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0월 10일
부산에서 북천을 갈 때 승용차외에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기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기차시간은 구포에서 08:39에 S-train, 10:52, 14:03에 무궁화호를 이용하면 되는데 올 때는 북천에서 13:33, 18:04, 18:40에 (S-train)있으므로 시간적으로 잘 생각해야 한다. 단 S-train은 운행하지 않는 날이 많기 때문에 코레일톡 앱 에서 잘 살펴봐야 한다. 이번에도 9일에 가려고 했는데 일주일전에 S-train 표가 매진되어 10일에 간것인데 조용하고 레일바이크도 기다리지 않고 타서 차라리 잘 되었다. 휴일에 레일바이크를 타려면 복잡해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북천여행시 가장 좋은 방법은 08:39 구포역 출발(S-train) 10:18 북천역 도착 11:00 레일바이크 탑승 출발(2인승 35,000원, 4인승 40,000원) 12:00 레일바이크 도착 하차 12:30 점심식사 13:00 코스모스 백일홍 구경 13:33 북천역 출발(무궁화호) 15:46 구포역 도착
레일바이크는 구북천역에서 출발하는데 신북천역에서 구북천역까지는 2km이고 도보 30분 걸린다. 이번에 레일바이크를 탄후 구북천역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해야했는데 코스모스 구경을 먼저하고 밥을 먹을려고 축제장으로 갔다 헌데 9일 행사를 끝내고 모두 철수해버려 밥을 먹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길가에 간이 음식점이 하나있어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식사후 코스모스 구경은 태풍으로 절단나서 별로 볼 것도 없어 전망대로 올라가 주위를 돌아보고 역으로가 13시 33분 진주 남강유등축제를 보기위하여 기차에 올랐다.
21. 누워있던 남자를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신약 (神藥 )
필봉은 두 남녀 사이에 시선이 오고 가는 줄도 모르고 누이동생에게 말한다 .
"아마 너의 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랫마을에 놀러 갔는가 보구나 ."
이렇게까지 말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
"참 , 여정 (與情 )아 ! 이리와 이 어른께 인사 올려라 . 이 어른은 학문이 매우 높은 어르신네다 . 이번에 나를 대신해 훈장자리를 맡아 주기로 하셨다 ."
그러면서 김삿갓에게는
"이 아이는 나의 누이동생인 홍 향수 (洪鄕首 ) 댁이랍니다 .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테니 , 서로 얼굴이라도 익혀 두시죠 ."
하고 김삿갓이 훈장 자리를 맡기라도 한 것처럼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닌가 . 김삿갓은 당황할 밖에 없었다 .
"아닙니다 . 나는 계획한 일이 있어서 훈장 자리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
그러나 필봉은 고개를 힘차게 가로 흔들었다 .
"이미 다 결정된 일인데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 오실 때에는 마음대로 오셨지만 , 떠나시는 것만은 나의 승낙이 있기 전에는 못 떠나신다는 것을 아세요 , 하하하 ."
그처럼 일방적으로 선포를 하고 나서 , 이번에는 누이동생에게 다시 말한다 .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저녁을 융숭하게 대접해야 하겠다 . 언니가 집에 없다니 , 저녁상은 너희 집에서 차려오도록 하거라 . 알겠느냐 ?" "네 알겠어요 . 저녁을 저의 집에서 준비해 오도록 하겠어요 ." "너도 차차 알게 되겠지만 , 이 어른은 학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이 없는 박물군자이시다 . 그래서 나도 이제 앞으로는 이 어른을 통해 <사서삼경 >도 좀 배우고 <동의보감 >이라는 책을 통해 의술도 새로 배울 생각이로다 . 그런 줄 알고 , 저녁상을 특별히 잘 차려 와야 한다 ."
훈장은 자기가 계획하는 일을 제멋대로 털어놓고 나서 ,
"참 , 향수 어른을 이 삼일 동안 못 뵈었는데 별고 없으시겠지 ?" 하고 묻는다 .
홍 향수 애기가 나오자 여인은 이맛살을 가볍게 찌푸린다 .
"집에 계시기는 계세요 . 그러나 기력이 약하셔서 언제나 누워만 계시는걸요 ."
그러자 필봉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
"그 어른은 고희 (古稀 )를 넘으셨으니까 기력이 약해지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 이러나저러나 그 어른은 우리한테는 둘도 없는 은인이시다 . 너나 나나 부평초같이 근거없이 떠돌아다니던 우리가 생소한 이 고장에 와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게 된 것은 오로지 그 어른의 덕택이 아니더냐 . 너는 그런 줄 알고 그 어른을 정성껏 받들어 모시도록 하거라 . 사람이 은혜를 몰라서는 안 될 일이다 ." 하고 진지한 어조로 누이동생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
필봉이 누이동생에게 다시 말한다 .
"참 , 일전에 내가 읍내에 갔을 때 보약을 한 제 지어 보냈는데 향수 어른은 지금 그 약을 복용하고 계시냐 ?" "약이라면 무슨 약이든지 열심히 드세요 . 오라버니가 지어 보내신 약도 지금 열심히 자시고 계세요 ." "음 ! 그래야지 . 나이 드신 분에게는 보약 이상 좋은 선물이 없느니라 . 네가 정신을 차려서 , 때를 놓치지 말고 약을 열심히 자시게 하여라 ."
칠십을 넘은 부자 늙은이에게 나이 어린 누이동생을 소실로 들여보낸 필봉은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홍 부자의 건강인 모양이었다 . 그러나 여정이라는 색시는 매사가 짜증스럽기만 한지 눈살을 찌푸리며 불평을 한다 .
"약을 아무리 자시면 뭘해요 . 밤낮 여기가 아프다 , 저기가 아프다 하시면서 , 언제나 누워만 계시는걸요 ." "네가 남편을 지성껏 공대하면 , 언젠가는 그 보답이 반드시 너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느니라 ."
필봉은 누이동생을 열심히 타이르고 있었지만 , 정작 본인은 매사가 귀찮기만 한 기색이었다 . 김삿갓은 칠십 고령의 남편을 모시고 살아가는 젊은 여인의 숨은 고민을 엿본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 왔다 .
칠십 고령의 영감님과 스무 살의 앳된 소실 !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제대로 어울리는 남녀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
김삿갓은 여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보았다 . 여자 스무 살이면 함박꽃처럼 활짝 피어날 나이다 . 그러나 여정이라는 여인은 용모는 아름다워도 얼굴빛은 어딘가 모르게 활기를 잃고 있었다 .
(남녀 간의 음양 (陰陽 )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으면 , 여자의 얼굴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
김삿갓은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 여인이 필봉 선생에게 불쑥 이런 말을 묻는다 .
"오라버니 ! 아무 효력도 없는 보약만 자시게 할 것 아니라 , 누워있던 사람을 벌떡벌떡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신약 (神藥 )은 없을까요 ?"
22. 노랑유부 (老郞幼婦 : 늙은 신랑과 젊은 부인 ) 화합법
여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벌떡벌떡 > 일어난다는 말을 썼는지 모른다 . 어쩌면 밤낮 누워만 있는 영감 꼴이 하도 보기가 역겨워 , 무심 중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 그러나 필봉은 벌떡벌떡 일어난다는 말이 귀에 몹시 거슬렸는지 ,
"누워 있는 사람을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약이 없겠냐구 ? ... 옛날에 진시황 (秦始皇 )은 장생불로초 (長生不老草 )를 구하려고 동남동녀 (童男童女 ) 오백 쌍을 삼신산 (三神山 )에 보냈지만 , 그런 약은 끝내 구해오지 못했느니라 . 그런 신약이 어디 있겠느냐 ! 그런 헛된 생각을 말고 , 보약을 열심히 드시게 하여라 ,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 열심히 공대하면 보답은 반드시 너한테 돌아오게 되는 법이다 ."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한다 .
"어서 저녁상을 차려오지 않고 뭘 하느냐 !" ...
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니하고 나가 버리는데 , 그 뒷모습이 여간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 누이동생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리자 , 필봉은 긴 한숨을 쉬며 말한다 .
"누이동생이라고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 한창 좋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늙은 신랑과 살면서 진정한 남녀 간의 운우 (雲雨 )의 정 (情 )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 여간 답답하지 않구료 ..."
그러자 김삿갓이 물었다 .
"정녕 남자의 양물 (陽物 )을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신약은 없는 것입니까 ?"
필봉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
"왜 없겠소만 , 그것이 쉽게 구할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 "그것이 무엇입니까 ? 그런 것이 있다면 선생의 누이동생을 위하여 구해 봄이 좋을 것 같소이다만 ..."
그러자 필봉이 말을 하는데 ,
"보신 강장 식품으로는 일등이 해구신 (海狗腎 )이오 , 생사탕 (生蛇湯 )이 버금가는데 … 이런 산골에서야 어찌 해구신을 구할 수 있단 말이오 ." "그렇다면 이곳은 산골이니까 뱀은 쉽게 구할 수가 있겠구려 ?" "아 참 ! 내가 왜 , 여태까지 그 생각을 못했지 ?"
훈장은 무릅을 <탁 >치며 김삿갓을 향해 웃어 보였다 . 그리고 김삿갓의 손을 다시 움켜잡으며 ,
"선생 ! 미욱한 나를 이렇듯 일깨워 주시니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 제발 이곳에 머물러 계시면서 , 나와 우리 가족의 안위 (安慰 )를 보살펴 주소서 ...."
김삿갓은 필봉의 적극적인 모습에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 그렇다고 필봉의 부탁대로 훈장 자리를 떠맡고 싶지는 않았다 . 그저 , 고단한 몸을 서당에서 며칠 쉬어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이윽고 필봉의 누이동생 여정에 의해 저녁상이 차려졌다 . 온종일 밥이라고는 한 술도 못 뜬 김삿갓은 차려진 저녁상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 상에는 산골에서는 좀체 구하기 어려운 지육 (脂肉 )과 어포 (魚脯 )까지 있었는데 , 과연 부잣집 상이었다 .
너무도 배가 고팠던 김삿갓은 체면을 뒤로하고 먹기 시작하였다 . 김삿갓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필봉이 말을 한다 .
"꽤나 시장하셨던 게로군요 . 여기 술도 한잔하시구려 ."
하면서 동동주 한 사발을 건넨다 . 그제서야 동동주를 발견한 김삿갓 , 필봉이 건네는 술잔을 받아들고 ,
"산골에서 이런 산해진미의 상을 받아 보기는 처음입니다 ."
하며 상을 차려온 여정을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
"맛있게 잡수시는 것을 보니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 하면 , 많이 드십시오 ."
하는 말을 남기고 여정은 부엌으로 물러났다 . 시장기를 어느 정도 채운 김삿갓이 필봉과 함께 술을 마시며 말했다 .
"예전에 제가 읽은 , 성수패설 (醒睡稗設 )이라는 책 중에 노랑유부 (老郞幼婦 )라는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
"어떤 책이었기에 그러시는지 , 그 내용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
필봉이 김삿갓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김삿갓은 붓을 들어 종이에 일필휘지로 시 한 수를 써 갈겼다 .
二八佳人八九節 (이팔가인팔구절 ) 신부는 열여섯 살 신랑은 일흔두 살 蕭蕭白髮對紅粧 (소소백발대홍장 ) 파뿌리 흰머리가 붉은 단장을 만났네 忽然一夜春風起 (홀연일야춘풍기 ) 어느 날 밤 홀연히 봄바람이 일어나며 吹送梨花壓海棠 (취송이화압해당 ) 배꽃이 날아와 해당화를 누르누나
김삿갓이 써 놓은 시를 한 참 들여다보던 필봉 선생이 물었다 .
"이 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시 이옵니까 ?"
김삿갓은 필봉의 질문을 받고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을 이렇게 말해 주었다 .
"그 옛날 일흔 두 살 먹은 노인이 열여섯 살 밖에 안 되는 처녀를 후취 (後娶 )로 맞아 왔는데 , 어떤 사람이 신방을 엿보고 읊은 시입니다 ."
그리고 덧붙여 이런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그 옛날 돈 많은 늙은이가 나이 어린 처녀를 소실로 맞아들였다 . 돈이 많으면 자신의 분수를 생각하지 않고 앳된 여자를 탐내는 것은 어쩌면 모든 남자들에게 공통된 욕망인지도 모른다 .
어쨌거나 늙은이는 어린 여자를 소실로 맞아들이기는 하였는데 , 저녁이면 같은 이불 속에서 잠을 자기는 하면서도 , 양물 (陽物 )이 말을 안 듣는 탓에 , 한 달이 넘도록 범방 (犯房 )을 한 번도 못하였다 .
그러니까 신부가 불평이 없을 수 없었다 . 신부는 몇 달을 참고 견디다 못 해 , 어느 날 밤에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 그리하여 그날 밤에는 영감님에게 성적 자극을 주어 보려고 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완전한 알몸뚱이로 방안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빈대를 잡는 척하고 있었다 .
늙은 신랑은 잠자리에 누워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신부의 아름다운 나체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자 어느 순간 , 늙은 영감님은 오랜만에 발동이 걸렸다 . 그야말로 견물생심이 불같이 일었던 것이었다 . 그리하여 어린 신부를 데려온 이후 ,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남편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신부가 크게 기뻐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 신부는 그러한 비결을 알고 나자 , 그때부터는 밤만 되면 알몸으로 방안을 기어 다니며 빈대를 잡는 척함으로써 이틀 밤을 연달아 재미를 보아 왔다 . 어린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신비로운 재미인지라 , 하룻밤도 그대로 넘겨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
그러나 칠십 고령인 신랑의 정력은 사흘씩이나 계속될 수는 없었다 . 이틀 밤이나 야근을 해온 늙은 신랑은 기운이 완전히 탈진해 버려 , 이제는 여인의 아름다운 나체를 아무리 보아도 정작 그 물건은 요지부동이었다 .
신부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 그날 밤에도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알몸으로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빈대를 열심히 잡고 있었다 . 늙은 영감은 잠자리에 축 늘어져 누운 채 , 빈대를 잡고 있는 새 색시의 아름다운 육체를 그윽이 바라보다가 , 문득 한숨을 쉬며 이렇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
"이 애야 ! ... 빈대 그만 잡아라 . 이러다가는 빈대 죽고 사람 죽겠다 ."
23. 어쩔 수 없이 떠맡은 훈장 자리
다음날 아침 , 김삿갓은 서당을 떠나 도망치기 위해 눈을 뜨기가 무섭게 삿갓과 바랑을 찾았다 . 어물어물 하다가는 꼼짝없이 잡혀 공맹재 훈장을 떠맡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간밤에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삿갓과 바랑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
(것 참 이상한 일이다 . 분명히 여기에 놓아 두었었구먼 ...)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삿갓과 바랑을 찾고 있노라니까 필봉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
"선생은 아침부터 무엇을 찾고 계시오 ?"
하고 물으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 .
"삿갓과 바랑이 보이지 않는데 , 혹시 선생이 치우셨습니까 ?"
김삿갓이 그렇게 묻자 필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
"선생이 도망칠 눈치가 보이기에 내가 삿갓과 바랑을 볼모로 붙잡아 놓았소이다 . 하하하 ."
김삿갓은 보기 좋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
"그렇다고 떠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
그러자 필봉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 선생은 올 때는 마음대로 오셨지만 , 떠날 때에는 마음대로 떠나시기가 어려울 것이오 ." "마음대로 떠나지 못한다면 , 나를 감금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이오 ?" "천만에요 ! 선생을 감금하다니요 ? 그게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시오 . 듣자 하니 관서지방을 유람삼아 다니신다고는 하나 , 특별히 바쁘게 오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 가실 곳도 정하지 않은 , 주유천하를 하시는 모양이니 , 우리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시면서 몇 해 동안 나하고 같이 살아가십시다 ."
김삿갓은 어이가 없었다 .
"훈장 경험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둔다고 일이 되겠습니까 ?" "훈장 자격이 없어도 나처럼이야 없겠소이까 . 나는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훌륭한 선생님을 모셔 왔노라 >고 이미 통고를 해 놓았답니다 .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 모두들 선생한테 인사를 온다는 거예요 . 아마 조금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대거 몰려올 것입니다 ."
필봉이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 마을 사람들이 어느새 몰려왔는지 문밖에서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필봉은 마을 사람들과 미리 짜기라도 했던지 , 방문을 열고 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
"여러분들은 새로 부임해 오신 훈장님을 환영하려고 오셨는가 보구료 . 마침 선생이 방안에 계시니 어서들 들어와 인사를 나누시죠 ."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방안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어 오는데 , 그 수효는 무려 열두명에 이르렀다 . 대부분이 사오십 대의 학부형이었는데 , 개중에는 칠십객 노인도 두 사람이 끼어 있었다 . 그들은 한 사람씩 방안에 들어오는 대로 김삿갓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리며 한마디씩을 건네 왔다 .
"선생께서 우리 마을의 서당을 맡아 주신다니 이런 고마운 일이 없사옵니다 ." "저희 집 아이는 그동안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학식이 높은 선생님이 오셨다고 하니 , 내일부터는 서당에 보내기로 하겠습니다 ."
사태가 이쯤 되고 보니 , 김삿갓은 훈장 감투를 싫어도 뒤집어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흉악스럽게 치밀한 필봉의 술책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이었지만 , 이제 와서 꽁무니를 뺄 수가 없는 형편이 된 것이었다 .
더구나 그들이 인사치레를 한다고 씨암탉 한 마리와 계란 두 꾸러미의 선물까지 가지고 왔기에 , 훈장에 대한 그들의 예의와 자식 교육에 대한 열의에 김삿갓은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찾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소감까지 말해 버렸다 .
"제가 워낙 부족한 사람인지라 , 여러분의 소중한 자제들에게 글을 충실하게 가르쳐 줄 수 있을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 그러나 필봉 선생의 지도를 받아 가며 열과 성을 다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며 말한다 .
"저희들은 선생님만 믿고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아이들을 서당에 보내겠습니다 ."
그 말 중에는 필봉 선생에 대한 비난의 뜻이 암암리에 내포되어 있었다 . 그러자 필봉 선생이 얼른 대답을 가로막고 나선다 .
"말이야 바른 말이지 , 나는 본래 훈장 자격도 없으면서 마지못해 훈장 자리를 떠맡아 왔었던 것이오 . 그러기에 양심의 가책이 없지 않아 , 그동안 훌륭한 학자님을 훈장으로 모셔오려고 남모르는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오 . 그러다가 이번에 공자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을 맞아 오게 되었으니 , 이는 우리 마을에 커다란 경사라고 생각하오 . 그동안에는 자격이 없는 내가 훈장 자리를 타고 앉아 있던 관계로 , 어떤 분은 아이를 서당에 보내지 않았던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소 .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훌륭한 훈장이 오셨으니 모두들 안심하시고 아이들을 공맹재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박수를 보낸다 .
그 박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 어찌 보면 필봉 선생이 훈장 자리를 내 놓는데 대한 기쁨의 박수 같기도 하고 , 또 어찌 보면 필봉 선생의 용기 있는 고백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박수 같기도 하였다 .
이렇게 하여 , 다음날부터 김삿갓은 어쩔 수 없이 훈장 자리를 떠맡게 되고야 말았다 .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
24. 훈장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
김삿갓이 공맹재 훈장으로 들어앉자 이변이 하나 생겼다 . 지금까지의 서당 아이들은 모두가 <천자문 >을 배우던 조무라기 일곱 아이들뿐이었는데 , 김삿갓이 훈장으로 부임한 그날부터 소학 (小學 ), 중용 (中庸 )과 사략 (史略 ) 같이 제법 어려운 책을 공부하는 중간 치기 아이들 열 둘씩이나 대거 서당에 몰려왔던 것이다 .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아이들은 필봉 선생에게는 배울 것이 없어 숫제 글공부를 포기하고 있었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 필봉은 그러한 현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김삿갓에게 자신의 느낌을 토로하였다 .
"약국이라는 것은 임기응변으로 이럭저럭 명의 행세를 할 수 있지만 , 훈장 자리만은 아는 것이 없어 가지고는 하루도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소이다 ."
하고 고백하며 훈장 자리를 김삿갓에게 넘겨준 것을 크게 잘한 일처럼 여기고 있었다 . 그나 그 뿐만 아니라 필봉은 이제부터라도 의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지 ,
"삿갓 선생은 아이들에게 글만 가르쳐 줄 게 아니라 , 나한테는 동의보감이라는 책을 좀 가르쳐 주시오 ."
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
"나는 의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 그러나 동의보감 이라는 책이 있기만 하면 설명은 해드릴 수 있으니 , 우선 책부터 구해 오시죠 ." "네 , 알겠습니다 . 빠른 시간 내에 책을 구해 보겠습니다 ."
필봉은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
"참 , 삿갓 선생 ! 우리 마을에는 얌전한 과부가 하나 있는데 , 내가 그 과부에게 중신을 들어줄 테니 , 선생은 숫제 결혼을 해가지고 우리 마을에서 나와 함께 정착을 하면 어떠하겠소이까 ?"
하고 난데없는 제안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
"에이 , 여보시오 . 나는 처자식이 있는 몸이니 , 행여 그런 말씀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시오 . 나는 아이들에게 당분간 글이나 가르치다가 적당한 기회에 평양으로 떠나갈 생각입니다 ."
김삿갓은 혼담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고 , 모든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 아이들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 우선 <천자문 >을 읽혀 볼 생각이었다 .
천자문은 옛날 중국 양 (梁 )나라 시절 , 주흥사 (周興嗣 )라는 사람이 지은 만고의 명저 (名著 )로써 , 네 글자씩 짝을 이뤄 도합 250 수로 구성되어 있다 . 이로써 글자의 수효는 모두 1 천자에 달하여 , "천자문 "이라 불리게 되었다 .
당시에 주흥사는 천자문 한 권을 짓는데 얼마나 고심이 많았던지 , 그 책을 다 짓고 난 뒤에는 검던 머리조차 하얗게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 그래서 천자문을 일명 백수문으로도 불러온다 .
천자문은 네 글자 문장만으로도 우주 만물의 원리를 속속들이 알 수가 있으며 , 이로써 이 책 한 권만 떼어도 ,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상식과 인격도 형성될 수가 있는 것이다 .
첫 구절을 보자 .
천지현황 (天地玄黃 ).
아이들은 하나 같이 "하늘 천 , 땅 지 , 검을 현 , 누를 황 " 하고 자신 만만하게 소리 높여 읽는다 . 그러나 , 천지현황이라는 네 글자로 이루고 있는 뜻을 새기지 못하고 있으니 , 글자만을 익혔다 뿐이지 뜻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기도 어렵고 새겨 두기도 어려운 것이다 .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본다 .
한래서왕 (찰 한 "寒 ", 올 래 "來 ", 더울 서 "暑 ", 갈 왕 "往 "). 추위가 오니 더위가 간다는 뜻이 된다 . 천자문에 실려 있는 모든 문장은 이런 식으로 읽어야만 뜻을 알기가 쉬운 것이다 .
아이들에게 묻고 , 이렇게 설명을 하는 사이 , 아이들이 글을 읽는데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
김삿갓의 이러한 새로운 교수법 (敎修法 )을 아이들의 입을 통하여 듣게 된 학부형들은 모두들 크게 기뻐하였다 .
"우리 집 아이는 글 읽기를 죽기보다도 싫어했었는데 , 새로 온 훈장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 지금은 눈만 뜨면 서당에 간다고 법석을 떨고 있으니 , 그야말로 알고도 모를 일이야 ." "누가 아니래 ! 우리 집 아이도 서당에 가라면 배가 아프니 골치가 아프니 하고 핑계를 대기가 일쑤였는데 , 훈장이 새로 오고 나서부터는 서당에 일찍 가야 한다고 새벽부터 안달이거든 ." "하여간 이번에 오신 훈장은 학식과 실력이 대단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어 !"
이구동성으로 동네 사람들은 김삿갓의 실력을 칭찬하고 있었다 .
한편 , 김삿갓은 필봉의 계략에 말려 어거지로 훈장 자리를 떠맡게 되기는 하였으나 , 추운 겨울을 지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 그러나 사방 팔방을 편답 (遍踏 )하던 처지가 졸지에 조무라기 학동 (學童 ) 사이에 갇혀 지내려니 여간 좀이 쑤시는 것이 아니었다 .
날마다 코흘리개들을 상대로 <하늘 천 , 땅 지 >가 아니면 <공자왈 , 맹자왈 >만 외고 있으려니 , 세상에 그처럼 따분한 일이 없었다 . 그나마 머리가 총명하여 쉽게 깨우쳐 주는 아이라도 있으면 그런대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으련만 , 아이들이 모두가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는지 열에 하나 같이 아둔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天 , 地 , 玄 , 黃 > 네 글자를 열흘이 넘도록 가르쳐 주어도 , 다음날 아침이면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데는 똥이 탈 노릇이었다 .
김삿갓은 "훈장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 "는 속담이 생겨 난 이유를 이제야 실감할 수가 있었다 .
(인간사의 모든 욕심을 털어 버리고 , 한평생을 구름처럼 떠돌며 살아가려던 내가 , 어쩌다가 이처럼 비참한 처지가 되어 버렸을까 .)
김삿갓은 솔직이 ,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받았다 . 그러면서도 도망을 치지 못하고 하루하루 질질 끌고 있는 것은 , 자기가 떠나가면 20 여 명에 이르는 아이들의 장래가 너무나도 불쌍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김삿갓은 후임자를 구해 달라고 필봉에게 몇 차례 부탁을 하였으나 그때마다 필봉은 코방귀를 뀌며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
"후임자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 삿갓 선생은 아무 소리 말고 한평생을 나와 함께 우리 마을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
김삿갓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불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 그리하여 언젠가는 훈장의 고리 타분한 신세를 다음과 같은 시로 읊어 보기도 하였다 .
世上誰云訓長好 (세상수운훈장호 ) 세상에 훈장을 누가 좋다고 했던가 無烟心火自然生 (무연심화자연생 ) 연기도 없는 불길이 절로 타오르네 曰天曰地靑春去 (왈천왈지청춘거 ) 하늘 천 땅 지 하는 사이 청춘이 가고 云賦云詩白變成 (운부운시백변성 ) 부요 시요 하다 보니 머리가 세네 .
雖誠難聞稱道語 (수성난문칭도어 ) 정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렵고 暫離易得是非聲 (잠이이득시비성 ) 자리를 잠시만 비워도 비난 받기 일쑤다 掌中寶玉千金子 (장중보옥천금자 ) 천금같은 귀한 자식 훈장에게 맡겨 놓고 請囑撻刑是眞情 (청촉달형시진정 ) 잘못하면 매질하라 진정으로 부탁하네 .
김삿갓은 따분한 생각이 들 때마다 뒷산으로 달려 올라가기가 일쑤였다 . 마을의 진산인 월출산 (月出山 ) 중턱에는 망월정 (望月亭 )이라는 고색이 창연한 정자가 하나 있다 . 김삿갓은 깊은 산속에 그와 같은 정자가 있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
그날도 김삿갓은 저녁을 먹고 난 뒤 답답한 마음에 망월정으로 나가 , 바람을 쏘이고 오던 길이었다 . 서당이 저만치 달빛 속에 보이는 길에서 마주 걸어오던 여인 하나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며 ,
"삿갓 선생님 아니세요 ?"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
25. 김삿갓을 향한 여인의 연정 (戀情 )
달빛에 얼굴을 살펴보니 , 그 여인은 필봉의 누이동생으로 홍 향수의 소실인 여정이었다 .
"아 , 오래간만입니다 . 오라버니 댁에 다녀가시는 길입니까 ?"
김삿갓은 의례조의 인사말을 건넸지만 여정은 깊은 감회에 잠긴 사람처럼 아무 말도 안하고 한동안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더니 문득 ,
"그동안 삿갓 선생님을 무척 뵙고 싶었어요 ."
하고 뜻밖에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 김삿갓은 별안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 여인의 고백에서 뜨거운 연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
(여정은 유부녀가 아니던가 . 이런 호젓한 달밤에 자칫 , 유부녀와 가까이 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 일순 , 그런 불안감이 스치자 자기도 모르게 ,
"참 , 향수 어른의 병환은 요즘은 어떠십니까 . 지난번 필봉 선생이 지어드린 보약을 잘 드시고 계시고요 ." 하고 화제를 의식적으로 딴 데로 돌려 버렸다 .
여인은 고개를 수그린 채 또다시 오랫동안 말이 없더니 김삿갓의 물음에는 대답조차 아니 하고 ,
"저는 그동안 삿갓 선생님을 무척 뵙고 싶었다는 말이예요 ."
하고 아까와 똑같은 말을 다시 한번 뇌까리는 것이었다 . 김삿갓이 목석이 아닌 이상 , 여정의 가슴속에 사무치는 정회 (情懷 )를 못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 (이 여인이 아무도 모르게 나를 연모하고 있음이 분명 하구나 !)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 김삿갓은 눈앞의 여인을 힘차게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절실하게 느꼈다 . 그러나 김삿갓은 또다시 머리를 가로 저었다 . (안 된다 . 이 여인은 향수 어른의 소실이다 . 이 여인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 훈장 노릇도 못하고 쫓겨나게 될 것이 뻔한 일이다 .) 훈장 자리에 미련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 유부녀와 간통을 하다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그리하여 김삿갓은 발길을 돌리는 자세를 보이며 말을 했다 .
"가족들이 기다리고 계실 테니 , 늦기 전에 어서 댁으로 올라가 보시죠 ."
그러자 여인은 몹시 원망스런 어조로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
"삿갓 선생은 저를 만나 주시기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
김삿갓은 점점 입장이 난처해졌다 .
"부인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 부인은 향수 어른의 사모님이고 , 저는 일개 훈장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 우리 사이에 만나는 것이 싫고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
김삿갓이 사모님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방어선을 쳐보이자 , 여정은 갑자기 앙탈스런 말을 한다 .
"저는 사모님이라는 말은 듣기조차 싫어요 ."
여정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접근해 오는 바람에 김삿갓은 오히려 겁이 날 지경이었다 . 그리하여 여인의 말을 농담으로 슬쩍 받아 넘기는 대꾸를 했다 .
"사모님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신다니 , 그 말은 쓰지 않기로 하지요 . 하지만 우리가 한밤중에 길가에 오랫동안 마주서 있으면 누가 무슨 곡해를 할지 모르니까 , 어서 올라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여인은 좀체 발길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
"누가 무슨 소리를 하면 어때요 . 삿갓 선생은 저와 만나기가 싫으셔서 , 일부러 그런 핑계를 대는 게 아니에요 ?"
김삿갓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
"허허허 , 내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여사를 싫어하겠소이까 .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 여사에게 누 (累 )가 미칠까 싶어 조심을 하는 것이지요 ."
여정은 그 말을 듣고 토라졌던 마음이 한결 풀리는지 ,
"선생이 그런 심정으로 저와 만나기를 조심하신다면 저도 선생님의 심정을 이해하겠어요 . 그러나 제가 선생님을 무척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 주시면 고맙겠어요 ."
하며 또다시 연정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가 .
"내가 목석이 아닌 바에야 여사의 심정을 어찌 모를 리가 있겠소이까 . 그러나 사사로이 만나서는 안 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남의 눈을 피해가며 만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 아니겠어요 ? 그런 점은 피차 간에 삼가야 할 것입니다 ." "글쎄요 . 선생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 저도 많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어요 . 그러나 견디기 어렵도록 그리워진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 "사람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아무리 괴롭더라도 참을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선생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 그러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어요 ."
여정은 이제야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 듯 , 걸음을 옮겨 자기 집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 김삿갓은 제자리에 우뚝 서서 멀어져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
(불쌍한 여인 !)
생각하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여자다 . 스무 살이라는 꿈 많은 나이에 칠십 고령인 홍 향수의 소실 노릇을 하자니 , 무슨 신통한 일이 있을 것인가 . 밥 걱정 없는 것은 다행한 일이 될지는 몰라도 , 사람이 밥만 먹는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