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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흐느적거리며 영주를 거닐다.
영주의 무섬마을을 찾았다. 비를 주적주적 맞았는데도 오히려 신이 난다.
가끔은 미친 듯이 비를 맞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도 세례를 통해 지저분한 생각이 가득한 내 마음이 정화시키고 싶은 심정도 한몫 했을 것이다. 누각에 앉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취하다보니 나른해진다. 그러나 해우당의 현판을 보는 순간 등짝에 채찍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바다같이 어리석움이 있는 곳 ' 하필 이런 이름을 지었지. 아니면 '바다같은 근심'...뜻풀이를 하자니 근심의 혹이 하나 더 는 것 같다.
결국 문화유산 해설사를 찾아 물었더니 해우는 주인장의 호이며 '해동의 어리석은 자'의 줄임말이란다. 그만큼 자신을 낮췄다고 할까.
빗속에서 난 '겸손'이란 단어를 가슴속에 새길 수 있었다.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니 세상이 확연해졌다. 풀과 꽃이 더 짙어졌고 나무의 질감까지 살아있다. 비는 하늘을 가렸지만 세상을 윤이 나게 해준다.
빨간 우산을 쓴 여인이 지나간다. 아니 살이있는 꽃이 세월을 초월하며 걷는 것 같다.
역시 무섬마을의 하이라이트는 외나무 다리다. 인생사가 탄탄대로였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했을까. 가끔은 삐그덕 거리는 상판도 밟기도 하고 강물에 빠지기도 해야 살 맛이 나지 않을까.
참. 저 여인은 사랑비를 맞으며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비를 맞은만큼 부풀어 오른 감동만큼 몸도 마음도 허기졌다. 풍기에서 인삼석갈비를 만났다. 숯불에 기름을 쏙 뻰 돼지고기를 양파와 인삼을 버무려 상추에 싸먹으면 된다. 풍기 황토골 인삼불고기다.
강낭콩처럼 생긴 것이 뭘까? 바로 6년근 인삼 열매다.~~약효 만큼이나 색감도 곱네 소백산은 하얀 솜이불을 덮었다. 그 아래 사과가 빨갛게 익어간다.
순흥의 면사무소 앞에서 목과 손이 잘린 불상을 만났다. U자형 옷주름 , 무릎은 타원형 주름이며 물결처럼 파문이 퍼지고 있다. 법의는 바닥까지 치렁치렁 옆을 보면 커튼을 접은 듯 정교한 주름을 볼 수 있다. 어찌 딱딱한 화강함을 이리 감미롭게 표현했을까?
손목은 어디로 갔으며 이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주인공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순흥면이라면 금성대군이 단종복위운동으로 도륙을 당한 곳이 아닌가?소수서원을 흐르는 죽계 계곡을 핏물로 만들었던 그 곳. 그 처참함을 난 불상에서 느꼈으니 참 아니러니하다.
엉겅퀴의 눈물
어릴 때 다리에서 주워왔다는 소리를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그 말의 시초가 바로 ‘청다리’다. 오늘날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 죽계계곡을 연결하는 다리 제월교를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 전국의 수재들이 구름처럼 모이기 시작했는데 순흥 지역의 처녀와 사랑을 나누면서 원치 않는 임신문제가 뒤따랐던 것이다.
엄격한 유교사회였기에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기에 비밀리에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갓 태어난 아기를 보자기를 싸서 한밤중에 소수서원 옆에 있는 청다리에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주로 연락을 받은 선비의 부모가 데려갔지만 여의치 않으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데려갔다고 한다.
당시 신분이 높고 똑똑한 사람의 핏줄을 데려가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말로 회자된 것이다.
단종 복위에 동조했던 순흥의 선비들이 죽어갔는데 아이들이 피바람을 피해 숨어든 곳이 청다리였다는 설도 있다.
이 다리밑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한번쯤 고향
소나무들의 트위스트. 나무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소수서원 소나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취한대(翠寒臺), 소나무와 차가운 물빛에 취한다...퇴계이황의 글에 나온 얘기. 안개르 헤치며 숲길을 거닐었다. 청정함이 온몸에 스며든다. |
첫댓글 꼭 가 보고 싶은 곳을 모놀님의 수고로 안방에서 관람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대장님의 섬세하고 정이 넘치는 글과 사진이 참 좋네요..
영주에 이런 좋은 곳이 있었네요..
감사 ^^
여기 가자고 몇 번이나 약속했는데 늘 지나가버렸네..
언제고 모놀에서 갈 수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따라 가고 싶은 곳입니다.
비맞은 소나무들..좋네요^
옛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고즈녘한 고택의 느낌이 정말 좋네요.
비가와서 모든 풍경이 더 깨끗하고 진하게 들어오는 것 같아요.
대장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