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이각(李恪)이 졸(卒)하였다.
이각(李恪)은 덕산현(德山縣) 사람으로 임신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임오년에 무과(武科)에 뽑히여 여러 번 천직(遷職)되어 상호군(上護軍)에 이르렀다.
기해년에 중군 첨총제(中軍僉摠制)에 승진되고, 경자년에 함길도 도절제사에 임명되었으며, 을사년에 병조 참판에 임명되고, 기유년에 나가서 전라도 도절제사가 되었으며, 임자년에 판강계부사(判江界府使)가 되었다.
계축년에 최윤덕(崔潤德)을 따라 파저강(婆猪江) 야인(野人)을 토벌하여 공이 있어 중추원 사(中樞院使)로 승진되고, 이내 평안도 도절제사로 임명되었다. 병진년에 야인(野人)이 국경을 침범한 이유로써 결성(結城)으로 폄직(貶職)되었다가, 무오년에 불려와서 경상좌도 처치사에 임명되었고, 신유년에 전라도 처치사로 옮겨졌다
. 계해년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소환되어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였으니,
나이 73세이다.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조문(弔問)과 치전(致奠)하였으며, 부의(賻儀)를 내리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양정(襄靖)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전쟁에 공로가 있음을 양(襄)이라 하고, 너그러워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한다. 아들이 없었다.
첫댓글 덕산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