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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벽을 만났을 때(왕하 5:1-14)
할렐루야!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폭우와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무심천 발원지에서 실종되었던 조은누리 양이 10일만에 기적적으로 살아, 애타게 찾던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폭우와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도, 무사히 구조된 조양은 충북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으나, 금방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양호한 상태라고 합니다.
어쩌면, 지난 10일 동안, 조은누리 양에게는 절벽과 같은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날들을 조은누리 양은 너무나도 잘 버텨냈습니다.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 속에서도, 잘 버텨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여러분! 그리고 조은누리 양을 발견한 군견이 있습니다. 이름은 달관이라고 합니다.
달관이의 활약상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약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달관이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달관이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5년 전 달관이는 “탈영견”이라는 오명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2014년 2월 28일 육군 제1군견 교육대로 입교하기 위해, 이송되던 달관이는 고속도로에서 군용트럭 철망을 뚫고 탈출했다가, 하루 만에 생포됐습니다.
이후, 고된 훈련을 소화한 달관이는 합격률 30%라는 관문을 뚫고, 어엿한 수색견으로 성장해, 조양을 찾아내는 임무까지 훌륭히 해냈다고 합니다.
이번 일을 통하여, 달관이는 “탈영견”이라는 오명을 말끔히 씻어내고, “최고의 수색견”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울도, 원래는 사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박해하고, 핍박했던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바울이라는 가장 빛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감으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인생의 절벽 같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잘 살고 있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아람 나라 군대 장관 나아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첫째, 인생의 절벽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멘.
나아만 장군은 참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강대국은 앗수르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국내 문제로 급격하게 세력이 약화되어, 국외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그 빈틈을 타고, “아람”이라는 작은 나라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이때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전쟁에 나가 싸울 때마다, 큰 승리를 하여, 아람 나라가 강대국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로 여김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아서, 국방부 장관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보장되었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졌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 걸고, 나가 싸워,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한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에 버금가는 영웅이었습니다.
선조 왕에게,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이순신 장군, 그는 명량해전에서, 세계 전쟁 역사상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이순신 장군처럼, 나아만은 구국의 영웅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 되면, 세상 살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목숨 걸고, 적들과 싸워야 했겠습니까?
이제는 그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안락한 삶을 살 때였습니다. 큰 권력을 행사하여, 호령하며, 누릴 것 누리며 살 수 d;ㅆ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는 인생이 되었는데, 뜻하지 않게, 그는 인생의 절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는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나”가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뜻하지 않게, “이나”가 다가옵니다.
잘 나가는 권력자이나, 뇌물 문제로, 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사장이었으나, 부도의 위기로, 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부자이나, 자녀가 탈선으로, 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강의할 대학이 없어, 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잘 나가는 직장이었으나, 질병으로, 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아들을 낳았으나, 딸을 낳았으나, 합격했으나, 성공했으나, 승진했으나...”
세계 최강의 반도체 국가이지만, 기본 소재 수입의 길이 막힘으로, 전혀 뜻하지 않는 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치명적입니다.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다 날려 버릴 것 같은 위기입니다.
이런 절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아만은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였습니다.
나아만은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돈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찾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냥 망연자실, 아무 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지 않앗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도, 그의 돈도, 그의 인격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절망이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포로로 끌고 온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 하나가, 그 절벽 같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2절)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전도 받은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 보십시오. 문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 보십시오. 불행이 바뀌어 행복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 보십시오. 치유 받는 길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 보십시오. 일어 설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전도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소녀의 말 한 마디로, 결국, 나아만은 이스라엘로 가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누구를 만났습니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15절을 보면,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17절을 보면,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이제는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여러분! 나아만은 절벽 같은 나병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절벽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서, 풀지 못한 숙제도,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아만은 이방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나아만을 하나님이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손에 붙들고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멘.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나아만이 그의 나라를 구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종을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아만이 나병에 걸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병으로, 나아만이 사마리아로 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고,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아만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명예와 권세를 얻는 존귀한 자가 된 것이, 자기 힘으로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나아만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이란 있지 않습니다.
절벽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소리로 들어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와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어떤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할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나아만은 인생의 절벽을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람 사람이요, 이스라엘에게 아픔을 주었던 이방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복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채, 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자기 잘난 맛에, 흥청망청 살아가고 있는데, 인생의 절벽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요, 복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절벽을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 해결의 답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의 절벽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껍질을 벗어버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능력을 믿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신의 지략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으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소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자기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절벽 같은 문제로, 하나님께 나오기는 나왔지만, 자기 교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나아만이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러 갈 때의 모습을 보십시오.
질병을 치료받으러 가는 사람이, 무엇을 준비했습니까?
5절 말씀입니다.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아멘.
“나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스라엘로 가도 좋다”고 하는 왕의 허락을 받고, 나아만은 무엇을 준비했습니까?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 의복 열 벌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계산해 보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도, 금이 육천 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금을 몇 개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나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오는데,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 의복 열 벌”을 준비했다고 하는 것을 한편으로, 좋게 생각하면, 그만큼 정성을 다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치료비라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돈을 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한 돈을 줄 터이니, 그것으로 나병을 치료해 달라는 것입니다.
돈이면, 다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려는 태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아만은 아직 껍질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포장하고, 위장하고, 과장했습니다.
나아만은 물질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권력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함도, 물질로, 권력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당도하자마자, 왕을 찾아가 아람 왕의 친서를 전해 주었습니다.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6절)
친서를 읽은 이스라엘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 집에 왔을 때, 엘리사는 무엇을,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의 돈과 권력을 보며, 자신을 융성하게 대접해 줄 줄 알았는데, 만나 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종을 통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깨끗하게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권력과 물질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니, 그 껍질, 다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때, 나아만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11절)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돈 앞에 쩔쩔매지 않았습니다.
돈이나 권력 앞에 눈깜짝하지 않는 진짜 선지자를 만나니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인격적인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최강인 아람의 국방부 장관이니까, 자신을 풍성하게 대접하며, 고쳐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자기를 특별대우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접해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나아만은 병을 고치려고 왔습니까? 대접을 받으려고 왔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왔습니까? 아니면, 대접 받으려고 왔습니까?
나아만은 병 고치려고 왔다고 하는 중요한 목적을 지금 잊어버렸습니다.
나아만은 병 고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선지자로부터 인정을 받는데, 더 커다란 관심이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렸지만, 하나님보다는 인간 엘리사의 대접에 더 커다란 관심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선지자 엘리사가 나와, 그를 정중히 대접하면서, 특별히 안수하여 낫게 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몸에 두르고 있는 모든 껍질을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물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아만은 선지자 엘리사의 인정을 못 받아 분노했습니다.
나아만은 지금 엘리사가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고. 그를 특별 대우해 주지 않는다고 분노할 입장이 아닙니다.
병 고침 받는 것이 중요하지, 대접 받는 것이 중요합니까?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자기 과시, 자기 자랑, 자기 대접받기 위해 온 것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목회자로부터 대접 받으려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인생의 절벽 같은 문제를 해결받기 위하여,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으려고 해야지, 대접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회 나오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자기 교만입니다.
그 교만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교만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은혜의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살다가 절벽 같은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 절벽같은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종을 보내어, 나아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나아만은 노하여,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여러분! 나아만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 생각에는”
자기 생각이 이미 다 있었습니다. 그 생각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질병 부분 위에서 흔들어, 나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그렇게 자기 나름대로 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은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 생각에는”, 교회의 되어지는 일들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내 생각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교회는 내 생각을 주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내 생각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는 곳입니다.
“내 생각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여러분! 나아만은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12절)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훨씬 요단강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제한하려고 했습니다.
왕년에 새벽기도도 해보았고, 금식기도도 해보았고, 제자훈련도 받아 보았고, 청년부 회장도 해보았고, 구역장도 해보았고, 직분도 받아 보았고, 다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도 다녀보았고, 능력있는 큰 목사도 만나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간단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나병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온 몸이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요단 강이 더럽다. 다른 강이 더 깨끗하다.”
“사람들이 많은 큰 교회가 더 좋다. 능력있는 목사님께 기도 받고 싶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순종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아무리 큰 교회라 할지라도, 능력 있는 목사님께 기도 받는다 할지라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가 더 큰 일을 시켰어도, 반드시 해야 할 판인데, 요단 강에 들어가 몸을 씻으라고 하는 것도 못하겠다고 하며, 분노했습니다.
순종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계산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학식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요단 강에 들어가, 몸을 일곱 번 씻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고침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허탕을 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새도록 해 보았는데, 한 마리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을 때,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잡았습니다.(요 21:6) 만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만선의 축복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아멘.
나아만이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다가, 그대로 돌아갔다면, 되었을까요?
그는 나병을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메섹에 있는 강에 일곱 번 들어갔다가 나왔다 할지라도 아니, 칠십 번 칠백 번을 들어갔다가 나왔다 할지라도 그는 나병을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은혜 받습니다.
여러분! 어떤 인생의 절벽이 앞에 놓여 있습니까?
살다가, 절벽 같은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을 만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껍질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의 주님
주님 앞에 나왔사오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가게하옵소서.
염려, 걱정, 근심,
가난, 질병, 아픔, 고통,
부모, 자녀, 형제,
모든 것, 다 주님께 맡기오니, 해결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귀한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