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맺음달 열하루, 맑음.
아침 일찍 사랑하는 아우 이재한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곧 차를 탄다고, 아마도 8시쯤이면 청주에 도착한다는
반가운 통화를 하고 서둘러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나는 서두르지만 저는 아무 것도 바쁠 것이 없으니
느리적거리기만 하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길
녀석은 짧은 아침산책이 영 불만입니다.
그렇게 돌아와 씻으려 하는 동안 도착했다는 전화가 다시 왔고
역시 길 서둘러 가경동에 가서 반갑고 기쁜 포옹,
이어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그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한 재한의 이야기를 들었고
아침 먹으면서도 이어지는 못 본 사이의 이야기들
밤새 자다 깨다 하면서
오늘 재한을 만나면 어딜 가야 할까 생각을 했는데
아침을 먹으면서 단양의 헌책방 ‘새한서점’으로 결정을 했고
이어 곧장 길을 나서서 나는 운전하고
재한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 풀어내는 달콤한 시간,
충주에 잠시 멈춰서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커피 입맛까지 맞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형제임을 확인하는 것도
작지 않은 기쁨이었습니다.
다시 길 나서서 제천을 지나다 보니 점심 때가 되었고
이제는 그 어떤 서두를 이유도 없는 길,
길가에 눈에 띄는 식당에 차를 대고 들어갔습니다.
봉양의 ‘가마솥 순대국’이라는 오로지 순대국만 하는 식당은
뜻밖의 맛집이었습니다.
조미료 하나 넣지 않고 끓여낸 순대국과
숟가락을 놓자 곧장 커피를 권하는 주인의 따뜻한 마음,
그렇게 커피 한 잔까지 마신 뒤 다시 길 나서서
단양, 매포를 지나 적성면에 도착한 것은
두 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딱 한 번 가 본 곳이지만 아직 길은 낯설지만
서점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은 낯익은 곳
지난번에 올 때에는 봄이었지만 지금은 여름
오솔길 가에 피어 있는 초롱꽃들의 수줍은 인사에
금방이라도 부드러운 소리의 나팔을 불 듯한
아담한 아름다움을 보는 것도
산속의 시원한 바람결도 모두가 그대로 선물이었습니다.
한 번 보았지만 이내 알아보는 젊은 주인
그리고 서점 입구 어름에 마음으로는 가까운
지원 박양준 선생의 글씨 한 점에도 잠시 눈길을 준 다음
냄새 그윽한 서가(書架)들 사이를 다니면서
두어 권 책을 골랐고, 재한 또한 책 몇 권을 골라
계산을 할 때쯤은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재한에게는 추억이 담긴 곳이라고 하는 매포를 둘러보자고 했으나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면 시간이 좀 애매해서
추억 되밟을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되짚어 돌아오는 길에는 저무는 하루가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대답,
여기와 정 반대의 계절인 마다가스카르는 지금 겨울
여러 모로 11월쯤이 좋다고 하면서
그곳에 다른 것보다 깨끗한 푸른하늘을 볼 수 있다는 말도
나를 잡아당기는 인력으로 작용함을 느끼는 사이 청주에 도착
그에게 필요하다는 죽염을 준비했다고 하는 변미경 군과의 통화
저녁 같이 먹자고 했더니
피곤하다고, 죽염은 찻집 ‘세렌디피티’에 갖다 놓겠다고 하여
저녁 먹고 세렌디피티에 들러 커피까지 한 잔 마시다 보니
되짚어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간이 다가와
일어나 버스 타는 곳까지 가서 차 타는 것 보고 돌아온 저녁 시간
잠도 부족했고 거의 종일 운전을 하다시피 했는 데도
피곤은 전혀 느낄 수가 없음이
그와 나의 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오늘 큰 수확은 그의 말 가운데 있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치열한 현장을 두고 나가 돌아다니는 것이
책임 회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선교사 임기가 끝날 때 한국에서 자기 일이 있다고 판단되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와 호흡을 맞추며 말년의 일을 풀어간다면
그만큼 효과도 크고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아직 꼭 그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온 것으로 느껴지는
마다가스카르의 생명 비경(秘境)
그렇게 되짚으며 헤어짐이 마냥 아쉬움만도 아닌
짧은 만남의 여운을 되씹는 것까지 입안에 괴는 단맛,
오늘 이름을 ‘가슴 속을 쓸어내리는 비질’이었다고 이름을 붙이며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내다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