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계훈(張繼勳)
[본관] 인동(仁同)
[진사] 선조(宣祖) 38년(1605)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進士) 3등(三等) 1위(31/100)
[생졸년] 1572년(선조 5)~1639년(인조 17) / 향년 67세
[거주지] 영천(榮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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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학사집(鶴沙集)
성균 진사 소정 장공 묘갈명 병서(成均進士素貞張公墓碣銘 幷序)
옛날 우리 세조조(世祖朝)에 옥산(玉山) 장말손(張末孫) 공이 원수(元帥)의 막부에 종사(從事)하여 이시애(李施愛)를 죽이고 연복군(延福君)에 봉해졌다. 이분이 휘 맹우(孟羽)를 낳았는데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이다. 이분이 휘 응신(應臣)을 낳았는데 생원이다.
이분이 휘 윤희(胤禧)를 낳았는데 부사직(副司直)이다. 이분이 휘 언상(彥祥)을 낳았는데 대호군(大護軍)이고, 부인은 충의위 김거(金琚)의 따님인데, 이분들이 공의 고비(考妣)가 된다.
공은 휘(諱)가 계훈(繼勳), 자가 극가(克家), 자호(自號)가 소정(素定)이다. 만력(萬曆) 임신년(壬申年, 1572, 선조 5)에 태어나서 기묘년(己卯年, 1639, 인조 17)에 죽어 영주군 남쪽 막지촌(莫知村) 오향(午向)의 산에 장사 지냈다.
아, 공은 대대로 한양(漢陽)의 태창동(太倉洞)에 살았는데 어려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다. 곧장 임진란을 당해 낙남(落南)하였다. 어려서 시적 재능이 있어 ‘시냇가 언덕엔 버들이 푸르고, 들녘엔 붉은 장미가 시들었네.〔綠均溪岸柳, 紅老野墻花〕’라는 시를 읊조리니 제배(儕輩)들이 경복(驚服)하였다.
비록 전란으로 학업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었으나 오히려 시(詩)로써 세상을 울렸다. 을사년(乙巳年, 1605, 선조 3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때부터 벼슬에 대한 뜻이 없었다. 성품이 순박한 것은 곧 가풍으로 인한 것이다. 평생 남에게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산 늙은이와 시골 늙은이와 더불어 시와 술로 종유하였다. 비록 세상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편안히 스스로 터득하여 삶을 마쳤다.
부인은 구성 민씨(龜城閔氏)로 규(葵)가 부친이고 헌납(獻納) 인(寅)이 고조이다. 시부모들께 효도하고 친족들에게 은혜로웠다. 공보다 6년 뒤에 죽어 공의 무덤 오른쪽에 합장하였다. 아들 주남(柱南)은 성품과 행실이 순수하고 선하여 사랑할 만하였는데, 종제(從弟) 제독(提督) 준남(俊南)의 아들 전윤(典允)을 후사로 삼았다.
딸은 사인(士人) 김운장(金雲章)에게 출가하여 세 아들을 두었는데, 휘세(輝世)ㆍ홍세(弘世)이고 한 명은 장가들지 않았으며, 딸 둘은 권상형(權尙衡)과 이극(李)에게 출가하였다. 나는 시골 늙은이로서 공을 모시며 놀았는데, 일찍 절구 한 수를 주었는데, “시골 노인이 와서 시골 노인의 문을 두드리니, 벼꽃 향기 다하여도 국화가 더디 피네. 둘 다 모두 무탈하게 서로 만나 웃으니, 바로 중양절에 술 익을 때이네.〔野老來敲野老扉, 稻花香盡菊花遲. 相看一笑俱無恙, 正是重陽酒熟時.〕”라고 하였는데, 공도 이에 화답하였다. 시어가 매우 호방하고 빼어났는데 지금 기억하지 못해 슬프도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 얻은 것은 재능이고 / 得之天者才也
시대에 어긋난 것은 운명이며 / 乖于時者命也
자신이 자득한 것은 마음이다 / 其所自得於己者心也
하늘과 시대에 있는 것은 자신이 간여할 바가 아니고 / 在天與時者非己之所得與也
자신에게 있는 것은 하늘과 시대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 在己者非天與時之所得奪也
아, 이 때문에 공의 명을 짓는다 / 嗚呼是可以銘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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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解]
[주01] 시골 …… 때이네〔野老來敲野老扉, 稻花香盡菊花遲. 相看一笑俱無恙, 正是重陽酒熟時.〕 :
이 시는《학사집》권1에〈방장상사극가장(訪張上舍克家丈)〉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황만기 (역)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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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成均進士素貞張公墓碣銘 幷序。
昔我世祖朝玉山張公末孫。從事元帥幕。誅李施愛。封延福君。生諱孟羽。承文校理。生諱應臣。生員。生諱胤禧。副司直。生諱彥祥。大護軍。配忠義金琚女。是爲公考妣。公諱繼勳。字克家。自號素貞。生于萬曆壬申。沒以己卯。葬榮川郡南莫知村午向山。嗚呼。公世家漢陽之太倉洞。幼受學於金沙溪。旋遭壬辰亂。落南。少有詩才。綠均溪岸柳。紅老野墻花之句。儕流驚服。雖搶攘業怠。而猶以詩鳴。中乙巳進士。自是無意進取。性醇有乃家風。平生不皺眉向人。與山翁野老。詩酒相從。雖抹摋於世。而囂然自得以終焉。配龜城閔氏。諱葵。考也。獻納諱寅。高祖也。孝于舅恩于族。後公六年卒。祔葬公之墓右。一男曰柱南。性行純善可愛。以從弟提督俊南子典允後。一女。適士人金雲章。男三。輝世,弘世。一未冠。女二。適權尙衡,李。余以野老陪公遊。嘗贈一絶云。野老來敲野老扉。稻花香盡菊花遲。相逢一笑俱無恙。正是重陽酒熟時。公和之。詞甚豪逸。今不記。悲夫。銘曰。
得之天者才也。乖于時者命也。其所自得於己者心也。在天與時者。非己之所得與也。在己者非天與時之所得奪也。嗚呼。是可以銘公也。<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