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래지 않는 가족의 인화지
김금자
어느덧 학교 소풍이나 운동회 때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나이가 되었다. 잊고 지낸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고, 실물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최첨단 기술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은 보정조차 할 수 없는 아주 오래전의 낡은 사진 한 장이다. 내 기억 최초의 컬러 사진은 열 살 무렵이다. 네모난 액자 틀 속에서 수줍어 살포시 웃고 있는 모습으로 박제 되어있다. 햇볕에 바래어 얼룩진 군복 상의를 입은 아버지와 그 팔에 안긴 동생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두려운 표정이다. 연한 하늘색 스웨트에 보라색 나일론 긴치마를 입은 엄마 앞에 선 나의 모습이다. 모두가 인위적인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이 그저 평소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요즘처럼 사진 찍기 위해 화장을 한다거나 사진에 담기 위한 어느 동작도 없었다. 신작로 앞 가게유리문 앞에는 그때 유명한 영화배우 달력들이 뒷배경으로 보인다.
일천구백육십년대 시골 마을에서는 사진기가 매우 귀한 시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온 재종숙인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그 시절 참 보기 드문 컬러 가족사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구, 동상 그 머할라꼬 자꾸 돈 들구로 수고를 할라카노? 우리는 고마 개안타!”라며 사진 찍기를 마다하던 아버지의 투박한 사투리와 아저씨의 정겨운 권유가 사진을 볼 때마다 마당의 흙 내음과 함께 봉긋이 솟아오른다.
머릿속 기억은 세월에 마모되어 조금씩 흐릿해진다. 그러나 사진 속 아버지는 푸근한 농부의 모습 그대로이고, 그 옆 엄마의 모습도 그때 그 순간의 시간에 머물며 내게 말로 속삭이는 것 같다. 가족사진이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의 대화가 뿜어져 나오는 사랑을 보존해 주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만큼 성장하였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찰나의 순간을 수만 장씩 찍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세월의 바람과 함께 부모님은 곁을 떠났다. 어느덧 나 또한 장성한 자녀를 둔 할머니가 되어 가족의 중심에 서 있다.
올해 오월, 바로 지난주 토요일 가정의 달을 맞아 딸과 사위의 배려로 나트랑 여행을 떠났다. 사돈 내외분과 손주까지 일곱 식구인 각기 다른 세대로 함께한다. 이십 년 전 남편과 둘이 간 하롱베이 여행 때나, 이년 전에 나트랑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색채로 다가온 것이다. 쾌적하고 넓은 숙소와 사위의 정성 어린 가이드 역할하여 산뜻한 계획 덕분에 행복은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사위가 공들여 예약한 “1일 1회 마사지” 매일 받는 코스는 이번 여행의 백미이었다.
베트남 대기업 “빈” 그룹이 운영하는 “빈펄 리조트” 섬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들어간다. 섬 안에서 버기를 타고 이동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의 단체 관광객이 없으니 조용하고 참 좋았다. 에메랄드빛 해변을 사돈분과 함께 맨발 걷기로 건강을 채우는 사진, 워터파크 미끄럼틀 터널에서 나오는 남편과 손주의 찰나 사진을 담기 위해 뜨거운 햇볕 아래 움직이지도 못하고 기다렸다. 식사때마다 맛있는 사진들과 밤마다 윷놀이의 손주 바라기 들의 행복한 모습들 사진도 속사포 쏘듯이 찍힌다. 그러나 즐거움만 가득할 줄 알았던 여행 둘째 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약한 마사지 시간이 되자 평소 온화하던 사돈이 갑자기 “나는 안 받으련다. 혼자 숙소에 가서 쉬고 싶네.”라며 단호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즐거운 여행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못내 서운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으나 사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이유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알고 보니 그날은 사돈의 조부 기일이었다. 세월이 변하여 요즘은 제사를 줄이어 당신 조부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으나, 어릴 때 유독 당신을 아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다. “어찌 조부 제삿날에 편하게 누워서 마사지를 받겠느냐?”라며 혼자 숙소에서 조용히 옛날을 기리었다는 그 진심 듣고 나니, 사돈의 뒷모습이 그토록 쓸쓸하였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에게는 화려한 휴식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 “박제”된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지킴이 더 큰 도리이었던 셈이다. 이런 뭉클한 사연이 있는가 하면 배꼽 잡는 해프닝도 있었다.
새벽녘 안사돈과 해변 산책에 나선다.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하얀 포말을 발등에 얹어가며, 발바닥에는 보드라운 모래 알갱이와 접촉을 밀어낸다. 한 시간쯤 걸으면서 할머니들의 속내도 나누고, 지나가는 외국인들한테 사진도 부탁하여 찰나의 기념도 남겼다. 숙소로 오는 길에 안사돈의 낡은 샌들 끈 양쪽이 동시에 “툭” 하고 떨어져 도저히 발에 걸리지 않아 결국 신발을 버렸다. 먼 거리도 아니고 웃으며 맨발로 걸어오는데 갑자기 소낙비까지 쏟아졌다. “하느님, 땀으로 가득한 몸에 이렇게 샤워까지 시켜주시니 시원하고 감사합니다.” “아멘.” 두 사람은 한 참 웃었다. 안사돈의 모습은 그 어떤 연출된 사진보다 생생하게 내 마음에 인화되었다.
평소 사진 찍기를 매우 좋아하는 남편 또한 사돈의 눈치를 살피며 카메라 셔터를 아끼느라 애를 썼다. 찍고 싶은 열정과 실례가 될까 걱정하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던 남편이다. 그리고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도 손주를 위해 기꺼이 포즈 취해주는 사돈 내 외분이다. “극과 극”의 성향 가진 양가 어른들이 서로를 위해 참고 자제하며 맞춰가는 그 모습이야말로 나트랑의 눈부신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가족”이라는 이름의 풍경이었다.
다시 오월이면 생각 날 것이다. 내 어린 날 재종숙인 아저씨의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던 우리 가족이 그랬듯 이번 여행의 사진들도 훗날 손주에게는 잊지 못할 보물이 될 것이다. 기술은 발달하여 실물보다 예쁜 사진을 만들 수 있으나 사진에 담긴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보정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견뎌내고 배려하던 그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가장 훌륭한 예술은 가족의 얼굴 속에 있다.”라는 말처럼 배려라는 인화지에 새겨진 이 “나트랑 빈” 섬의 기록들은 수십 년 전 그날의 사진처럼 세월이 흘러도 결코, 빛바래지 않은 채 우리 가족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사진 속에 담긴 그 찰나의 사랑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는 가장 단단한 끈이기 때문이다.
(20260508)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