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의 곁으로 다가와서,
코스타니야가 대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수행자의 규칙을 어기고, 타락해 버렸다.
우유같은 부정한 것을 마신다는 것은 추접스럽다.
괴로움에 진 수행자다.
당신은 이젠 왕자도 아니고, 사로몬도 아니고, 나의 스승도 아니다.
나는 카피라 바스투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당신과 헤어져 다른데서 수행한다.
전부터, 수행의 방법에 의문이 있었고.
별도로 생활하려고 모두와 얘기가 있었지만,
오늘 아침의 모습을 보고, 나는 질려 버렸다.
그것이 당신의 본성이다.”
싯다르타가 말할 틈도 없이.
5인의 수행자는 네란쟈라 강의 하류로 향해 버렸습니다.
싯다르타는 어찌할 도리 없이.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배웅할 뿐이었습니다.
카피라 바스투를 떠난 지 6년 간,
싯다르타의 그림자가 되어, 양지가 되어,
지켜준 크샤트리야(무사)들ㅡ.
그것은 너무나도 섭섭한 헤어짐이었습니다만,
떠나는 자를 말릴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외톨이가 된 싯다르타는,
우르베라 세나니의 숲에 들어가,
피팔라의 큰 나무를 등 뒤로, 선정의 장소를 정했습니다.
큰 나무를 등 뒤로 두는 것은,
뒤로부터 오는 짐승을 방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전방은 모닥불을 피워 두면 걱정 없습니다.
짐승은 불에는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앉은 전방은 가야다나(가야산), 그리고 네란자라 강에 통합니다.
거기는 산수가 조화된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녹피의 주머니에 물을 넣고,
땔감이랑 망고랑 나무의 열매를 모으고,
깨달을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강하게 마음에 다짐했던 것입니다.
코스타니야들도 떠나고,
혼자가 되어 안 인생무상(人生無常)ㅡㅡ
ㅡㅡ 태어날 때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인간은 외톨이. 모이는 자들도 결국 헤어진다.
아름다운 자연도 같다.
봄이 되면,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모두 싹을 틔우고, 꽃을 피게 하고,
여름, 초록은 솟구치듯이 산야를 감싼다.
그리고 가을. 씨앗은 대지에 숨고,
수확의 때가 되고, 겨울. 쌀쌀한 바람이 휘몰아치면,
산야의 초목은 말라 없어져 회색이 된다.
자연도, 이처럼 사계를 통해,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으로, 항상 윤회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도 이것과 같이,
아름다운 것도 어느 날엔가,
볼품도 없게 되어, 무참하게 흩어져 간다.
나타나있는 이 세상의 현상은,
아무리 원해도, 잠시도 그 위치를 보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싯다르타는, 이제 죽음을 각오하고,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여 결심했던 것입니다.
ㅡㅡ태양은 아낌없이 따뜻한 빛을 우르베라의 숲에 내리쬐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만생에게 자애의 빛을 평등하게 주고 있습니다.
이 자애의 열, 빛이 만물만생을 생존하게 하고 있습니다.
비는, 식물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대지를 씻습니다.
바람은 꽃가루랑 씨앗을 옮기고, 하늘을 맑게 합니다.
빈틈없는, 대자연의 섭리입니다ㅡㅡ.
싯다르타는, 살아있는 대 자연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습니다.
ㅡㅡ 그러나, 이 대자애(大慈愛)에 감사하는 것만으로, 좋은 것일까.
식물도, 어떤 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동물들에게 공양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상호관계를 유지해서, 대 자연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ㅡㅡ.
싯타르타는,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감사의 의미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ㅡㅡ 보답하는 것이다. 보은을 하는 것. 보시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ㅡㅡ.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행위를,
인류사회에 봉사하는 것,
그 행동력이야말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대오(大悟)에의 길로 들어가다 ㅡㅡ 바른 기준으로의 물음 ]
우르베라 세나니의 숲에 날이 저뭅니다.
떠들썩했던 작은 새랑 동물들도,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밤의 정적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에게는 정해진 보금자리도, 돌아갈 집도 지금은 없습니다.
단지 일체의 번거로운 문제도 없고,
대자연 속에 융화하려고,
5척3치의 신체를 통해 반성으로의 선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은, 영구불변한 의식으로 싸여있는 마음,
거기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본성인 것이다ㅡ.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에 바른 기준을 만들어서,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ㅡ.
그러나, 바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객관적인, 오관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현상만이 절대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점에서부터 잘못이 생겨서,
마음의 흐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ㅡㅡ.
그런 것도 깨닫는 것이었다.
ㅡㅡ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마음의 본연의 자세와
생활의 본연의 자세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리라ㅡㅡ
싯다르타는 매일의 생활이랑, 환경을 통해서,
그 속에서 깨달음의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ㅡㅡ 자연의 기온이 더워도, 추워도,
신체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부조화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신체를 위해서는 역시 적당한 온도가 좋다.
더우면, 백열 지옥, 아주 차가워도 냉한 지옥이다.
식사도 또한 같은 것이다.
너무 먹으면, 배탈이 나 버리고, 충분치 않아도 활력이 없다.
옷도 몸에 맞아야만 활동하기 좋다.
카피라 바스투에서 생활할 때, 갑옷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도, 각자의 치수를 맞추기 위해, 만드는 사람이 매우 고생을 하고 있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중간 정도”라고 하는 것이다ㅡㅡ.
‘아, 아. 그런가.’ 라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ㅡㅡ 성내에서의 우아한 생활과 타락. 타인 의존의 삶의 방식ㅡㅡ.
카피라 바스투를 나와서부터, 오늘까지의 생활도,
육체적 번뇌를 소멸하려고 해서,
오히려 인생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방해했다.
올바른, 치우치지 않는 생활, 그 중도를 빗나간, 마음의 작용과 생활이, 괴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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