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자 중앙일보
"눈이 오네요. 날씨가 안좋아서 서둘러 출발했더니 제가 너무 빨리 도착했어요."
인터뷰 약속이 있던 날, 전영록씨(48)는 약속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도착했다. 서둘러 연락을 받고 나가자 대학 1학년 차림같은 그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더플코트, 청바지와 운동화, 하얀 깃의 티셔츠 위에 덧입은 스웨터, 그리고 살짝 밝은 갈색 물을 들인 머리에 뿔테 안경…. 중진 가수로 정중히 대접을 받을 나이에 아직도 '젊은 오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가요계에 데뷔한지 올해로 30년째. '애심'이란 곡을 들고 나온게 1972년의 일이라니 믿기 어렵다. '종이학''불티''내사랑 울보''아직도 어두운 밤이인가봐' 등 그의 히트곡도 어느새 80년대의 추억이 돼버렸다.
이번에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새 음반을 낸데 이어 29일 서울교육문화회관(02-573-0038)에서 열리는 콘서트 무대에도 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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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데뷔 20주년을 맞아 92년에 선 무대가 마지막이었어요. 그러니 정확하게 10년 됐죠.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을 것 같네요."(웃음)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을까. 그는 "한마디로 기피였죠"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솔직한 설명엔 연륜이 묻어난다.
"떠밀려서 음악을 해왔던 것 같아요. 출발부터요. 얼떨결에 무대로 나와서는 창피해질까봐 열심히 노래했죠. 30년째 되니까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보다는 애틋한 마음이 더 드네요."
그의 30주년 음반은 좀 특별하다. 박진영.박정현.장나라.성시경.엄정화.베이비복스 등 21명의 후배 인기가수들이 그의 곡들을 다시 불러 그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음반이다.
예컨데 박정현은 '나를 잊지 말아요'를 불렀다. 그는 박정현을 가리켜 "내가 직접 돈주고 음반을 사도 아깝지 않은 후배 가수"라면서 "정현이가 '나를…'을 부르는 걸 보고 까무라칠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장난끼 많은 후배들은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 그만큼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한 이 음반에 전영록씨는 자신의 신곡을 한 곡 싣는 것으로 후배들의 정성에 보답했다.
그가 10년동안 무대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시간 가는줄 모를 정도로 재밌어하는 일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디오광'인 그는 3년간 비디오 샵을 운영했는가하면, 96년 '전영록의 비디오 길라잡이'(절판)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아버지 황해씨가 출연한 옛날 영화를 비롯, '독짓는 늙은이'같은 옛날 비디오를 찾아다니는 일을 그는 '금광을 캐는 일'에 비유했다. DVD, LP, CD 수집도 마찬가지여서 소장하고 있는 DVD 타이틀만 해도 9백여장.
요즘 그는 오랫만에 새 곡을 만드느라 잠까지 설치고 있다. 내년 3월쯤 자신의 신곡으로 꽉 채운 새 앨범을 팬들에게 선보이고 싶단다. 레이 찰스.조 카커 등 블루스에 심취해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게 앞으로 만드는 곡들엔 나이만큼 진한 블루스의 향기를 더하고 싶다는 바램이다.
97년 탤런트 이미영씨와 이혼한 그는 99년 16년 연하인 임주연씨와 결혼했으며 세 아이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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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