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사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며 사는 우리는 축복받은 민족임이 분명하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 나른하게 지나가고 녹음방초 우거졌던 심산유곡이 총천연색 오색 단풍으로 수놓아 진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꽃보다 아름답던 단풍잎이 포도 위를 나뒹굴며 겨울의 서막을 알리면 머지않아 첫눈이 내리고 겨울이 시작된다. 겨우내 죽은 것만 같던 나목이 껍질 속에 생기를 감추어 흐르고 종달새 소리에 맞춰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쯤, 깊은 산속 계곡에서는 구들장 같던 얼음이 녹아내리고 돌 틈 사이로 버들개지가 봄바람에 강아지 꼬리를 흔들어 대면 겨울의 끝이다. 겨울 산천을 흰 눈이 덮으면 정갈하고 숭고함이 묻어나는 거룩한 영혼의 계절임을 실감 한다.
유년 시절 눈이 내리면 내린 눈이 얼어 얼음산이 되기 전 토끼 사냥을 갔다. 눈에 빠져 우리들의 걸음도 옮겨 다니기가 어려웠지만 앞다리가 짧은 토끼에게는 더욱 힘들었다. 우리는 산등성이 위에서 점령군처럼 본인 키 높이의 기다란 몽둥이를 들고, 고함소리에 놀라 잠이 덜 깬 토끼를 산 아래로 몰았다. 아이들의 고함 소리에 놀라 긴 귀를 기울여보나 방향을 잃은 토끼는,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다가, 대개는 보초병처럼 몇 사람이 진을 치고 있는 꼭대기위로 뛰어 오르면 생포하거나, 큰 작대기를 가지고 사정없이 후려쳐 넘어뜨렸다. 허탕 치는 날이 토끼를 잡아 오는 날보다 훨씬 많았지만 눈이 내리면 우리들의 토끼 사냥은 그칠 줄 몰랐다. 이산 저산을 헤매고 다닌 발걸음이 패잔병의 걸음보다 무거웠다. 점심도 잊은 배꼽시계가 허기를 부추겼다. 대개는 단골 간식인 배추뿌리를 거적때기에 쓱쓱 문질러 먹거나 생고구마를 마구간 혹부리에 걸어둔 낫으로 깎아서 우거적우거적 소리가 나도록 먹어 댔다. 대구에 귀한 눈이 내리는 날은 시골 고향 마을이 그리워진다. 눈이 얼어붙기 전 토끼 발자국 따라 온 산천을 헤집던 토끼몰이의 추억이 소환된다. 오늘 따라 아파트 화단의 나목이 봄 꽃 보다 예쁜 눈꽃치마를 두르고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모습은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들의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마 몹시도 추운 날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끔 들려보는 고향 마을 개울은 가끔은 얼어 있긴 하여도 그때처럼 얼음이 두껍지가 않았다. 그 때보다 따뜻한 옷이 많아 덜 춥다고도 했다. 지금은 입다가 실증이 나서 내다 놓은 털옷들이 수거함에 넘친다. 잘 씻지 않은 손은 봄이 되도록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살을 에는 찬바람에 몸은 새우등처럼 쪼그라들어 양지 녘을 찾곤 하던 겨울은 이제 추억속의 추억이 되었다. 기후 변화로 인하여 기온이 높아져 동심이 잠들어 있는 맛깔스런 겨울 추억은 소환하기기 어렵게 되었다.
그 날도 함박눈이 눈이 펑펑 내렸다. 난생처음으로 이별이라는 것을 살을 에는 추위만큼이나 혹독하게 느끼며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두어 학년 아래인 그 여학생은 우리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정말 동화 속의 백설 공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여학생의 어머니가 우리 동네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로 부임 했다. 부임해 오면서 그 여학생과 두어 살 아래인 남매를 데리고 왔다. 입고 다녀는 옷도 예뻤지만 예쁜 옷을 입고 교회를 오르내리는 모습이 천사가 있으면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희고 고운 살결도 살결이지만 그녀가 쓰고 다니는 뜨개질로 만든 모자 끝에 달린 두 개의 리본이 흰 토끼를 연상하게 했다. 그녀는 많은 또래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소녀의 어머니와 교인 사이에 문제가 생겨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선처럼 날아 오르게 하던 소녀였다. 정기 노선버스가 오전 오후로 두 번 다니던 시절이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녀야 했다. 있을 곳이 정해질 때 까지 외갓집으로 간다고 했다. 신작로를 따라 짐 실은 달구지와 어른들이 먼저 걸어서 간 길을 소녀와 나는 말없이 걸어서 갔다. 얼마를 걸었을까 너무 멀리 왔다고 되돌아가라고 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고개 너머 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앞산에서 몇 패거리의 위아래 계층 악동들이 합동 토끼 사냥을 하고 있었다. 몇 단계의 또래들이 총 집합 된 듯 산에는 고함소리로 가득했다. 또끼 한 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이들이 없는 곳을 피하여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왔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앞으로 달려오는 토끼를 와락 끌어 안았다. 잡힌 것이 억울한 토끼가 발버둥을 쳤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감동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토끼몰이를 아이들의 허탈한 함성이 들려왔다. 우리 학년 친구들 끼리 사냥을 갔으면 보통은 우리들 아지트인 친구네 집으로 잡은 토끼를 가지고 갔다. 두부 값을 얼마씩 나누어 거두고 각자의 집에서 쌀을 한줌씩 가지고 와서 밥을 지어 먹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참여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사오십 명은 되는 듯 했다. 규칙은 없었지만 그럴 때는 잡은 사람이 임자였다. 위의 학년에서 괜한 소리가 나오기 전에 줄행랑을 치는 것이 상수였다.
생애 최초 애틋한 이별을 안고 아픈 가슴으로 붙잡은 토끼였다. 잡은 행운이 사라질세라 붙잡은 토끼를 움커쥐고 나는 듯이 집을 향해 달렸다. 아직도 체온이 남은 토끼를 아버지에게 불쑥 내 밀었다. “푹 고와서 할머니 드리면 되겠구나.” 아들을 낳지 못한 외할머니는 중풍으로 혼자서는 돌아눕기도 어려운 몸이 되어 우리 집으로 왔다. 때론 불편한 내색도 숨기지 않던 아버지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외가가 오늘 헤어져 가슴앓이를 한 소녀의 외가가 있는 동네였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초승달 같은 작은 희망은 위안이 되었다. 오늘 내가 잡은 토끼는 그녀가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했다.
“어젠가는 연락이 닿겠지” 라면 지내 온 시간이 한 갑자의 세월이 흘렀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그림책 속 주인공 같은 소녀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른다. 정확하게는 생사조차 몰랐다. 어느 해인가 눈바람이 전해준 한마디가 모두이다. “ 작고 예쁜 언덕배기 교회의 사모가 되었다.”고 하더라. 오늘도 반가운 눈이 내렸다. 마음속 오랜 그리움이 눈꽃 같은 기쁜 소식되어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 적셔 주기를 고대해 본다.
첫댓글 작가님!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