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원이란,
물질적 에너지의 차원과는 또 다른,
정묘한 의식계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저세상,
곧 실재계를 말한다.
만물을 만들어 내는 근본의 세계인 것이다.
그것도 《‘연’(緣)》이라고 하는 작용에 의해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X축, Y축, Z축으로 이루어지는 입체의 삼차원의 현상계이다.
즉 물질계이다.
이 물질계로부터
X축, Y축에 의해서 묶어진 2차원의 세계를 생각해 보자.
영화의 스크린이 2차원의 세계이다.
여기에 투영되어 비추어져 나오는 화면을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전쟁의 뉴스를 보도한다.
⟨자기의 귀여운 어린 아이가,
전쟁터에서 막 적병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려 하고 있다.
그의 신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이다.⟩
그 뉴스를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양친,
ㅡㅡ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2차원에 투영되고 있는 그 아이를, 아무도 구해 낼 수 없다.
소리를 질러도 통하지 않는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 관계가,
3차원에서 투영하고 있는 영사기와
2차원의 스크린과의 연관 관계인 것이다.
뉴스 필름은,
3차원의 세계에서 취재한 것으로서,
그 생생한 모습은, 뉴스 카메라맨이 포착한 것이다.
삶의 모습이라고 하는,
인간 사회가 엮어낸 사건이,
카메라맨이란 연(緣)에 의해서,
기록된 것의 재현인 것이다.
그리고 또, 3차원의 세계를 투영하고 있는 세계가,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의 세계로서,
신의 마음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다차원 세계가 참된 실재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비물질적인, 가장 정묘한 세계로서,
자애에 찬 세계이며,
전혀 거짓이 없는 대조화의 세계이다.
물질은,
모두 에너지가 차원을 달리하여 변화한 것이다.
식물도 본래는 식물로서의 의식의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다.
다른 동물도,
같은 의식의 단계에서 생존을 계속하며,
3차원의 고체적 불안정한 세계를 왕래하며 윤회를 되풀이하고 있다.
3차원으로부터의 연속된 저쪽 세계에는
부조화한 상념의 영위기(靈圍氣)에 감싸인,
비물질인 암흑의 세계도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지옥계이다.
그곳은 유유상종의 법칙에 따라,
똑같은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애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 낸,
집단의 수행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신리를 깨닫고, 마음이 조화되어 있는,
우리 그룹 가운데에는, 차원을 넘어서,
그러한 실재계의 생활을 자유롭게 보고 온 사람들도 있다.
현상계의 육체주로부터,
광자체의 배가 분리되어,
차원이 다른 천상계랑, 지옥계에 가서,
지난날에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던 사람들과도 만나고 오는 것이다.
마음이 조화되면, 그와 같은 왕래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현상계의 어느 곳이든,
희망하는 장소에,
그 광자체(光子體)의 몸으로 가서, 보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의 육체주(肉體舟)는,
물론 그곳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광자체라면 갈 수 있다.
이 육체주와 광자체의 배와는,
영자선(靈子線)이라고도 하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탯줄’과도 같은 것으로써 연결되어 있다.
이 영자선은, 무한히 늘고 줄어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광자체(光子體)에도,
우리의 혼-의식은 타고 있으므로,
도착한 행선지의 여러 현상을 뚜렷이 포착할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빛도 입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소리도 입자라고 말할 수 있다.
소리의 파동도,
매체를 통해서 보면,
입자가 물결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내장도 뚜렷이 보이고, 결함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차원을 초월해서 보기 때문에,
마음의 눈은, 모든 현상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마음의 상태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의식에, 기록되는 녹화테이프처럼, 전부 기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는 것이다.
아욕이 강한 사람들은, 붉은 문자로 기록되며,
중도를 이탈한 행동이나 상념도 붉은 문자로 기록된다.
원한, 질투, 노여움, 비방등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생각 등,
모두 의식에 기록으로 남는다.
특히 자비깊은 배려의 마음. 행위는,
황금색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중도의 생활을 하고 있으면,
일반으로 쓰는 흑(黑)자로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연애를 하고 있는 경우 등은,
상대방의 이름이, 수 없이 기록되어 있다.
번뇌가 많은 사람들의 의식은,
어두운 영위기(靈圍氣)에 감싸여, 매우 무겁다.
중도를 걷는,
편협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은,
광명에 차 있으며,
매우 가볍다.
붉은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어두운 상념을 지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1초 1초의 사실이,
마음과 행위가,
모두 우리의 의식 속에 기록으로 남는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어두운 상념을 만들지 않는 생활이 중요하다.
만약 어두운 상념을 만들어 내고 말았을 때에는,
중도라고 하는 마음의 자(尺)로써,
자기가 생각한 것, 행동한 것을, 잘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인 이상 잘못도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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