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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택백현색소폰클럽(백현음악실) 원문보기 글쓴이: 동장군(金 東 鎭)
赴任六條:任命을 받아 새로 맡겨진 자리로 가다 부 임 육 조 임 명
▣ 1조:제배(除拜)새로 관직에 임명되다
他官可求 나 牧民之官 은 不可求也 니라 타 관가 구 목 민 지 관 불 가 구 야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
윗사람을 섬기는 사람을 민民이라 하고 목민하는 사람을 사士라 한다. 사士는 벼슬하는 사람이고, 벼슬하는 사람은 모두 목민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중앙관료는 임금님을 받들어 모시거나 중앙부처의 관직을 맡아 수행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하여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죄를 짓거나 후회할 일은 거의 없다.
오직 수령만이 만백성의 우두머리에 앉아 하루에도 온갖 중요한 일을 다 처리하므로 천하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과 대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 자리의 실상은 같다. 이럼에도 어찌 목민하는 벼슬을 구하겠는가?
만일 재주도 있고 큰 뜻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해아려 보아 백성을 다스릴 만하다고 생각되거든 스스로 천거하는 글을 올려 한 고을을 다스리기를 청해도 좋으나 집이 자난하고 양친도 늙어 끼니조차 잇기 어렵다는 것을 구실로 한 고을을 구걸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재야운동권 출신이었던 어느 군수가 "한 고장의 군수가 이렇게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인 줄 미처 몰랐다" 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에게는 해당 단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권이 있다. 이 사람이 결정을 잘하면 해당 단체에 이익이 되지만, 결정을 잘 못하면 커다란 해害가 된다.
따라서 스스로 능력이 없으면 시장이나 군수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사장. 회장. 장관. 대통령 등과 같이 집단의 이해利害가 달려 있는 중요 결정을 해야 하는 직책은 맡지 않는 것이 좋다.
시장. 군수나 대통령 선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므로 당선되었다고 하여 그가 반드시 유능한 사람도 아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민을 위하여 그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그 자신을 위하여 발휘한다면 그의 유능함은 주민들에게 오히려 해害가 된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이 유능하지도 않고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할 의향이 없으면 지방자치단체든 국가든 장長의 자리는 맡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除拜之初 에 財不可濫施也 라 제 배 지 초 재 불 가 람 시 야
새로 관직을 받아 부임하게 된 초기에 재물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수령의 봉록俸祿은 한 달에 얼마씩 지급하지 않음이 없고, 그 액수를 자세히 나누어보면 하루에 얼마씩 지급하지 않음이 없다. 달을 앞당기고 날을 앞당겨 재물을 쓰는 것은 모두 써야 할 재물이 아닌 것을 쓰는 것이다. 써야 할 재물이 아닌 것을 쓰는 것은 탐욕스럽게 될 징조이다.
邸報下送之初 에 基可省弊者 는 省之 니라 저 보 하 송 지 초 기 가 생폐 자 생 지
저보邸報를 내려 보내는 처음부터 줄일 수 있는 폐단은 줄이도록 해야한다.
새로 수령을 맞이하는 예절은 첫재는 의복을 해아려 받치는 것이고. 둘째는 관아官衙와 관사官舍를 수리하는 것이고 셋째는 깃발을 들고 영접하는 것이고, 넷째는 풍헌. 약정 즉 마을에 직임을 맡은 자가 기다려 문안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오는 도중에서 문안하는 것인데, 그중에 폐단이 되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생략한다.
저보는 조선시대 경저리" 가 고을에 보내는 통지문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수령이 발령을 받아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리는 통지문이라는 뜻으로 씌었다. 조선후기에 새로 수령을 새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예절을 갖추어야 했는데, 다산선생의 말씀은 그중에 줄일 수 있는 폐단은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新迎刷馬之錢 은 旣受公賜 인데 신 영쇄 마 지 전 기 수 공 사 又收民賦 는 是匿君之惠而掠民財 니 不可爲也 라 우 수 민 부 시 닉 군지 혜 이 략 민재 불가 위 야
새로 수령을 맞이해 올 때 타는 말에 드는 비용을 이미 공적으로 받았으면서 또 백성에게 부과하여 거두는 것은 임금의 은혜를 감추고 백성의 재물을 노략질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새 수령이 처음 부임해 오게 되면 만백성이 풍채를 우러러본다. 이러한 때에 새 수령을 맞이하는 비용을 거두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가면 백성의 환호성은 우레와 같고, 칭송하는 노래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위엄이 청렴해서 나오므로 간악하고 교활한 무리들을 겁내어 엎드리고, 호령을 내리고 시행하는데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오호라! 버리는 것은 3백 냥의 돈인데, 3백 냥의 돈으로 이러한 환호성을 사게되니 이 또한 좋지 않는가.
위아래로 수백 년, 종횡으로 4천 리에 취임하기 전에 이러한 영令을 내린 사람이 끝내 없었던 것은 사람마다 모두 청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러한 사례를 알지 못했고, 이미 취임하고는 그러한 사례를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먼저 이 의로운 영을 내린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 2조:치장(治裝)부임하기 위해 행장을 차린다
治裝 에는 其衣服鞍馬 는 竝因其舊 하고 不可新也 라 치 장 기 의 복 안 마 병 인 기 구 불가 신 야
부임하기 위해 행장行裝을 차릴 때에 의복과 말은 모두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고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절약하여 쓰는 데 있고 절약해서 쓰는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한 후에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후에 자애로울 수 있으므로 검소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배우지 못하고 무식하여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을 놀은 날쌘 말로 위세를 떨치려고만 한다. 하지만 늙은 아전들이 수령을 살필 때면 먼저 새 수령의 의복과 안마鞍馬에 대해 물어보고, 만약 사치스럽고 화려하다면 씽긋 웃으면서 '알만하다' 하고, 만악 검소하고 소박하다면 놀라서 '두렵다' 고 하는 줄은 알지 못한다.
길거리의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식자識者들은 더럽게 여기니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어리석은 자는 착각하여 남들이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말하지만, 부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워 미워한다. 자기의 재산을 축내면서 자기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남의 미움을 받게 되니 이 또한 어리석지 아니한가, 무릇 사치스러운 자는 모두 어리석은 자이다.
목민관으로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서울에서 관직에 있었으므로 의복과 안마는 대강 갖추어 있을 것이다.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한 가지 물건도 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1.충청남도지사는 2006년 6월 3일 오후 도청 대강당에서 350여 명의 각계 인사와 도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검소한 취임식을 가졌다.
1.지사는 취임식에 앞서 오전에는 대전 현충원을 참배하고 간부 신고 및 사무인계인수서 서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집무에 들어갔으며, 오후에 개최된 취임식은 국민의례, 약력소개, 취임선서, 취임사, 대통령 축하 메시지 낭독 등을 끝으로 간소하면서도 품위 있게 진행됐다.
1.지사는 취임사를 통해 '한국의 중심' 강한 충남' 을 건설하자면서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당부했다. 취임식에 공주의 최 모(57세)씨는 "지금까지 민선 도지사 취임식에 계속 참석해왔지만 L지사처럼 간소하게 취임식을 갖는 것은 처음 본다" 고 언급한 뒤 앞으로 선거 때의 실천공약을 지켜 잘사는 복지 충남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라고 말했다.
도청의 김 모 주사는 "신임 지사께서 직원들과 같이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며 평소 인상이 강하게 보였으나 남을 잘 배려하는 성품인 것 같다면서 생기 넘치고 합리적인 도청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 고 말했다. 검소하면 청렴할 수 있다는 다산 선생의 말씀이 지켜지기가 기대한다.
同行者 는 不可多 니라 동 행 자 불가 다
같이 가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
송나라 조청언趙淸獻은 성도成都에 부임할 때, 거북 한 마리와 학 한마리를 가지고 갔다. 재임 시에는 거북과 학도 모두 버리고 오직 종 한사람을 데리고 있었다. 장공유張公裕가 시를 지어 보냈는데, "말은 옛 것을 기억하여 잘도 오고 가건만, 거북은 양자강에 놓아주었으니 같이 흘러가지 못하는구나" 라 하였다.
요즘 목민관들 가운데는 아에 관사에 입주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러 지방자치 단체장들은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공무원교육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衾枕袍繭之外 에 能載書一車 면 淸士之裝也 라 금침 포 견 지외 능 재 서 일거 청사 지 장 야
금침과 솜옷 외에 책 한 수레를 가져간다면 맑은 선비의 행장이라 할 것이다.
요즘 수령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오직 역서曆書 한 권만을 가지고 가고 그 밖의 서적은 한 권도 행장에 넣지 않는다. 임지에 가면 당연히 많은 재물을 얻어 돌아오는 행장이 반드시 무겁게 될 것이므로 한 권의 서적도 짐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슬프도다, 그 마음이 고상하지 않고 더러움이 이와 같으니, 어찌 또 목민인들 제대로 하겠는가.
글하는 선비가 벼슬을 살게 되면 이웃에 사는 선비들이 질문도 하고 논란도 별일 것이며,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과거 공부를 하는 선비들에게 글제목을 내어주는 데도 모름지기 책이 있어야 하며,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혹 이웃 고을 수령들과 한 자리에 모여 산수간에 노닐면서 운韻자를 내어 시를 짓는 데도 모름지기 옛 사람의 시집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전정. 부역. 진휼. 형옥에 대하여 옛 책을 참고하지 않고 어떻게 그것을 의논하겠는가? 그러므로 책을 한 수레 싣고 오는 일은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돌아가는 날에 토산물을 싣지 않고 이 수레로 돌아간다면 어찌 맑은 바람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 3조:사조(辭朝)부임하기에 앞서 조정에 작별인사를 한다
旣書兩司 라야 乃辭朝也 라 기 서 양 사 내 사 조야
사헌부와 사간원의 서정이 끝나고 나면 조정朝廷에 작별인사를 한다
옛법에는 수령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임명하기 전에 천거薦擧의 절차를 두었고 임명항 후에는 서경署經을 하였다. 또. 경서經書와 법률로써 시험하여 그 재주와 학식을 관찰하였다. 요즘은 이 법이 문구와 격식만 갖추었을 뿐 유명무실해져서, 둔하고 글을 모르는 자가 모두 수령으로 나아가도 거리낌이 없게 되었다.
요컨대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수령의 임명에는 천거와 서경의 절차를 두었으나 다산이 목민심서를 쓰던 조선후기 순조 때에는 그것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말이다.
최근까지도 행정고시를 치러 시험에 합격해도 신원조회를 거친 후, 일정한 연수기간을 거처 다른 직책에 임용하여 상당한 경험을 쌓은 후에 군수나 시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주민들의 선거에 의하여 자치단체장을 뽑게 되면서 전직지방관으로 지방행정업무에 밝은 사람도 있을 것이나 정치적 명망으로 당선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방행정경험이 없고 관련법규도 모르는 사람이 자치단체장이 되면, 업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니 유명인사가 무능한 지방관으로 낙인찍힐 우려도 많다. 그러므로 당선된 후에는 자신이 취임하게 될 지방관직의 수행에 필요한 행정법규와 업무내용 등 미리 공부해 놓아야 한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잘 처리하는 지방관만이 아래 공무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업무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관련행정법규도 모르면서 큰소리로 아래 공무원들에게 호령이나 하고 목을 자르겠다고 윽박 지른다. 하여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여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유형의 상급자 밑에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일수록 복지부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歷辭公卿臺諫 에는 宜自引材器不稱 이요 역 사 공 경 대 간 의 자 인재 기 불칭俸之厚薄 을 不可言也 니라 봉 지 후 박 불가 언야
공경公卿과 대간에게 두루 작별인사를 할 대에 마당히 자신의 재주와 기량을 들추어내어 자랑하지 말며, 봉록이 후하다거나 박하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고을 수령의 봉록이 비록 박薄하지만 열 식구가 굶주리지는 않는다.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은 마땅히 그 고을의 폐단과 백성들의 걱정거리를 얘기해아 한다. 수령의 봉록이 후하다거나 박하다고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말이다.
그 봉록이 후하다는 점을 축하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부정한 물건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니 어찌 기뻐하리오" 하고 대답하고, 그 박함을 근심해주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열 식구가 굶지는 않을 터인데 어찌 걱정하리오" 하고 대답한다.
歷辭銓官 에 不可作感謝語 니라 역 사 전관 불 가 작감 사 어
인사人事를 담당한 관료들에게 두루 작별인사할 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사를 담당한 관료는 국가를 위하여 사람을 썼으니 여기에 개인적으로 은혜를 배풀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수령도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었으니 이를 사적인 은혜로 간직해서는 안 된다. 한 자리에서 서로 상대하더라도 말이 관직의 천거에 미처서는 안 된다.
인사를 담당한 관료가 만일 스스로 그 말을 꺼내거든 다만 "높으신 어른께서 무능한 사람을 천거 하셨습니다. 일을 그르쳐 훗날 어른께 누를 끼칠까 크게 두렵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新迎吏隸之 어든 其接之也 에 宜裝和簡默 하니라 신 영 이예 지 기 접지 야 의 장 화 간 묵
신임 수령을 맞이하러 온 아전과 하인이 도착하거든 그들을 만남에있어 마땅히 장중. 화평. 간결. 과묵해야 한다
신임 수령을 맞이하러 온 아전과 하인들을 대함에 있어 경솔히 체모를 손상해서도 안 되며, 뽐내며 무게를 잡아서도 안 된다. 장중하되 능히 화평하면 될 터이므로 오직 묵연히 말을 않는 것이 최상의 묘법이다.
辭陛出門 하면 慨然以酬民望 하고 報君恩 을 設于乃心 하라 사 폐 출문 개 연이 수 민망 보 군은 설 우내 심
임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대궐문을 나서면, 개연히 백성들의 여망에 부응하고 임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마음속에 다짐해야 한다.
임금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날에는 수령7사守令七事를 임금 앞에서 암송하거나 혹은 승정원에서 강론하므로 이를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 궁전에서 오르내리는 절차와 임금 앞에서 엎드리고 일어나는 태도를 마땅히 아는 자에게 익숙하게 들어 두어야만 앞뒤 순서를 혼동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수령7사는 수령의 목민실적을 평가하기 위한 7개 조항의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경국대전》이전吏典에는 이를 농상의 번성, 호구의 증식, 학교의 부흥, 군정의 정비, 부역의 균등, 소송의 감소, 간할의 종식 등 모두 7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移官隣州 하여 便道赴任 에는 則無辭朝之禮 니라 이 관 인 주 편 도 부임 즉 무 사 조지 례
이웃 고을로 관직이 옮겨져 지름길로 부임하게 되는 경우에는 조정에 작별인사하는 예가 없다.
이는 소위 조정에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부임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나 단지 번거로운 페단을 생략한다는 것일 뿐이요, 순임금처럼 날마다 살피어 제후에게 서옥瑞玉을 나누어 준다는 옛 뜻은 아니다.
▣ 4조:계행(啓行)부임행차를 떠나다
啓行在路 에는 亦唯莊和簡默 하여 似不能言者 하니라 계 행 재 로 역유 장 화 간 묵 사 불능 언 자
부임하는 길에는 오직 엄하고 온화하며 과묵하기를 마치 말 못하는 사람처럼 한다
부임행차는 반드시 일찍 출발하고 저녁에는 반드시 일찍 쉬도록 한다. 말에 올라 날이 밝기 시작하고 말에서 내려 해가 아직 짖 않으면 좋다.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일찍 일어나 밥을 재촉하고 곧바로 말에 오르면 하인들이 밥상을 받아놓고도 먹지 못하고 일어서는 경우가 많다. 말을 달리지 말라, 말을 달리게 되면 성질이 가볍고 조급해 보인다.
지나가는 길이 꼬불꼬불한 곳에서는 돌아보지 말라, 돌아보면 말을 탄 이속吏屬들이 비록 진흙탕이더라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 이 또한 저들을 생각해주어야 한다. 돌아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세에 따라서는 외면하기도 하여 그들이 다소 몸을 편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양에서 말을 타고 내려오는 신관 사또의 부임행차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오늘날은 교통이 발달하여 부산도 몇 시간 안에 가버리니 너무나 큰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목민관들 중에도 비서나 운전기사가 식사도 하기 전에 혼자 밥을 먼저 먹고 차에 올라타는 경우는 많지 않을까 한다. 차에 오르기 전에 비서나 기사도 식사를 했는지 물어보는 미덕을 베풀면 서로 좋지 않겠는가.
道路所由 에 其有忌諱 하여 도로 소 유 기 유기 휘 舍正趨迂者 는 宜有正路 하여 以破邪怪之說 하라 사 정 추우 자 의 유 정로 이 파사 괴지 설
지나가는 길에 기피하고 꺼리는 것이 있어 바른길을 버리고 둘러가는 경우가 있는데 마땅히 바른길로 감으로써 사악하고 괴이한 속설을 무너뜨려야 한다
손순효孫舜孝(조선 세종~연산군 때 사람)가 영남순찰사가 되었을 때 영해(지금의 경북 영덕)에 서읍령이라는 고개가 있었다. 속언에 "사신이 만일 이 고개를 처음 넘으면 반드시 흉한 일을 당한다" 고 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 고개를 넘어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고개 위에 올라 고목나무 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시를 지어 이렇게 썼다.
"너는 화산(삼각산)에 절하여 만세를 부르고 나는 왕명을 받들어 뭇 백성들을 위로하노라, 그 경중을 뉘라서 능히 헤아리리오? 밝은 해가 양쪽의 정情을 환하게 비추누나"
이로 인하여 고개의 이름을 파괴현破怪峴이라고 고쳤다.
駭有鬼怪 하여 吏告拘忌 어든 宜竝勿拘 하여 以鎭煽動之俗 하라 해 유귀 괴 이 고 구기 의 병 물구 이 진 선 동지 속
관청건물에 귀신과 요괴가 있다고 하여 아전들이 기피하도록 아뢰더라도 마땅히 모두 구애받지 말고 현혹된 습속들이 진정시켜야 한다
중국 양나라 때 부소傅召라는 사람이 좌우상서를 역임하고 안성군 내사內史가 되었을 대의 일이다. 그 군郡은 송宋나라 이후로 병란兵亂이 연달아 일어나 관사官舍에 사는 사람마다 죽음을 당하였다. 밤새도록 죽은 사람의 혼령魂靈들이 서로 침범하여 벼슬하던 사람이 살아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이 없었다.
부소가 부임하게 되자, 밤에 무장한 병사가 관사에서 나와 "부 공公은 착한 사람이라 내가 해칠 수 없다" 고 말하고는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이로부터 그 고을에는 드디어 재앙이 없어 졌다.
歷入官府 어든 宜從先至者 하여 熟講治理 하고 不可諧謔竟夕 역 입 관 부 의종 선지 자 숙강 치 리 불가 해 학경 석 이니라 지나는 길에 방문한 관부官府에서 마땅히 먼저 부임한 사람을 좇아 다스리는 이치를 익혀 배울 것이고 해학으로 밤을 지세워서는 안 된다.
저쪽은 고을살이를 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그곳 풍속과 물정에서 부터 새로 생긴 폐단과 오래된 백성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물어볼 것이 반드시 있다. 새로 부임하는 사람이 스스로 그 이목을 넓히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上官一夕 은 宜宿隣懸 하니라 상 관 일 석 의 숙 인 현
취임 하기 전 하루 저녁은 마땅히 이웃 고을에서 숙박해야 한다
취임하기 전 하루 저녁은 마땅히 이웃 고을에서 숙박해야 하고 부임할 고을의 경내에서 자서는 안 된다. 대개 신관新官 행차에는 따르고 맞이하는 사람의 수가 심히 많아서 경내에서 숙박하게 되면 부임할 고을의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다.
교통이 발달하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오늘날은 부임행차 도중에 이웃 고을에 들리거나 묵어야 할 필요도 없으니 참으로 편리한 일이다.
5조:상관(上官)임지任地에 도착하다
上官 에는 不須擇日 이니 雨則待晴 이 可也 니라 상관 불수 택일 우 즉대 청 가 야
취임할 때 택일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비가 내리면 맑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고을 경계 안에 들어서면 말을 달리지 않도록 단속하고, 길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을 금하지 못하도록 타이른다. 읍에 들어가서는 더욱 말을 달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백성들에게 무게 있게 보이는 방법이다. 말 위에서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지 말며, 몸을 비스듬히 하지 말고 의관衣冠을 아주 바르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보이는 방법이다.
乃上官 하여 受官屬慘謁 히니라 내 상 관 수관 속침 알
취임하여 아전과 하인들의 참알"을 받는다
청사가 굉장하고 아릅답더라도 좋다고 말하지 말며, 청사가 부서지고 낡았더라도 누추하다고 말하지 말고, 좌우의 온갖 기물들이 혹 아름답고 혹 추하더라도 또한 입을 열지 말고, 일체 침묵을 지킨다. 눈이 마치 보이지 않는 것같이 하고, 입은 말을 못하는 것같이 한다. 숙연하고 떠드는 소리가 없어 청사 안이 물을 끼얹은 듯해야 한다.
參謁旣退 면 穆然端佐 히야 思所以出之方 이니라 참알 기 퇴 목연 단좌 사 소 이 출지 방 寬嚴簡密 하고 預定規模 하되 唯適時宜 요 確然以自守 니라 관엄 간 밀 예 정 규 모 유 적 시의 확 연이 자 수
참알하고 물러가면 조용하고 단정하게 앉아 다스릴 방도를 생각한다. 너그럽게 할 것과 엄하게 할 것, 간결하게 할 것과 세밀하게 할 것은 미리 일정한 한도를 정하되, 다만 그때 사정에 맞추어 확연히 지켜나간다
군자는 백성을 대함에 당연히 먼저 자신의 성질이 한쪽으로 치우친 곳을 찾아 바로 잡아야 한다. 약하고 겁이 많은 것은 강하게 고치고, 게으른 것은 부지런하게 고치고 너무 굳센 것은 관대하게 고치고, 너무 느리고 둔한 것은 사납고 세차게 고쳐야 한다. 좋은 책을 취하여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로서 마음에 감복되는 바를 항상 자주 읽고 풀이하며 거듭 본받아 실행하여 그 마음을 맑게 해야 한다.
厥明 에 謁聖于鄕校 하고 遂適社稷檀 히야 奉審唯謹 하라 궐 명 알성 우향교 수적 사직 단 봉 심 유 근
그 이튼날 향교에서 공자의 신위神位에 참배하고, 이어서 사직단으로 가서 왕명을 받들어 보살피되 오직 공손히 한다.
한 고을의 귀신으로는 사직社稷의 귀신이 가장 큰데, 근세에 수령들이 전혀 정성을 들이지 않으니 심히 옳지 못하다.
▣ 6조:이사(吏事)비로서 목민관의 직무를 수행하다
厥明開坐 하고 來吏官事 라 궐명 개 좌 내 리관 사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앉아 관부官府의 일을 본다
상부에 보고하는 문서로 전례에 따라야 할 것은 즉시 서명 날인하고, 그 이치를 따져야 할 것은 아전들의 초안을 바탕으로 다듬어 글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쓰게 한다. 백성들에게 영令을 발하는 것을 일자반구一字半句라도 함부로 서명 날인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다음에 오는 6전 36조를 참고하여 일일이 검사하고 그 안에 조금도 간계와 허위가 없음을 명백히 알고 난 후에 서명 날인하는 것이 옳다. 의심스러운 것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수리首吏와 담당 아전을 불러 자세한 사정을 조사하고 그 본말을 명백하게 알고 난 후에 서명 날인해야 한다.
매번 보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일을 잘 아는 체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여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의심스러운 것을 감추고 다만 서명만 부지런히 하다가 술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是日 에 發令於士民 하여 詢漠求言 이니라 시 일 발 령어 사 민 순 막구 언
이날 사족士族과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괴로움을 물어보고 의견을 구한다
조선 선조 때 사람 범재泛齎 심대부沈大斧가 성산현감이 되어, 성문에 방을 붙여 "몸가짐을 맑도 근실하게 하며 정사를 공평히 하는 것은 태수가 할 일이나, 태수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하고 약속을 잘 지켜 법령을 어기지 않는 것은 백성들이 할 일이다. 백성들은 이를 위해 힘쓰라" 고 하였다.
서울의 한 민성구청장은 구 안에 있는 각 대학의 학생회, 동아리 간부 등 20여 명과 대화의 장을 열었다. 학생들의 생산적인 건의를 통해 행정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학생들은 지역 현안에 대해 구체적이며 폭넓은 의견을 토로였다.
학생들의 거듭되는 질문에 대해 긴장하고 있던 구청장은 "지역공동체로서 구청과 학교의 연계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실천에 옮기가 무척 힘들었가" 면서 "이제 첫발을 내딛은 느낌" 이라고 말했다.
是日 에 有民訴之狀 이어든 其題批宜簡 이니라 시 일 유민 소 지장 기 제 비 의 간
이 날에 백성들의 소장所狀이 들어오면 그 판결의 비답批答을 의당 간결히 한다
《치현결治縣訣》"에 "백성들의 소장을 보면 내가 잘 다스리고 못 다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하는 사람이 큰 줄거리를 바로 잡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억울한 일이 없어지는데 어찌 소장아 분분하게 날아들겠는가" 라 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조선시대 수령들이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나온 것이다.
是日 에 發令以數件事 로 與民約束 하고 시 일 발 령이 수 건 사 여 민 약 속
遂於外門之楔 에 特縣一鼓 라 수 어 외 문 지 설 특 현 일 고
이날 영을 내려 몇 가지 일로써 백성들과 약속하고 관아 바깥문 설주에 특별한 복을 하나 걸어 둔다
포청천 포증包拯이 개봉부開封府를 맡아 다스릴 때의 일이다. 옛 제도에 소송하는 사람이 곧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아전이 문 앞에 앉아서 소장을 거두었는데 이를 첩사牒司라 하였다.포증이 관아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이 곧바로 뜰아래까지 와서 스스로 옳고 그름을 밝히게 하였더니 아전과 백성들이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官事有期 니 期之不信 이면 民乃玩令 이니 期不可不信也 니니라 관 사 유 기 기지 불신 민 내 완령 기 불가 불 신야
관청의 일은 기약이 있다. 기약이 미덥지 못하면 백성들이 수령의 명령을 우롱한다. 기약을 미덥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한연수韓延壽(한나라 때 사람)가 영천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조세와 공납을 거두는데 그는 먼저 징수하는 날짜를 널리 알리고 그 기한에 맞추어 내는 것을 중요한 일로 삼았다. 그랬더니 아전과 백성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그의 명령에 따랐다.
是日 에 作適歷小冊 하고 開錄諸當之定限 하여 以補遺忘 하라 시일 작 적 역소 책 개 록제 당 지정 한 이보 유 망
이날 달력에 맞추어서 작은 책자를 만들고 모든 사무의 정해진 기한을 기록하여 비망을 삼는다
주자朱子가 "관청에는 마땅히 관무일지가 있어서 날마다 공무의 진행 상황을 낱낱이 기록한다. 일이 완료된 것은 완료되었다고 표시하고 완료 되지 않은 것은 완료되도록 해야 비로서 차질이 없다" 고 하였다.
어느 민선시장이 시에서 시행하는 각종사업. 행사 일정, 행정업무에 대한 안내를 담은 '행정달력' 을 매달 만들어 배포하도록 했다. 그러자 효과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주민들에게 약속한 일정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들 스스로가 자기 채찍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厥明日 에 召老吏 하여 令募畵工 하야 作本懸四境圖 하여 궐 명일 소 노리 영모 화 공 작 본 현사 경 도
揭之壁上 하라 게 지벽 상
그 다음날 나이 많은 아전을 불러서 화공畵工을 구하여 고을의 사경도四境圖를 그려 벽에 걸어둔다
1백 호나 되는 마을의 집을 다 그려넣을 수 없으니 단지 조밀하게 있는 모양을 그려서 큰 마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한 집 두 집이 산골짜기에 끼여 있는 것도 빠뜨리지 말아야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안다.
오늘날에는 지도제작기술이 발달한 탓에 그림 그리는 사람을 불러다가 관내 지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 조그마한 복덕방에도 정밀 지도가 걸려있으니 말이다. 다만, 지방관으로서 해당 지역의 지형과 주민들이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될 수 있는 대로 자세하고 큰 지도를 집무실에 걸어놓고 관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상히 파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印文不可漫滅 이요 花押不可草率 이니라 인 문 불가 만 멸 화 압불 가 초솔
도장의 글자는 닳아서 알아볼 수 없으면 안 되고 화압花押은 거칠고 엉성 해서는 안 된다
새긴 글자가 모호하면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기 쉽다. 화압도 그러하다. 그 긋는 법이 면밀하지 못하고 서툴러 쓸 때마다 같지 않으면 농간의 폐단이 생긴다. 물정을 잘 살피고자 하면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화압은 수결手決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사인sign과 비슷하다. 사인 역시 할 때마다 차이가 나면 부하직원이 농간을 부릴 수 있다.
是日 에 刻木印幾顆 하여 頒于諸鄕 한다 시 일 각 목인 기 과 반 우 제 향
이날 나무도장을 새겨 여러 향鄕에 나누어 준다
도장이 다 만들어졌으면 그것을 나누어 주면서 "도장을 찍지 않고 시행하지 말라" 고 약속한다.
조선 후기에는 향촌의 풍헌과 약정이 모두 도장이 없어서 관아에 올라오는 보고문건들 중에 중간 위작이 많았다. 그래서 정약용이 이러한 제안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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