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냥 축축 늘어지는 요즘이네요. 집에만 있어도 더위를 먹는 것 같아요.
이런 날에는 추리소설이 딱이죠.
그런데 이거 아세요?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라는 거.
참고로 이번에 권할 작품은 추리와 성장, 이 두 가지를 다 잡은 소설입니다.
도서명: 솔로몬의 위증 1, 2, 3권
저자: 미야베 미유키
* 이 소설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3번 추리 부분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여름은 추리소설의 계절이다. 이런 폭염 속에서는 긴장 가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당기기 마련이다. 범인 대 수사관, 정의로운 변호사 대 나쁜 검사, 혹은 열혈 형사와 성질 까탈의 법의학자 대 웬 미친 사이코페스와 킬러 같은 구도를 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어쩐지 좋은 작품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전자도서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다. 그러니까 도서 제목을 귀로 일일이 들으며 확 끌리는 제목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영 꽂히는 게 없으면 엔터, 엔터, 엔터의 반복이고 말이다.
누가 보면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 스스로도 무식하다고 여기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어쨌든 그런 무식한 작업을 통해 이 작품, ‘솔로몬의 위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더운 여름에 해낸 ‘인간 승리’였다.
솔로몬의 위증 1권 사건, 한 학생의 추락사, 누가 죽인 것인가? 어떻게 죽은 것인가?
1990년대 크리스마스 날 조토 제3 중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의 이름은 가시와기 다쿠야, 그냥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다. 범생도, 우등생도, 문제아도 아닌 그냥 고만고만한 학생. 학교는 그의 죽음을 사고사 내지는 자살로 단정하고 넘기려 한다. 학생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학교의 대내외적인 위신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리고 얼핏 봐도 가시와기 다쿠야의 죽음은 사고사 내지는 자살처럼 보였다. 오밤중에 학교 옥상에 올라간 걸 보면 자살에 무게가 더 실리긴 하지만.
그러나 가시와기 다쿠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는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동요하는 학생들, 고민하는 교사, 자식의 죽음에 슬퍼하는 부모, 또 한 학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 등의 다양한 인물이 얽히며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진다. 게다가 다쿠야의 사건이 의도치 않은 또다른 사건들에 휘말리고 메스컴의 보도를 타면서 더욱 미궁으로 빠져만 간다.
후지노 료코는 아빠가 형사라 그 사건에 관심이 많다. 커리어우먼 엄마의 성격을 물려받아 당찬 심성을 가진데다 학급의 반장이기도 해서 아이들이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탓도 있었다.
한편 교내에서 소문이 짜한 문제아로 평가받는 오이데 슌지가 가시와라 다쿠야의 살인범으로 지목이 되면서 학생들 사이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오이데는 자신이 한 적 얷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가 했던 괴롭힘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발장을 누가 보냈나 하는 의문부터 언론과 세간에서 떠도는 소문과 가십과 기사에 휩싸인 진실은 점점 베일에 가려져만 간다. 익명의 고발장, 그것은 정녕 사실인가?
한편 사건 주변을 맴도는 수수께끼의 소년, 간바라.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의 입장, 학부모의 입장, 언론의 입장, 학생의 입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쿠야의 죽음을 시작으로 발생한 각각의 사건은 어떤 진실을 품고 있을까?
솔로몬의 위증 2권 결의, 경찰도 기자도 아닌 우리의 손으로!
다쿠야의 죽음으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도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커지기만 한다. 과연 범인은 오이데 슌지인가 아닌가.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고발장을 보낸 인물이 드러난다. 미야케 주리, 오이데에게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한 콘플렉스가 많은 여학생이었다. 게다가 가시와기 다쿠야의 죽음에 뒤를 이어 모리우치 선생의 피습, 오이데 집의 화재 등의 사건의 실마리도 아직 풀릴 기미가 없다.
한편 익명의 고발장을 접수한 미야케 주리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며 갈등과 불난은 더욱 심화된다. 분명 그녀는 처음에는 피해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되었고 반쯤은 그런 취급을 받는다. 오이데 슌지와 얽힌 사건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날조인가.
이런 혼란 가운데 후지노 료코는 경찰도, 선생님도, 기자의 손도 아닌, 자신들, 학생들의 손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의한다. 그러나 학교는 어떻게든 재판 진행을 막아보려고 하는데.....
솔로몬의 위증 3권 법정, 상처투성이라도 내버려두면 안 되는 것
부제인 ‘법정’답게 재판이 열린다. 슌지의 변호사로 나설 생각이었으나 검사 입장이 된 후지노 료코. 오이데 슌지의 변호를 맡은 간바라. 그를 돕는 조수 노다 게니치. 그리고 냉철한 판단으로 법정을 통솔하는 이노우에. 수많은 학생들이 진실을 위해 여름 방학 기간 중에 교내 체육관에서 재판을 연다. 그러나 법정이라 해도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어떤 증인이든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다. 변호사를 맡은 간바라를 진술인으로 체택한다든가, 모기 기자를 불러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료코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불리한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한편 간바라는 오이데 슌지를 변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변론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낙담하고, 누군가는 실망하기도 한다. 같은 진실이라도 누가 어떻게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방향은 달라지고, 그 치열한 논의 끝에 가시와기 다쿠야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진다.
판단을 맡은 배심원들, 과연 그들은 솔로몬에 버금가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위증,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 재판에서는 아무도 이길 수 없어. 모두 상처투성이야. 그래도, 그냥 내버려둘 순 없으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니까 다들 노력하는 거야. 올바른 일을 하고 싶으니까.”
이 작품, ‘솔로몬의 위증’은 추리소설이자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 즉 한 학생의 죽음을 다루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 그러니까 십대 아이들의 성장, 가정 내부의 갈등, 언론의 역할 등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책의 제목을 좀 따져보면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 제3대 왕으로 지혜의 대명사인 사람이다.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로 대외적인 평화에 힘써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후에 ‘솔로몬의 영화’로 일컬어지는 융성을 구가하였다. 물론 악마를 봉인했다는 둥, 지혜의 반지를 끼고 있다는 둥, 초월적인 지혜를 가져 현명했다는 둥의 다양한 전설이 따라다니곤 한다.
한편 위증은 법정이나 의회의 청문회 등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 법정에서 위증을 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현명함의 대명사 같은 왕인 솔로몬과 거짓말이라는 의미의 위증이 합쳐졌으니 제목이 다소 모순적이다. 그러나 진실을 찾기 위한 학생들의 좌충우돌 성장기와는 제법 잘 어울린다. 한 학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중학생들이 진상을 알기 위해 재판을 벌이는데, 읽다 보면 대체 그 학생을 누가 죽였는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에 더 관점이 맞춰진달까. 혹외 아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더 초점이 가는 편이랄까.
1~3권, 장편인 것도 있고 각 권당 분량도 상당하다. 그리고 그만큼 여러 인물과 여러 시점이 등장한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를 작가가 친절하게 묘사해줘서 사건에 그 인물이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파악하는 데 별로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료코, 게니치, 마쓰코, 슌지, 주리, 간바라, 그리고 1권 초반에 사망한 다쿠야까지 모든 인물을 눈앞에 떠올려가며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격을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을 높이 산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진짜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미야케 주리가 그렇고, 중2병이 확실한 다쿠야가 그렇고, 별로 인간성 좋다고 할 수 없는 모기 기자가 그렇다. 작품 말미에서 미야케 주리를 이해한다 어쩐다, 그녀에게 사과한다 어쩐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쟁이에 친구를 팔아먹은 그녀는 진짜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이해를 논하기 이전에 상종하고 싶지 않다. 한편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인 가시와기 다쿠야도 짜증나는 놈이었다. 자신의 생각에 빠질 수는 잇지만 그것을 빌미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덧붙여 쓰자키 전 교장은 시종일관 답답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그랬다. 따지자면 그의 잘못은 하나, 아이들을 배려한다고 신경을 쓴 나머지 진실을 숨기려고 한 것이다. 당사자가 꼭 알아야 하는 진실을 자기 선에서 숨기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았다.
법정이니 재판이니가 나오지만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왜냐하면 재판을 하는 당사자들이 모두 본인처럼 지식이 없는 초짜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을 배워가는 과정을 독자들도 충분히 따라갈 수가 있다. 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판에서 새로운 내용이 나와 놀라기도 했고 초반에 등장했던 장면이 이것을 위함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기도 했다. 또 다 알고 있는 내용도 재판에서 어떻게 발언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판을 하며 학생들이 성장해가는 모습, 변화해가는 모습에 애착이 갔다.
결과적으로 재판 끝에 남은 것은 진실이었고, 그 뒤에 있는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래서 위의 문장을 감상을 위해 타이핑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교내 재판을 했던 아이들의 대부분은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크고 작은 상처를 얻게 된다. 차라리 그들이 찾아낸 진실이 ‘무엇’, 즉 ‘자살 또는 타살? 범인은 누구?’와 같은 그저 단순한 팩트뿐이었다면 덜 상처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 앞에 나타난 진실은 ‘왜?’였다. 그는 왜 그랬던 걸까? 그녀는 왜 그랬던 걸까? 그들은 왜 그랬던 걸까?
그 이유들은 하나같이 아프고, 절실하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 방관했던 사람, 모른 척했던 아이들이 그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 안타깝고 미안해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냥 두면 안 되겠기에, 옳은 것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은 재판을 열었고 앞으로 나아간다. 솔로몬의 현명한 판결, 혹은 간교한 위증으로 반성하며..... 가시와기 다쿠야에 의한 가시와기 다쿠야의 살인. 그 여름, 아이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고 미래를 향해 조금쯤 성장했다.
물론 이 작품에 단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중학생이라고 설정했지만 읽다보면 중학생보다 고등학생 같다는 점, 너무 비상해 보인 나머지 사실감이 떨어지는 부분. 작품 중간중간 느리고 완만한 지문이 있고 속기록의 느낌이 강해서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대목. 엔딩은 개운치도 깔끔하지도 않고, 언뜻 납득이 가지 않거나 조금은 억지스럽게 보이는 부분도 있다. 여차 싶으면 호불호가 갈라질 작품, 1~3권마다 반응이 좀 나뉠 작품.
하지만 그 모든 아쉬움들이 충분히 커버되고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연과 조연, 남자와 여자, 학생과 어른, 선인과 악인, 그리고 이 이분법의 가운데에 위치한 모든 인물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일관되고 충실하게 해낸 덕분에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멈추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거운 듯 하지만 우리가 늘 가슴에 담고 있는 생각들을 다루고 있어 많은 면에서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사는 것에 회의를 가진 사람들, 사회 체제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 재판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