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이의 오필리아, 오딜롱 르동, 1905~1908년 , 64 x 91cm
이 작품은 오딜롱 르동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이다. 노랗고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불명확한 물과 땅의 경계 아래 강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 주변엔 그녀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귀하고 화려한 꽃들이 피어 있다.
화관을 한 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강물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이 그림은 햄릿의 비극적 여인 오필리아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덴마크의 햄릿 왕이 갑자기 죽자 왕비 거트루드는 왕의 동생인 클로디어스와 결혼한다. 또한 클로디어스는 형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의심했던 아들 햄릿 왕자는 삼촌인 클로디어스가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햄릿 왕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한 여인의 아버지 재상 폴로니어스가 삼촌 클로디아스로 착각하고 실수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사랑하는 햄릿 왕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게 된 폴리니어스의 딸 오필리아는 이 소식을 듣고 미쳐 강물에 빠져 죽는다. 이것이 비극의 오필리아에 대한 내용이다.
오필리아의 비극적 삶은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대표적인 화가가 영국 화가 존 에버릿 밀레이과 프랑스 화가 오딜롱 르동 이다. 오딜롱 르동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르동은 병약했던 어린 시절, 어색한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울하고 내성적인 소년으로 상장한 탓에 그 긴 세월 동안 흑백의 판화를 제작해 왔다.
그러나 그는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나며서 안정적인 기정을 꾸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그림의 세계도 많이 달라졌다. 그는 60세를 기점으로 색채를 취급하게 되었는데, 가벼워진 색채만큼이나 주제도 자연과 신화, 종교 등으로 바뀌었으며,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 세계로 화폭을 펼쳐나갔다. 꽃가루가 춤추듯 오색(五色)을 흩뿌리는 것 같은 이향(異香)을 머금은 색채에 감미로움을 풍기게 하는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오딜론 르동(Odilon Redon)은 그가 창조한 이미지에서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예술가였다. 1840년 보르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내내 고립된 질병으로 고생한 르동은 플로베르, 보들레르, 에드거 알렌 포의 문학을 통해 환상적이고 섬뜩한 것에 대한 친밀감을 일찍부터 키웠다. 학구적인 화가 J. L. 제롬(J. L. Gérome)과 괴짜 석판화 천재 로돌프 브레스댕(Rodolphe Bresdin)에게 시각 예술을 배운 르동은 흑백 작업을 시작으로 섬뜩하고 신랄하며 감정적으로 충만한 환상적인 이미지를 묘사하는 느와르(Noirs)라는 대형 목탄 드로잉을 제작했다. 옆모습에 보이는 여성의 얼굴은 소리 없는 비명에 얼어붙는다. 남성의 머리가 구불구불한 늪 꽃의 줄기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얽힌 나무의 자연주의적 풍경 (Redon이 존경하는 J.B.C. Corot의 유사한 구성에서 영감을 얻음)은 섬뜩한 뉘앙스로 가득 차게된다.
1880년대에 이르러 이 그림들의 독창적인 이미지와 뛰어난 기법은 비평가와 예술가들로부터 르동이 인정을 받았고, 1884년에는 상징주의 미학을 정의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요리스-칼 하위스만스의 소설 À rebours(자연에 대항하여)는 르동 그림을 수집하는 퇴폐적인 귀족을 묘사했다.
이 성공으로 르동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서 새로운 개인적 행복을 찾았고, 평생의 우울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오일과 파스텔을 모두 사용하여 컬러 작업을 시작하여 이전에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로 묘사한 풍경에 활기를 불어넣거나 여성 초상화가 포함된 꽃과 나비로 정물을 만들어 당시 인기 있던 인상파 팔레트가 그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했다. 초기의 느와르와 마찬가지로 아스트랄 헤드(1905)와 비너스의 탄생(1910)은 여전히 상상의 대상을 묘사하지만 이제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및 녹색으로 생생하게 채색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