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3:10-11
예정하신 뜻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설교>
11절을 보면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예정하셨다는 말은 이미 1:5,9,11절에서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모든 것 까지 하나님이 예정하심으로 되어진 일임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는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이미 작정되었다면 예정되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결국 구원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고, 반면에 예정된 사람은 신앙생활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쨌든 구원을 받게 된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이 예정에 의한 것이라면 인간이 방종으로 흘러갈 위험이 크다는 것도 예정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는 인간의 책임과 열심 등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정에 대한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만약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의 마음과 의지에 달린 문제라면 인간은 그 어떤 소망도 없는 영원한 어둠의 끔찍한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선언처럼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으로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의 인간이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중심에서 자신에게 유익되는 것으로 향할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자기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스스로 선택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여부를 우리의 판단과 결정에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시고 의로우신 계획에 의해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방법으로 행하시는 것보다 크고 확실한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우리의 공로는 개입될 수 없는 것이고 오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의 영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결정된 구원이고 어떤 경우에도 번복되지 않는 확실한 구원이니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여전히 자기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정이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결코 그러한 생각으로 흘러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거룩한 자가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여실히 증거되었습니다. 신자는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정으로 인해 신자를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어 놓으시고 평생을 감사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높이고 찬송하게 하심으로 영광 받고자 하시는 것이 예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을 인간의 구원에 초점을 두고 이해하는 것은 예정의 참된 뜻을 알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정에 대한 또 하나의 잘못된 이해는 우리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까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대학 입학, 취업, 결혼 등등 모든 일들이 이미 예정된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입학할 대학까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고 취업할 회사나 결혼할 대상까지 하나님이 이미 예정하신 상태에서 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하지만 섭리와 예정은 다릅니다. 예정이 이미 작정되어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면 섭리는 그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세우신 예정 안에서 허락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신자는 모든 사람을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되 모든 삶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주어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십니다. 하지만 그 예정의 뜻은 우리의 구원을 향해 있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정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심령이 되어 그 어떤 말씀으로도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인간을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부르시는 모든 이유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높이는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으로 집중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방향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영광이 찬송이 되게 하는 방향으로 역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택함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기어코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부름 받은 신자로 하여금 하게 하시는 것은 나 같은 자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은혜에 눈이 열리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굴복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행하심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은 늘 우리의 허물을 드러내심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죄를 보고 깨닫게 하시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은혜임을 자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교회는 우리의 구원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한 채 자기 구원과 복에만 집중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실천과 열심을 통해서 구원을 확인하게 함으로써 결국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헛된 길로 나아가게 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인간의 죄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만 초점을 맞추면 신앙의 방종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신앙의 방종은 무엇일까요? 교회 일을 등한시하고 십일조를 하지 않고 기도와 성경읽기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만약 그러한 것이 신앙의 방종이라면 사도들이 방종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그러한 실천에 열심을 낼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러한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방종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고 내 인생에 도움 되는 실용적인 신앙을 추구해 버리는 것입니다. 가령 자기 뜻과 욕구 충족을 위해 기도하고, 신앙을 자신의 복을 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들이 신앙의 방종입니다.
그러고 보면 본질적으로 인간은 늘 방종으로 흘러갑니다. 방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은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하나님을 위해 뭘 하고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의 관계에 붙들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해 예수님을 저주에 밀어 넣으실 만큼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백번 천번 생각해도 지옥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무엇으로도 이 사랑을 끊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신자는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 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을 깨닫게 된 신자는 사랑에 의해 살게 됩니다. 자신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을 바라보며 그 사랑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사랑이 능력이 되어 신자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관계로 모이는 성도를 사랑하게 되고 타인의 허물에서 나의 허물을 보면서 비판보다는 용서와 사랑에 의한 권면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채우고자 욕망까지 다스려지면서 주의 소유가 되어 주의 영광을 높이는 신자 됨에 뜻을 두고 주를 찾고 그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으로 말미암아 부름 받고 예정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은 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