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검사' 등 직설적 비판
正義 다뤘지만 흔한 소재… 류승범·황정민·유해진 연기 볼만
'부당거래'(28일 개봉)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로 데뷔한
류승완 감독의 10년을 결산하는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류승완 영화의 완성" "
한국 사회에 대한 직격탄" 등의 호평이 이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완성'이란 표현은 감독 본인에게도 당황스럽겠지만, 어쨌든 배우
류승범·
황정민·
유해진을 포함해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네 개의 고유명사는 많은 대목에서 자신이 거둘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성취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성취만큼이나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다. 그 아쉬움은 결국 이 재능 많은 감독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가령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작가주의와 대중영화 사이 타협의 수위, 누아르와 코미디의 불균질, 황정민으로 대표되는 리얼리즘 연기와 유해진·류승범의 풍자적 희극 연기 사이의 불협화음.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물음. 동물원에 갇힌 사자를 쏘아 죽인 사람을 용감한 명포수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
- ▲ 스폰서 검사 주양(류승범·왼쪽 )과 비리 경찰 최철기(황정민)의 알력과 봉합. 한국사회의 비열한 먹이사슬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우선 이 영화의 플롯부터.
류승완의 문제의식은 검찰, 경찰, 사업가, 언론의 비열한 먹이사슬에 있다. 전 국민을 공분(公憤)하게 만든 여학생 연쇄 강간·토막 살인 사건. 대통령까지 경찰을 질책한다. 궁지에 몰린 경찰 수뇌부는 가짜 범인인 '배우'를 만들기로 하고, 이 작전의 연출자로 광역수사대 팀장 최철기(황정민)를 지목한다. 비(非) 경찰대 출신인 철기는 승진을 조건으로 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신축 빌딩 이권을 미끼로 조폭 출신 사업가 장석구(유해진)에게 가짜 범인에 대한 '하청'을 준다. 문제는 이 파렴치한 국민사기극이 스폰서 검사 주양(류승범)의 이해관계와 충돌했다는 점. 주양의 스폰서인 부동산업계 큰손 김회장(조영진)은 장석구와 신축 건물 소유권 문제로 싸움이 붙고, 장석구를 밀고 있는 철기를 손봐 달라고 검사에게 청탁한다. 언론 역시 이 더러운 부당거래의 한 축이다.
-
- ▲ 사업가 장석구(유해진·왼쪽)와 형사 최철기의‘부당거래’장면.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류승완이라는 이름은 '액션 활극'이라는 장르와 동의어였다. 액션은 판타지와 만나면 희극이 되고, 현실과 만나면 비극을 향해 질주하는 법.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가 전자였다면, '주먹이 운다'(2005) '짝패'(2006)는 후자였을 것이다. 판타지를 벗어나 다시 현실에 발붙인 이번 작품에서 류승완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던 욕망을 드러낸다. 바로 한국 사회의 추악한 이면에 대한 직설적 고발이다. 스폰서 검사의 행태, 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 사이의 알력, 대형 빌딩 입찰 비리, 추잡한 언론…. 영화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의로운 이야기를 거의 고발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갈등이 생긴다. '작가 영화' '부당거래'의 욕망과 4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상업 영화' '부당거래' 사이의 충돌이다. 전반부는 류승범과 유해진의 코미디에 무게 중심을 놓으며 풍자와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후반부는 누추하고 비겁한 황정민의 현실에 집중하면서 급격하게 비극적 누아르의 농도가 짙어진다.
문제는 이 장르적 연결이 그다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별 배우들은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냈지만, 류승범·유해진의 코미디와 황정민의 리얼리즘이 불규칙하게 포개지는 연기 앙상블은 종종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특히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대결할 것 같던 경찰 철기가 검사 주양 앞에서 느닷없이 바지를 벗고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은 설득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류승완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그가 야생의 사자에게는 관심이 없느냐는 것이다. 직설적 사회비판극이라고 해도 별 이의가 없을 듯한 '부당거래'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의로운 이야기를 직설화법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사회비판극이 진정한 영향력을 지니려면, 남들이 감히 잘하지 못하는 비판을 보여줘야 했던 것은 아닐까. 스폰서 검사와 사업가의 유착, 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 사이의 갈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 등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번 반복됐던 소재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오래된 비유처럼, 울안에 갇힌 '동물원의 사자'를 쏘아 죽인 사람을 명포수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아프리카 밀림에서 야생의 사자를 쏘는 엽사 류승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