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0대관광도시 광주(廣州)
광
주시는 광동성의 성도로 약칭은 수이(穗)이고, 별칭은 양청(羊城), 화청(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강(珠江) 삼각주 북부,
서강(西江), 북강(北江), 동강(东江)의 세 하천 합류점에 자리한 하항(河港)으로, 중국 광동성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광동성의 성도이며, 행정구역은 8개의 구(區)와 4개의 시(市)로 나뉜다.
진시황(秦始皇)이
통일하기 전까지는 한족입장에서 볼 때 남방의 "야만족"들이 사는 곳 이었던 광동(廣東)은 그러한 연유로 언어뿐만 아니라 인종도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중국정부의 한족 이주정책에 따라 점차 한족의 비율이 높아졌고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외국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 들여 개방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나라의
속지(屬地)였던 지금의 광주지역은 진시황 33년 진나라가 영남(廣東,廣西)를 통일, 영남에 남해(南海,지금의 광주),
귀림(桂林), 상군(象郡) 등 3개의 군을 설치함으로써 약 2200년전에 도시의 기틀을 갖추었으며 이후 사마달 (司馬達)의
"사기(史記)"에 기록된바 3조3제(三朝三帝)의 고대봉건정권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즉 광동과 광서 대부분을 영토로 통치하며 5대
황제가 정권을 이었던 남월국(南越國), 이후 사서에 남한(南漢)으로 표기되는 대월국(大越國)의 시대를 지나 남명국(南明國)에
이르는 건국과 멸망이 거듭되는 가운데 진(秦)에서 남북조(南北朝)시대에는 남해군지(南海郡地)로, 당.송(唐,宋)시대에는 광주로
속하며 명.청(明,淸)시대에는 광주부지(廣州府地), 중화민국(中華民國)시기에는 국민당 정부의 소재지였고 1918년 광주시
행정부를 설립하고, 1921년 광주행정청(廣州行政廳)의 설립을 거쳐 정식으로 오늘날 광주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광
주는 아열대 해양성 기후지역으로 여름에도 무덥지 않고 겨울에도 춥지 않아 항상 온난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다. 연 평균 기온
21.7℃, 연강우량 1600mm이며 비는 4월에서 9월에 집중되고 평균 상대습도는 77%, 일조시간이 타지방에 비해 길며
여름과 가을에 걸쳐 몇차례 태풍의 영향권에 든다. 또한 광주는 태양광이 충분하며 강수량도 적당하여 사계절이 맑고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 도시 곳곳에 녹지가 펼쳐져 있으며 꽃이 많아 예로부터 "화성(花城)" 즉 꽃의 도시라 불리우고 있다.
한편
화남지구(華南地區) 최대의 상업도시인 광주는 이후 국내와 국외의 연결 창구인 중국의 남대문으로 불리며 국제무역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게 되었고 오늘날 경제, 무역 방면 전국 10대 도시 중 상해에 이어 중국 제2의 도시로 자리잡게 되었다.
광주
는 열대와 아열대 기후에 속하여 일찌기 식물의 왕국이라 칭해질 만큼 꽃과 풀이 풍성한 곳이다. 화남 식물원(华南植物园),
운태화원(云台花园), 류화호수공원(流花湖公园), 인민공원 등은 이러한 남국의 조경의 특색을 잘 살린 공원들이며, 광주의 교외에는
온천 풍경단지나 국가 삼림 공원 등이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광주는 중국 남부 지역의 중요한 상업
도시로서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홍콩, 마카오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서 중국 대륙과 이들 지역을 연결하는
교두보가 되고있다. 또한 다른 도시와는 달리 자전거보다는 오토바이를 주요 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민이 눈에 많이 띤다.
광
주는 양성(羊城) 혹은 수성(穗城)이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광주의 주강(珠江)이 광활했던 시절 사람들은 고기를
잡아 생활하며 지냈다. 어느 날, 색이 다른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신선이 각기 털색이 다르고 입에 벼이삭을 문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광주에 왔는데, 그들은 벼이삭을 주민에게 나눠 주고, 그들에게 벼를 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울러 이 곳에서 기근이
사라지기를 빌어 주었다. 말이 끝나자 그들은 곧 힘차게 뛰어 하늘로 사라졌고, 남은 다섯 마리의 양은 곧 돌로 변했다.
이러한 전설은 광주의 조상들이 매우 일찍부터 벼농사 짓는 법을 터득하여 생활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을 반영한다. 또한 시내에 위치한 월수산(越秀山)에는 다섯 개의 돌로 된 양조각이 있는데, 이는 광주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2000
년 11월1일 제5차 인구센서스 기준으로 볼 때, 광주시 전체 인구는 6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98.65%가 한족이고
소수민족은 전체 인구의 1.35%에 불과하다. 이 곳은 화교의 고향이며, 광주 출신의 화교와 그 후손들은 홍콩 및 마카오인을
제외하고도 52만 명으로 전세계 116개 국가 및 지역에 산재 되어 있다.
상용어는 광동어지만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아 보통어도 큰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다. 광동어는 남방계 언어로 보통어의 사투리 정도가 아니라 불어와 이태리어 정도 차이 있는 별개의 언어이다.
일
반적으로 종교생활은 노년층이 활발한 편이고 도교와 불교가 결합된 전통적인 구복 신앙이 많이 신봉되고 있다. 노년층의 경우
사찰이나 도교 사원에 정례적으로 가서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예가 많으며, 젊은이들은 기독교와 천주교에 관심이 크지만 교화나 성당에
다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광주는 오랜 개항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래 홍콩, 대만
업체들의 투자가 밀려들어 오면서 노동집약 업종인 전자, 섬유, 의류, 신발, 기계 산업이 주력산업으로 되었다. 광주를 중심으로
반경 200km 일대 주강 삼각주 지역은 가전업체가 많이 밀집되어 중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가전단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광주는
이들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3차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광주시 정부는 본시를 첨단산업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IT산업,
전자산업, 자동차 부품 산업 등을 중점 육성하고 있으며, 이들 산업에 대한 외국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광주시
는 오랜 개항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자 중국 화남지역 정치문화, 상업도시라는 점으로 인해 내국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으며, 여행사수도 100개를 넘고 있으며 1998년 9월부터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이 허용되면서 출국 여행객 대상 관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광주시 10대 관광명승지로는 진가사(陳家祠), 운대화원(雲臺花園), 월수공원(越秀公園),
중산기념당(中山紀念堂), 황화강공원(黃花崗公園), 세계대관(世界大觀), 비룡세계(飛龍世界). 연화산관광구(蓮花山旅游區),
동방놀이공원(東方樂園), 육용사(六榕寺) 등이 있다.
소비시장 규모가 비록 상당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최근
2-3년간 대형 상가들이 집중적으로 문을 열어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백화점 업계를 볼 때, 북경 같은 여타지방 백화점의
지점개장, 일본 JUSCO, 네덜란드 SHV, 태국 MAKRO 같은 외국기업들의 진출해 있다. 특히 JUSCO 와 태국
정따그룹(正大集團), 광주시 가경(佳景) 상업무역개발회사에서 합자 설립한 MAKRO는 광주시 백화업계에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공적인 경영상을 보이고 있다. JUSCO는 쇼핑, 레져, 문화를 겸한 일본식 슈퍼마켓,
MAKRO는 대형 할인매장으로 각각 자리를 굳혔다.
한국상품 인지도
삼성과 LG전자의 TV, VCD
플레이어 및 컴퓨터류가 대리점을 중심으로 보급되고 있으며 현대전자 컴퓨터 모니터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껌, 과자, 라면류
식품이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 눈에 띠이고 있으며, 길에서는 대우 승용차와 종전 쌍용 무쏘와 밴,현대 소나타, 코란도 등도 볼
수 있다. 한국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도는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