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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 260자에 담긴 삶의 깨달음 *
* 출처: 신동기 著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刊) p298-327
동북아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삼장법사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하반야바라밀다’ 정도의 불경 구절은 대체로 기억을 한다. 사찰에서는 물론 불교 관련 행사나 영화 같은 데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 아닌 불교의 감초가 바로 이 ‘마하반야바라밀다’ 구절이기 때문이다.
BC544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원시불교, 부파불교 시기를 거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 아 지역에서 ‘대승불교’로 활짝 꽃핀다. ‘마하반야’로 시작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보통 《반야심경》이라 부른다)은 이 ‘대승불교’의 반야계통 집대성인 《대반야경》 600권의 미묘한 이치를 함축하고 있는 경전이다.
《대반야경》의 421권과 429권에서 주로 추려낸 내용과 《다라니경》에서 가져온 주문呪文으로 구성된 이 경전은 대승불교 공空사상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 분량이 한자로 불과 ‘260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는 《반야심경》의 한역본은 8종류 또는 11종류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이는 《반야심경》은 현장(602?~664)의 번역본이다. 소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로 등장하는 현장은 당나라 때의 실존 인물로, 위진남북조시대의 구마라집(344~413)과 함께 동북아 지역의 불교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반야심경의 핵심 가르침은 ‘공(空)사상’
《반야심경》 가르침의 핵심은 ‘공空사상’이다. ‘공空’은 산스크리트어 ‘슌냐’의 의역으로,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현상은 모두 각종 조건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조건이 변하게 되면 현상도 역시 그것을 따라 변하는 것이며 본래 진정한 실체는 없다.”
한마디로 모든 존재는 현상일 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다는 이야기다. 원시불교에서는 현상을 다음과 같은 ‘연기緣起’의 진리로 설명한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앞선 원인인 ‘인因’과 환경조건인 ‘연緣’의 결합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이 인연因緣이 결합하면 존재하고 인연이 흩어지면 존재도 사라진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현 상만 있을 뿐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에게 공空사상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매진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진데, 지식적 탐욕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자가 독자들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제대로 전달하겠다면 그것은 과욕이다. 언감생심이다.
여기에서는 대승불교의 반야 사상, 나아가 부처의 팔만사천법문 대장경 전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야심경》 내용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그 구성요소인 원시불교의 핵심 가르침 등을 알아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정도만 이해해도 일반인 입장에서 개인적 삶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자로 된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는 만큼, 한자의 의미를 새기면서 기존 번역 및 불교 관련 내용들을 참조하고 아울러 현실적 관행도 함께 고려했다. 먼저 《반야심경(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전문을 살펴보자.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고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 空 空卽是色 受想行識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 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故 得阿耨多羅三藐 三菩提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 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반야심경 공부를 위해 알아야 할 두 가지 지식
반야심경의 의미를 알아보는 데 있어서는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반야심경은 원시불교의 핵심 사상에 대한 부정
첫 번째는 ‘반야심경은 궁극적으로 원시불교, 심지어는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들까지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원시불교의 사상과 실천인 12연기와 삼법인, 사성제와 팔 정도 그리고 대승불교의 6바라밀이 세속 차원(世俗諦세속제)을 다루고 있는 반면, 반야심경은 세속 너머의 공空 세계(勝義諦승의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깨달음 이전(此岸차안)과 깨달음 이후(彼岸피안)로 그 영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금강경》의 ‘뗏목 비유(筏喩벌유)’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강을 건너는 데 있어 그 수단인 ‘뗏목’과 같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강을 건널 때 뗏목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강을 건너고 난 다음에는 그 뗏목을 버려야 하듯이, 깨달음의 세계 역시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 깨달음의 수단인 종교와, 그 종교의 가르침을 버 려야 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현세에서 깨닫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 가르침들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결국 이 수단들을 다시 부정하게 된다. 이런 세속과 깨달음의 세계, 일시적 긍 정과 궁극적 부정이 함께하는 대승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바로 ‘반야심경’이다.
* 의역과 음역의 선택적 사용
반야심경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 크리트어로 되어 있는 반야심경을 한자로 번역하는 데 있어 ‘명사는 의역意譯과 음역音譯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명사 이외의 동사와 같은 것들은 모두 ‘의역’이다. 의역은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으로 영어의 ‘Basketball’을 ‘농구(籠球)’로 번역한 것과 같은 경우이고, 음역은 ‘발음’ 자체를 한자로 그대로 옮긴 것으로 ‘France’를 ‘불란서(佛蘭西)’로 바꾼 것과 같은 경우이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를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로 바꾼 반야심경은, ‘의역’한 내용은 뜻은 통하나 발음은 원래의 산스크리트어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음역’한 내용은 발음은 원문의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하나 ‘한자 자체’는 표의문자이면서도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 더 첨언하자면, 반야심경의 전체 내용은 대승불교사상의 압축이지만, 그 구성요 소는 원시불교의 핵심 가르침들로 되어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이해하려면 원시 불교의 핵심 가르침들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서는 한자로 된 반야심경을 한글로 푸는 과정에서 반야심경 전체 내용에 대한 번역과 함께, 그 구성요소들인 원시불교의 핵심 가르침들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을 곁들였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제목에 담긴 의미
제목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먼저 전체 제목에서 의역과 음역을 구분해 보면 마하摩訶와 반야般若, 바라밀다波羅蜜多는 모두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단순히 한자로 바꾸었을 뿐인 음역이고, 심心과 경經은 의미로 번역한 의역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마하는 ‘크다’ 또는 ‘위대한’이라는 뜻이고, 반야에 해당되는 ‘프라쥬냐’는 ‘큰 지혜’ 또는 ‘큰 깨달음’이라는 뜻이며, 바라밀다에 해당되는 ‘파라미타’는 ‘건너편 기슭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마하반야바라밀다(摩訶般若波羅蜜多)’의 전체 의미는 이렇게 된다.
큰 깨달음의 세계인 건너편 기슭에 이르다.
여기서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는 ‘바라밀다’로 음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건너편 기슭에 이르다’라는 의미 그대로의 한자인 ‘도피안(到彼岸)’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뗏목 비유와 관련하여 ‘이쪽 강가’인 차안此岸은 현실 세계인 ‘예토(穢土)’를 말하고, ‘저쪽 강가’인 피안彼岸은 ‘정토(淨土)’ 또는 ‘깨달음의 세계’라 말할 때의 그 ‘피안(彼岸)’에 이른다는 말이다.
뗏목이 종교의 비유이듯 여기에서의 도피안 역시 비유이다. 단순히 ‘강 건너편 기슭에 이르다’ 의 의미가 아니라, ‘지혜를 완성하다’ 또는 ‘지혜에 이르다’라는 의미의 비유이다.
심心은 ‘핵심’이라는 의미를 지닌 산스크리트어 ‘하리다야’의 의역이고, 경經은 ‘경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수트라’의 의역이다. 따라서 심경心經은 ‘핵심 경전’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잠깐 ‘경經’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반야심경의 한 역본漢譯本 번역자인 삼장법사의 원래 법명은 현장이다. 그를 ‘삼장(三藏)’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불교의 삼장(三藏), 즉 경(經), 율(律), 논(論)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경, 율, 논은 각각 이런 의미가 있다.
경經 : 부처님의 가르침
율律 : 승가의 규범
논論 :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經을 해설한 내용
따라서 삼장三藏은 보통명사로서, 삼장법사는 이 셋을 통달한 법사라는 의미다. 따라서 반야 심경의 전체 제목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의 의미는 다음 내용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의미
이번에는 반야심경의 본문 앞 구절인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의 의미를 알아보자.
먼저 ‘관자재觀自在’는 ‘관세음觀世音’과 같은 말이다. 둘 다 산스크리트어로 ‘자유롭게 관찰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아바로키테스바라’를 한자로 의역한 것이다. 물론 한자의 의미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삼장법사 현장이 의역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세상을 자유롭게 관찰하는 보살’이라는 의미이고, 현장에 앞서 구마라집이 의역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세상의 소리를 관찰하는 보살’이라는 의미다.
행行은 ‘실행한다’로 동사이고, 심深은 ‘깊은’이라는 의미로 뒤에 나오는 명사를 수식하는 말 이다. 반야般若와 바라밀다波羅密多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산스크리트어 프라쥬냐와 파라미타의 음역으로 각각 ‘지혜’와 ‘완성하다’라는 의미다. ‘시時’는 ‘때’라는 의미다.
따라서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의 의미를 이어서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지혜의 완성을 실행할 때
이어 나오는 조견照見은 ‘비추어 보다’의 의미이고, 오온五蘊은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의미하는 ‘판차스칸다’를 의역한 것이며, 개공皆空은 ‘모두 비어 있다’ 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오온五蘊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다섯 가지 요소로서, 색은 육체와 같은 물질요소를, 수·상·행·식은 정신요소를 말한다.
이어서 도度는 ‘건너다’의 의미로, 앞의 뗏목 비유에서 이야기한 ‘이쪽 강가(차안)에서 저쪽 강가(피안)으로 건넌다’라는 뜻이다. 일체一切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고액苦厄은 ‘고통과 재앙’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의 전체 의미는 이렇게 된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실체가 없음을 비추어 보고 모든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났다.
이것을 앞의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와 이어서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지혜의 완성을 실행할 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모두 실체가 없음을 비추어 보고 모든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났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의 의미
이어서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亦復如是)’의 의미를 알아보자.
사리자舍利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샤리푸트라’의 음역이고,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은 ‘물질은 실체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은 물질과 다르지 않다’라는 뜻이다. 색色은 ‘물질’이나 ‘육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루파’의 의역이고, 공空은 ‘실체가 없다’라는 의미를 가진 ‘슌냐’를 의역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물질이나 육체에 해당하는 색色은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490?~BC430?)가 만물의 근원(Arche)이라고 주장한 ‘흙·물·불·공기’를 의미한다. 이처럼 불교에서 물질의 근원을 고대 동양 관점에서의 만물의 근원이자 변화원리인 5행의 목·화·토·금·수가 아닌, 서양 관점의 흙·물·불·공기 4원소로 보는 이유는 바로 불교가 브라만교의 영향을 받았고, 브라만교가 다름 아닌 유럽인의 조상 아리안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물질은 곧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 곧 물질이다’라는 의미다. 수상행식역부여시受想行識亦復如是는 ‘수·상·행·식 역시 이와 같다’라는 의미로, 물질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신작용인 수·상·행·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색·수·상·행·식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오온五蘊으로, 앞에서 설명했듯이 색色은 ‘육체’를 말하고, 나머지 네 가지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
정신작용에 있어 수受는 산스크리트어 ‘베다나’를 의역한 것으로 ‘감각작용’을 의미하고, 상想은 ‘삼즈나’를 의역한 것으로 ‘표상작용’을 의미한다. 행行은 ‘삼스카라’의 의역으로 ‘의지작용’을 의미하며, 식識은 ‘비즈나나’의 의역으로 ‘인식작용’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신작용들 역시 물질이나 육체와 다름없이 사실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전체를 이어서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사리자여 물질은 실체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은 물질과 다르지 않다. 물질 은 곧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 곧 물질이다. 감각·표상·의지·인식과 같은 정신 작용 역시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중무색 무수상행식’의 의미
다음 문장인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을 알아보자. 여기서 사리자를 제외한 모든 문장은 의역이다. 사리자舍利子는 ‘사리자여’라는 뜻이고,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에서 ‘시제법’은 ‘이 모든 현상적 존재들’을 의미하며, ‘공상’은 ‘실체가 없는 상태’라는 의미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의 의미이고, 불구부정不垢不淨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의 의미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은 ‘늘어날 일도 없고 줄어들 일도 없다’라는 의미다.
또한 시고是故는 ‘그러므로’의 의미이며, 공중무색空中無色은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고’의 의미이고,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은 ‘감각·표상·의지·인식작용과 같은 정신작용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전체를 이어서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사리자여, 이 모든 현상적 존재들은 실체가 없는 상태이니, 생겨날 일도 없어질 일도 없으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날 일도 줄어들 일도 없다. 그러므로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고, 감각·표상·의지·인식작용과 같은 정신작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의 의미
이어서 나오는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라는 문장은 모두 의역이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는 ‘눈·귀·코·혀·몸·생각도 존재하지 않으며’의 의미이고,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은 ‘색· 소리·냄새·맛·감각·개념도 존재하지 않으며’의 의미이며, 무안계無眼界 내지乃至 무의식계無意識界는 ‘시각 인식기능부터 시작해 의식 인식기능까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 모든 고통을 ‘108번뇌百八煩惱’로 표현한다. 108번뇌는 번뇌의 숫자가 108개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에게 번뇌를 일으키는 모든 통로와 그 작용 관계를 계산한 숫 자가 바로 ‘108’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눈·귀·코·혀·몸·생각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육근)으로, 색·소리·냄새·맛·감각·의식이라는 여섯 가지 인식대상(六境육경)을,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라는 여섯 가지 인식기능(六識육식)을 통해 접촉(觸촉)함으로써 느낌이나 생각을 갖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 열여덟 가지(=6×3)가 바로 모든 번뇌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우리는 볼륨을 끄고 TV에서 교통사고 뉴스를 시청한다고 할 때도 사실 시 각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고장면을 보면서 끼이익 하는 브레이크 밟는 소리, 타이어 타는 냄새, 충돌하는 느낌 등도 함께 느낀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면서 몸을 움츠리거나 전율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시각(눈)이라는 하나의 감각 만을 사용할 때도 사실은 다른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함께 동원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앞의 열여덟 가지 요소에 ‘눈·귀·코·혀·몸·생각’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의미하는 숫자 6을 곱해준다. 그렇게 해서 나온 숫자가 바로 ‘108’인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감각기관인 눈·귀·코·혀·몸·생각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대상인 색·소리·냄새·맛·감각·개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기능인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의 의미
다음에 나오는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역시 모두 의역이다.
무무명無無明은 ‘어리석음도 없고’라는 뜻으로 ‘무명’은 산스크리트어로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아비드야’의 의역이다.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은 ‘역시 어리석음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의 의미이고, 내지乃至는 ‘~부터 ~까지’의 의미다. 무노사無老死는 ‘늙고 죽는 것이 없고’의 의미이고,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은 ‘역시 늙고 죽는 것이 없어지는 것도 없다’라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원인을 ‘집착(集집)’으로 본다. 이 ‘집集’은 원시불교에서 말하는 12연기緣起에 의해 일어난다. 고통을 발생시키는 12연기와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무명(無明) : 연기緣起의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
② 행(行) : 그런 무지 상태에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잘못된 행위
③ 식(識) : 행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식
④ 명색(名色) : 인식대상인 색·성·향·미·촉·법
⑤ 육입(六入) : 명색名色을 느끼는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
⑥ 촉(觸) : 여섯 가지의 인식대상과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의 인식기능을 통해 만나는 것으로, ③, ④, ⑤, ⑥은 동시에 발생
⑦ 수(受) : 그 만남(촉觸)에서 갖게 되는 고통 또는 기쁨
⑧ 애(愛) : 고통과 기쁨으로 인해 발생하는 미움 또는 욕심 상태
⑨ 취(取) : 미움 또는 욕심이 더 깊어진 것으로 폭행·살인 또는 도둑질과 같은 행동
⑩ 유(有) : 그런 행동(취取)으로 인해 남게 되는 영향
⑪ 생(生) : 그런 영향력(유有)이 나타나는 삶의 전 과정
⑫ 노사(老死) : 그런 과정(생生)으로 발생하는 모든 고통
지금까지 설명한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잘못된 행위도 없고 잘못된 행위가 없어지는 것도 없고,
인식도 없고 인식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색·성·향·미·촉·법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안·이·비·설·신·의가 없어지는 것도 없고,
인식대상과 감각기관의 만남도 없고 그 만남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고통과 기쁨도 없고 고통과 기쁨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미움과 욕심도 없고
미움과 욕심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폭행·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행동도 없고
폭행·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행동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그런 행동의 영향도 없고
그런 행동의 영향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영향력이 나타나는 삶의 전 과정도 없고 영향력이 나타나는 삶의 전 과정이 없어지는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 고통도 없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없다.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의 의미
이어지는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도 모두 의역으로 그 뜻은 다음과 같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는 ‘고·집·멸·도가 없다’라는 의미이고, 무지無智는 ‘깨달음도 없다’의 의미이며, 역무득亦無得은 ‘역시 얻을 것도 없다’의 의미다. 따라서 세 문장 전체를 이으면 이런 의미가 된다.
고·집·멸·도가 없고 깨달음도 없고 역시 얻을 것도 없다.
여기서 고·집·멸·도는 다름 아닌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에서의 사성제四聖諦를 말한다. 사성제는 고통인 ‘고苦’와 그 고통의 원인인 ‘집集’,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멸滅’, 고통을 없애는 방법인 ‘도道’ 네 가지를 말한다. 먼저 고苦는 여덟 가지 고통, 즉 다음과 같은 인생팔고人生八苦를 말한다.
① 윤회의 이 세상에 태어나는 ‘생고(生苦)’
② 늙어가는 ‘노고(老苦)’
③ 병으로 인한 ‘병고(病苦)’
④ 죽음으로 인한 ‘사고(死苦)’
⑤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⑥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구부득고(求不得苦)’
⑦ 원망하고 증오하는 이들과도 무리지어 살아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⑧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오음성고(五陰盛苦)’
이런 고통들의 발생 원인인 집集이 바로 앞에서 말한 ‘12연기’이고, 그 고통을 없애는 방법인 도道가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다. 석가모니가 사성제와 함께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에서 말한 팔정도는 다음과 같다.
①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
②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正思)
③ ‘바르게 말하는’ 정어(正語)
④ ‘바른 행동을 하는’ 정업(正業)
⑤ ‘바른 생활을 하는’ 정명(正命)
⑥ ‘바르게 꾸준히 노력하는’ 정정진(正精進)
⑦ ‘자신의 마음과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는’ 정념(正念)
⑧ ‘선정에 몰두하는’ 정정(正定)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의 의미
이어지는 내용인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 도몽상 구경열반(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 顚倒夢想 究竟涅槃)’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는 의역으로 ‘따라서 얻을 바가 없으므로’의 의미이고, 보리살타菩提薩埵는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의 음역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보리살타는 보통 ‘보살菩薩’이라는 줄임말로 사용된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석가모니 부처님, 관세음보살 등 대승불교에서의 여러 보살들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수행자와 신도 등 다양한 부류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여성 재가신자들을 보살이라고 호칭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든 관세음보살이든 수행자든 또는 여성 재가신자 등 모두 ‘깨달음을 추구한 사람’ 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보살이라는 호칭과는 괴리가 없다.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密多故에서 ‘의依’는 ‘의존하다’의 의미이고,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는 앞서 설명했듯이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를 의미하는 ‘프라쥬냐’와 ‘건너편 기슭에 이르다’를 의미하는 ‘파라미타’의 음역이 합해진 것으로, ‘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다. ‘고故’는 ‘까닭으로’라는 의미로, 전체 문장을 이어서 해석하면 ‘지혜의 완성에 의존함으로써’라는 뜻이 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은 열반涅槃을 제외하고 모두 의역으로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심무가애心無罫碍는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의 의미이고, 무가애고無罫碍故는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의 의미이며, 무유공포無有恐怖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의 의미다. 또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은 ‘잘못된 헛된 생각을 멀리하여’의 의미이고, 구경열반究竟涅槃은 ‘마침내 열반에 들다’의 의미다. 따라서 전체를 이어서 해석하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을 수 없으며, 잘못된 헛된 생각을 벗어나 마침내 열반에 들었다’ 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서 구경열반究竟涅槃의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의 음역으로, 원래 ‘불이 꺼진 상태’를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가 사라져 괴로움이 없어진 상태’의 의미로 쓰인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따라서 얻을 바가 없으므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함으로써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을 수 없으며, 잘못된 헛된 생각을 벗어나 마침내 열반에 들었다.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의미
이어지는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삼세제불三世諸佛은 ‘과거·현재·미래의 여러 부처들’의 의미이고,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密多故는 앞에서와 같이 ‘지혜의 완성에 의존함으로써’의 의미다. 여기서 ‘건너편 기슭에 이르다’ 또는 ‘완성하다’라는 의미의 ‘바라밀다波羅密多’는 대승불교에서 다음과 같이 여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① 보시(布施) : 남에게 재물(재시)이나 진리의 말(법시) 또는 친절(무외시)을 베푸는 것
② 지계(持戒) : 계율을 지키는 것
③ 인욕(忍辱) : 욕됨을 참는 것
④ 정진(精進) :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⑤ 선정(禪定) : 몸과 호흡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되게 하는 것
⑥ 반야(般若) :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것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깨달음의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다름 아닌 바라밀波羅密, 즉 ‘지혜의 완성’이다.
이어지는 구절인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서 득得은 ‘얻는다’의 의미이 고, 아뇩다라阿耨多羅는 산스크리트어로 ‘더할 나위 없이 높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누타라’의 음역이다. 삼먁三藐은 ‘올바른’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어 ‘삼야크’의 음역이고, 삼보리三菩提는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어 ‘삼보디’의 음역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설명한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三世諸佛 依般若波羅息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의미가 된다.
과거·현재·미래의 여러 부처들이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함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높고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었다.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의 의미
다음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의 의미를 알아보자.
고故는 ‘그런고로’의 의미이고, 지知는 ‘알다’의 의미이며,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는 ‘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다. 또 시대신주是大神呪는 ‘이것은 매우 신비한 주문이며’의 의미이고, 시대명주是大明呪는 ‘이것은 매우 밝은 주문이며’의 의미다. 시무상주是無上呪는 ‘이것은 더 없이 높은 주문이며’의 의미이고,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는 ‘이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동등한 주문이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그런고로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은 매우 신비한 주문이며, 매우 밝은 주문이며, 더없이 높은 주문이고, 또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주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의 의미
다음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의 의미를 알아보자.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는 의역으로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고’의 의미이고, 진실불허眞實不虛 역시 의역으로 ‘진실할 뿐 거짓이 없다’의 의미다. 또 고설반야바라밀다주故說般若波羅密多呪는 ‘그러므로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해주노니’의 의미이고, 즉설주왈卽說呪曰은 ‘주문을 말하자면’의 의미다.
따라서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고, 진실할 뿐 거짓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해주노니 그 주문은 이렇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의 의미
위에서 말하는 ‘주문’에 해당하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 揭諦 波 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는 전체가 산스크리트어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바하’의 음역이다. 주문은 신비의 문구로 원칙적으로 해석을 하지 않지만 내용 파악을 위해 해석하면 다음 문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가세 가세 피안으로 가세. 모두 함께 피안으로 건너가 서둘러 깨달음을 성취하세.
반야심경, 마음공부를 위한 가르침의 정수
지금까지 설명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반야심경)’ 전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
관자재보살이 깊은 지혜의 완성을 실행할 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모두 실체가 없음을 비추어 보고 모든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났다. 사리자여, 물질은 실체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은 물질과 다르지 않다. 물질은 곧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 곧 물질이다. 감각·표상·의지·인식과 같은 정신작용 역시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다. 사리자여, 이 모든 현상적 존재들은 실체가 없는 상태이니, 새로 생겨날 일도 없어질 일도 없으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날 일도 줄어 들 일도 없다. 그러므로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고, 감각·표상·의지·인식 작용과 같은 정신작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눈·귀·코·혀·몸·생각도 존재하지 않으며, 색·소리·냄새·맛·감각·개념도 존재하지 않으며,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이 없어지는 것도 없는 것부터 시작해 궁극적으로 고통도 없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없다. 고·집·멸·도가 없고 깨달음도 없고 역시 얻을 것도 없다. 따라서 얻을 바가 없으므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함으로써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을 수 없으며, 잘못된 헛된 생각을 벗어나 마침내 열반에 들었다.
과거·현재·미래의 여러 부처들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함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높고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고로 반야바라밀다는 매우 신비한 주문이며, 매우 밝은 주문이며, 더없이 높은 주문이고, 또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고, 진실할 뿐 거짓이 없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해주노니 그 주문은 이렇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성철스님은 살아생전 ‘불교佛敎’,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마음공부’라 했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예전 사람들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고통은 오히려 더 커졌다. 자살의 증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의 증가 등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물질 향상이 인간의 행복 크기와 비례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마음’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성철스님이 마음공부라고 정의한 불교의 정수가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천만다행이게도 이것은 불과 260자로 된 경전이다. 충분히 이해를 못하고 언저리만 가더라도 어느 정도 마음공부가 되지 않을까. 마음공부는 다름 아닌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 출처: 신동기 著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刊) p298-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