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26일(월) 이사야 22:15-25 찬송 459장
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말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17.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18.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19.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
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23.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24.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모든 항아리까지니라
25.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개역 개정)
- 타락한 유다 관리들에 대한 징계 -
지난 토요일 말씀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의 종국적인 원인이
앗수르를 통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완악함에 있었음을 보았다.
이어서 오늘 말씀에서는 특별히 그러한 백성들의 완악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남유다 관리들의 부패상에 대한
책망과 심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15-19절은 히스기야 시대의 국고 책임자인 셉나(왕하18:18, 26, 37)가
권력을 이용해 부정 축재를 했기 때문에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는 경고를,
20-25절은 셉나를 대신하여 등장한 엘리아김도
막강한 권력으로 나라 전체의 유익보다는 자기 가문의 영광만을 추구하다가
종국에는 타락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셉나와 엘리아김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히스기야 왕이 보낸 세 명의 고관들에 포함되었던 인물들이다.(왕하18:18)
이 당시 이미 셉나는 그 부정이 발각되어 서기관으로 강등되고
엘리아김은 궁내 대신으로 승진된 상태였다.(36:3)
이렇게 남유다를 대표하는 두 고관이 차례대로 자신의 권력을
이기적인 부와 명예 획득의 방편으로 삼음으로서 타락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유다 관료층 전체의 심각한 부패 정도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 신정국가인 남유다 관리들의 부패는
그들이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중한 책임의 범위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통치를 위해 세운 대리자들로서 그분의 거룩과 영광을
마땅히 나타내야 할 자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어떤 지위나 역할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올바로 드러내고 있는지,
그리고 셉나와 엘리아김에게 주어진 경고를
우리 자신들도 받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20절)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여기서 ‘네’는 재무 대신이자 궁내 대신이었던 셉나를 말한다.
따라서 20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가에 충성스럽지 못하였던 셉나를 축출하고
그 자리에 힐기야의 아들인 엘리아김을 앉히실 것이라는 말이다.
왕이나 대통령이나 수상이 어떤 사람에게 고위 직분을 맡긴다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무엇이겠는가?
그 자리를 이용해서 한몫 보라는 것이겠는가?
단지 그에게 자리를 주어 그를 영예롭게 하기 위함인가? 그렇지 않다.
왕이나 대통령이나 수상이 어떤 사람을 고위 직분에 임명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직분에 충성하여 자신과 국가에 유익을 끼치도록 기대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나 수상에 선출된 사람은 대개는 자기를 도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들에게 고위 직분을 맡기게 마련이다.
즉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대통령이나 수상도 자기가 임명한 사람이
자기 직분에 충성하지 않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두고만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자기 직분에 충성하지 못하는 것은
곧 자신과 국가에 심각한 누를 끼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통령이나 수상은 자기가 임명한 자가
그 직분에 충성스럽지 아니하면 그를 그 직분에서 축출하게 마련이다.
실제 우리는 대통령으로부터 장관과 같은 고위직에 임명되었다가
부정을 저지름으로써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이처럼 자기 직분에 충성스럽지 못한 자를
그 직분에서 축출하는 일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더욱 철저하게 행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그에게 중요한 직분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은 자는 그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직분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만일 직분을 맡은 자가 그 직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직분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실 수도 있다.
셉나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그는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그 직분에 충성하지 못하여서
그 직분을 엘리아김에게 빼앗기고 축출을 당하였다.
물론 셉나에게 직분을 준 것도, 빼앗은 것도 직접적으로는 히스기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모든 권력과 권세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충성스럽지 못한 자는
그 직분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의 신정 통치의 대리자로서의 직분에 충성하지 못할 때
그 직분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었고(삼상15:24-16:1)
가룟 유다가 사도의 직분에 충성하지 못하였을 때
그것을 빼앗아 맛디아에게 주셨다.(행1:15-26)
왕의 직분이나 사도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고귀한 직분인가?
하지만 그처럼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직분도
그 직분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빼앗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직분을 빼앗기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에 의해 직분을 빼앗긴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는다.
사울, 셉나, 가롯 유다의 비참한 최후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맡은 자는 자기 직분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 직분의 크기에 상관없이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것은 누가 어떠한 일을 하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충성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달란트 맡은 자라도 충성하면 그를 귀하게 여기시는 반면,
다섯 달란트 맡은 자라도 충성치 아니하면 버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맡은 사람들로서
자기 직분에 충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