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9호
gloomy saturday
-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을 읽고 -
박 은 서
책을 읽기 전부터 눈에 띄는 회색빛 표지는 나를 힘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82년생 김지영.’ 뭔가 대충 지은 것 같은 책 제목과 대충 그린 것 같은 표지의 여성은 이 책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뒤 표지를 볼까.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보고서.’정말 책을 읽기 전부터 힘을 빼는 문구다. 이런 문구로 이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소설의 주인공을 이미 나에게 말해 주었다. 1982년도에 태어난 여성 김지영. 2017년 팔월 현재로서 나이는 35세. 즉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배경이다. 그 배경 속에서 한 여성의 이야기가 풀어진다. 그러나 사실 이야기, 그러니까 이 소설 속에는 줄거리라고 할 것이 없다. 그저 평범한 한 여성의 인생을 서술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답답하고 우울했다. 그냥 나와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여성의 일생일 뿐인데도.
주인공 김지영은 소설 속에선 ‘김지영 씨’라고 칭한다. 보통 소설은 이름, 그것도 성을 뺀 이름-예를 들어 지영-이라고 칭한다. ‘작가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문체도 아주 건조하다. 멀리서 담담히 지켜보듯 감정이입이 하나도 되지 않고 있다. 분명히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처럼, 남 일처럼 김지영 씨의 행동을 서술한다. 너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 그게 소설을 더 먹먹하게 한다. 그런 무뚝뚝하고 건조한 필체가 소설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나 슬퍼요’라고 울먹이는 것보다 이런 건조한 문체가 나를 더 한숨 쉬게 만든다. 남성이어서 이 정도였지 내가 만약 주인공과 같은 여성이었다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비극적 묘사만 없을 뿐 비극이다. 단지 여성이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김지영 씨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의 폭력이 김지영 씨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것은 김지영 씨 하나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 언니, 직장 여성 동료들, 그리고 소설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딸까지도 세상의 폭력 속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더 무서운 점은 이런 상황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황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이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김지영 씨는 현실 속에 산다. 엄마, 선생님들, 아주머니들, 친구들 등, 모두 각각의 김지영 씨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이점을 얻으며 살아왔을지 모르겠다. 당연하다 생각한 그것이 이성에게 폭력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으니 자꾸만 그 생각이 든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차하면 남혐, 여혐이 될 수 있고 또 남성과 여성이 나뉘어 싸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위주로 서술했고 읽으면서 든 생각을 위주로 썼다. 그래도 이 소설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 해 보자면, 이것은 남성, 여성(여성, 남성)으로 갈라져 싸울 게 아니라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물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남성의 책임이 크다. 그렇지만 여성 우월주의로 나가면 안 된다. 과거 남성 우월주의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 평등이란 사회적 상황을 만들 수 있도록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비극의 주인공인 김지영 씨 보다 행복한 김지영 씨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