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2022.04.20.
하늘이 노란색이 아니라구요?
바리
두둑한 풍채의 아줌마가 양손에 커다란 주걱을 든다. 떡볶이가 주걱을 따라 슥슥 뒤섞이며 빨갛게 윤기를 낸다. ‘코코 잉글리쉬’가 적힌 남색 가방을 맨 송이가 떡볶이 아줌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송이의 시선은 떡볶이에 있다. 송이의 새하얀 양 볼이 입맛을 다시며 살짝 꿈틀거린다. 송이가 침을 꼴깍 삼키니 움찔거리는 볼을 따라 송이의 양 볼을 덮은 하얀 솜털도 함께 꿈틀거린다. 아파트 단지의 상가 3층 구석에 있는 떡볶이 가게는 송이의 단골집이다. 송이는 같은 상가 2층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닌다.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난 겨울부터 송이에게는 루틴이 생겼다. 수업 시작시간인 5시보다 20분 빨리 나와 오백 원을 내고 컵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이다. 하지만 송이는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그 루틴을 지키지 않는다. 떡볶이 아줌마는 송이의 얼굴을 2주만에 본다. 송이를 발견한 아줌마는 떡볶이를 휘젓던 날쌘 주걱을 멈추고 송이를 부른다. 아줌마가 다정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송이~ 살이 쪽 빠진 것 같아.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어~ 어디 아파? 떡볶이 줄까?”
송이가 통통하고 하얀 팔을 들어 팔짱을 끼며 말한다.
“저 학원 다니잖아요.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서 간식이 목구멍에 들어가질 않아요”
“어머, 벌써부터 숙제가 많은거야? 요즘 초등학생은 바쁘구나. 다음에 먹으러 와. 아줌마가 떡 많이 줄게.”
송이는 학원이 있는 2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좁은 비상구 계단으로 향한다. 송이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 그런데 아무래도 먹을 수 없다. 더운 여름의 시작부터, 송이의 목구멍으로 간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상가 떡볶이도, 빠삐코 쮸쮸바도, 기다란 줄넘기 젤리도 모두 송이의 목구멍을 틀어막는 것만 같다. 송이는 생각한다. 커다란 고양이 주먹이 내 목구멍을 아주, 막고 있는 거 같아. 떡볶이 아줌마 얼굴만 한 꿀떡 다섯 개가 뱃속에 가득 들어있는 거 같아. 송이는 맛없는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인상을 쓴다. 송이의 눈썹 위 미간이 통통하게 찌푸려졌다. 계단을 내려가는 송이의 발걸음이 무겁다.
2층으로 내려가던 송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가랑과 마주친다. 계단의 중간에서 송이와 가랑은 멈춰섰다. 한여름에도 둘 사이에 서늘한 긴장감이 감돈다. 송이가 서 있는 계단의 세 칸 아래 가랑이 서 있다.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흰색 미키마우스 반팔을 입은 가랑이 송이를 바라본다. 가랑은 녹색 반바지 주머니에 넣어뒀던 고사리같은 오른손을 꺼낸다. 가랑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사과맛 마이쮸를 슬쩍, 송이에게 건넨다. 송이는 아무 말 없이 통통한 손바닥을 펴서 가랑에게 마이쮸를 받는다. 마이쮸는 언제부터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인지, 뜨뜻하고 물렁하다. 마이쮸를 건넨 가랑의 손바닥이 찐득하다.
가랑이 송이에게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너, 몇 마디 남았어?”
송이가 답한다.
“두 마디”
토다다닥,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똘망한 눈망울의 은빈이 털실로 뜬 진분홍 나시 원피스를 휘날리며 계단을 뛰쳐 올라온다.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송이의 눈이 커진다. 송이가 재빠르게 물렁한 마이쮸를 청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은빈은 가랑을 지나쳐 송이 옆에 와서 멈춰 섰다. 은빈이 숨을 헉헉댄다. 은빈은 조막만한 손으로 송이의 팔뚝을 꾸욱 눌러 잡는다. 은빈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송이의 통실한 팔뚝에 자국을 낼 듯이 패여 들어간다. 은빈은 짙은 쌍커풀의 사슴같이 커다란 눈을 흘기며 가랑을 째려본다. 가랑은 시선을 돌려 계단을 바라본다. 송이의 심장이 뛴다. 은빈이 송이의 팔목을 잡아 끌어당긴다. 둘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간다. 송이가 통통 달리며 순순히 은빈을 따라간다. 가랑은 허공을 바라보며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다. 가랑은 그제야 끈적한 손바닥을 녹색 반바지에 슥슥 닦아낸다.
은빈은 송이를 데리고 상가 2층 화장실에 도착했다. 쾌쾌한 화장실 냄새가 송이의 코를 찌른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다. 은빈이 송이의 통통한 팔목을 끌고 화장실의 제일 안쪽 칸으로 송이를 끌고 간다. 마지막 칸의 문 앞에 멈춰선 송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은빈을 바라본다. 은빈은 자신의 왼손 검지를 송이에게 보여준다. 은빈의 왼손 손톱에는 조각같은 분홍빛 장난감 매니큐어가 삐뚤빼뚤 발려져 있다. 은빈이 오른손 손바닥으로 왼손 검지의 제일 윗마디, 지문이 있는 부분을 가린다.
“기억나지? 화요일에 급식에 나온 파인애플 달라고 했는데 안 줬던 거. 그래서 너 하트 하나 날렸었지”
이어서 은빈은 검지의 중간 마디까지 손바닥으로 가리며 말한다.
“그리고 이건 오늘 너가 가랑이랑 대화해서 없어진 거야. 너 이제 하트 하나 남았어.”
은빈의 눈빛이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처럼 살벌하다. 송이가 은빈에게 세 번의 실수를 해서 손가락 세 마디가 사라지면, 송이와 가랑의 입장은 바뀐다. 한 번만 더 은빈의 심기를 건드리면 은빈은 송이를 버리고 가랑에게 간다.
지난주, 가랑은 은빈에게 세 가지 실수를 해버렸다. 억세게 비가 내리던 날, 은빈이 가랑에게 자신이 먹던 피카츄를 한 입 먹으라고 건넸다. 하지만 가랑의 한 입은 은빈이 생각한 한 입에 비해 컸다. 가랑은 그렇게 손가락 첫 마디의 하트를 잃었다. 매미가 귀 아프게 울던 날, 은빈은 가랑에게 상가 마트에서 포도 맛 껌을 훔치라고 요구했다. 가랑은 자신의 터질듯한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잽싸게 손이 닿는 대로 껌을 집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포도 맛이 아닌 사과 맛 껌이었다. 이제 가랑에게 남은 하트는 하나뿐이었다. 가랑은 영어학원에서 송이를 만나도 절대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 무렵 가랑은 누워있는 자신의 배 위에 은빈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꿈을 꿨다. 그 꿈을 꾼 날 가랑은 컵 떡볶이를 사 먹을 돈을 아껴 은빈에게 보석 모양 사탕 반지를 사다 줬다. 영어학원에서 축구를 주제로 수업을 하던 날, 은빈은 좋아하는 축구선수로 차두리를 뽑았고, 이어서 가랑은 박지성을 뽑았다. 그 반에서 차두리를 뽑은 사람은 은빈뿐이었다. 그렇게 가랑은 마지막 하트를 잃었다.
은빈의 단짝 친구 자리를 두고, 세 번을 돌아 다시 송이 차례다. 구릿한 화장실 냄새가 송이와 은빈 주변에 진동한다. 송이는 두 개 남았던 목숨이 하나로 줄었다는 은빈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다. 송이는 은빈의 커다란 눈망울에 비친 핏기 어린 혈관 가닥을 바라보고 있다. 은빈과 송이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송이의 입안에는 삼키지 못한 침이 고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화장실에 가까워진다. 은빈이 아랫입술을 물어뜯어 은빈의 혀끝에 아릿한 피 맛이 난다. 은빈이 새초롬한 참새처럼 재빠르게 말한다.
“하트 하나 남은 거 기억해. 알겠지? 수업 끝나고 우리 집으로 놀러와. 떡볶이도 사올래? 컵으로 두 개 사오면 하나씩 나눠 먹자”
은빈이 송이에게 팔짱을 착, 낀다. 땀이 난 은빈의 팔과 송이의 팔이 끈끈하게 엉겨 붙었다.
송이는 양손에 컵 떡볶이를 들고 은빈의 집 신발장에 서 있다. 은빈이 양손으로 떡볶이를 받아들며 방안으로 토다닥, 달려 들어간다. 송이는 익숙한 듯 신발을 벗고, 은빈을 따라 자그마한 은빈의 방으로 들어간다. 은빈이 책상 아래 구석에서 제 몸집만 한 박스를 들고 와 송이 앞에 내려놓는다. 종이박스 안에는 피규어가 한가득 담겨 있다. 대부분의 피규어는 터질 듯이 커다란 가슴에 알록달록한 비키니를 입은 차림이다. 은빈이 피규어를 하나씩 꺼내어 바닥에 세워놓는다.
“아빠 방에서 찾은건데, 아빠가 가지고 놀아도 된대. 역할놀이 하자”
은빈은 송이에게 떡볶이가 담긴 종이컵을 하나 들어 건넨다. 은빈이 거친 손길로 이마와 인중에 맺힌 송글송글한 땀을 슥슥 닦아낸다. 은빈의 분홍빛 털실 나시 원피스가 송이의 눈에 들어온다.
“너 그거 좋아하는 원피스인가보네. 근데 안 더워?”
은빈이 떡볶이 떡 하나와 대파 한 조각을 이쑤시개로 찍어 한 입에 넣는다.
“안 더워. 엄마가 미국 가기 전에 만들어준거야. 이거 입고 지내면 엄마가 돌아온다고, 아빠가 그랬어.”
은빈은 야무지게 떡볶이를 씹어 먹고 있다. 송이는 차갑게 식어서 종이컵 벽면에 달라붙은 밀떡 하나를 이쑤시개로 찍어 든다. 양념이 굳은 기다란 밀떡을 바라보자 송이의 목구멍과 뱃속이 턱, 막혀버린다. 송이는 천천히 떡볶이를 입에 가져다 넣는다. 찐득한 양념이 굳어버린 밀떡 한 가닥을 입속에 굴려가며 양념을 빨아먹는다. 굳은 떡을 툭, 툭, 이로 조각을 내며 씹는다. 삼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송이가 눈을 질끈 감고, 꿀꺽, 삼켰다. 씹다 만 떡 조각들이 좁은 목구멍을 타고 꾸역꾸역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