 라합과 더불어 그녀의 집안에 들어와 있는 친척들이었습니다.
㉢ 그 뿐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신약성경 야고보서에서는 행위로 믿음을 입증하는 인물 중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이야기에 뒤 이어 라합이 정탐꾼을 접대한 행위와 사신들을 다른 길로 돌려보내어 살려준 행위를 살아있는 믿음이라고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 뜻밖의 이야기입니다.
약 2:24-26 /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앙만이 아니라, 신앙과 함께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잘 새겨 두어야 합니다. 25) 창녀 라합의 선한 행동이 좋은 예입니다. 그 여인은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두었다가 다른 길로 안전하게 보내주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26)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은 몸이 죽은 몸인 것과 마찬가지로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에 나타난 그녀의 행실을 더 추적해 봅니다. 그녀가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주고, 추격하는 자들로부터 구출하여 돌려보내 준 공으로 자기의 부모 형제를 구원받게 한 것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보상은 모두 끝이 난 것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 후에 기생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했는지는 전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기생 라합의 남편으로 알려진 살몬이란 인물에 관해서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왜 하필이면 기생을 아내로 맞았는지,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필시 무슨 까닭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 여자와 결혼한 것도 심상치 않거니와 그것도 살몬은 지위가 있는 반면 라합의 신분은 기생인데, 어떻게 부인으로 맞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기록에 남기지 아니한 깊은 사연이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사랑의 이야기’ 밖에 길이 없습니다.
종족이 다르고 신분이 천하고 살아온 배경이 엄청나게 다른데, 어떻게 서로 알게 되어 부부가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단 하나 서로 사랑을 했었다면 이해가 갑니다.
그럴지라도 기생이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으로서는 부끄러운 신분입니다. 어쩌다가 기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기생이란 통속적으로 술자리에 나가서 시중을 들어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흥을 돋우는 직업입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주객들의 온갖 술주정을 다 받아 주어야 하는 추하고 고달픈 직업입니다. 고객이 요구하면 어떤 시중도 거절할 수 없는 가련하고 비정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기 몸까지도 내주어야 하는 비참한 비도덕적인 직업입니다.
한글 번역에는 기생이라 했지만 다른 번역에는 아예 창녀로 번역한 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생 라합을 창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여자가 메시아의 족보와 아브라함의 믿음 족보 그리고 다윗 왕의 족보에 버젓이 등명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하기야 우리나라에도 기생으로 출세한 여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고 서화나 거문고와 창으로 한 시대의 예술가로 촉망받기도 했던 명기들도 있었고, 나라를 위하여 적장을 끼고 강물에 투신한 의기도 있긴 합니다.
▶ 이해를 돕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주 세리와 창기를 입에 올리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세리나 창기는 모두 인간쓰레기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주 두둔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조소와 비난이 빗발치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바리새인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유대인들은 모독을 당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까지 했습니다. 세리와 창기가 쓰레기가 아니라 천사로 변화받게 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 당시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리는 돈 문제로, 창기는 성 문제로 지탄받고 정죄받은 자들입니다. 사실 그대로 말한다면 이 세상에 세리 아닌 사람이 누구며 창기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과연 ‘돈’에 관하여 전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누가 돈에 관하여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을 동정하신 것은 인간이란 모두가 세리와 창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성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남녀가 성 문제에 있어서 결백하다고 하겠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가 ‘나는 성에 관하여는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마음에 음욕을 품었으면 이미 간음하였다고 규정하셨듯이 사람이 한평생 단 한 번도 마음에 음욕을 품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자기 아내나 남편 이외에 다른 여자나 남자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 인간이란 모두가 창녀와 같은 존재라고 해도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기생 라합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녀는 여리고에서 숙박업을 경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여리고 성 문안 가까이 성벽 위에다 집을 짓고 여인숙을 경영한 것 같습니다. 라합이 주인이었는지 종업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역할로 보면 주인이자 종업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거기서 밥도 팔고 술도 팔았을 것입니다. 기생이라 한 것을 보면 그 이상의 봉사도 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이 더러워졌는데 기생 라합만 부정하다고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당시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끌려나온 여인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을 때 단 한 사람도 돌을 던지지 못했던 일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미루어 볼 때에 어떤 누구도 세리와 창기를 멸시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생의 변신을 그렇게 쉽게 받아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 어느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일하여 교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여 전도사가 있었는데, 교인들이 그 여 전도사의 출신에 대해서 알고부터는 지난날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던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 여 전도사를 교회에서 내쫓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 생각에는 그 교회가 크게 실수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교회의 정서이며 현주소가 아닌가 싶어 슬퍼집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이 기생의 집으로 숨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남자들이 기생집에 출입하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무나 가장 자연스럽게 출입할 수 있는 그런 집을 정탐꾼이 은신처로 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정탐꾼은 그 성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터인데 어떻게 기생집을 알고 있었겠습니까? 엘리야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사르밧 여인 집에서 흉년이 끝나기까지 머문 것처럼 정탐꾼도 믿음의 여인인 라합의 집으로 인도하심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도 됩니다.
아울러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했던 바리새인과 대조를 이루는 세리(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 여리고에 살고 있었던 삭개오)와 창기 및 죄인들, 일곱 귀신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께 헌신했던 점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에 기생 라합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인적 사항
라합은 아모리 족속의 이방 여인으로 여리고성에 사는 기생이었습니다. 그녀는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있었으나 남편과 자녀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이름 ‘라합’은 히브리어의 ‘폭 넓은’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 이름의 의미대로 두 정탐꾼중의 하나인 유다지파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고, 그의 후손인 다윗의 고조모가 되었습니다. 또한 ‘라빈스’는 그녀에게서 8명의 선지자와 제사장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메시야의 족보에 오른 네 이방 여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주요 생애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직물을 염색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 가던 여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리고 성으로 이주하여서는 선술집을 운영하는 기생이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경우처럼 선술집의 운영은 많은 이방인들이 드나들며 여러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적합한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자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믿음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점점 참 신으로 여기게 되었고 마음에 모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앞에 그 민족들의 정탐꾼 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생사를 선택하여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을 선택하느냐? 믿음을 선택해 구원을 받을 것이냐? ㅡ 두 갈림길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선택하였습니다. 즉 두 정탐꾼이 자기 집에 유하였을 때, 그들을 숨겨주고 대신 자신의 가족을 살려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서로의 약속은 이루어져 그 밤에 성벽에 달아 내린 붉은 줄이 증표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성을 쳐들어오는 날 창가에 드리워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번씩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다가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면 같이 성 주위를 돌던 군인들 비롯하여 모두가 다 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합의 집은 지켜주셨기 때문에 그녀가 있는 집의 성벽은 안전하게 유지되었고 매달아 놓은 붉은 줄은 눈에 뜨이게 펄럭였습니다.
이 때 두 정탐꾼으로 파견되었던 두 사람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즉시 라합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와 가족들을 모두 구원하였습니다. 결국 구원을 받은 그녀와 가족은 이스라엘 민족에 동화되어 살게 되었으며 그녀의 참된 신앙생활은 두 정탐 중의 한명인 유다지파의 살몬의 마음을 움직여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남편의 축복까지 받은 라합은 자녀인 보아스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였으며 이는 보아스가 이방여인 룻을 보았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을 택한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며느리 룻도 시어머니 라합(전 남편의 어머니 나오미)과 더불어 여호와 신앙을 더욱 돈독히 간직하는 여인이 되어 믿음을 전수한 결과 다윗을 낳은 예수님 족보의 조상이 되는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3. 라합의 신앙특징
1. 믿음에는 결단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 여인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에는 왕부터 수많은 백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용감한 용병들과 철옹성의 성곽은 그들이 충분히 의지하고도 남는 방어력이기 때문입니다. 라합과 그의 집에 머물던 사람들 외에는 성이 모두 허물어지고 함락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반면 라합의 이러한 신앙이 정탐꾼들을 숨겨두었다가 발각이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보호하여 살려주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라합의 신앙의 특징이 있음을 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지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하게 됩니다. 그 때는 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게 여겨짐으로 나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자기의 유익을 포기하는 체험과 용단(勇斷)이 없이는 갖추기 어려운 신앙의 자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긴 것 같이, 라합도 자기의 생명이나 민족의 운명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도 이러한 요구를 하셨나 봅니다.
창 12:1-2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서 고향을 떠나거라. 한데 어울려 사는 네 친척과 네 집안사람들을 떠나 내가 가르쳐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또한 네게 복을 내려 이름을 날리게 하리라. 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창 22:2 / 네가 무척 아끼는 외아들 이삭이 있지 않느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그리로 가면 내가 네게 산 하나를 일러 줄 터인데 그 산으로 올라가거라. 거기서 네 아들을 내게 번제물로 바치거라.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이나, 성을 공격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의 여부를 알고 난 후 확신을 가지고 진격을 하였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낸 이유는 결정적인 확신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라합을 통하여 승리의 확신을 그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수 2:9-11 /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셨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곳 지방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척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벌벌 떨고 있어요. 10) 당신들이 애굽을 나올 때 여호와께서 홍해를 말리신 일을 우리는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들이 요단강 동편에 사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쓰러뜨렸는가도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11) 그 소문을 듣고 우리는 무척 겁이 났습니다. 무서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모두들 풀이 꺾여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고 있던 중입니다. 당신네들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지요. 당신들이 받들어 섬기는 하나님이야말로 위로는 하늘을 다스리고 아래로는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바로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승전보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공격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선택한 라합은 도구로 쓰임 받아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용단은 기적을 수반한다는 그녀의 믿음은 참으로 본받을 믿음입니다.
2. 살몬과 결혼할 정도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살몬이 정탐을 마치고 라합과 헤어질 때, 서로의 약속은
① 창문에 자기가 타고 내려온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아 다른 집과 구별해 놓는 것이었으며,
② 그녀의 가족이 문밖으로 나올 때는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③ 만일에 그 일을 누설할 경우 많은 사람이 붉은 줄을 달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으로 비밀을 지켜야함을 서로 약속하였습니다.
여리고 전투가 끝난 후 다시 만난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살몬으로부터 자세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라합은 기생이란 직업도 정리하고 새로운 선민(選民)이 되어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고 살몬이 감동하여 결혼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장 큰 죄를 탕감받은 자가 가장 크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하신 것과 같이 기생이었던 라합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겼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신앙에는 용단이 있은 다음 온전한 섬김이 뒤따라야함을 볼 수 있습니다.
3. 온전한 신앙을 자녀에게 생생하게 교육함으로 아들 보아스가 룻을 선택하여 다윗의 가계를 잇도록 자부와 더불어 축복받은 여인입니다.
▶ 우리는 여기에서 잠시 살몬의 족보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 1:3-6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지난 주일에 다말에 관한 말씀을 보았듯이 신앙의 뼈대가 있는 족보는 계속 이어져서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습니다.
살몬의 가족은 유다 지파에 속해 있으며, 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로 이어집니다. 살몬의 가문은 뼈대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살몬의 아버지 나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유다 지파의 대장(우두머리)이자 통치자로서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길에서 유다 자손의 군대를 영솔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민 2:3 /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는 유다 지파가 진을 쳐라. 유다진의 군기 아래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의 지휘를 받아 군편성별로 진을 치도록 하여라.
대상 2:10 /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다. 이 나손이 유다 지파의 우두머리였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세운 후 제단을 봉헌할 때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제단 앞에 헌물을 드렸는데 제일 먼저 헌물을 드린 사람은 바로 유다 지파의 나손이었습니다.
민 7:12-17 / 그러자 각 지파 우두머리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제단 앞에 봉헌예물을 바쳤다. 첫째 날은 유다 지파의 우두머리인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예물을 바쳤다. 13) 그가 바친 예물은 성소에서 쓰는 세겔로 130세겔 나가는 은쟁반 한 개와 70세겔 나가는 은바리 한 개였다. 그는 이 두 그릇에 곡식제물로 기름을 섞은 고운 가루를 가득 채워 바쳤다. 14) 또 10세겔 나가는 금잔 한 개에 향을 가득 채워 바쳤다. 15) 또한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쳤고 16)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쳤으며 17) 화목제물로는 수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 이상이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바친 예물이다.
그런데 이런 나손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을 선발하여 그 땅을 탐지하게 했는데 그들 중 10명은 자기들이 탐지한 땅에 대해 나쁘게 보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하게 했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들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대장이었던 나손도 그들과 함께 광야에서 죽었고, 그 당시 아직 나이가 어렸던 나손의 아들 살몬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이 끝나고,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여리고를 공격하기에 앞서 우선 정탐꾼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과거에 자기와 함께 갔던 정탐꾼들 중 10명이 믿음 없는 보고를 하여 백성들을 낙심시킨 사건을 떠올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많은 정탐꾼들을 보내지 않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두 명만 보냈습니다.
수 2:1 /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진영이 싯딤에 있을 때 정탐꾼 두 사람을 가나안 땅으로 몰래 보냈다. 가나안 땅의 사정이 어떠한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특별히 여리고성의 규모와 형편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두 정탐꾼은 그 성읍 안으로 들어가 그날 밤을 라합이라고 하는 여인의 집에서 묵었다. 그 여인은 몸을 파는 사람이었다.
여호수아가 어느 지파의 누구를 정탐으로 보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가나안을 정탐했을 때, 믿음의 보고를 했던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에서 각각 한 명씩을 선발해서 보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광야 생활에서 살아남은 모세 당시의 인물로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인물은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의 갈렙 두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다시 정탐하러 갈 나이도 아니거니와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였기에 여리고를 정탐하는 일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정탐꾼 두 명을 고른다면 아마도 자기가 속한 지파에서 자기가 잘 아는 사람 중에서 선발하지 않았을까요? 유다 지파 갈렙의 입장이라면, 유다 자손들의 대장이었던 나손의 아들 살몬에게 정탐하는 일을 믿고 맡기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살몬의 아버지는 나손입니다. 모세의 형 아론은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살몬의 고모가 곧 모세의 형수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살몬은 사돈뻘이고 동시에 자기가 모시고 있는 모세의 친인척이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살몬이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도록 잘 알고 지내오던 청년을 정탐꾼으로 보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여리고를 정탐한 두 명의 정탐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 대장이었던 나손의 아들 살몬이 여리고를 탐지할 정탐꾼으로 선발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와 함께 두 명의 정탐꾼을 뽑았다면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정탐꾼들이 살려서 데려온 라합의 가족들을 보호하고 돌볼 책임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가장 강력한 유다 지파, 그 중에서도 유다 지파의 대장(우두머리)이자 통치자였던 아버지 나손을 이어 유다 자손들의 지도자가 된 살몬이 맡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기생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과 친족들은 목숨을 건지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라합과 같은 이방 여인, 그것도 기생과 상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살몬이 정탐꾼으로서 그녀를 구출했는지 혹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가장 강력한 유다 지파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들어온 그녀를 돌볼 책임을 맡았는지에 대하여 성경에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살몬이 라합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마태복음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5).
기생 라합이 살몬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룻기에 나오는 멋진 남자의 모델이 되는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유다 지파의 대장이요 통치자였던 나손의 손자요 살몬의 아들로서 유력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라합이 이방인, 기생이었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가문과 혈통을 따지고 겉으로 드러나는 거룩함을 중요시하는 콧대 높은 이스라엘 처녀들에게 있어서 보아스는 여러 가지 좋은 조건들을 갖추었지만 한 가지 결격 사유를 가진 신랑감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센 여자들이라면 기생의 아들과 결혼해서 기생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을 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보아스 쪽에서 그런 겉멋만 잔뜩 들어있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여자들을 거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기 어머니 라합을 멸시하는 이스라엘 처녀들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이방 여인 룻에게 더 마음이 끌렸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오랜 기간 연애도 못해보고 노총각으로 늙었지만 보아스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족들의 독촉과 나이의 압박에 쫓겨서 원치 않는 상대와 결혼하기보다는 비록 늦게 결혼하더라도 제대로 된 배우자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 민족의 신들을 버리고(룻 1:15, 16),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의지하러 온 룻은 그 믿음으로 행한 일에 대하여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룻 2:11-12).
▶ 라합의 첫 아들인 보아스는 자라면서 어머니 라합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수없이 듣고 자라났을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대를 이어 신앙이 전수되어 내려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일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값진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배우고 자란 보아스는 룻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모압댁이 시어머님을 어떻게 모셨는지 내가 다 들어서 알고 있소. 또 어떻게 해서 고향과 부모님 품을 떠나 낯선 백성이 사는 이 땅으로 오게 되었다는 말도 내가 자세히 들어서 알고 있소. 여호와께서 모압댁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시고 그대로 갚아 주시길 바라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안식처를 찾아 그 품안에 들어온 모압댁에게 넉넉하게 갚아 주시길 바라오.”(룻 2:11-12)라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이는 분명 같은 이방인이었던 어머니 라합의 경우를 회상하면서 동정하는 마음에서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에게도 축복을 허락하시사 보아스로 아내를 삼게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룻과 전 남편 시어머니인 나오미에 관한 것만 나오지만, 내막적으로는 현 남편의 시어머니인 라합과 많은 시간을 대화하며 보냈을 것입니다. 이 때 룻은 시어머니의 신앙적 용단과 하나님의 섬김의 헌신을 더욱 본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선택하였을 때에 다말, 룻, 밧세바에게 다말은 시할아버지인 야곱, 룻은 시어머니 라합과 남편인 보아스, 밧세바는 다윗의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라합은 신분이 천하고 배우지 못한 이방 여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전수받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녀의 신앙의 3요소는 ‘믿음의 용단, 철저한 순종, 신앙의 전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행함으로 인정받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부족한 오늘의 우리 신앙에 많은 도전을 주는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만을 가장 소중히 여겨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사는 라합과 같은 신앙인들이 되십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남을 멸시하고 비난합니다. 죄인이나 창기, 사생아나 혼혈아, 외국인들을 너무 쉽게 멸시하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개나 돼지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소위 의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죄인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마 9:10-13 /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평판이 별로 좋지 않은 세리들과 죄인으로 취급받는 이방인들도 많이 손님으로 와 있었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왜 당신네 선생은 저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거요?” 1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대답하셨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우라. ‘내가 바라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나는 스스로 의인이라 칭하는 사람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생 라합이 지녔던 믿음과 행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행동과 사랑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대를 중시하여 자손들에게도 하나님을 심어주는 믿음의 선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함으로 우리들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까지 이름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족보 즉 생명책에 기록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