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41) 관우의 출전
손견의 군사들이 적에게 크게 패했다는 기별이 오자, 본진에 있던 원소와 조조등이 크게 놀랐다.
더구나 군율을 어기고 앞서 적진으로 달려간 제북상(濟北相)포신의 동생 포충 장군이 비참하게 죽은데다가, 이번에는 손견까지 대패하고 보니 모두들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십칠 명의 제후들이 그날 중으로 한자리에 모여 대세만회를 위한 작전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적장 화웅의 기세가 등등하더란 소문을 듣고, 회의에 참석한 제후와 태수들은 용기가 위축된 듯이 보였다.
총대장인 원소가 눈을 들어 좌중을 바라보다가 문득 북평 태수 공손찬 등뒤에서 시선을 멈췄다.
공손찬의 등뒤에는 낮모를 위장부 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공손 태수의 등뒤에 있는 세 사람의 위장부는 누구요?"
원소가 공손찬에게 물었다.
공손찬은 세 사람중에 한 사람인 유비를 앞으로 불러내었다.
"이 사람은 나와 동문수학(同門修學)한 평원령(平原令) 유비(劉備)올시다."
조조가 그 소리를 듣자,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예전에 황건적 토벌의 공로가 많았던 현덕 유 공 말씀이오? 그러고 보니 나도 황건적과 싸우다가 한 번 만난 일이 있었소."
"바로 그 사람이오."
유비는 공손찬의 소개말과 함께 조조와 눈과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그러자 조조 역시도 유비에게 가벼운 목례를 해 보이는 것이었다.
공손찬은 유비를 제후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그의 옛 전공을 나열하면서 크게 칭찬을 하였다.
원소는, 유비가 한실의 종친의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저 사람에게도 앉을 자리를 드리도록 하시오!"
하고 말했다.
유비는 그제서야 말한다.
"아니올시다. 저같은 미관이(微官)이 어찌 이 자리에...."
하고 다른 제후, 태수들과의 동석(同席)을 사양했다.
"사양말고 어서 앉으시오. 나는 귀공에게 직위로서 앉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귀공이 한실 종친인데다가 황건적 토벌에 전공이 컸다기에 앉으라는 것이오."
유비는 사양하다 말고, 시종이 가져온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은 공손찬의 뒤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기더니, 이번에는 유비의 등뒤에 엄숙히 시립(侍立)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 바깥이 떠들썩하더니 경계병 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 들어온다.
"무슨일이냐?"
"장군님들 큰일 났습니다. 적장 화웅이 손견 장군이 쓰시던 붉은 두건을 창끝에 꿰어 들고? 진문(陳門)앞에까지 몰려와서 싸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원소가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구 나가서 싸울 사람이 있소?"
효장 유섭(驍將 兪涉)이 투구 끈을 졸라매며 말한다.
"소장이 나가 싸우겠습니다."
원소는 크게 기뻐하며, 곧 나가 싸우라고 하였다.
그런데, 유섭이 싸우러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적장 화웅에게 목이 잘렸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기주 지사 한복(韓馥)이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분개하였다.
"나의 상장군 반봉(上將軍 潘鳳)을 보내어 화웅의 머리를 가져오게 하겠소."
원소는 곧 그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도 적장 화웅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원소는 좌중을 둘러보며 탄식하였다.
"내 상장군 안량(顔良)이나 문추(文醜)를 데려왔다면 화웅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화웅 하나를 거꾸러뜨릴 장수가 없다니, 그야말로 천하의 웃음거리요!"
제후들은 말이 없고 좌중은 침통한 침묵에 잠겼다.
그러자 문득 어디선가 통분한 어조로,
"만약 허락하신다면 소장이 나가서 화웅의 머리를 베어다가 장하(帳下)에 바치오리다."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집중되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키가 구 척에 수염이 두 자가 넘고, 봉의 눈에 눈썹이 짙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 같고, 목소리는 쇠북을 울리는 듯이 웅장한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누군고?"
원소가 물었다.
"유현덕의 의제 관우(義弟 關羽)요."
공손찬이 대답을 가로맡았다.
"벼슬이 뭐요?"
"유비공 밑에서 마궁수(馬弓手:요즘 말로 소대장)로 있는 사람이오."
원소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격앙되어 관우를 꾸짖는다.
"우리에게 나설만한 장수가 없다고 네가 누구를 업신여기는거냐? 한낱 궁수에 지나지 않는 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고 .... 여봐라! 저 자를 밖으로 내쫓아라!"
그러자 조조가 손을 들어 멈춘다.
"총수는 너무 노여워 마시오. 저 사람도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 테니, 한번 싸워 보게 합시다. 꾸짖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아니오?"
"일개 궁수를 내보냈다면 적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 아니오?"
"저 사람은 본디 호걸풍의 풍채를가지고 있으니 적장이 설마 궁수인 줄은 모르리다."
조조는 곧 따듯한 술을 가져오라 하여 관우에게 친히 한 잔 따라 주었다.
관우는 술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한다.
"고맙소이다. 이 술잔은 그냥 두었다가, 술이 식기 전에 곧 화웅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돌아와서 마시겠습니다."
관우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청룡도를 차고 말에 올라 밖으로 달려나갔는데, 잠시 후에 성밖에서는 한바탕 아우성과 함께 아군쪽에서는 북소리와 함성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는 것이 아닌가?
제후들이 깜짝 놀라 사람을 보내어 영문을 알아보려는데, 문득 문간이 소란스럽더니, 관우가 화웅의 머리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과연 저것이 화웅의 머리냐?"
제후들이 눈을 크게 뜨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자 화웅을 알아 본 몇 사람이,
"오오! 화웅의 머리가 분명하오!"
"세상에, 틀림없는 화웅의 머리요!"
하고 놀란 소리를 지르자, 제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관우는 그제서야 조조 앞으로 걸어나가 아까 따라 받았던 술잔을 경건히 집어들며 말했다.
"술이 아직 따듯합니다. 그럼, 주신 술을 잘 마시겠습니다."
하며 그 자리에서 마셔 버리는 것이었다.
"수고하셨소. 한 잔 더 드시오."
조조가 술 한잔을 더 따르려고 하자,
"아니올시다. 오늘의 명예를 어찌 저 혼자서 받사오리까!"
관우가 사양의 말을 하자, 유비의 등뒤에 서있던 장비가,
"아직 승리에 도취하기엔 때가 이르오. 관우 형님이 화웅의 머리를 베어 오셨으니, 다음에는 내가 동탁이란 놈을 생으로 붙잡아다가 만장하신 제후님들 앞에 바치리다."
하고 익살맞은 소리를 외쳐대었다.
모두들 돌아보니, 그 사람은 열여덟 자나 되는 사모(蛇矛)를 손에 움켜잡고 유현덕 등뒤에 서있는 장비(張飛)였다.
원소의 아우 원술은 장비의 큰소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일갈했다.
"일개 현령의 수하 졸병들이 방자스럽게 여러 제후와 태수들 앞에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니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자 조조가 즉각 대답한다.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데 어찌 귀천을 가리겠소. 공은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공들이 일개 현령의 소졸들을 그처럼 소중히 여긴다면 나는 자리를 같이 못하겠소!"
원술을 발끈 성을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조조가 말한다.
"원술 장군은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저 사람들이 비위에 거슬리면 이 자리에서 내보내기로 합시다."
공손찬은 조조의 눈치를 알아채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날 밤 조조는 세 사람에게 많은 술과 안주를 보내 주면서, 오늘의 일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기를 잊지 않았다.
...
첫댓글 그래서 어느 글에서인가 누군가가
삼국지에서 주인공은 조조가 되었어야 한다고
하였던 일이 생각 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