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도 않는데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의 바다보다 더 처절하고 절박한 바다가 뭍을 향해 달려온다, 바로 소용돌이 치는 사랑의 바다이다.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시인은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부드러우며,
때로는 부서지기도 하는 자신의 사랑을 파도에 비유하면서
뭍처럼 흔들리지 않는 임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
인도의 금욕주의자 간디도 그가 죽을 때까지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영국해군 제독의 딸인 미라라는 여성이었다.
간디가 56세 때 33세인 미라가 찾아와 문하생이 된다.
간디가 미라에게 보낸 애절한 편지 350통이 공개돼 화제가 되었다 .
여기서 하나 , 간디도 청마의 연애에도 육체가 개입되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5천 통의 연애편지를 쓴 청마가 밋밋한 영혼에다 대고
“날 어쩌란 말이냐”고 매일매일 우체통에 편지를 밀어 넣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통영에 간다.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동양의 나폴리라 부른다.
등산로를 따라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통영이 품고 있는 섬들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태양이 중천에 떠있는 빛 밝은 날의 바다색깔은 너무 맑고 푸르다.
이곳에 올 때마다 작은 방 하나 얻어 한두 달쯤 살고 싶어진다.
통영은 예향(藝鄕)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된 곳이다. 연극인 유치진, 시인 유치환, 시인 김상옥,
소설가 김용익,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화가 전혁림, 음악가 정윤주, 나전칠기 명장 김봉룡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고향은 이곳이 아니지만 통영에서 몇 년 머물며 작품을 남긴 예술가도 더러 있다. 이중섭은 부산 시대와 서귀포 시대를 청산하고 이곳에서 2년간 머물렀다. 그때 ‘흰소’ ‘황소’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등을 그렸다.
또 시인 백석은 이곳에서 애틋한 연애 시 몇 편 남긴 것이 지금까지 통영의 자랑거리로 꼽히고 있다.
청마의 시는 교과서에 실린 ‘깃발’그래서 이번 통영 길엔 청마의 내면을 꼼꼼히 챙겨 보리라 마음먹었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유치환(1908∼1967)의 시 ‘행복’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것은 애타는 짝사랑의 연가(戀歌)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행복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상대방은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나.
아마도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애써 감추기 위한
자기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청마가 평생의 연인이었던 정운 이영도 시인을 만난 것은 38세 때인 1945년이었다.
통영여중의 국어교사와 가사 교사로 만난 둘은 첫눈에 빠져든다.
청마는 부인이 마련해 준 작업실인 영산장에서 애달픈 편지를 써서 중앙동 우체국으로 걸어나가 연인에게 부쳤다. 죽을 때까지 5천 통이 넘었다.
청마는 유부남이었고 이영도는 딸 하나를 두고 홀로 사는 여인이었다.
둘 다 가슴만 타고 마음만 부글거렸지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아 넘지를 못했다.
매일 편지를 부치러 가는 청마는 우체국 부근에서 부업으로 수예점을 열고 있던
이영도를 유리창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 만나지 못했다.
맛있는 과일을 눈앞에 두고 한 입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이나 무엇이 다르랴.
청마는 60세 때인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
시 ‘행복’은 청마가 숨지기 얼마 전 발표된 시다 .
이영도는 청마에게 받은 편지로 사후 한 달 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서간집을 펴냈다.
그녀는 ‘돈벌이 속’이란 비난이 쏟아지자 “내가 서간집을 내지 않으면
다른 여자가 먼저 낼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3년 뒤 반희정이란 여인이 1958년부터 1963년까지 5년 동안 청마로부터 받은 편지로
‘청마와 사색의 그림자들’이란 책을 펴냈다.
진짜 낚시꾼은 낚싯대 하나로 고기를 낚는다.
통영을 걸으며
청마의 낚싯대 숫자를 세어 보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운 이여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짝사랑의 좋은 점’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상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돈과 시간이 안 들고,
차일 염려가 없고 끝내고 싶을 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짝사랑은 행복감과 고통을 동시에 선물한다.
짝사랑의 열병은 앓는 사람의 넋을 빼앗는다.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감수성의 성장을 자극하는 짝사랑은 예술인들에게 걸작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1882년 니체는 폐병 치료차 로마에 휴양온 스물한 살의 루 살로메를 만났다. 첫눈에 반한 니체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려와 여기서 만나게 되었지요”라며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때 받은 충격과 분노를 니체는 책 속에 풀어놓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것이다. 니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베토벤은 1801년 짝사랑하던 이탈리아 귀족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바치는 ‘월광’ 소나타를 작곡했다. 귀족의 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슬프면서도 애절한 곡을 썼다고 한다. 훗날 베를리오즈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묘사할 길이 없는 한 편의 시”라고 극찬했다.
스탕달은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
통영의 바다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
트레킹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져다 준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의 휴식을 찾고
건강을 헤아리는 마음의 넉넉함을 갖게 하는 오늘
바닷가 산책길은 또 하나 얻은 마음의 위로다.
언젠가 복잡한 일상이 되면 이길을 생각해 낼 것이다.
하늘과 바다와 산의 숲이 어우러져서 하모니를 이루는
자연의 합창곡을 듣던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던 때를
떠올리면서 생활의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통영 ,거제 ,지심도를 흘러 우제봉까지
1박2일은 어느덧 내마음의 행복 교과서가 되었다 .
첫댓글 내 마음에 품고사는 행복하나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내 안에 행복이 있다는것이 행복할 따름인거 같습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 하지요
봄기운 완연한 통영 바다에 옷음꽃 활짝 사랑이 넘치네요
기적은 항상 서 있는 그자리에서 나타나네요
지금 일렁이는 파도에 저마다 생각을 싣고 지심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담아올지...
그냥 섬이 속삭이는 바람에 따라 자연스레 건네고 돌아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