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정말 몰라보게 변했다!
동창회이나 결혼식, 혹은 어떤 모임에 나갈 때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나 또한 자주 쓰는 말이다. 사실 아무리 얼굴을 봐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 썼다는 게 함정. 내가 너를 모르는 것은 나의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네가 몰라보게 멋지게 바뀌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곤 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음료들도 출시 초기에는 정말 달랐다. 오늘 마시즘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음료들의 초창기를 보여준다. 녀석들의 주니어 시절에는 어떤 모습과 맛으로,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루에 5잔에서 이제는 1초에 2만 잔, 코카콜라
- 과거 : 하루 5~7잔 팔림
- 현재 : 1초에 21,990잔 팔림
1886년 5월 8일은 음료계의 중요한 날이다. 어버이날… 도 있지만 ‘코카콜라’가 처음으로 판매된 날이기 때문이다.
‘존 팸버튼(John S. Pemberton)’박사는 그가 개발한 콜라 원액을 가지고 제이콥 약국에 가져갔다. 그곳에서 탄산수와 함께 섞어서 팔았던 것이 위대한 코카콜라의 소소한 시작이었다.
존 팸버튼 박사에게 이 녀석은 음료라기보다는 약이었다. 두통을 치료하거나, 자양강장제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맛도 있으니까 자신은 곧 부자가 될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초기에 코카콜라는 하루에 5~7잔만 팔렸다고 한다.
이랬던 코카콜라는 1초에 21,990잔이 팔리는 어마어마한 녀석이 되었다. 팸버튼 박사가 생각한 자양강장제가 아니라 청량음료가 되었다. 그 사이 빨간색의 상징이 되었고, 굴곡 있는 병모양이 만들어졌다. 출시 초기부터 유지하던 맛은 한 번 바꿔보려다가(1985년 뉴-코크 사건) 시민혁명(?)이 일어날 뻔했다.
약이 아닌 음료로, 남성에서 여성과 아이들로, 미국에서 전 세계로 확장을 해나가며 사람들과 추억을 만든 것이 주요 포인트다. 지난 100년 코카콜라보다 더 사랑받은 브랜드가 있었을까? 이제는 음료가 아니라 세기를 대표하는 문화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7개의 별이 아니라 7명의 성씨였다고? 칠성사이다
- 과거 : 주, 우, 김, 박, 최, 장, 정의 사이다
- 현재 : 일곱 개의 별이 모인 한국 최고의 사이다
1950년 5월 9일에 태어났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두 음료가 생일이 하루 차이라는 게 신기하다.
칠성사이다는 한국 최초의 사이다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이다다. 칠성사이다가 출시되고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났고 다른 사이다 공장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칠성’이라는 이름은 별도 아니고, 지역명도 아니고, 창업주 7명의 성씨다. 주 씨, 우 씨, 김 씨, 박 씨, 최 씨, 장 씨, 정 씨까지… 각자의 성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칠성사이다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물론 제품이 나오고는 별 ‘성’으로 한자를 바꾸게 된다. ‘소풍 삼합(소풍 갈 때 필수 삼요소 칠성사이다, 삶은 달걀, 김밥)’으로 그룹 활동을 오래 지속하기도 했다.
그런 칠성사이다가 70살을 맞이했다. 현재 국내 사이다 시장의 70%를 차지했고, 누적 판매량을 쌓으면 롯데월드타워를 707만 개 쌓은 높이와 같다고 한다. 이런 7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라니.
한국 전통음료에 가장 근접한 청량음료가 아닌가 싶다. 칠성사이다는 꾸준히 국민들과 추억을 쌓아왔다(브랜드와 소비자의 추억은 복리로 계산된다). 또 맑고 투명함을 어필하여 어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칠성사이다에 의미 있는 2020년, 오랜 소비자들에게는 추억을, 새로운 소비자들에게는 재미를 어떻게 줄 수 있을까?
가짜 콜라에서 코카콜라의 둘째로, 환타
- 과거 : 코카콜라를 어설프게 흉내 낸 유사 콜라
- 현재 : 코카콜라 3대장, 독특한 과일향 탄산음료
1940년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태어났기에 자세한 생일은 알 수 없다.
환타가 태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독일에 코카콜라가 없어져서이다.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독일 내 코카콜라 공장의 직원들과 콜라 원액이 탈출했다. 이미 콜라가 없으면 안 되는 독일인들은 과일과 탄산수 등을 이용해 유사 콜라를 만든 것이다.
코카콜라 독일 지사장인 막스 카이트(Max Keith)는 직원들에게 새 음료의 이름을 공모할 때 ‘상상력(Fantasie)을 발휘하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때 한 직원이 잽싸게 그가 말한 앞글자만 따서 ‘환타(Fanta)’라고 지었다고…
전쟁이 끝나고, 다시 가동된 코카콜라 공장은 가짜 콜라였던 환타를 들인다. 어느덧 함께한 지 80년이 지나 코카콜라 브랜드에서 2번째로 오래된 음료가 되었다. 전쟁 때는 손에 잡히는 재료대로 환타를 만들었는데. 그 특성이 조금 살아있어 이제는 나라별로 환타의 맛과 향과 색이 다르다(물론 오렌지향이 최고다). 전 세계 100여 종류의 환타를 다 마셔보는 것은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것보다 어렵다고.
에일맥주에서 흑맥주로, 기네스
- 과거 : 아일랜드는 에일이지
- 현재 : 아일랜드는 흑맥주지
1759년 12월 31일에 태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첫 양조장을 계약한 것이다.
그는 더블린에 버려진 양조장을 싼 값에 임대계약을 했다. 계약금은 100파운드(약 15만 원), 연 임대료는 45파운드(약 7만 원)으로 원룸보다 싼… 양조장을 임대했다. 문제는 계약기간이 9,000년이라는 거.
아서 기네스는 이곳에서 기네스 흑맥… 이 아니라 ‘에일 맥주’를 만들었다. 하지만 1799년 영국에서 포터 맥주(노동자들이 좋아한 흑맥주)가 유행하자 에일맥주 대신 흑맥주를 제조하기로 결심한다. 이 결정이 기네스의 운명을 바꾼다.
현재 기네스는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스타우트(흑맥주)이자 나라인 아일랜드, 도시인 더블린을 대표하는 문화가 되었다.
아서 기네스가 만들었던 에일과 포터와는 거리가 멀어진 ‘기네스만의 스타우트(질소 거품 스타우트라고 해야 하나)’가 완성된 이후로는 철저하게 이 레시피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아직 양조장 임대기간이 넉넉하게 많이 남았다.
원숭이 로고가 진화하면 두꺼비? 진로(참이슬)
- 과거 : 내가 학교 때려치우고 술이나
- 현재 : 술이나 만들다가 학교를 세웠다
1924년 10월 3일생. 소주 참이슬(진로)의 역사가 시작된 ‘진천양조상회’가 만들어진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공립 보통학교 교사였던 ‘장학엽’이 학생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고,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여 수업을 하다 학교에서 잘리게 된다. 그는 이 시간을 술로 보내지 않고 술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민족의식을 높여줄 사립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진로라는 이름은 양조장이 있는 ‘진지동’의 앞글자와, 소주를 빚는 과정에서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혀 이슬 ‘로’자를 붙였다. 초기에는 마스코트가 ‘원숭이’였고, 소주의 도수는 무려 35도였다. 해방도 되었고, 소주사업은 날개를 다는 줄 알았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졌다.
6.25 전쟁 이후 진로는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마스코트를 바꾼다. 원숭이가 일본 이미지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전래동화 ‘콩쥐팥쥐전’과 영국 동화 ‘두꺼비 왕자’에 나오는 두꺼비를 앞세운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현재 ‘진로 이즈 백’에 이르기까지 소주 하면 두꺼비, 두꺼비 하면 진로, 진로 하면 소주가 생각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판매량은… 말해 뭐해. 스스로 마셔본 소주병을 돌이켜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참이슬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다).
조선어 교사의 꿈을 가졌던 장학엽은 1974년 자신의 호를 딴 학교법인 ‘우천학원’을 세웠다. 그리고 서울시 구로구에 우신중학교, 우신고등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비록 소주의 도수는 옅어졌지만, 그가 소주를 만들게 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