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부하들이 자기 이름을 들먹이며 욕/ 알고보니 자기와 이름이 같은 병사 = 이름을 바꾸든지 삶을 바꾸든지 하라.
- 창세기에는 두 사람의 에녹과 두 사람의 라멕이 나온다.
- 창4장의 에녹과 라멕/ 5장의 에녹과 라멕(노아 아버지)
이름은 같은데 삶은 천양지차다.
창4장에 나오는 에녹과 라멕은 완전 악당이다.
` 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성을 쌓고 자기 이름을 따서 에녹성
- 에녹성의 분위기 = 난잡한 음악이 흐르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서성이고, 살인이 끊이지 않는 도시
- 이 성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 = 라멕이다.
- 두 여자를 얻었다. - 아다와 씰라(23)/ 일부다처제 시작
·라멕의 노래가 있다.4:23~24
- 가차없이 사람을 죽이고 자랑한다.
- 그 아들 유발이 듣고 노래를 만든다.
- 일명 복수의 노래다.
` 창4 장은 죽음과 피흘림으로 가득하다.
전혀 소망이 없어 보이고 파국으로 끝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 구원의 손길을 숨겨 놓으셨다.
` 4:25-26
- 아벨 대신 주신 아들 셋, 그가 낳은 에노스
- 에노스= 연약한 사람(죽을 수밖에 없는)’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창세기 5장은 그렇게 시작한다.
` 창5 장 족보 = 반복되는 단어 = 죽었더라.
에노스 =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런데 죽지 않은 한 사람이 나온다.
성경은 절망 가운데 소망의 장치가 반복된다.
창1장 어둠 가운데 빛/ 3장 인간 타락속에 가죽 옷
4장 살인 후에 하나님 이름 부르는 사람
5장 죽었더라에서 죽지 않은 에녹
6장 온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때 나타난 노아...,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결단하는 것이다.
오늘 예배속에서도 그런 결단이 있어야 한다.
매주 드리는 참회의 기도에서 결단한 것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절망 가운데 소망을, 죽음 가운데 생명을 준비하신 하나님
생명을 택하라. 소망을 택하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택하라.
· 동굴 안에 마시면 미치는 물이 있다.
- 사람들이 하나씩 미쳐가서 결국 다 미치고 한 사람만 남았다. - 미친 사람들 속에서 정신차리고 살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 결국 그도 그 동굴속에 들어가 바가지에 물을 가득 채운다. - 그리고 고민한다.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
에녹성으로 뛰어 들어갈 것인가?
에녹성을 뛰쳐나와 천성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
- 방법은 하나다. - 바가지를 깨 버리는 것이다.
우물물을 막아 버리는 것이다.
- 우리는 에녹성을 나와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이다.
`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는가?
1. 에노스를 바라 보라. =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증조할아버지에게 물어 본다.
이름에 왜 에노스인가요?
인간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너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온 우주에 죽지 않는 분은 누구인가요?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시다.
생명과 동행하면 생명을 얻으리라.
그는 결단해야 한다.
- 창 4장의 에녹처럼 죄악속에서 살 것인가?
창 5장에서 새로운 에녹의 역사를 쓸 것인가?
에녹은 위대한 결단을 한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하리라.
` 우리가 예수님 믿을 때 받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복이다.
모든 복은 이 속에 다 들어 있다.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니...,
이보다 황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 없으면 영원한 멸망이다. 영원한 지옥이다.
에녹은 뒤를 돌아보며 에노스를 보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에게서 분리된 버려진 가지.
살길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찾는 것 외에는 없다.
에녹은 예배자로 살기로 작정한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작정한다.
2. 므드셀라를 바라보라.
- 아들 므두셀라를 바라보았다.
그가 죽으면 종말이 오리라.
어느날인가 아들이 죽는 날 종말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므두셀라는 969살에 죽었다.
그가 죽던 해는 노아가 600세 되던 때고, 온 세상이 물로 멸망당한 때다.
뒤를 돌아보니 다 죽었다.
앞을 살펴보니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에녹은 죽음과 죽음 중간에 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프랑스의 작곡가이며 사상가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말이다.
탄생과(Birth)와 죽음(Death) 사이에서 선택(Choice)
닭 좋아하는 아들은 Chicken/옥수수 좋아하는 아내는 corn
우리는 christ 그리스도가 계신다.
우리는 탄생과 죽음 사이 그 어디쯤 있다.
오늘 우리는 choice 해야 한다.
christ와 동행하는 성결한 삶인가? christ 없는 crime 죄악된 삶인가?
인생은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가 않다.
시39:5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6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한 뼘인 인생
에녹성에서 살고 있는가?
천성을 향해 걷고 있는가?
시39편은 다윗의 시다. 다윗은 현명한 선택을 한다.
7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에녹은 과거와 미래를 보고 정확히 알게 된다.
우리 인생은 아침 안개처럼, 아침 이슬처럼, 타작마당에서 바람에 날려가는 쭉정이처럼,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구나.
그는 에녹성이 아닌 천성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3.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의 삶
300년 간 에녹은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 분명하다.
교회의 목적도 분명하다.
우리 교회 영원한 표어는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교회”
영혼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고전1: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교회 전면에 이 말씀을 붙여 놓았는데 넝쿨식물이 이 글자를 가리기 시작했다.
남은 글자는 우리는..., 전하니...,
세월이 지나자 “우리”만 남았다.
목적어가 빠진 교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빠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에녹은 300년을 한결같이 살았다.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다. 한결같이..., 변함없는 신앙
` 신우회 예배때 새로 오신 부시장님
김제 제일교회 장로님/ 인사하면서 제발 예수님 믿는 척하고 삽시다. 세상에 나가서 성도인 척하고 삽시다.
자신은 부시장이지만 정체성은 장로라고 고백
일부러라도 장로인 척하고 삽니다.
하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향기를 발하지 않으니 척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 죽는 순교가 있고, 산 순교가 있다.
- 보여지는 삶이 있다.
- 매일 매일 경건의 삶을 훈련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야 것이다.
` 조선 임금 효종이 마을에 갔다가 노모가 임금님 얼굴 보는 것이 소원이라서 업고 10리 길을 왔다는 청년의 말을 들었다.
= 효행을 알리고 후한 상금을 내려라. 효자 아닌 젊은이가 노모를 업고 나와 임금을 기다린다. 상금을 탄 젊은이와 똑같은 말을 한다. 저놈은 불효자식인데 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 어머니를 업고 나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효종이 말한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후한 상금을 내리라. 왕은 바보가 아니다.
흉내 내다 보면 효도를 알게 되고, 사람 된다.
`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았다.
라멕은 노아를 낳았다.
노아는 에노스도 보았고, 에녹도 보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에노스
죽음을 보지 않은 증조할아버지 에녹을 알았다.
969년을 살았지만 결국 죽는 므두셀라를 보았다.
그는 방주를 만들어 가족을 구원한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 4장의 에녹은 성을 만들었고, 그 자녀들은 살인과 방탕을 일삼았다.
- 5장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고, 그 자녀들은 구원을 받았다.
- 믿음으로 살라. - 안 되면 흉내라도 내 보라.
기도 흉내 내다보면 기도가 된다.
예배 흉내 내다보면 예배가 된다.
교회에 그렇게 본을 보이는 에녹이 있고, 그런 사람을 흉내 내다 구원받는 노아가 있기를 축원한다.
` 에녹의 신앙은 일상속에서 이뤄지는 신앙이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다.
그러나 생활속 신앙이 무너지지 않는다.
- 매일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 루틴이라는 말을 쓴다.
-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이나 절차
루틴이 되면 근육이 붙고, 습관이 되면 운명이 바뀐다.
매일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평생 예배하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사람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사는 사람
평안하고, 고요하고, 너그럽고, 부드러운 사람
모두가 에녹성에서 부와 명예를 얻고, 천하를 호령하겠다고 하는 시대에 그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작정한 사람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 우리는 영웅적 성도의 서사를 너무 많이 들었다.
- 갑자기 뒤집어지고, 성령충만하고, 하루아침에 성공하고...,
- 갑자기 성령충만해서 세상을 뒤집는 일은 없다.
- 신앙은 꾸준히 일상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 아이가 뒤집기까지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
- 신앙은 날로 먹는 것 없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혼자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게 아니다. 병아리가 여린 부리로 껍데기의 안쪽에서 톡톡톡 소리를 낸다. 그때 어미가 바깥에서 도와 껍데기를 같이 쪼아준다.
이렇게 하나의 알이 깨지는 데는 상호협력이 필요하다. 안과 밖에서 같이 쪼아야 한다. 속에서 줄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겉에서 탁하는 신앙적 삶이 있어야 한다.
` 인생에는 수없이 많은 문들이 있다.
- 하나님은 두드리는 문을 열어 주신다.
- 에녹 성문을 두드리는가? 천성문을 두드리는가?
신앙은 꾸준히, 매일같이, 한결같이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헬스장을 가보면 헐크같은 아저씨들을 본다.
처음 왔을 때는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들이다.
그런데 1년의 시간이 지나고,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헐크가 되었다.
시간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죽음을 보지않고 옮겨진 것이 그와 같다.
-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했다.
- 매일 경건한 삶을 살아낸 것이다.
오늘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자.
경건한 삶, 성도다운 삶을 시작하자.
`결론) 에녹성을 탈출하라.
`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그 주에 뉴욕 타임 스퀴어 부목사 카터 콜론의 설교 <Run For Your Life>
911테러가 일어난 그 주에 이렇게 설교했다.
살려면 달아나십시요(Run for your life)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일학교 소풍에 오는 것처럼 와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계속적으로 좋은 시간 보내고자 초대하는 곳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두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9.11사태 때 사람들이 무너져 내리는 쌍둥이 빌딩에서부터 도망쳐 나올 때, 뉴욕의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은 사람들을 향하여 "살려면 달아나십시오" 라고 외쳤습니다.
그때의 외침이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합니다. 살려면 빨리 달아나십시오! 오로지 성공과 번영에만 초점을 맞추는 복음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단지 개인적 이득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이들로부터! 오직 자아 개발에만 초점을 맞추는 복음들로부터 달아나십시요!
달아나십시오!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이 영광을 받는 교회들로부터! 성경이 없는 교회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그들의 신학엔 십자가가 없습니다. 말씀을 상고하는 것도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대해 언급도 안합니다. 그런 교회들은 부정한 교회들입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달아나십시오!
죄를 지어도 편안한 교회들로부터!
하나님의 집에 와서, 여러분 삶에 죄를 품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교회라면, 그것은 마귀의 식탁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하나님의 강단을 사용하는,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진 강단들로 부터 달아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살려면 달아나십시오!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십시오! 제발 달아나십시오! 어서 속히 달아나십시오!
지금 있는 어정쩡한 신앙에서 달아 나라.
인간의 욕망과 명예를 탐하는 에녹성에서 달아 나라.
천성 문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그 손에 든 말씀의 검을 내려놓지 말라.
에녹이 과거와 미래를 보며 결단하듯 오늘 새로운 신앙의 결단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름을 바꾸든지 삶을 바꾸든지...,
우리는 성도다.
이름을 바꿀 수 없으니 성도의 삶을 살아가자.
찬양: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