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세계일보 2011-7-10
말레이시아 선거법 개혁 시위, 주말 곳곳에서 충돌
긴 하루가 끝났다. 시위대와 경찰 모두 숨을 돌릴 시간이다. 선거법 개혁을 원하는 시민단체 버리시 2.0과 야권의 집회에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맞서 쿠알라룸푸르 시내가 하루 종일 소란스러웠다. 옥외 시위 대신 운동장 집회를 허용했던 경찰이 집회를 원천 봉쇄하자, 시위대들은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집회를 강행했다. 경찰의 경고에도 시위에는 수만 명이 참가했다. 시위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5만 명, 경찰 추산 1만 명 규모였다. 외신들은 2만 명 내지 3만 명이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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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거제도 개혁 시위에 참가한 말레이시아인이 자국 국기를 휘감고 거리를 걷고 있다. |
이날 시내에서는 경찰의 강경진압에 맞서 쫓고 쫓기는 시위가 오후 내내 이어졌다. 시위대들은 “리포르마시”(개혁)와 “술탄 아공 만세” 등의 구호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머르데카 경기장 인근으로 진입한 시위자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버리시 소멸 작전’을 행동지침으로 내건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했다. 간혹 헬기로 고공 물 폭탄을 투하하기도 했다. 경찰의 해산 과정에서 시위가담자 1667명이 연행됐다. 연행된 이들 중에는 야당 지도자도 여럿 포함됐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는 와중에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야당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도 이마와 다리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와르의 옆을 지키던 비서는 더 큰 부상을 입었다.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안와르는 “그들(경찰)의 야만성이 드러났지만, (집회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말레이시아 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암비가 스리니바산 ‘버리시 2.0’ 의장과 시민운동가 마리아 친 압둘라, 야당인 PAS의 압둘 하디 아왕 대표도 연행됐다. 암비가 의장은 이날 오후 늦게 석방되는 등 다수 인사가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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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찰과 시위대가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대치하고 있다. |
62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버리시 2.0은 매표 행위 방지, 선거운동 기간 연장, 여당과 야당에 같은 언론보도 시간 할당, 투표자 식별용 지워지지 않는 잉크 사용 도입 등 선거법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의석의 3분의1를 획득한 야당은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된다면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의 장기집권을 저지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여당연합의 최대 주주인 UMNO는 버리시 2.0의 시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야당의 집회는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반정부 정서를 조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며 “소수 집단의 시위로 혼란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집 라작 총리도 “반대자들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행동을 반대할 것”이라며 경찰의 강경진압을 지지했다.
하지만 시위가 좀처럼 없던 말레이시아에서 수 만 명이 운집한 것 자체만으로도 정부로서는 부담을 느낄 대목이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개혁안이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세금 감면 등의 혜택도 고려대상이 될 것이다.
시위가 있던 9일 비슷한 시각에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영국, 일본, 태국, 프랑스, 필리핀, 호주, 홍콩 등 해외 곳곳에서도 버리시 2.0을 지지하는 집회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유학중인 말레이시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30여 명이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시위의 자유와 공정 투표 제도를 확립하라”고 외쳤다.
쿠알라룸푸르=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말레이시아 시위 화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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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Photo/Lai Seng Sin) 시위대 속으로 최루탄이 날아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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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Photo/Lai Seng Sin) 모여든 시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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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Ashraf Shamsul Azlan) 경찰은 500명 이상을 구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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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Photo/Lai Seng Sin) 시위대 1명이 떨어진 최루탄을 발로 걷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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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Photo/Vincent Thian) 진압에 나선 경찰 기동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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