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四君子와 우리문화
오늘 집안 대청소를 했다.
한철을 지날 때마다 습관처럼 대청소를 하는 것은 봄이 지나고 초여름에 찾아드니 당연히 청소와 함께 집안의 쌓인 먼지와 잡물들을 정리해 가능하면 단조로움을 유지하려는 내 생활 습관의 한 패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청소를 하면서 습관처럼 자개장농도 깨끗이 닦고 자개장 문짝에 자개용 전용 기름칠을 했다.
이 자개장은 결혼 후 직장 따라 서울로 이사를 한 후 아내와 인사동에 가서 구입한 앞면이 까만 옷 칠을 한 9자 짜리, 네 쪽문이 달린 장이다. 이 장롱 문짝엔 매화무늬와 난초무늬, 국화무늬와 대나무의 네 가지 식물을 자개로 박아놓은 그림이 새겨져 있다. 가구로써 품위도 있고 고상해 안방에 들여놓고 옷장으로 활용하는 것으로서 이를 사군자四君子자개농이라 일컫는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알다시피 사군자는 식물 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사랑받는 꽃과 자연식물들이다. 따라서 이 사군자에 대해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고 가능한 한 이 네 가지 식물들도 늘 함께 하도록 하기 위해 매화와 난과 국화 등 화분들도 서재나 거실에 두고 기르며 감상하는 즐거움 또한 누리는 내 생활취미요 친구로 삼고 있다. 내 고독과 한적한 시간대에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친구들이요 이들 네 친구들을 나는 무척 아낀다.
우리 가정뿐만이 아니다. 우리 생활문화의 원형 가운데 하나가 사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연 식물 중에서 매·란·국·죽梅․蘭․菊․竹의 네 가지 식물을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있다. 이 식물군인 사군자는 우리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종족의식 속에 고상하고 선비다움의 정신과 고상한 취미의 주인공으로 오랜 기간 매우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사군자는 각 설정돼 있는 식물인 네 가지 이름인 매梅· 란蘭· 국菊· 죽竹에 ‘군자’라는 최고의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강한 가치 지향적 상징을 지닌 단어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식물들에 어떻게 그 최고의 상징인 군자君子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군자란 생명력을 갖고 지탱하게 되었으며,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의미를 잃지 않고 있는지 사군자를 보면 그 뜻을 가늠해 볼 수 있는데 도대체 ‘군자’란 수식어를 붙인 그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슬기롭게도 우리 선조들은 눈보라 속에서 꽃망울을 맺어 꽃을 피워 내는 매화梅花를 보고 봄이 다가옴을 가늠하였고, 뭇 꽃이 진 늦가을 서리에도 꿋꿋하게 피어나 향을 토해내는 국화 향을 맡고 가을이 짙어감을 짐작하였다. 풀잎처럼 약해 보이지만 한결같이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난을 그리워하며 가까이하여 선비의 기상을 깨달았다. 곧고 늘 푸른 대나무를 정신적 친구로, 지조 높은 절개를 상징 삼는 정신을 기리면서 삶을 즐겼다.
옛 선비들은 이 네 식물이 각 모진 계절의 변화에도 의연히 제 본분을 지키는 이들에서 군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모습을 보아 이치를 배우고 삶의 속살을 채워나가는 겸손함을 몸에 익혔다.
이들 네 가지의 식물의 특성에서 군자의 품성品性이라 할 특별한 장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군자君子란 유교에서 지향하는 이상적 덕목을 갖춘 인간상으로, 곧 선비정신을 간직한 고결한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인 군자의 의미를 사물에 적용시켜 생태적 특성이 군자의 품성을 닮은 식물도 우리는 군자라 일컬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덧붙이자면 매화는 겨우내 그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꽃망울을 맺고 그 꽃망울 안에 꽃잎을 품고 있다가 새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듯 이른 봄에 고고히 꽃망울을 터트려 곱게 꽃을 피운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워 마른 나뭇가지에 신비롭게 핀 꽃망울은 봄밤을 밝히며 은은한 향을 온 천지에 선사한다. 이렇게 추위를 이기며 피어나는 특성 때문에 매화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군자나 지사志士, 세속에 초월한 은자隱者로 비유되며 또는 지조志操 있고 고상한 연인에 비유되기도 하지 않는가.
난蘭의 본성은 바람과 물을 좋아하지만 이 또한 지나친 것을 꺼리는 특성이 있고, 산중에서 나무그늘이나 바위 밑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 흡수하며 살면서도 빼어난 잎에 고운 꽃을 피우며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날려 보내는 기품이 있다. 이러한 난의 생태적 특성에서 옛 문인들은 중용中庸의 도道를 지키는 군자의 풍성을 보게 되었고, 이처럼 산속에 홀로 피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절제하는 향기로운 삶은 군자의 삶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무척 좋아하는 식물이 아니더냐.
모든 꽃이 피었다 지고 없는 늦가을, 조용히 서리를 맞으며 피는 모습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닮고 고귀한 기품을 발견할 수 있다하여 군자라 하였으며, 국화는 더욱이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모든 꽃이 피는 봄과 여름을 다투지 않고 찬 서리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함은 늘 남들보다 뒤에 자리하면서도 더욱 향기롭게 빛나는 군자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군자의 칭호를 선사하지 않았는가.
또한 사시사철 잎이 푸른 대나무는 곧게 자라 휘어질지언정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강직한 특질을 가지고 있다. 속은 비어 넉넉하면서도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기품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 곧게 뻗어 올라간 늠름한 모습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군자의 모습이요 삶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이 대나무에도 군자란 명예가 주어지지 않았던가.
이 외에도 늘 푸른 기상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진흙탕 속에서도 맑은 꽃을 피어내는 연꽃, 고아한 모습의 수선화 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특별히 매·란·국·죽을 사군자로 정한 것은 다분히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의 절기에 맞추려는 우리 선비들의 정신과 의도가 담겨 있다하겠다. 이 네 개의 식물에 주어진 군자의 칭호와 더불어 군자란 어원이 생겨나게 된 동기는 사군자의 인간으로부터 연유됐는데 이 인간에게 주어진 군자의 칭호내력은 어떤 연유와 역사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이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수식어인 군자君子란 용어는 언제 생겨나고 그리고 ‘君子’라는 용어는 어떤 인물들에 붙여졌을까? 이 명예로운 군자란 말은 원래 뜻이 높은 네 사람을 가르치는 말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우리나라에까지 퍼져 들어온 말이다. 제齊나라 때의 맹상孟嘗과 조趙나라의 평원平原, 초楚나라의 춘신春申, 그리고 위魏나라의 신릉信陵 등 네 군자를 말하며 그 당시 매우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이 네 군자는 모두 밝은 지혜가 있으면서도 충성스러운 믿음이 있었고, 관대하고 후덕하면서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현자賢者를 존경하면서도 선비를 중하게 여겼으며 그 인품들이 고상하고 지조가 높았기에 이들 네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사군자四君子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을 빗대어 식물군을 찾아내어 일컬어 매·란·국·죽의 네 가지 식물을 사군자四君子라 칭하게 된 것이 그 역사요 연유라 하겠다.
이 네 명의 군자라는 단순한 명칭이기는 하지만 유달리 네 명을 묶어 생각한 이유는 서로 비슷한 의미를 갖는 사물을 묶어 그 유사한 특징을 도출해 내거나 비교했던 전통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이 같은 성격의 유사점을 감안해 보면 매화나 소나무와 대나무 등 이 세 개의 나무군은 추위를 견디며 뜻을 펼치는 기개가 있다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옛 선비사회 시대 때의 우리나라에서도 사군자라 일컫는 인물들이 있었다. 덕德이 높고 고상한 인품을 지닌 네 사람을 사군자四君子라 부른 예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즉 조선시대의 문인이었던 홍귀달洪貴達(1438~1504)의 「허백정집虛白亭集」에 기록되어 있기를,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매계梅溪, 조위曺偉, 용재慵齋, 성현成俔 등인데 이들은 의義로써 교류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들을 사군자라 불렀다“ 고 하였다. 이렇듯 사군자四君子란 참으로 영예스럽고 의로우면서 참선비요 올곧은 품성의 소유자라 하겠다.
아무튼 사군자는 우리 생활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성리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화가畵家나 시인들은 사물의 순수한 존재를 관조觀照하고 그것을 철학의 논리적인 관점에서 사상을 끌어와 사물에 부합시키려고 노력하였고 사물에 자신의 뜻을 의탁하여 노래하는 영물시詠物詩가 발달하고, 사물에 의미를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크게 유행했는데 그게 바로 그러한 사상의 기초가 되었으며 영물시의 발달과 함께 문인들에 의해 자신의 뜻을 그림으로 표현한 문인화文人畵가 급속도로 발달하여 오늘에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고 문인들이 취미로 그리는 그림이 곧 그 네 개의 사물을 선정해 그리는 것이 사군자四君子그림이라 하겠다. 원래 사군자를 그리는 취미는 문인들이 여가를 이용 자신들의 의중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곧 네 개의 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써 사군자 이었다.
수 세월에 걸쳐 우리 민족의식의 밑바닥에 전해져 내려온 그 사군자가 지금도 우리 생활주변의 기기나 생활용품에 새겨져 늘 함께 하고 있다. 그 하나 증거들 중에 오늘 내가 닦은 자개농의 사군자 그림이 아니더냐. 그리고 네 가지 식물을 길러 곁에 두고 취미로 삼는 사군자들이 나를 반기며 대화를 나누자고 손짓하는 것 같아 이제 붓을 놓고 그 친구들 곁으로 잠시 가려 한다.
첫댓글 여기 3편의 수필을 올려듭니다.
오늘 시간이 나서 올렸습니다.
늘 왕성한 활동들 하시기를 빕니다.
사군자를 친구로 두셨으니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자세히 정독하겠슴다 환영함다~!
현대판 사군자로--
사군자와의 대화~~ 평화로움~~ 아늑한 느낌~~~
하하하하하! 청암선생님! 오래간 만이십니다.
건강하셨지요? 사군자와 벗하시고 사는 삶이 바로 군자의 삶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우리 사군자처럼 고고하게 살아요! 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