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에 사는 이웃을 따라 안동 사과농장을 다녀왔다. 시내를 지나 안동호 근처에 도착해서 간고등어 정식을 먹고 농장으로 들어갔다. 2,500여평 과수원엔 하얀 사과꽃들이 우리들을 반겼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습관적인 호기심이 발동하여 밭머리 도랑을 휘둘러보고, 산모퉁이 너머 인근의 작은마을 어귀까지도 살펴보았다. 한적한 말그대로 전원이었다.
비가오니 따로 할일이 없었다. 인적없는 컨테이너 건물 안 중늙은이 둘이서 무엇을 하겠는가? 밭가장자리의 두릎을 따고, 냉장고에 보관해둔 고래고기를 꺼내와서 소주를 마셨다. 한병을 마시고 주인이 '더할거냐'는 말에 내가 '뭐 따로 할일이 있느냐'고 하였더니 함께 웃으며 다음 잔을 이어갔다.
술과 안주로 배가불러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바깥의 의자에 앉으니 작은 하늘의 별이 유난히 크게 빛났다. 공해가 없다는 것이다. 비는 그치고 바람이 불자 하얀 사과꽃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을만큼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텔레비젼을 보다 서툰 잠자리에 들었으나 자주 잠을 깨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안동호로부터 밀려 온 운무가 골짜기를 덮었다. 큰 호수 주변의 기후는 대략 그랬다. 춘천 소양호, 진주 진양호, 여기 안동호...안개가 자주 끼고 겨울날씨가 주변보다 춥다. 안개라면...오래전 화천 여행 중 이른새벽 파라호의 데크를 혼자 건널때, 현대판 살수대첩이라 불리던 6.25 전쟁사 수만의 중공군 병사들의 악령을 생각하니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에서 두려움마져 느끼게 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오랫만에 좋은 공기를 마시려 크게 심호흡을 해댔다. 고함이라도 실컷 질러보고 싶었다. 작은 도랑엔 물고기가 깨어 헤엄쳐 다녔다. 너무 까불면 너희들 여름을 못넘긴다는 사실을 알아라. 어디서 날아왔는지 산새들이 지저귀며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녀석들은 농장 한가운데 모형 수리매가 겁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나에게 전북죽을 챙겨준 농장 주인은 서둘러 기계로 약제살포를 하기 시작했다. 작업장에 다가서긴 하였지만, 기계가 다 알아서 하니 일을 도울 것이란 생각으로 따라 온 내몫은 정작 없어 서운했다.
심심하여 밭주변을 배회하였다. 유난히 민들레며 길경이, 쑥이 많았다. 저걸 뜯어먹으면 모두가 약이다. 무료해진 터에 도로 아래 언덕에서 고사리를 발견하고 꺽어서 삶았다. 그곳이 군락지인줄 주인도, 동네 주민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런때 호기심 많은 나의 섬광이 빛을 발한 것이다.
전체 과수원의 약제살포는 서너시간이 걸린다. 도로가를 걸으니 귀한 할미꽃이 엄청 많이 피어있었다. 할미꽃 군락지였다. 당귀도 수없이 많았다. 남의 소유이니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주인은 주변에 또 다른 밭과 산을 소유하고 있단다. 다른 먼곳에도 산이 있는데 나더러 이용을 하라고 권했다. 주인은 이곳 사과나무 숫자가 대략 800주, 홍옥과 부사 그루당 10만원의 수익을 계산하고, 비용을 공제하는 계산을 해보였다. 웬만한 도시 월급쟁이는 부럽지 않은 수익이다. 더구나 농촌엔 돈쓸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돈을 떠나 그의 노후가 부러웠다.
한참 농약 살포를 하고 있는데 인근의 농장주인이 들러 약제살포의 시기가 맞지 않다고 하였다. 주인은 한참을 생각더니 그가 가고난 후 일을 계속했다. 그더러 '참새'라고 하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오며가며 드나들어 한마디씩 던지고 간다나...
농사란 조금 편한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란다. 마음을 비운 그의 생각에 동의를 하며, 옛날 새마을운동 시절 강사에게 들었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며칠쯤 이곳에 머물고 싶어졌다. 다시 어제의 그 마을쪽으로 걸었다. 마을회관 입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가는 또래의 남자에게 말을 건넸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섰다. 나의 접근이 너무 의외라고 생각했나보다.
작업이 끝나니 11시가 가까웠다. 장비와 숙소의 짐을 챙기고, 그곳을 출발하여 안동 시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든 식당엔 손님이 많았다. 이곳 같으면야 코로나에 대한 경제적 어려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였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차창밖을 주시했다. 도로주변의 푸르런 산야가 너무 보기에 좋았다. 또 다시 회색도시의 굳은 시멘트 벽속에 갇혀야 함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푸르런 산능선이 그리워졌다.
그럼에도 비록 일을 도우려 나섰다가 할일없이 돌아 왔지만, 산야를 즐기고 이웃과의 우애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1박 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