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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 史 詩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번지
지난해 어느 때
임을 이별 하였던고
엊그제 겨울이더니
또한 가을이 짙었네
거친 바람 몰아치는 이 밤에
찬비는 내리는데
어찌하여 남원 옥중에
죄수가 되였는고
어사시
지은이는 성이성이다.
성이성 成以性 : 1595(선조28년) ~ 1664(현종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청백리이다.
字(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춘향전의 실제 주인공으로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은 원래 성몽룡이었다.
남원 부사와 승정원 승지를 지낸 성안의(成安義)의
아들이다,
성이성이 호남 암행어사가 되었을 때 석성현감이
호남 12고을 군수, 현감들과 함께 생일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암행어사 성이성은 걸인의 행색을 하고서
연회장에 나타났다.
호남의 12고을의 군수, 현감들은 그를 조롱하며,
그대가 시를 지으면 종일토록 놀고 짓지 못하면
가라" 고 했다.
성이성은 즉석에서 어사시를 지었다.
* 오성, 백사 ~ 이항복
* 한음 ~ 이덕형
철령,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 삼아 실어다가
임 계신 궁중궁궐에
뿌려 본들 어떠리.
오성, 백사 이항복 지음
말은 가려 울고,
임은 잡고 아니 놓네,
석양은 재을 넘고,
갈길은 천리로다.
저 임아, 가는 나를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
우뢰같이 소리난 임을
번개같이 번뜻 만나,
비같이 오락 가락,
구름같이 헤어지네.
흉중에 바람같은 한숨이 나서,
안개같이 피더라.
사람아, 청강의 일, 묻지를 마소.
청강의 일을 말할 작시면,
눈물이 앞을 가려 못 이루네.
한밤중, 임 그리워,
천리 밖 꿈이 길고,
산 첩첩 만겹이라
임의 품에 돌아갈 길,
아득해라, 망연하구나.
* 청강 ~ 인명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긋지 않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어 만고상청하리라.
순풍이 죽다 하니 진실로 거짓말이,
인성이 어지다 하니 진실로 옳은 말이,
천하의 허다 영재를 속여 말씀하올까.
유란이 재곡하니 자연히 듣기 좋의,
백운이 재산하니 자연히 보기 좋의,
이 중에 고은 한 임을 더욱 잊지 못하네.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향암의 뜻에는 내뿐인가 하노라.
* 고산 ~ 윤선도
포은 정몽주
포은 정몽주는 영일 정씨로 고려 인종 때 명유 정승명의
후예로 그의 아버지는 "운관"이요. 어머니는 이씨였다.
자를 "달가"라고 하고, 호를 "포은"이라 했다.
포은은 고려 공민왕 구년에 과거를 보아 초장, 중장, 종장
삼장에 내리 장원을 하여 예문검열이 된 것이 벼슬길의
첫 출발이었다.
포은은 어려서부터 천품이 총명 영리할 뿐 아니라,
호매 절륜하여 충효의 대절이 되었다.
여기다가 어머니 이씨의 교양 높은 지도는 마침내 그를
대성시켰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 이씨부인은 아들을 위하여 좋은 시를
지어 주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은 항상 어머니가 지어 준 이 시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여 그의 한평생 처세하는 귀감의 시를
삼았던 것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서 백년까지 하리라.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최영
딸이 궁중으로 들어가 "영비"가 된 후에 최영 장군은 나이로
보나 업적으로 보나 공훈으로 보나 고려의 제일인자였다.
벼슬이 제일가는 대재상이요, 대장군이요, 지위가 왕비의
아버지인 국구요, 전쟁에 백전백승한 대군벌이었다.
어디로 보나 국가의 중진이요, 주석이었다.
가벌로 보더라도 고려의 세족으로서 고려의 개국공신
최준옹의 후손이요. 인종, 의종, 명종 삼 대를 내리 섬긴
최유성의 오 세 손자이요.사헌규정을 지낸 "최원직" 의
아들이었다.
몸에 정승과 대장의 인뚱이를 양편으로 하고, 수만 명의
부하 군대가 수하에 있건만, 그의 사사로운 생애는 담박하고
추루했다.
옷은 검소하여 항상 무명과 베옷을 입었고 집은 좁고 꾸미지
아니한 수간 두옥이었다.
저축이 없으니 어느 때는 부하들을 먹일 양식조차 떨어진
때도 있었다.
이만하면 그의 생애가 얼마나 청렴결백하고 검소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에는 "이인임" 때 이전부터 권문세가들이 사전을
차지하는 풍습이 있어서 악한 짓과 탐학한 짓을 아니하는
사람이라도 얼마간의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으로 부하를 먹이고 사병을 길렀던 것이다.
그러나 최영은 사전도 갖지 아니했다.
그 아버지의 "견금여석(見金如石)이란 유훈을 철저하게
지킨 것이다.최영이 국구가 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모든 공신들에게 상훈을 주는데, 땅과 노예를 주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최영은 땅과 노예를 받지 아니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최영의 공훈을 기록한 철권을 주었다.
"묶어라 !"
함거 속에서 최영 장군의 목소리가 떨어진다.
금부대장은 감히 부하 병졸들에게 묶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묶지 못하겠느냐 ? 묶어야 너희들의 마음이 편할 것이다.
금부대장이 공손히 아뢴다.
"서울 성안까지 들어갈 동안은 그대로 모시겠습니다."
최영 장군은 함거에 의젓이 앉아 노래를 높이 부른다.
북소리 두리둥둥
내 목숨을 뺏아간다.
충신의 죽는 길이
이다지도 어려우냐.
백만 대병을 물리쳤던
내 솜씨가
황구유아(黃口乳兒)한테 꺽일 줄을 어찌 알리.
최영 장군의 노랫소리는 구슬프고 처량했다.
최영 장군의 구슬픈 노랫소리를 듣는 일천 군사들은 자기
자신들이 최 장군을 잡으러 갔던 군사인 것도 잊은 채,
모두 다 눈물을 뿌려 슬퍼한다.
금부대장도 말을 타고 함거의 뒤를 따르며 눈물을 흘린다.
얼음 우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얼음 우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정 둔 오늘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하니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절로,
"송헌 이성계"는 정도전, 조준, 남은, 들의 말을 듣고 최영을
죽이고, 김저를 죽이고, 조민수를 내쫓고,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신가로 몰아 내쫓고, 그래도 부족해서 두 임금을
죽여 버렸고, 어질다는 명성이 나라에 높은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목은의 두 아들을 죽였고, 무시무시한,
잔인한 일을 너무나 많이 감행했던 것이다.
"조영규" 일당이 선죽교 다리 밑에서 매복하고 있을 때,
포은의 행차는 앞을 바라보며 풍우같이 다리 위로 지나간다.
이때 다리 밑에 매복해 있던 역도들은 일제히 말을 달려
다리 위로 올라섰다.
조영규는 소매 속에 감추었던 철퇴를 꺼내 들고 뒤에 가는
녹사의 머리를 먼저 갈겼다.
"에쿠 !"
소리가 한 마디 떨어지면서 녹사는 아직 정신을 잃지
아니했다.
"대감 빨리 말을 달리십시오. 역적놈들이 행패를 합니다."
녹사는 바짝 정신을 차리고 죽을 힘을 다하여 부르짖는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녹사의 울부짖는 비명소리를 듣자 흘깃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에서는 조영규란 자가 철퇴를 들고 쫓아오고, 녹사는 말에
떨어진 채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포은 선생은 노기가 충천했다.
눈을 부릅떠 조영규를 꾸짖는다.
"이놈, 조영규야. 네 어찌 감히 대신의 행차를 범해서
이같이 무례하냐 ! "
조영규는 잡담 제하고 포은 선생한테도 덤벼들어 철퇴로
머리를 쳤다.
포은 선생은 모든 것을 각오했다.
"이놈 역적놈들아. 네 감히 충신을 죽이려 하느냐 ! "
이때, "고여"란 자는 포은 선생이 탄 말머리를 철퇴로
후려갈겼다.
포은 선생이 장검을 뽑아 들고 대항하려 할 때, 조영규의
두 번째 갈기는 철퇴는 포은 선생의 머리를 강하게 쳤다.
사모는 떨어지고 피는 선죽교 위로 붉다 못해 퍼렇게 흘렀다.
조영규 이하 역당들은 포은 선생과 녹사의 시체를 버린 채
이성계의 집으로 달렸다.
이성계의 아들 방원은 대문간에서 초조하게 하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말을 채찍질해 돌아오는 조영규를 맞이했다.
"어떻게 되었나 ? "
영규가 채 말에서 내리기도 전에 방원은 급히 묻는다.
"잘됐소. 죽였소 ! "
악당은 쓴웃음을 웃으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방원은 조영규의 손을 덥썩 잡았다.
말없이 등을 툭툭 두드린다.
*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이종학을 정도전은 그의 심복인
손흥종을 시켜서 장살(杖殺)시켰다.
이때 이종학의 나이는 겨우 삼십 이 세였다.
정도전은 마침내 이종학의 아우 이종덕도 매질하여
죽여 버렸다.
결국 정도전은 자기의 스승인 목은 이색도 죽여 버렸다.
송헌이 나라를 맡더니 나는 빌어먹어
떠다니는 몸이 되었네.
꿈엔들 어찌
이 일 있을 줄 알았으랴.
더구나 두 정씨가
큰 의논에 참예했다 하네.
한집안 사람들 어느 때나
다시 한곳에 모여보나.
송헌은 이성계의 호요. 두 정씨는 일찌기 그의 제자였던
정도전과 정총을 가리킨 말이다.
목은은 글을 끝마친 후에 제자에게 보이며 말한다.
"이것은 내 자식들이 죽기 전에 지었던 시일세.
이제는 다시 영영 한집안 사람들이 모일 도리는 없네."
목은은 말을 마치자 길게 한숨을 쉰다.
목은은 다시 붓을 잡아 시를 쓴다.
사람의 정, 어찌 물건처럼 무정할소냐.
물건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 불평하다.
우연히 국화 보니 내 얼굴 부끄럽네.
참국화 바라보는 가짜 도연명이로세.
목은은 전부터 여주를 좋아했다. 그의 제자인 도은 이숭인과
함께 여주에 왔을 때, 이숭인이 지었던 "여주시"를 생각해서
읊어 본다.
촌 저자에 고기 파는 계집애
예쁘기도 하다.
강물이 굽이치는 고래실 논에는
벼이삭도 토실토실 살이 쪘구나.
목은은 마음이 울적했다. 눈을 떠서 멀리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본다.
나라는 바뀌었건만 강과 산은 의연히 아름답다.
시름을 헤치려 하여 다시 시 한 수를 읊어 본다.
여강 한 굽이에
산이 그림같구나.
울긋불긋 단청인데
반나마 시로구나.
* 조상치는 어린 임금 단종이 영월에 쫓겨간 후에
자규루(自規樓)에 올라서 서울을 바라보며 자규시를
노래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자규새 우는 산 새벽달은 나지막이 떴는데
괴로와라, 임의 생각 누 머리에 의지했네.
네 울음소리 듣고 내 마음 시름한다.
네 소리가 아니런들 내 시름 없으랴만,
인간의 이별객들에게 말하노니
춘삼월 자규 우는 달밝은 정자엔
부디 오르지 마소.
조상치는 통곡하고 전해들은 단종의 시에 화답한다.
슬피 우는 저 자규 저 자규새야,
달밝은 밤 비인 산에 네 시름 무엇,
불여귀요, 돌아감만 못하오그려.
촉나라 멧부리 날으랴 하오.
보아하니 다른 새 모두 자는 데,
네 홀로 꽃을 향해 피 토하누나,
가이 없이 고단코 초췌한 얼굴
높은 인내 더한층 어여쁘고나.
슬퍼라 인간에도 한이 많거니,
뼈 아픈 원통한 일 너뿐만이랴.
손을 꼽아 세어도 끝이 없나니.
이렇게 그는 노래를 지어 울고, 탄식하고 노래하고
울었다.
* 길재의 호는 야은이라 했다.
본은 해평인데 아버지는 금주지사와 보성대판을 지낸
길원진이요, 어머니는 토산사람 김희적의 따님 김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외방에 원으로 나가게 되자 그를 외가에
두고 가니 이때 그의 나이는 여덟 살밖에 아니 되었다.
그는 주야로 어머니를 생각하여 남계 시냇가에 나가 놀다가
자라를 잡아서 "석별가"를 짓고 강물에 놓아 보낸 후 눈물을
흘려우니, 모든 사람들은 그를 껴안아 그의 영민한 재주를
탄복했다.
자라야, 자라야, 너도 어미를 잃었구나.
나도 어머니를 잃었다.
너를 삶아 먹고 싶으나
네 신세가 나와 같기에
너를 강물에 놓아 보낸다.
여덟 살 먹은 길재의 석별가는 이렇게 하여 세상에
자자하게 퍼졌다. *
" 두레와 겨레와 나라의 개척을 위하여 사람다운 큰 일을
한 분은 발해 태조 대조영뿐만 아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의 말세에 벌떼같이 일어났던
궁예(弓裔)와 견훤(甄萱)을 평정, 아름다운 덕(德)과
지(智)와 용(勇)으로 다시 한번 삼국통일을 이룩하여
고려왕조(高麗王朝)의 사백여 년 기업을 중경(中京)인
송도(松都)에 자리잡아 놓았다.
왕건 태조의 삼국통일과 신라의 삼국통일을 비교해 볼 때
삼국통일은 다 같은 통일이지만, 고려의 삼국통일은
신라 때 삼국통일보다도 그 사업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外勢)의 힘을 빌었거니와,
고려의 삼국통일은 순전한 자력 통일인 까닭이다."
"사람의 형상이 크다는 것은 우리 겨레가 옛적에는 모두 다
몸이 굵고 키가 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 사람들은 우리 겨레를 활을 가진 큰 사람,
곧 대궁인(大弓人)이라 해서 동이(東夷)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夷)는 큰 활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최영 장군은 포은 정몽주 선생과 함께 여말(麗末)에
제일가는 충신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실 때 하도 원통하시니 유언을 하시기를
내가 죽은 후에 내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아니하며 새빨간
적분(赤憤)이 되리라 하시고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이분의 정충대절(情忠大節)은 포은 선생과 함께 해와
달 같은 쌍벽을 이룬 분이다."
"소나무 송진이 천 년을 묵어서 백복령(白茯笭)이 되고,
백복령이 천 년을 묵어서 밀화(蜜花)가 되고,
밀화가 바닷 물 속으로 굴러 떨어져서 천 년을
묵어야만 금패(錦貝)가 된다."