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8월 17일(월) 요한삼서 1:9-15 찬송 486장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개역 개정)
- 디오드레베에 대한 경계와 데메드리오 천거 및 맺음말 -
지난 단락(5-8절)에서 요한은 본서의 수신자인 기이오가
순회 선교사들을 후대한 사실을 칭찬하였고
그로 하여금 그러한 선행에 더욱 정진할 것을 격려하였다.
그에 이은 9-12절에서는 가이오의 선행과 대조되는 디오드레베의
악행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같은 자들에 대해 경계한 사실(9-11절)과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로 뭇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천거한 사실(12절)을 언급하고 있다.
본문에서 악을 행하는 대표적 인물로 소개된 디오드레베는
가이오가 속해 있던 교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사람으로서
성도들에게 선을 행함으로 모본을 보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으뜸되기를 좋아했던 그는 순회 교사들의 방문 때문에
교회 지도자로서의 자기 권위가 실추되고 자신의 기득권이 상실될 것을
염려하였던 나머지 순회 교사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터무니 없는 말로 그들을 깎아내리는 것은 물론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고 순회 교사들을 영접하고자 하는 성도들을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빌미로 교회에서 출교시키는 등
도저히 교회 지도자로서 있을 수 없는 악행들을 저질렀다.
이에 요한은 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이러한 디오드레베를 징계하리라는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10a절) 가이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악을 행하는 자를 경계하도록 권면한 것이다.
한편 요한이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천거하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다.
추측컨대 나그네를 접대한 일로 디오드레베에게 출교당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디오드레베에게 배척을 당했던 순회 교사일 수 있다.
어쨌든 요한은 본서의 전달자로 추정되는 데메드리오가 뭇사람의 칭찬을
받는 자임을 분명히 하며 그에게 호의를 베풀 것을 부탁하였는데
이는 가이오에게 더욱 선행에 정진하도록 격려한 사실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지도자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 중의 하나가
바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쳐 복종시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전9:27; 빌2:6-10)
더욱이 지도자의 교만이 다른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대한 바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마23:15)
때문에 베드로는 교회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고 했다.
둘째, 요한이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를 천거한 사실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신다는 주님의 말씀(마25:21)을 연상시켜 준다.
그리고 13-15절은 본서의 종결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요한이서의 종결부와 마찬가지로 본서에 기록한 것 외에 더 쓸 것이 많으나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할 것을 기약하며(13-14절)
간단한 문안 인사로써(15절) 본서를 종결짓고 있다.
특별히 요한이 에베소 교인들을 ‘친구’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디오드레베와 그 무리들이 요한을 비롯하여
순회 교사들에게 가지고 있는 적의와 대조를 이루기 위한 표현인 듯하다.
이는 우리에게 항상 선행으로써 모든 사람들과 친구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 준다.(잠17:17)
11절)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다시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며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디오드레베라는 자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이오가 이에 영향받아
그를 좇음으로써 구원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보면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릴 법한 유치한 권면으로서,
가이오와 같은 장성한 어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어색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며, 실제로도 이러한 이야기는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이러한 권면을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의 바른 신앙 성숙과 구원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좀더 열린 눈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본절에서의 ‘본받으라’는 말을 보면,
원어적으로 ‘모방하다’라는 말에서 온 명령형이다.
오늘날 여기에서 파생된 ‘mimesis(모방)’, ‘mimic(흉내내는, 본뜬)’등의 말은
영어권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비교적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는 NASB와 같은 영역본은 물론
비교적 쉽고 자유스럽게 번역했다는 NIV와 같은 성경에서도
이를 ‘너는 악한 것을 모방하지 말고 선한 것을 모방하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좀더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교육은 모방이다’라거나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방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고사(孟母三遷之敎)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해 애쓰는 것이며
우리 주님께서도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던 것이다.(요13;15; 벧전2:21)
그런데 문제는 죄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언제나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을 쉽게 모방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들만 해도 건전한 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쉽게 잊지만
나쁜 것은 쉽게 보고 배우며 청소년들 역시 어른 흉내를 낼 때도
하고많은 것 가운데 나쁜 것들을 흉내내곤 한다.
이는 어른들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곧 장성한 자들 역시 위인들보다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혹은 독재자나 악인들이 입었던 옷이나 장신구를 따라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강한 모방 심리가 있는 인간이
악한 것이 아닌 선한 것을 모방하고 본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겸손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세태 속에 살아가면서 더욱 정신을 차리고
악한 것을 피하고 선한 것을 본받되
특히 최고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힘써야 한다.
악에는 어린이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전14:20)
이러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되라’(고전11:1)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하고도 온전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