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답사에서 느낀 나의 생각(3)
기후 사정으로 하루를 더 체류하기 위해 펜션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로 갔다. 19명의 대군사가 먹을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면서 쇼핑과 함께 구매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모습은 140여 전 일본으로 파견 된 수신사와 문물시찰단들이 근대화를 배워야 한다는 그 열정만큼이나 절박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물론 그들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리고 배경과 역할과 목적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공간상에 있어 일본이라는 것과 시간적인 현실에서 절박했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나는 일행들의 뒤를 역할 없이 뒤만 졸졸 따라 다녔다. 그러다가 맥주 판매 코너가 보이게 되자 본능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맥주 캔을 한 아름 안고 계산대로 나왔다. 일행들이 보면 많다고 할까봐 얼른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잠시 후 일행들이 구매해 온 내용물은 일본에서 대중적인 식품인 단무지와 유부를 비롯해 매우 실용적이고 알뜰한 것들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술만 챙긴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둘러 구입한 것들을 챙겨 펜션으로 향할 때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원하지 않는 하루 밤이라 몸도 마음도 지치고 쓸쓸 한데 날씨마저 더욱 차가워 작은 가방 하나마저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한 손은 가방을 끌고 다른 한 손은 입으로 호호하고 입김으로 녹이면서 허겁지겁 방 키를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방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목조 건물이었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온기와 깨끗함까지 느껴져 얼었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가방을 한 쪽에 두고 펜션 이 곳 저 곳을 살피보고 있을 때 마당에서 목욕가자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벌써 얼었던 몸과 마음을 녹이기는 것 같았다. 매서운 강풍을 가르며 200미터 정도 떨어진 미우다 온천으로 향했다. 따끈한 온천물에 목욕을 하고 나니 그 순간만큼은 천하를 얻은 만큼이나 좋았고 펜션으로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갈 때처럼 칼바람이 얼굴을 마구 때렸지만 아프지도 차갑지도 안 했다.
나와 일부 일행들이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고 돌아 왔을 때 여선생님들께서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순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니 목욕을 하고 온 자신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성으로 마련해 주신 밥상을 받아들고 한 방에서 옹기종기 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식사를 하는 내내 온기와 정성을 느끼게 해주신 여선생님들의 고마움을 계속 되새겼다. 지금도 그 때 한 가족처럼 단란했던 그 밥상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래서 그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
3일째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한 방에 모여 앉아 젊은 날 학창시절 추억담과 에피소드 이야기로 늦게까지 놀았다. 그런데도 다음 날 아침 피곤함은 없었다. 아마도 따뜻한 마음으로 엮어진 가족들의 이타심과 배려심에서 얻은 에너지인 것 같았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서둘러 하타카쯔 부두로 나갔다. 가방을 맡겨 놓고 쇼핑조와 워킹조 그리고 가방 지킴조로 나누었다. 나는 대마도 연구 소장 이신 이근우 교수와 함께 고분 답사 및 워킹조로 나섰다. 날씨는 추웠지만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낮선 이국땅을 걷는 재미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잠시 후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석관묘가 남아 있는 도노구비 고분에 도착했다. 그 곳의 석관묘의 형태와 청동 출토 유물을 안내판을 보았다. 그리고 이근우 교수님께서 설명도 해주셨다. 나는 한 반도 것과 유사한 것이 많아 우리나라에서 도래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데 비중을 두고 들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단정을 하고 나니 대마도는 혈통적으로도 더욱 친근한 느낌이 와 닿았다.
비탈진 길을 조심조심하면서 도노구비 고분을 내려왔다. 다시 그 주변 해안 이 곳 저 곳 다니며 경관을 즐겼다. 그렇게 한 참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정해진 시간이 훌쩍 다 지나가 버렸다.
터미널로 돌아와 티켓을 받아들었다. 그제 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출발 직전 잊지 못할 추억의 대마도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단체 사진이라도 찍자고 했다. 티켓팅 직전 모두가 하타카츠 여객 터미널을 배경으로 찰칵하고 영원히 남겨 질 추억을 한 장의 사진에 담고는 16:00 비틀쯔 호에 몸을 실었다.
잠시 후 배는 굉음을 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떠나는 우리를 또 잡아놓을 듯이 집채 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배를 마구 때렸다. 그럴 때마다 여객선도 크게 출렁거렸다. 그랬던 그 험한 파도도 40여분이 지나서야 우리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리고 20여 분 후 그렇게도 그리던 부산 연안부두 품에 안겼다.
부산 여객터미널에서 떠날 때 모였던 그 자리에 서서 해단 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가 언약은 안 했지만 내년에도 역사 기행을 또 가자는 눈빛을 주고받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이번 역사 기행을 이끌어 이근우 교수님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주신 다른 교수님들께도 유익하고 즐거웠다고 전하고 싶다.
2016년 1월 24일 저녁 허 태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