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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글작가대회, 2019년 11월 14일, 경주힐튼호텔.
2000년대의 단편서사시
―시의 대중성을 위한 제안*
맹문재(안양대 교수)
1
신자유주의는 2000년대의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 혹은 주제어이다. 인터넷, 폭력, 실업, 환경오염, 양극화, 물질주의, 일상, 다원화, 몸 등 시대를 지배하는 담론이 많지만 신자유주의가 그 어떤 것보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도시를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기존의 사상을 폐기하고 배추를 소비하고 토지 용도를 변경시키고 사람들을 이동시킨다.
신자유주의란 용어는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 이후 기업들이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회자되었다. 아이엠에프는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부실한 기업의 정리, 모든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 8% 이상 유지,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폐지, 재벌 경영의 투명화, 기업의 적대적 인수 및 합병,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요구했는데, 다급한 한국 정부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실직자와 구직자들이 거리에 넘쳐났고,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졌으며, 물질 가치가 인간 가치를 장악하는 상황이 도래되었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제시하는 조건을 거절할 수 없어 명령하는 대로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작업량을 채우고 투자할 정보를 찾고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다.
시문학 또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시의 위기에 대한 논의들이 많았는데, 그만큼 시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실제로 시의 시장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시집 판매가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그 원인에 대해서 대부분의 논자들은 인터넷이나 전자매체의 등장을 들고 있는데, 물론 그와 같은 진단이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피상적인 인식이기에 좀 더 총체적인 파악이 필요하다. 실제로 문단에 등장하는 시인들의 수가 늘고 있고, 시집 출간도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적인 면뿐만 아니라 시문학 자체에 대한 진단과 그것에 토대를 둔 전망의 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그 대안의 한 가지로 ‘단편서사시’를 제시한다.
2.
카프 내에서 대중화의 문제가 제기된 것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창작에 관한 근본적인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대중화론이 모색된 것이다. 대중화론은 카프를 이끄는 팔봉 김기진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대중들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내용적인 면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차원에서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면을 개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 같은 시를 본보기로 제시했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男)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야 지금은 화젓가락만이 불쌍한 우리 영남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실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었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야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오빠의 강철 가슴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야 제가 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치른 구두 소리와 함께― 가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그래서 저도 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뚫어트리고
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 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어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었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섧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을 수 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야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전문
1929년 2월호 『조선지광』에 실린 위의 작품은 한 노동자 가족의 궁핍한 생활과 계급투쟁 의식을 그리고 있다. 부모가 없는 3남매 중에서 맏이인 “오빠”는 “신문지 냄새가” 나는 공장(인쇄소인 듯)에 나가고, 그 아래 누이는 “누에 똥내”가 나는 공장(제사공장인 듯)에 나가며, 막내 어린 남동생 “영남”이는 “담배의 독기”가 넘치는 공장(연초공장인 듯)에 다닌다. 부모가 없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을 상징하는 면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화자가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다가 “우리”라는 복수대명사로 호소하고 있어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유리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형식은 시인의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시인이 주도면밀하게 구성한 결과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그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써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임화는 이와 같은 단편서사시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형식으로 여겼던 것이다.
임화의 단편서사시란 서사적 골격을 지닌 일종의 이야기시를 일컫는다. 이는 기존의 서정시 양식으로는 급변하는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그리고 일정한 목적의식의 전달에만 중점을 두는 선동식 서술로는 독자들의 감동을 얻기 어렵다는 자각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대중을 주요 독자로 삼았을 때 그들의 세계인식 수준을 고려해야 하므로 구체적인 사실과 쉬운 어휘 그리고 정서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아주 면밀하게 구성하고 있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다는 진술은 일제치하에 시달리고 있는 민족 상황과 그에 따라 가족의 평화가 깨어져 있는 정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가락은 깃(旗)대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그 극복에 대한 희망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오빠와 핏줄을 같이”했다는 뿌리의식과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싸워나가겠다는 연대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임화는 다른 단편서사시들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지향을 추구하고 있다. 「네거리의 순이」에서 화자인 “오빠”가 공장 노동자인 여동생에게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인 용감한 청년을 찾으러”가자고 제의한 것이나, 「어머니」에서 화자인 “오빠”가 노동운동하던 여동생의 애인 순봉이의 죽음을 어머니에게 알리면서 “불쌍한 옥순이하구 내가/혼자 남은 순봉의 어머니의 아들과 딸이 되어” 계속 투쟁하겠다고 한 것, 그리고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에서 함께 노동하던 연인을 남겨두고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사랑의 주린 유년공(幼年工)”을 돌보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 등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또한 「병감에서 죽은 녀석」, 「양말 속의 편지」, 「다 없어졌는가」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임화는 자신의 단편서사시를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중화에 본보기로 삼으려는 팔봉의 주장에 대해 비난했다. 팔봉의 대중화론은 대중주의에 편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민중혁명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상주의 역시 소시민적 흥분에 불과하다고 자기비판을 했다. 그렇지만 임화는 단편서사시의 창작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와 같은 면은 「봄이 오는구나」「오늘밤 아버지는 퍼렁 이불을 덮고」「나는 못 믿겠노라」 등에서 보듯이 1935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만큼 임화는 대중화를 고민하면서 단편서사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3.
단편서사시는 짧은 이야기가 있는 시, 즉 이야기를 노래하는 서술시이다. 서술시 형식으로 서사시가 쓰이지만 서술시가 곧 서사시의 전유물은 아니다. 서정시 역시 서술시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편서사시의 서술시 형식이 주목되는 이유는 “서술시에는 살아 있는 실제의 인간이 포괄된다. 즉, 배제의 원리가 아니라 포괄의 원리가 작용한다. 그리고 비인간의 시나 영물시와는 달리 감각적 이미지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행위나 생생한 삶의 모습에 의하여 인간적 의미나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서술시 형식으로 쓰이는 단편서사시는 인간적인 시점을 지닌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통해 인물과 사건이 독자에게 집중적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1970년대 이후의 민중시에서 볼 수 있다.
박서방은 구주에서 왔다 김형은 전라도
어느 바닷가에서 자란 사나이.
시월의 햇살은 아직도 등에 따갑구나.
돌이 날으고 남포가 터지고 크레인이 운다.
포장친 목로에 들어가
전표를 주고 막걸리를 마시자.
이제 우리에겐 맺힌 분노가 있을
뿐이다. 맹세가 있고 그리고 맨주먹이다.
느티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워 놓은
면서기 패들에게서 세상 얘기를 듣고.
아아 이곳은 너무 멀구나, 도시의
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
오늘밤엔 주막거리에 나가 섰다를
하자 목이 터지게 유행가라도 부르자.
사이렌이 울면 밥장수 아주머니의
그 살찐 엉덩이를 때리고 우리는
다시 구루마를 밀고 간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밀린 간조날을
꼽아 보고. 건조실 앞에서는 개가
짖어댄다 고추 널린 마당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제기를 찬다. 수건으로
볕을 가린 처녀애들은 킬킬대느라
삼태기 속의 돌이 무겁지 않고
십장은 고함을 질러대고. 이 멀고
외딴 공사장에서는 가을해도 길다.
―신경림, 「원격지」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도시의/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 작업장은 “돌이 날으고 남포가 터지고 크레인이 운다”고 서술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위험한 곳이다. 그런데 화자 혼자 원격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주에서” 온 “박서방”이며 “전라도/어느 바닷가에서” 온 “김형”과 함께하고 있다.
소외된 곳에 비인간적인 처지에 놓인 화자는 “포장친 목로에 들어가/전표를 주고 막걸리를 마시자”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에겐 맺힌 분노가 있을/뿐이다. 맹세가 있고 그리고 맨주먹이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오늘밤엔 주막거리에 나가 섰다를/하자 목이 터지게 유행가라도 부르자”라고 동료들을 이끌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화자는 말들은 가슴속에 들어 있는 것일 뿐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사이렌이 울면 밥장수 아주머니의/그 살찐 엉덩이를 때리고 우리는/다시 구루마를 밀고” 가야 할 정도로 작업 시간의 여유가 없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밀린 간조날을/꼽아”볼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십장은 고함을 질러대”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보면 화자가 술을 마시고 목이 터지게 유행가를 부르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된다. 주막거리에 가서 화투를 치고 싶어하는 심정도 마찬가지이다. 화자의 억울함이며 분노를 해소할 적합한 장소도, 방법도,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1970년대의 사회적 가난과 소외를 안고 살아가는 민중성을 획득한다. 서술시 방법을 통해 민중들의 삶이며 심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의 시작품들은 서술시보다 묘사시가 지배하고 있다. 서술시는 인물이나 사건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묘사시는 이미지가 지배한다. 이미지가 작품의 원리여서 생생한 감각을 가질 수 있지만, 의사소통의 제재들은 작품에서 밀리고 만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서술시의 형식으로 쓰이는 단편서사시는 사회적 상황과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 존재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시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4.
필자의 단편서사시 제시는 2000년대의 한국시를 위한 또 다른 ‘포즈론’이기도 하다. 포즈론은 일제 강점기에 이원조(1909~1953)가 제기한 창작방법론이다. 이원조는 1935년 카프의 해산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문학이 활동력을 상실한데다가 전향 문제가 문단 내에서 대두되자 포즈론을 제기했다. 전향 문제를 작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일이라고, 따라서 조선 문학의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본 것이다.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지키려는 작가들에게 1930년대의 식민지 상황은 대항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무서운 것이었다. 지식인의 양심으로는 용납될 수 없었지만, 전향이 정당화되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원조는 조선 작가들이 취해야 할 도덕적인 자세로 포즈론을 제시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유명한 물리학자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정에서 「코펠릭스」의 지동설을 믿지 않겠다는 것을 서약했는데 그 당시에 광경은 어떠했느냐고 하면 만약 그 서약을 하지 않으면 곧 화형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갈릴레오」는 믿지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 가만히 입안에서 「그러나 움직인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의 진리를 위한 사람의 「포-즈」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랄」이다.
― 이원조, 「현단계의 문학과 우리의 ‘포-즈’에 대한 성찰」
이원조는 갈릴레오(1564~1642)의 포즈를 조선의 작가들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종교재판정에서 자신의 학설을 번복한 갈릴레오를 비난하기보다 그를 이해하고 옹호했는데, 한 인간을 단순히 포옹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을 겪은 한 지식인을 품은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지지한 갈릴레오는 명성을 얻었지만, 종교재판을 받아야만 되었다. 당시는 신권이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성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곧 사회 체제를 뒤흔드는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갈릴레오와 같은 학설을 주장했던 조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을 당했다. 1633년 갈릴레오는 이단이라는 가장 무서운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그는 착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실험을 통해 얻은 진리가 신앙에 어긋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기에 위협을 느꼈다. 그리하여 과학자로서 진리라고 믿어온 사실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이원조는 갈릴레오의 전향 그 자체보다 “그러나 움직인다”고 중얼거린 사실에 주목했다. 갈릴레오가 결코 ‘진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한 지식인으로서 ‘모랄’을 지켰음을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행동을 조선 문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로 제시했다. 전향을 강요하는 시대에 수많은 선조들이 보여준 절개의 정신을 이어받아 목숨을 스스로 내놓는 것이 필요한지, 아니면 미래를 기약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필요한지 묻고,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태도가 당연하다거나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민중들과 연대해서 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30년대의 조선 작가들은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퇴조에 따른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많은 고민들을 했다. “안막, 안함광, 김두용, 한효 등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집착하여 이것으로써 활로를 찾으려 했고, 백철은 인간 묘사, 휴머니즘, 휴머니즘에 입각한 리얼리즘의 방법을 모색했고, 임화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변형인 낭만주의를 주장하다가, 이를 자기비판하고 새로이 사실주의를 주장, 나아가 언어적 형상화 탐구로, 종래 민족주의파는 고전론으로, 이원조는 포오즈론으로 각각 모색 전개했는데, 이 가운데 김남천의 고발론이 창작 방법론으로서는 비교적 독창적이고 공감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남천은 카프의 해산에 따른 문단 침체와 전향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진정한 문학을 창작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이원조의 포즈론을 발견했다. 포즈론이 작가의 윤리를 지킬 수 있는 방안임을 깨닫고 창작방법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다. 민중들과의 연대적인 행동이 필요하지만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작가가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자기 고발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김남천의 고발론은 창작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전의 프롤레타리아문학에서 지향점으로 삼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어서 우리의 실정에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을 파악하고 대체한 창작론이므로, 21세기의 한국 시가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참고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무시하거나 생략한 채 명분만을 추구하는 시는 관념화되고 추상화될 뿐만 아니라 주체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김남천의 고발론은 이 점을 간파했다. 참된 작가적 윤리란 언제나 사회 및 대중들의 삶과 관련되어 형성되는 것을, 자기 성찰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작가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국가․사회․민족 등 인류에 관한 사상과 신념의 문제가 여하한 것인가 하는 국면으로 제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작가 자신의 문제로서 호흡되고 어느 만큼이나 심정의 문제인가로 제기된다. 고쳐 말하면 작가에겐 세계관이 주체를 통과한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언제나 일신상의 모랄과 관계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주체적이지 않은 시를 써놓고 독자들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이다.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는다고 탓하거나 원망할 수는 없다. 진정한 문학을 위한 포즈는 구호를 외쳐서 민중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극복을 지향하는 연대감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서사적 골격을 지닌 이야기시인 단편서사시를 2000년대의 시인들이 추구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리얼리티를 확보해 시의 난해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맹문재, 「‘포즈’의 심화」 및 「임화의 대중화」(『만인보의 시학』, 푸른사상, 2011, 11~42쪽)를 다소 수정함.
맹문재
시론 및 평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